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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세력'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

[민교협의 정치시평] 보수는 없다…선거는 '특권층'과 싸움!

최근 한 신문에서 흥미로운 칼럼을 읽었다. 그 칼럼의 내용은 이렇다. 학술세계에서나 적용할 수 있는 '보수-진보', '좌파-우파'라는 관념적 이분법을 옛 한나라당이 현실 정치세계에 끌어들여 상대를 이념의 늪에 가두려 한 강력한 프레임의 위력에 대한 것으로 이러한 프레임, 이념 전쟁의 결과 총선과 대선에서 이들이 승리할 수 있었고, 정권도 재창출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특히 이 과정 속에서 '보수는 다소 부패했지만 대체로 유능하고, 진보는 다소 깨끗하지만 대체로 무능하다', '보수는 성장, 진보는 분배'라는 식의 근거 없는 가설이 설득력 있게 퍼졌고 이는 지금도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고도 했다.

그에 따르면, 바로 이러한 프레임 공세는 매우 성공적이어서 국민들로 하여금 현재의 새정치민주연합으로 이어져 온 보수 야당을 엉뚱하게도 진보 좌파 정당으로 인식하게 하였고, 여기에 더해 이석기 의원 사태와 통합진보당 해산을 강행함으로써 이들과 선거연대를 한 이들에게 한국 사회에서 가장 혐오적인 개념인 종북 좌파 프레임까지 덧붙여지게 되면서 한층 더 현실이 왜곡된 채 국민들을 세뇌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분법은 모든 분야에서 복잡한 흐름을 파악하는 유용한 도구이지만, 지나친 단순화는 위험하다면서 특히 정치를 이분법으로 설명하는 대가는 치명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이러한 주장은 새로운 것은 아니며, 큰 틀에서 내용상 틀린 부분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한 이분법 프레임을 노골적으로 사용하면서 큰 차이도 없는 듯 보이는 중도 보수 야당의 집권도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해 저지하고 있는 이분법의 한 당사자인 소위 한국의 보수 세력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다시 할 필요가 있다. 사전적인 의미에서의 보수주의(保守主義, Conservatism)는 관습적인 전통 가치를 옹호하고, 기존 사회 체제의 유지와 안정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이념을 말한다. 특히 가치로서의 보수는 현상 유지(status quo)를 하거나, 점진적이고 안정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사전에는 쓰여 있다. 그러면서 여타 다른 보수적 가치를 추구하는 방식들, 즉 과거로의 회귀를 추구하는 반동주의와 현상을 유지하려는 수구주의와는 구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이들은 '보수'라는 환상을 이미지화, 현실로 끌어왔다. ⓒ프레시안(최형락)

'보수'는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기득권이 존재할 뿐

그러나 한 마디로 말해 이러한 사전적 의미에서의 보수주의나 보수파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에서는 전통적 가치를 옹호하거나 기존 사회 체제 유지를 통한 안정적 발전추구가 아닌 탐욕과 특권의 독점적 확보와 확대를 추구하는 기득권 세력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들의 헤게모니 하에서 그들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집단과 오랜 기간 세뇌된 집단이 있을 뿐이다. 오히려 반동주의와 수구주의, 혹은 극우주의를 구별하는 것이야 말로 커다란 의미가 없는 관념적인 학술적 분류이다.

단지 서구에서는 오랜 기간 아래로부터의 끈질긴 저항의 결과,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들의 탄생으로 인해 위험을 느낀 지배 집단들이 어쩔 수 없이 일국 내에서는 타협을 하고 일정 부분 양보를 하면서 제도적으로 통제를 받게 된 것뿐이다. 따라서 일국의 경계를 넘을 경우 이들은 자신의 본성을 어김없이 드러내는 것이 작금의 국제정치경제의 현실인 것이다. 이는 다른 이론으로 설명해 온 서구 복지 국가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주도 세력인 중심부 국가의 모습이기도 하다. 반대로 이러한 조절 장치가 없는 비중심부, 비서구 국가들에서는 외부의 힘과 때로는 대립하고 때로는 같이 하며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 보수의 진짜 모습인 것이다.

칼럼의 저자는 보수의 장기 집권이 보수의 건강성 상실로 나타날 수 있다고도 했지만 현실에서 그들은 건강성을 가져 본 적이 없다. 이들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서는 정반대로 전통적 가치도 벗어던질 수 있고, 기존 사회체제를 뒤바꿀 수도 있으며, 얼마든지 불안정성의 확대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를 '기득권 지배 집단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국가의 시장 기능 조정'이 아닌 이론 그대로 '국가의 후퇴와 시장의 자율성 극대화'로 이해하는 오류와 마찬가지로 가장 심각한 학술적 관념의 산물이 바로 보수주의와 보수 세력에 대한 정의라고 할 수 있다.

합리적(?) 보수 정당과 진보 정당이 존재하는 서구 등 선진적인 정치 정당 제도를 갖춘 국가들의 예를 들며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필자의 주장은 이러한 정당 중심의 보수-진보 세력에 대한 논의가 아니다. 정치 사회의 보수 정당 세력은 이 사회의 지배 집단의 이익을 반영하는 세력들 중 일부분일 뿐이며, 부를 독점하고 착취하고 지배하고 있는 실제 세력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을 방해하는 역할을 해 오고 있다. 시끌벅적한 보수 정치 세력들의 정치쇼 뒤에서 벌어지는 일들, 가령 세월호 사건 와중에 의료민영화나 5대강 사업을 추진하는 등 이들의 지배 메카니즘은 매우 조용하면서도 치밀하게 자동한다. 따라서 얼마든지 민주적으로 정권 교체가 가능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정치 정당으로서의 보수 세력이 아니라, 정당 정치의 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보수'라는 이름으로 위장하여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고 있는 사회의 기득권 지배 집단의 지배 방식에 대한 분석이 절실하다.

그런데 사실 현실에서는 기득권 지배 집단들은 '보수-진보', '좌파-우파'의 세련된 이분법이 아닌 괴이한 이분법으로 대중을 현혹시키고 있다.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친일파에 이은 친미 독재 집권 세력들과 그 후신 세력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더 공격적인 이분법으로 야당과 노동 진영, 그리고 시민사회에 대한 거짓 선동과 음해, 그리고 이러한 근거한 탄압을 일삼아 왔었다. 특히 가장 효과적으로 작용했던 친북, 종북 프레임이 정치적 민주화 이후 약발이 떨어지면서 잠시 복지 국가를 공격하는 서구 신자유주의 우파들이 사용하던 진보 좌파에 대한 다소 세련된 비판 프레임으로 옮겨 가는가 싶었지만, 전반적인 사회의 우경화, 특히 젊은 층의 보수화로 인해 다시 종북 프레임의 효용 가치가 커지면서 이제 야당 뿐 아니라,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비판적 세력이나 여론에 대해 폭압적으로 억누르는 기제로 무차별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과거 종북 프레임이 더 이상 효용 가치가 없어지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젊은 층의 거부감이었는데, 정치적 민주화가 실질적 민주화로 발전하지 못 한 채 강화된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화로 인해 젊은 층들이 급격하게 보수화되면서 종북 프레임은 과거와는 달리 이들에 의해 급격하게 부활하였다. 여기에 더해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인 반여성주의, 지역차별주의에 인종주의와 같은 서구식 극우 프레임까지 뒤섞여 진행되고 있는 한국 사회의 우경화, 특히 젊은 층의 보수화는 보수 기득권 세력들의 특권과 탐욕을 구조적으로 보장해 주는 중요한 토양이 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보수화'나 '우경화'는 단순한 '우향우'가 아니라, 무복지, 무한경쟁 사회에서 고통받고 분노하는 젊은이들이 그 저항의 방향성을 상실한 채, 오히려 언젠가는 기득권 집단과 같은 지위에서 그들과 같은 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무조건적 믿음 속에서 기존의 기득권 시스템을 옹호하고 비판자들을 공격하는 현상이라는 데에 그 심각성이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난 정권 하에서 집요하게 이루어진 언론 장악이 거의 완료된 현재, 이들은 놀랍게도 거짓 주장들도 태연하게 늘어놓으며 대중을 현혹시키면서 정치나 경제 영역에서는 물론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들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마음껏 확산시키고 있다. 정상적인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언행을 일삼는 것은 이들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매우 치밀한 계산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가령, 그리스 경제 위기의 원인에 대해 과잉 복지를 강조하는 등 누구나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뻔히 드러날 거짓 선동을 일삼는 것이나 탄저균 사건과 같은 중요한 사안은 언급도 안 한 채, 일국의 여당 원내대표라는 사람이 미국인들을 업거나 그들 앞에서 큰절하는 쇼를 한 것, 그리고 그 와중에 중국과 국내 진보 좌파, 노동 개혁(?)을 언급하는 일 등으로 대변되는 이들의 일련의 언행은 자신들의 헤게모니 하에 놓인 집단들을 결집시킬 수 있는 자신감의 표출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공세는 단지 보수 야당의 집권을 막는 데에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권력을 잡으려고 하기보다, 서로의 머리와 발목을 잡고 있는 한국의 진보좌파는 실질적으로는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세력들 중 일부가 가끔씩 제기하는 정책들이 한국의 보수 기득권 세력들의 탐욕을 확대시키는 데 있어서 실질적인 타격을 주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더욱 노골적으로 이러한 프레임을 한층 더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선거는 '보수'와 싸우는 게 아니다'지배 집단'과 '특권'과 싸우는 것

물론 현실적으로 선거라는 수단으로 보수 정당을 패배시키는 방식 외에는 현재 적절한 통제 수단은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다당제를 인정하는 한, 정치 사회에서의 전략 역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본질적 문제에 대한 관심과 분석 없이 우리 스스로 정치 사회 내에서 허구의 '보수'와 그 대당으로서의 '진보'의 이분법적 틀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은 분명 큰 문제이다. 따라서 설사 진정한 진보 좌파 정당이 집권을 하는 상황이 닥치더라도 이러한 사회세력으로서의 사회 모든 영역에서의 기득권 세력들에 대한 제어와 통제 수단이 마련되지 않으면 모든 실험은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사례들을 해외에서도 무수히 보아 왔지만, 단지 근본적 체제 변혁이냐 아니냐의 문제로만 축소하여 엉뚱한 평가만 백 년 이상 해 왔고 그런 오류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특히 정치에서의 퇴행도 문제지만, '일베'라는 사이트 하나의 문제를 넘어 아무렇지도 않게 각종 반인간적 차별과 혐오 범죄적 표현과 행동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질 정도로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심각한 범죄화의 위기의 상황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 태평하다. 수많은 정치적 사안에 대응하는 것도 벅찬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 정권부터 지금까지 도저히 열거할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반민주적, 반민중적 작태들이 난무해 온 것에 비해 이에 맞서는 저항은커녕 서로 '무슨 주의'나 '개량이네 뭐네'로 나누어 싸우기 더 바빴다. 그런가 하면 단임제 하 최고의 정권 재창출 전략인 '여당 내 야당' 프레임에 불과한 유승민 사태에 대한 동정 등에서 보이듯 진보좌파 중 다른 일부는 보수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퍼뜨리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가능하지도 않은 근본적 체제 변혁에 대한 지지 여부로 인한 갈등을 일으키는 등 현실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사변적 논쟁을 버리고, 기득권 세력이 생길 수밖에 없는 시장경제체제의 한계 속에서 형식적으로는 어쩔 수 없는 '보수-진보'의 정치적 틀을 인정하더라도 그 속에 숨어 있는 기득권 세력의 지배와 이익 추구 방식에 대한 분석과 대응을 입체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 등 유럽과 중남미 좌파의 경험에서 배워야 하는 것은 특정 정당 지배 분쇄가 아닌 '올리가르히'라고 칭하는 실제 지배 집단의 특권을 타파하려는 태도이고, 집권 그 자체를 넘어 일상적으로 풀뿌리 단위에서도 다양한 연대를 이루어 내는 작업을 매우 다양한 정치정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하려고 노력하는 태도이다. 물론 주변부 지역 국가들에서의 좌파들의 집권은 외적인 영향에 대한 민족주의적 반발로 이루어진 부분도 크지만, 어찌 되었든 바로 그러한 시민사회 내에서의 다양한 작업의 결과가 한국 진보 좌파에서는 불가능한 수십 개 조직의 정치연합 블록 형성이고 집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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