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가 최근 보도한 바에 의하면, 일본 내에서 후쿠시마 이재민의 귀향을 둘러싸고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고 한다. 논란의 진원지는 아베 정부가 지난 6월에 발표한 '2017 귀향 계획'이다. 동 계획에 의하면 2017년 3월까지 100억 달러를 투입하여 후쿠시마 이재민 8만여 명 중 3분의 2를 다시 마을로 돌아가 살 수 있도록 하며, 대상 지역을 붉은색(영구 폐쇄지역), 노란색(비교적 덜 오염된 지역), 초록색(안전 지역)으로 나눠 관리한다고 한다.
위와 같은 귀향 계획에 대해 일본의 지방 정부가 조사한 결과 이재민 6200여 명 중 단지 5분의 1만이 귀향을 원했으며, <요미우리신문> 조사에서도 11개 마을 중 8개 마을의 대표가 귀향 계획에 반대했다고 한다. 한편, 위 귀향 계획의 내용에는 보조금(성인 1인당 월 94만원) 지급과 임시 주택 제공을 2018년 3월까지로 제한한다는 조항도 들어있다고 한다. 현재 이재민들 중 50% 이상이 다른 지역으로 가서 정착하는데 실패한 상황이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보조금을 중단하게 되면 이재민들은 사실상 귀향을 강제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귀향을 종용하는 후쿠시마의 방사능 오염 지역들은 임야가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가 제염 작업을 한다고 해도 주거지와 도로 등의 공공 시설 정도이지 임야는 불가능하다. 농경지의 경우에도 제염 작업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또한 제염 작업을 한다 하더라도 경작은 불가하며 축산업이나 어업의 영위도 불가능하다. 산업 시설도 있을 수 없다. 결국 귀향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정부가 제공하는 제염 작업과 같은 공공 근로밖에 없을 것이다. 귀향자들의 삶은 수용소에 갇힌 것과 유사할 것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방사능 피폭의 위험이다. 방사능 물질들은 가만히 있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확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바람, 비, 눈 등에 의한 확산, 숲에서 오염된 동물들의 이동을 통한 확산, 식물에 의한 흡수와 지하수를 통한 확산 등 매우 다양한 경로들이 존재할 것이다. 거주자들은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방사능 물질에 노출되고 피폭을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조심하더라도 피폭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근 프랑스, 미국, 영국의 핵산업계에 고용된 노동자 중 개별적인 방사선 노출선량의 확인이 가능한 1년 이상 근무자 30만8297명의 코호트를 구축하여 822만 인년(개개인 추적 기간의 합계)에 걸친 백혈병 추적 조사에 관한 국제적 연구 보고서(LANCET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동 보고서는 결론에서 누적적, 외부적, 지속적인 저선량 전리방사선 피폭과 백혈병(만성 림프성 백혈병 제외)에 의한 사망 사이의 상관관계가 증명되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기존의 방사선 방호 기준들은 주로 원폭 피폭자들과 같이 매우 고선량의 전리방사선에 피폭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정량적 연구 결과들에 근거하여 기준을 운영해왔다고 한다. 지속적이거나 누적적인 저선량 피폭으로도 백혈병이 발병한다는 연구 결과들도 있기는 하였지만 구체적인 위험의 크기가 확인되지 않아 저선량 피폭은 고선량 피폭에 비해 선량당 위험이 감소하는 것으로 가정하여 운영되어 왔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위 보고서는 외부 피폭량이 확인된 방대한 인구 집단을 토대로 정확한 데이터에 근거하여 조사를 하였고, 그 결과 장기간의 저선량 피폭 혹은 누적적인 피폭에 의한 백혈병 사망의 피폭선량당 위험도 계수가 고선량 피폭에 의한 피폭선량당 위험도 계수와 같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결국 누적된 피폭선량의 양이 중요하지 고선량인지 여부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선량 피폭의 위험을 저평가해온 ICRP 등 기존의 방사선 방호기준은 수정되어야 한다. 골수세포의 전리방사선에 대한 민감도 때문에 백혈병을 조사했지만 위 보고서의 결론은 다른 암이나 내부 피폭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한편, 국제적으로 공인된 LNT 가설에 의하면 연간 100밀리시버트 미만의 저선량 피폭이라 하더라도 피폭자 중 일정한 비율로 피폭선량에 비례하여 암환자가 발병한다. 후쿠시마의 오염된 지역으로 귀향한 사람들이 해당 지역에서 거주하면서 누적적으로 상당한 수준의 피폭을 당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누적 피폭량이 어느 정도일지 아무도 알 수 없으며, 일본 정부나 혹은 그 어떤 전문가라도 피폭이 없을 것이라는 보장은 못할 것이다. 아마 일본 정부는 귀향자 본인이 위험의 감수를 선택한 것이라는 식으로 합리화를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피폭 가능성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보조금 지급 중단을 이유로 귀향 선택을 사실상 강요하는 것은 부당한 차별임이 분명하며 이는 정의에 반하는 것이다. 도쿄 시민에게 현재의 일본 정부의 귀향 계획과 동일한 조건으로 후쿠시마에 가서 살라고 하면 과연 자발적으로 가서 살 사람이 있겠는가. 결국 피폭에 따른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는 도시민들과 비교할 때 귀향 대상자들은 일본 정부에 의해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는 셈이다.
후쿠시마 이재민들은 한 순간에 삶이 송두리째 뿌리 뽑히는 엄청난 피해를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피폭을 강요하며 차별을 하려는 정책은 용인될 수 없는 반민주적 폭력일 것이다. 민주주의에 의한 다수결은 다수가 최종적으로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을 허용하지만 그 결정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평등의 원칙에 따라야만 정당성이 있다. 공동체 성원들 중 다수가 자신들은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거나 이득을 보고 소수는 희생을 감수하도록 하는 내용의 결정을 다수결로 한다면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폭력이다.
후쿠시마 지역의 복구와 이재민들에 대한 보상은 일본 정부의 세금이 투여되고 있다. 사업자로 하여금 핵발전소 사고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보험금을 적립하고서 사업을 영위하게 함이 타당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일본 정부가 세금으로 후쿠시마 사고수습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귀향 계획은 세금을 줄이기 위한 방안일 수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 이재민들을 희생시켜서 세금을 절약하고 다른 국민들이 이득을 보게 하는 것은 다수에 의한 국가폭력에 불과할 것이다.
후쿠시마 이재민들이 아니라 도쿄 시민과 같은 일본 시민들이 나서서 아베 정권의 불의하고도 반민주적인 귀향 계획을 포기시켜야만 한다. 아베 정부의 귀향계획은 일본이라는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을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고 있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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