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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섬의 황홀한 일몰과 갯벌체험-장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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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섬의 황홀한 일몰과 갯벌체험-장고도

10월 섬학교 <서해해넘이특집>

장고도는 작은 섬이지만 섬이 주는 평화와 안식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썰물의 시간이면 주민들은 갯벌에 나가 조개를 캐고 소라와 해삼을 잡습니다. 느릿느릿 해산물을 채취하는 풍경에는 조급함이나 하나라도 더 얻으려는 욕심 같은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주민들은 경쟁자가 아니라 함께 어장을 가꾸고 관리하고 거기서 얻어진 소득을 공평하게 나누는 나눔의 공동체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이 무한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위안을 줍니다.

10월의 섬학교(교장 강제윤. 시인, 섬여행가)는 3(토)∼4(일)일, 제43강으로, 충남 보령의 태안해안국립공원 안에 있는 장고도를 찾아갑니다. 장고도와 하나로 연결된 명장섬 숙소 앞 해변의 해넘이는 가히 서해 최고라 이를 만큼 황홀합니다. 또 주민들의 양식장이 아닌 해변 갯벌에서는 맛이나 바지락 같은 조개들을 캐고 소라를 잡는 특별한 체험도 해볼 수 있습니다. 이번 섬학교는 따로 또 같이! 함께 하는 일정만큼이나 혼자 쉴 수 있는 자유시간이 많습니다. 망연히 앉아 더없이 평화로운 일몰을 볼 수 있는 가을섬으로 초대합니다. ▶참가신청 바로가기

▲섬은 그 자체로 휴식이다. ⓒ섬학교

강제윤 교장선생님으로부터 10월의 섬 <장고도>에 대해서 들어봅니다.

“때때로 어디로 갈 것인가를 망설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연에는 정교한 자성(磁性)이 있어서 우리가 부지중에 이를 따르기만 하면 우리를 올바르게 인도해 준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소로우 <산보>)

“태풍은 바다에 잘 갈아놓은 톱날 같아“


삽시도에서 유숙하고 장고도로 건너왔다. 바로 곁이지만 두 섬이 주는 느낌은 많이 다르다. 더 작은 섬인데도 장고도에서는 어쩐지 풍요로운 기운이 감돈다. 밀물은 해변 집앞까지 쳐들어왔다. 마을앞 바다에는 숭어떼가 지천이다. 어미숭어들은 유유히 떠다니며 먹이를 탐하고 새끼숭어들은 멸치떼처럼 우글거린다. 장고도는 한창 멸치잡이 철이다. 올해는 멸치가 풍년이라 마을의 들판은 온통 멸치 밭이다. 햇빛에서 멸치떼가 말라갈 때 사람들은 그늘에서 말린 멸치를 박스에 담는다.

숭어떼가 몰려온 것은 건조장에서 버려지는 멸치 부스러기를 얻어먹기 위해서다. 먹이를 찾아 몰려드는 것은 생명의 본성이다. 섬에서는 안강망 어선 여섯 척이 멸치를 잡는다. 배가 없는 주민들은 멸치 건조장에서 품을 팔거나 바지락, 굴 등 해산물을 따며 살아간다. 바지락보다 값이 더 나가는 홍합은 작은 배라도 있어야 채취가 가능하다.

80여 가구 250여 주민들이 사는 마을에는 보건진료소와 해경초소가 하나씩 있다. 외연도를 비롯한 보령의 여러 섬들처럼 장고도에도 절강 편씨들이 많이 산다. 절강 편씨들은 임진왜란 때 제독중군(提督中軍)으로 조선에 출병했다가 간신의 무고로 귀국하지 못하고 조선에 눌러 살았던 편갈송(片碣頌)의 후예들이다.

지난 여름 태풍으로 당산숲의 나무들도 큰 피해를 입었다. 뿌리 뽑힌 나무가 여러 그루고 가지 부러진 나무들은 셀 수도 없다. 지체가 무사한 나무들도 잎들은 다 떨어져 나갔다. 태풍이 오던 날 함석지붕이랑 기왓장들이 날아다녀 주민들은 공포에 떨며 집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다. 당산숲 바로 아랫집 마당의 팽나무 고목도 그 태풍에 잎들이 다 떨어져 나갔다. 태풍이 염분을 듬뿍 뿌리고 지나가자 나무는 서리맞은 고춧잎처럼 일순간에 잎들을 다 떨구었다.

길가에서 만난 노인은 대전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정년퇴직을 하고 8년 전쯤 섬으로 들어와 정착했다. 가족들은 여전히 뭍에 산다. 노인은 태풍이 지나가고 5일쯤 지나자 나무에서 새잎 돋는 광경을 목격했다. 초봄처럼 새싹이 돋고 연초록 새잎이 자랐다. 노인은 나무가 월동할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해 새잎을 틔운 것이리라 짐작했다. 잎이 없으면 광합성을 할 수 없으니 나무는 서둘러 새잎을 틔운 것이겠지. 담장의 장미도 새로 꽃을 피웠다.

울안의 팽나무뿐만 아니라 당산숲의 나무들도 온통 연초록으로 푸르다. 태풍으로 당산의 나무들이 쓰러졌으나 누구도 손을 대지 못한다. 액운이 생길까봐 두려운 때문이다. 태풍에 속수무책인 당산일지라도 섬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신성한 산이다. 노인은 태풍이 "바다에 잘 갈아놓은 톱날 같다"고 생각한다. 바다가 아니고서야 바람의 칼끝을 그처럼 날카롭게 갈지 못했으리라. 태풍의 칼끝에 베인 섬의 상처가 쓰리다.

▲장고도 명장섬의 황홀한 일몰 ⓒ섬학교

뱀신을 모시던 섬

지금은 사라진 풍습이지만 근래까지도 섬에서는 소를 잡아 바칠 정도로 당제를 성대히 치렀다. 마을 전속 무당이나 점쟁이도 있었다. 무당은 신당에 황해도 임장군을 모셨다. 연평도나 황해도만이 아니라 충청도 섬들까지도 조기의 신 임경업 장군의 위력이 뻗쳤던 것이다.

무당집과는 달리 마을의 당에서는 뱀 서낭을 섬겼다. 옛날 장고도 어부가 조업을 나갔다가 한밤중에 바다에서 길을 잃었다. 막막한 암흑의 바다. 그런데 어디서 갑자기 섬광이 번뜩였다. 뱀 두 마리가 바다에서 교미를 하는데 그 몸에서 신령한 빛이 새어나왔다. 그 빛에 의지해 어부는 섬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이후 섬에서는 뱀 서낭을 모셨다.

매년 음력 정월 초 당산에서 뱀 서낭을 모시는 제례를 올렸다. 이를 진대제라 했다. 그 후 섬 주민들은 뱀을 죽이거나 쫓지 않으며 경외했다. 섬에서는 뱀과 상극인 돼지를 기르지 않았다. 지금도 섬에서는 돼지를 사육하지 않는다. 뱀뿐이랴, 섬이나 해안지방에서는 헝겊이나 벙거지, 떠밀려온 통나무나 돌멩이 하나도 신이 될 수 있었다.

어디보다 생사가 화급한 곳이 바다다. 목숨을 살리는데 도움을 주고 삶의 희망을 주는 것은 무엇이고 신 아닌 것이 없다. 세계종교가 된 유일신교들은 보이지 않는 신도 철썩 같이 믿는데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이 어찌 잘못일까. 하지만 섬에서는 이미 무속이나 당제가 사라지고 없다. 전래의 신들은 모두 쫓겨나고 섬은 외래신이 접수했다.

장고도 초등학교 운동장. 오늘은 학교가 텅 비었다. 선생님들과 아이들은 모두 <대백제전>을 구경하러 부여에 갔다. 이 학교의 나무들도 지난 태풍에 된통 당하고 새잎을 틔웠겠지. 그런데 놀라워라. 새잎 정도가 아니다. 교문 입구의 벚나무 고목들은 꽃이 만개했다. 가을에 벚꽃이라니! 당산나무들처럼 태풍에 잎 다 떨구고 시들었던 벚나무들이 새잎을 틔우고 끝내 꽃까지 피웠다. 4월에 피었던 벚꽃이 10월에 다시 피었다. 벚꽃에는 벌 나비들이 날아들어 꿀을 따고 허공에는 꽃잎이 날린다. 화단의 단풍나무는 벌겋게 물들어 가는데 벚꽃이라니!

자연의 순환법칙을 거슬러 피어난 잎과 꽃들. 살아남기 위한 투쟁이다. 태풍에 목숨을 잃을 뻔했으니 서둘러 자손을 번식시키려는 생명의 본능. 이제 곧 추위가 닥치리라. 하여 꽃은 피웠으되 저 나무는 끝내 열매 맺지는 못하리니 생명이란 이토록 애틋하지 않은가.

▲갯벌의 일몰은 아득하고 그윽하다. ⓒ섬학교

평등의 정신을 실천하며 사는 섬마을


영국 신문 <가디언>의 보도에 따르면 영국 구호단체 옥스팜의 조사결과 세계의 부자 85명이 지구 인구의 절반인 35억 명과 동일한 부를 소유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세계 인구 1%가 가진 재산은 지구 인구 35억 명이 가진 재산의 무려 65배에 달한다. 부의 편중과 양극화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나타내주는 지표다. 한국사회의 양극화 또한 갈수록 커지고 있다. 도시뿐만 아니라 농어촌 또한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가 심각하다.

하지만 장고도는 섬에서 산출되는 부를 골고루 나누는 나눔의 공동체가 살아있다. 작은 섬인데도 무언가 풍요로운 기운이 감돌았던 것은 그 때문이다. 장고도는 해삼의 섬이다. 여름이면 제주에서 해녀들을 초빙해와 해삼을 채취한다. 절반은 해녀들 몫이고 나머지 절반은 주민들에게 분배된다. 작년에는 해삼에서 나온 소득만 가구당 1천만 원 남짓 됐다. 오래전 주민들이 섬 주변 바다에 해삼 양식장을 만들었던 덕을 보는 것이다. 해삼은 말려서 중국으로 전량 수출된다. 해삼 양식장뿐만 아니라 바지락 양식장의 수확도 다른 섬들보다 크다.

장고도 주민들은 썰물 때가 되면 갯벌 어느 곳에서든 바지락을 캔다. 하지만 마을에서 종패를 뿌려가며 공동으로 관리하는 바지락 양식장에는 정해진 날에만 작업할 수 있다. 가구마다 한 사람씩 작업에 참가한다. 이 양식장 작업이야말로 장고도 주민들이 얼마나 지혜롭고 나눔의 공동체를 사는지를 보여주는 표본이다. 인근의 다른 섬들은 일정한 작업량을 정해두고 각자 캔만큼 수익을 올린다. 하루 40킬로 이하 채취가 기준이면 근력이 좋은 사람은 40킬로를 다 캐가지만 힘없는 노인들은 20킬로그램도 채 못 캐갈 수 있다.

하지만 장고도는 철저하게 공동작업 공동분배다. 한 사람이 70킬로그램을 캐든 20킬로를 캐든 모두 모아서 공평하게 분배한다. 그렇다고 부러 게으름을 부리는 사람은 없다. 힘 있는 젊은 사람들은 더 많은 양을 캘 뿐이고 힘없는 노인들은 적게 캘 뿐이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도 불만이 없다. 자신도 언젠가는 늙을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한국사회 전체에 본받아야 할 공동체의 모범이다.

게다가 섬에서는 홍합이나 소라도 많이 잡힌다. 논에서는 자급할 정도의 쌀도 생산된다. 자연이나 인간이나 복 받은 땅이다. 수익이 많으니 자연히 고향을 떠났던 젊은이들도 많이 들어와 산다. 두세 명까지 줄어 폐교 지경까지 갔던 초등학교 분교에 지금은 학생이 20여명으로 늘었다. 이 또한 섬을 윤기나게 하는 복이다. 해안도로에서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경주를 한다. 아이들의 자전거가 지나가자 부두에 내려앉아 있던 갈매기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가 이내 다시 내려앉는다. 아이들과 갈매기들 간의 놀이다. 섬은 더없이 여유롭다.


▲일몰의 시간이면 서쪽으로 한없이 가고 싶다. ⓒ섬학교

섬학교 제43강, 10월 3(토)∼4(일)일, 장고도 답사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0월 3일(토)>
09:00 서울 출발(뱃시각에 대야 하니 출발시각 엄수 바랍니다. 08시 50분까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섬학교> 버스에 탑승바랍니다.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 있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제43강 여는 모임
-대천항 도착
-점심식사(대천항에서 꽃게탕요리)
-대천항 출항
-장고도 도착
-장고도 걷기(약 5km)
대머리-해안산책로-명장섬 민박촌-명장섬 해변-마을회관-달바위-산책로-청룡초교-보건소-마을회관-놀이터-숲길-명장섬 민박촌
-저녁식사 겸 뒤풀이(장고도 싱싱한 생선회, 매운탕에 섬밥상)
-자유시간 및 취침(명장섬 민박, 다인실)

<10월 4일(일)>
07:00 기상, 아침산책
-아침식사(섬밥상)
-명장섬 갯벌 조개 캐기 또는 해변에서 자유로운 휴식
-점심식사(섬밥상)
-숙소에서 선착장까지 걷기
-장고도 출항
-대천항 도착
-대천어시장 장보기
-서울 향발. 제43강 마무리모임

▲섬학교 10월 제43강 <장고도> 답사지도 Ⓒ섬학교

준비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걷기 편한 차림(가벼운 등산복/배낭/등산화, 풀숲에선 반드시 긴 바지), 모자, 선글라스, 스틱, 무릎보호대, 식수, 윈드재킷, 우비, 따뜻한 여벌옷, 간식, 자외선차단제, 헤드랜턴(또는 손전등), 세면도구, 세수수건, 멀미약, 필기도구 등(기본상비약은 준비됨) *승선용 신분증을 꼭 지참하세요(지참하지 않으면 승선할 수 없습니다).

▷섬학교 제43강 장고도 참가비는 23만원입니다(왕복교통비, 1일 숙박비, 5회 식사비 겸 뒤풀이, 강의비, 운영비 등 포함). 이 답사는 현지 사정에 의해 일부 변경될 수 있으며, 기상 악화로 섬 체류가 연장되는 경우 추가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참가신청과 문의는 홈페이지 www.huschool.com 이메일 master@huschool.com 으로 해주십시오. 전화 문의(050-5609-5609)는 월∼금요일 09:00∼18:00시를 이용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공휴일 제외).
▷참가신청 하신 후 참가비를 완납하시면 참가접수가 완료되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드립니다. 회원 아니신 분은 회원 가입을 먼저 해주십시오(▶회원가입 바로가기). ▶참가신청 바로가기
▷섬학교 카페 http://cafe.naver.com/islandschool 에도 꼭 놀러오세요. 섬학교는 생활 속의 인문학 체험공동체인 인문학습원(대표 이근성)이 지원합니다.

▲정중동, 섬은 고요한 가운 데 역동적이다! ⓒ섬학교

섬 여행을 떠나기 전에 강제윤 교장선생님이 쓴 <당신에게, 섬> <섬택리지> <섬을 걷다> <걷고 싶은 우리 섬> <어머니전> 등 섬 답사기를 참고하면 섬 여행의 의미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강제윤 교장선생님은 1988년 계간 <문학과 비평> 겨울호로 등단했습니다. 서남해의 아름다운 섬 보길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뭍으로 이주해 살다 성인이 된 뒤 다시 고향 섬으로 돌아가 10여 년을 살았습니다. 보길도 시절에는 하천 정비를 명목으로 보길도의 숲과 하천을 파괴하려는 시도를 막아냈고, 고산 윤선도 유적지를 파괴하고 대형 댐을 건설하려는 토목세력에 맞서 33일간 단식으로 섬을 지켜내기도 했습니다.

2005년 보길도를 떠난 뒤에는 한국의 모든 유인도(500여 개)를 걸어서 순례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8년째 섬들을 걷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300여 개의 섬을 걸었고 여전히 섬을 걷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에 <섬을 걷다> <통영은 맛있다>, 한겨레에 <섬에서 만나다>를 연재했습니다. <당신에게, 섬> <섬택리지> <걷고 싶은 우리 섬> <통영은 맛있다> <어머니전> <섬을 걷다> <그 별이 나에게 길을 물었다> <보길도에서 온 편지> <숨어사는 즐거움> <올레, 사랑을 만나다> <부처가 있어도 부처가 오지 않는 나라> <자발적 가난의 행복>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명장섬의 일몰은 붉게 타올랐다가 마침내 푸른빛으로 해변을 물들인 뒤 사라진다. ⓒ섬학교

교장선생님은 <섬학교를 열며>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우리는 모두 바다로부터 왔습니다. 지구 최초의 생명이 바다에서 잉태됐듯이 우리 또한 어머니의 자궁이라는 바다에서 생명활동을 시작합니다. 생명의 원천인 바다. 바다를 보면 막혔던 숨통이 트이고 평온함이 드는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어머니 바다, 그래서 프랑스어 ‘어머니[mère]’에는 ‘바다[mer]’가 들어 있고 한자의 ‘바다[海]’에는 ‘어머니[母]’가 들어있습니다. 원초적 기억이 언어를 통해 우리의 기원을 암시해 줍니다. 어머니의 품처럼 너른 바다. 우리가 섬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것도 실상은 바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 아닐런지요.

바다나 강, 호수 등의 물로 둘러싸인 육지의 일부를 섬이라 합니다. 한국에는 4,400여 개의 섬이 있습니다. 그중 사람이 사는 유인도는 500여 개, 나머지는 무인도입니다. 한국은 ‘섬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섬은 미지의 세계입니다. 방송 매체 등을 통해 섬들이 소개되고 몇몇 섬들이 피서지나 관광지로 유명세를 타면서 섬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지만 소수에 불과합니다. 여전히 대부분의 섬들은 척박함과 절해고도의 고독과 유배지, 그도 아니면 현실도피적인 낭만의 이미지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섬은 여전히 먼 곳으로만 느껴집니다. 수만 리 먼 나라들을 자유롭게 오가면서도 바로 우리 곁의 섬들을 멀게만 느끼는 것은 왜일까요. 단지 물리적 거리 때문이 아닙니다. 심리적 거리감이 더 큰 요인입니다. 그것은 오랜 세월 이어져온 육지 중심의 사고에 기인한 바 큽니다. 불과 이삼십 년 전까지만 해도 육지 사람들은 섬사람들을 ‘섬놈’이라 부르면서 멸시하곤 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의 뿌리는 조선왕조의 폐쇄적인 해양정책에 잇닿아 있습니다. 본래 우리의 인식은 육지 중심의 편협한 틀에 갇혀 있지 않았습니다. 옛날 이 땅의 사람들은 바다를 이용해 세계와 소통했습니다. 세계로 향하는 통로로 기능했던 바다가 단절의 바다로 전락한 것은 조선시대에 와서입니다. 고려와는 달리 조선은 명나라의 해금(海禁)정책을 추종해 적극적인 ‘공도(空島)’정책을 폈습니다. 섬과 바다를 포기한 것입니다. 그 이전까지 바다와 섬은 육지보다 더욱 활력 넘치는 삶의 터전인 동시에 문명교류의 중심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수백 년 동안 섬에 사람이 살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계속되면서 바다와 섬은 점차 잊혀지고 버림받은 공간이 됐습니다. 사람의 거주가 시작된 이후에도 섬은 유배지로 이용되면서 고립이 심화됐습니다.

해양왕국이었던 백제나 장보고의 청해진이 바다와 섬을 기반으로 세계와 소통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1976년 거문도의 장촌마을 해변에서는 한(漢)나라 때의 화폐인 오수전이 다량 출토되었습니다. 외딴 섬처럼 보이는 거문도가 실상은 고대부터 국제해상교류의 중간 기착지였다는 증거입니다. 지난 2000년에는 흑산도의 읍동마을에서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이어진 국제해양도시의 흔적들이 확인된 바 있습니다. 고려시대 예성강 입구에 있던 벽란도는 개경에 출입하는 외국인들이 통관 절차를 밟던 국제무역항이었습니다. 고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우리는 바다와 섬을 통해 일본과 중국은 물론 동남아, 인도, 아라비아까지 소통했습니다. 이 땅이 세계를 향해 열려 있을 때 언제나 그 중심에는 바다와 섬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땅이 좁은 것은 알면서도 우리의 바다가 얼마나 넓은 줄은 잘 모릅니다. 오랫동안 좁은 땅에 갇혀 살면서 몸도 마음도, 시야도 폐쇄적으로 변해버린 까닭입니다. 섬에서는 우리가 얼마나 넓은 바다의 주인공인가를 금방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섬에서 바라보면 대륙 또한 바다에 둘려 쌓인 큰 섬에 지나지 않습니다. 육지 중심의 사고를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충분히 크고 드넓습니다. 섬은 한없이 넓은 바다를 향해 무한히 열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섬이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개방성과 열린 사고를 되찾기 위한 최적의 사유공간입니다. 물론 섬은 숙명적으로 외롭습니다. 하지만 섬사람들에게는 외로움이나 슬픔마저도 흥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해학과 가락이 있습니다. 섬에서는 슬픔도 가락을 타면 흥이 됩니다.

오랜 세월 섬들은 제각각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이어 왔습니다. 곁에 있는 섬도 같은 섬은 없습니다. 하지만 외래문물의 유입으로 많은 섬들이 원형질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멀지 않은 시간에 이 나라 많은 섬들이 사라질 것을 예감합니다. 이미 많은 섬들이 육지와 연결되었거나 연결되고 있습니다. 다리가 놓이면 섬은 더 이상 섬이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는 배를 타고 섬으로 가는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릅니다. 끝내는 소멸해 버릴 섬들, 섬의 풍경들. 더 늦기 전에 섬으로 가야 할 이유입니다.

몇 년째 걷기 열풍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움직이는 존재’[動物]인 사람이 걷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걷기에 대한 열망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본능의 회복운동입니다. 걷기는 길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된 바 큽니다. 길의 본뜻은 무엇일까요. 한자 ‘길道(도)’자는 辵(착)과 首(수)로 이루어진 회의문자(會意文字)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신영복 선생님은 "辵(착)은 머리카락 휘날리며 사람이 걸어가는 모양이며 首(수)는 사람의 생각을 의미하니 길(道)이란 곧 사람이 걸어가며 생각하는 것"이라고 풀이한 바 있습니다. 저는 그 뜻을 길이란 통로인 동시에 사유의 길이고, 사유를 통해 자신과 소통하고 세계와 소통하는 길이란 의미로 이해합니다. 그러한 길의 정신을 구현하기에 섬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것입니다.

섬은 어느 곳보다 걷기 좋은 공간입니다. 아직까지 ‘섬길’의 주인은 사람입니다. 많은 걷기 길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섬은 부러 돈 들여 걷기 길을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섬들은 그 자체로 최상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섬에서는 사람이 안심하고 걸으며 사유할 수 있습니다. 섬길을 걷는 일은 분명 이 시대의 정신을 비옥하게 하는 소중한 토양이 될 것입니다. 섬으로 가야 할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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