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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영재 학교, 밤에는 윤락 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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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낮에는 영재 학교, 밤에는 윤락 업소

[민교협의 정치시평] 대학 학사 구조 선진화 계획 재고

유학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미국이나 일본 등지와는 달리 러시아에서 유학생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한국인 관광객 대상의 관광 가이드나 방송국 현지 코디 정도였던 유학 생활에서 잊지 못 할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지인의 부탁으로 고위급 혹은 특권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 여행사와 연결되어 있는, 역시 고위급 혹은 특권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현지 여행사에 임시로 소속되어 가이드를 한 적이 있었다.

차관급 고위 공무원 4인과 보좌관들, 그리고 모 정부 부처 공무원 및 출입 기자들, 그리고 일부 교수 등이 포함된 한 공적 연수의 통역을 맡게 된 것이다. 명목상으로는 몇 나라를 돌며 선진 과학 영재 교육 현장 탐방을 목적으로 하는 연수였지만, 실제로는 한 기관장이 재선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 낸 '유람'이었다.

실제로는 성매매를 포함한 퇴폐적 유흥과 부패 사슬 구축을 목적으로 수많은 공무원들과 기업인들, 정치인들이 출장과 연수를 억지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었는데, 그 주요 대상 국가 중 하나가 바로 필자가 유학하던 나라였다. 한국과 현지의 두 여행사 사장들은 서로 경쟁적으로 얼마나 많은 한국의 고위 공무원들과 기업인, 의사 등 특권 부유층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들여 자신들에게 의뢰를 해서 얼마나 비밀스럽게 이 나라로 성매매를 하러 오는지, 그리고 그들을 어떻게 등쳐먹었는지에 대해 자랑스럽게 떠벌이던 게 기억난다.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공공연하게 그러한 목적으로 오는 이들도 엄청난 것을 생각하면, 그리고 극소수의 양심적인 관련 당사자들의 진실된 고백에 의하면 이는 거짓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택시 제도가 엉망인 나라에 선진 택시 제도 연수라는 이름으로 감히 사기를 쳐서도 연수를 오던 것을 보아 온 터라 그런 종류의 연수인 줄 알았지만, 의외로 낮에는 평범한 유학생이 가보기 어려운 과학 영재 학교들을 몇 군데 방문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물론 밤에는 여느 한국인들만이 광고 없이 불법으로 운영하는 성매매 업소에서 노느라 정신들 없었지만….

처음에는 새벽 몇 시든 기다려서 숙소까지 모셔다 드려야 된다는 계약에도 없는 일을 강요하더니 다음 날부터는 아주 친절하게 일찍 귀가하라는 진정한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도 잘 알게 되었다. 비록 낮에는 영재 학교를 방문하기는 했지만, 그 때까지 풍겨오는 술 냄새와 벌건 얼굴들은 학교 관계자들을 당황케 하기도 했다.

일행들 중 최악의 인간들이 있었다. 바로 모 정부 부처 출입 기자들이었다. 이들 중 방송국 기자가 신문사 기자보다 나이가 많은 듯했는데, 방송국 기자는 나이 어린 신문사 기자에게 취재를 다 맡기고 그냥 놀았다. 지금도 일정 직책을 맡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그 신문사 기자는 자신의 아버지뻘 되는 차관급 공무원들에게조차 거의 반말로 일관했고, 가이드인 필자는 물론 주변 모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대낮 폭탄주는 물론 불법 성매매 업소에서의 유흥으로 인해 낮 일정에 차질을 준 추악한 행위는 과학 영재 학교 교장들의 학교 선전 프레젠테이션 과정에서 일어났다.

이들 국가가 운영하는 과학 영재 학교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과학 교육 이상으로 역사, 문학, 문화, 철학, 어학 등의 인문학 교육은 물론이고, 학기 중간과 방학 중 자연에서의 캠프 활동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 뿐 아니라, 과학 분야보다는 댄스, 음악, 미술, 외국어 및 문화 연구 등 다양한 자율적 방과 후 서클 조직 및 활동을 지원하고 있었고, 주 중에 두어 번 이상 박물관, 전시회, 음악회, 발레 공연 관람 등 예술적 감각을 위한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학교 관계자들은 과학 영재들일수록 사회성이 떨어질 수 있고 과학 그 자체의 괴물에 몰두할 수 있어 인문학적 교양 뿐 아니라 예술적 감각이 필요하며, 자신의 연구 결과가 인류와 자연의 조화로운 발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자연 속으로 들어가 보고, 동료들과 공동체 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서클 활동을 장려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그런 스트레스 해소가 오히려 과학 교육에 몰두할 수 있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프레젠테이션이 한창일 때, 매일 유흥에 몰두하다보니 기사를 제대로 쓰지 못 한 채, 이 나라만의 독특한 특징을 써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그 기자는 술 냄새를 풍겨 가며 무례하게도 발표를 중단시키고는 통역이 잘못된 게 아니냐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안 되는 설명이라며 프레젠테이션을 다시 요청했다.

한국의 과학 영재들은 하루 종일 교육에 매달려 있어도 국제적인 수준의 성과를 못 내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식의 교육으로 과학이 발전할 수 있으며, 영재들이 과학에 더 몰두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반복했다. 이에 슬라이드 형태로 된 사진까지 자세히 보여 주며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소개하던 학교의 교장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 했다. 이 기자 외에도 모두 똑같은 의문을 갖고 있었음은 말 할 나위도 없다.

다소 길게 소개한 위 에피소드는 하나의 해프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는 한국 교육계의 교육관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상징적인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일행 이후에도 직간접적으로 겪었던 경험들과 사건들은 더더욱 이를 뒷받침해 주었다. 그 후 10여 년 이상 지났지만, 지금도 한국의 교육 관료나 정책 입안자들의 철학과 정책은 저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으며, 본질적으로 변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지난 정권 이후 참으로 꾸준하게도 대학에 대한 각종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국공립 대학교들의 총장이 민주적으로 선출되었지만,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이유로 임명을 거부하는가 하면, 정반대로 심각한 수준의 비리 사학들이 속속 복귀하여 다시 대학교를 장악하고 있으나 정권은 수수방관이다.

일방적인 정원 감축도 문제지만, 구성원들의 동의 없는 학과 통폐합이 강행되어 심각한 분규 속에 있었던 대학들도 부지기수였다. 특히 총장 직선제를 간선제로 바꾸려는 시도들은 곳곳에서 갈등을 야기해 왔다. 급기야 지난 8월 20일에는 부산대학교의 한 교수가 이에 항의하며 투신자살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민주주의, 시민권, 자유와 평등과 같은 큰 틀에서 뿐 아니라, 구체적으로도 노동, 안보, 통일, 안전, 정의, 언론, 복지, 환경, 인권 등등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의 거의 모든 부문에서의 심각한 퇴행과 후퇴를 겪고 있는 상황 속에서 대학 교육의 퇴행적 현상도 나타나고 있음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물론 현재 일어나고 있는 대학 교육 개혁(?) 정책의 모든 사안들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갖고 있는 철학이나 개념, 방향이 사회 변화에 적응하지 못 한 채 기득권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잘 알지도 못 하면서 고루한 관념에 입각해 그럴싸하지만 실은 아마추어 같은 자세로 대학과 학생들의 미래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고민하고 있기도 하다.

전반적인 후퇴와는 무관한 조치라고 생각하면서 순전히 교육적인 입장에서 평가해 보기도 한다. 그래서 비록 신뢰는 가지 않지만, 오는 2023년까지 공학 분야에서 27만7000여 명의 인력이 모자라는 반면 인문사회계는 6만여 명, 자연계는 13만4000여 명이 과잉 공급될 것이라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 국가를 경영하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과거 그 어느 시대에도, 그리고 그 어느 국가에서도 대학교 졸업자 다수가 자신의 전공을 살려서 취업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더욱이 그러한 배치는 이론상으로나마 사회주의 사회와 같은 철저한 계획 하에서만 그나마 가능한데, 그런 체제를 지향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더욱이 학생들이 전공 외 분야로 자연스럽게 진출하기도 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이다. 그리고 이미 오래 전부터 산업 수요와는 전혀 맞지 않는 과들이 더 많았던 것이 현실인데 돌연한 강조는 논리에 맞지 않는 궤변일 뿐이다. 문학과 철학과 사학이 어느 시대에 무슨 산업 수요에 맞을 수 있었겠는가? 수학이나 물리학, 지질학은 산업 수요에 직접적으로 맞는 학문인가?

게다가 대학을 단순한 특정 기능인 양성소로 보는 이 시각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이런 논리라면 정치하는 비정치학 전공자들이나 관료들 중 비행정학 전공자들, 그리고 언론인들 중 비언론학 출신자들은 다 수요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니 다 물러나야 한다. 교육부 장관님은 법학 전공자이자 교육계 종사 경험도 없지만, 일국의 교육부 장관직을 멋지게 수행하고 계시지 않는가!

실패한 국가 사회주의 제체의 부정적 유산과 천민 자본주의 체제의 야만성의 최악의 조합을 보여 주고 있는 탈 소비에트 러시아. 대부분의 영역에서 한국 사회보다 후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는 하지만, 체제가 붕괴하면서 발생한 심각한 정치, 경제, 사회의 위기 속에서도 이렇게 대놓고 '산업 수요에 맞지 않는 학과들을 통폐합해야 한다'는 논리로 인문사회 계열을 축소해야 한다는 정책을 국가가 나서서 진두지휘하지는 않는다.

비록 내용적으로는 부정과 부패, 편법과 불법이 난무하여 사실상 제대로 원칙을 지킨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국가가 나서서 공공연하게 의료와 교육 등에 대한 책임을 버리고 사적 영역이나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경제가 파산을 했어도, 때문에 비록 질은 낮아졌을지 몰라도 학교 급식을 포퓰리즘이네 뭐네 하며 중단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짓도 하지 않았다.

물론 현재 권위주의적 경향의 강화 속에서 진정한 학문적 자유가 보장되거나 비판적 인문사회학 연구가 보장되고 있는 것은 아니며, 전체적으로는 교육 분야에서도 심각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교육에 대한 철학과 방향은 시장 논리나 기업 사회논리만으로 흔들리고 있지 않다.

과학 교육을 하는 데 있어서도 자신들 나름대로의 기준과 깊이를 토대로 교양 정도를 넘어 심도 있는 인문학적 교육은 물론 다양한 예술 교육, 나아가 자연과의 교감을 통한 진정한 교양 교육을 여전히 강조하고 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산학 협력이 필요하지 않다거나 기업이나 산업과의 연계성과 무관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대학의 역할과 기능이 결단코 직선적으로 기업들의 요구에만 맞춰야 한다는 생각 하에서 과목 조정을 넘어 학과를 통폐합하는 것은 스스로 천박한 삼류 국가임을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위의 에피소드에서도 보이듯 여전히 한국의 교육 관료 및 교육 관련자들은 진정한 교육자적인 품성과 자세를 갖추려고 하기 보다는 출세와 유흥, 그것을 위한 인맥 만들기와 경제적 이득과 같이 교육 외적인 것들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한 나라의 교육 제도를 시찰하겠다는 사람들이 경제 위기로 교육 현장에서 벗어나 학업을 중단하고 빈곤에 허덕이는 그 나라의 가장 가난한 계층 출신의 여성들을 쾌락의 도구로 삼아 서로 간의 인맥을 쌓는 기회로 삼는 것이 과연 위 에피소드 주인공들만의 일시적인 일탈이라고 할 수 있을까? 교육에 대한 진지한 고민보다는 사회의 지배 엘리트, 기득권층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그들과의 네트워크 구축을 우선시하는 비민주적인 국가 관료 시스템의 일부로서 기능하는 수많은 교육 관련 당사자들의 각성이 필요하다.

교육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갖지 못 할 때, 교육에 대한 위로부터의 퇴행적 압력에 맞서기는커녕 양심을 팔아 전위대가 되거나 그 과정에서의 작은 지대를 추구하는 데 보다 더 앞장서게 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구조 개편에 무조건적으로 반대하거나 저항하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기능인 양성소와 같은 입장이나 기업의 요구에 따른 인력 보급소와 같은 역할을 자임하여 단기적 계획 하에서 비교육적으로 구상되어진 교육 구조로 개편하는 데 반대하는 것이다.

억지로 통폐합되어 해괴하게 바뀐 학과 명칭들로 인해 오히려 취직과 유학이 어려워진 사례들도 비일비재하다. 진정으로 교육을, 나아가 이 땅의 아이들을 걱정하는 이들이라면, 선진 외국 국가들, 심지어 위에서 언급한 러시아의 사례처럼 우리보다 못 한 것으로 생각될 수 있는 국가들조차 이러한 논리로 대학 교육을 뒤흔들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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