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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오는 미군, 한국 정부 사전 동의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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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오는 미군, 한국 정부 사전 동의 필요 없다

[정욱식 칼럼] 미 해군, 제주 '일시적 기항' 아닐 가능성 높은 까닭

리사 프란테티 주한 미 해군 사령관이 이임식에서 제주해군기지를 이용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하자, 강정마을회 등 해군기지 건설 반대 단체들은 "제주해군기지가 미 해군용 기항지인가"라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그러자 해군은 8월 13일 입장 자료를 통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동맹국인 미군 함정이 제주민군복합항에 일시적으로 기항할 수 있"지만, "이러한 일시 기항은 중국, 일본 등 어느 나라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해군 함정도 청해부대 작전, 사관생도 순항훈련, 림팩훈련 기간 중 외국 항구에 기항하고 있으며, 이를 두고 한국의 군사기지라고 보지는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해군은 미군의 제주해군기지 기항 가능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어느 나라든지 가능"하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논리를 편다.

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 중대한 문제가 있다. 하나는 사전 동의의 문제이다. 미국을 제외한 어느 나라든 제주해군기지에 입항하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미국은 이러한 법적 의무가 없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에는 "미국의 육·해·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주변에 배치하는 권리를 한국은 허여(許與)하고 미국은 수락한다"고 되어 있다. 이러한 조약에 따라 체결된 주한미군 주둔군 지위협정(SOFA)에는 "(미국의) 선박과 항공기는 대한민국의 어떠한 항구나 또는 비행장에도 입항료 또는 착륙료를 부담하지 아니하고 출입할 수 있다"(제10조 1항)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제10조 2항에는 주한미군 기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항구 또는 비행장간을 이동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또 하나는 군사적 긴장 고조나 무력 충돌 발생과 같은 유사시 기항의 문제이다. 중국이나 일본이 누군가와 군사적 대결 상태에 있다고 해서 제주해군기지에 기항할 것이라곤 상상하기 어렵다. 한국이 동의해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다르다. 미국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한국에게 통보하고 제주해군기지에 기항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서치타의 '제주해군기지 사용 설명서'

그렇다면 미국은 제주해군기지를 기항지로 사용할까? 프란체티 준장은 그러고 싶다고 말했다. 해군력의 60%를 아시아-태평양에 집중하고 있는 미국은 기항지가 많을수록 좋다는 입장이다. 더구나 SOFA 규정에 따라 미국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제주해군기지를 공짜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마음껏 제주해군기지를 사용하기에는 미국에게도 크게 두 가지 부담이 따른다. 하나는 한국의 반미 감정을 자극하고 제주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정당화시켜줄 수 있다는 우려이다. 또 하나는 중국을 자극해 동아시아의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는 우려이다.

이와 관련해 앞선 두 편의 글에서 소개한 데이비트 서치타 미 해군 장교의 보고서에는 주목할 내용이 담겨 있다. 제주해군기지의 민감성과 전략적 함의를 분석한 서치타는 미국의 제주해군기지 사용 방안을 자세히 제안했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미 해군 장교 "제주해군기지, 중국에 큰 위협" / 제주해군기지, 美 사용 안한다? 웃기는 소리!)

그는 1단계로 미국은 "한국의 초청을 받아" 중간 규모의 함정인 이지스함부터 보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정도 규모의 함정은 "한국을 지원할 의사를 보여주기에는 충분하고 중국을 자극할 만큼 크지는 않다"는 분석에 기초한 제안이다.

▲ 부산항에 입항한 미국 이지스 라센함 ⓒ연합뉴스

또한 이지스함의 정박 기간은 3일을 넘지 말아야 하고, 미 해군 장병들은 강정마을에서 주민들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울러 제주해군기지를 방문한 미국 이지스함은 상하이(上海) 등 중국 항구도 방문해 중국의 우려를 불식시켜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치타는 다음 단계로 "중소형 함정을 미 해군이 인천항을 방문하는 수준으로 제주해군기지에도 정기적으로 기항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만 "중국이 이를 미 해군의 증강으로 인식하지 않도록 미국은 서해에 진입하는 전체 함정 숫자를 늘려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가장 주목해야 할 미국 항공모함의 제주기지 입항과 관련해 미국이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고 제안했다는 점이다. 중국이 이를 "미국의 도발로 간주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서치타는 "미국 항모의 제주기지 입항은 서해 중심부에 진입하는 것보다는 중국에게 덜 도발적으로 비춰지겠지만, 부산항이나 일본 사세보항에 입항하는 것보다는 중국을 더 자극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러한 판단에 기초해 "미 항모의 제주기지 입항은 미래 중국과의 관계에서 미국이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적 소통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는 게 서치타 제안의 핵심 골자이다. "미 항모의 제주 입항은 중국의 주의를 미묘하게 끌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와 같이 적절한 상황이 발생할 때까지 아껴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센카쿠(尖角)/댜오위다오(釣魚島), 혹은 대만해협에서 위기 발생과 같은 상황에서 중국을 압박하는 지렛대로 항모의 제주 입항 카드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엎친 데 덮친 격 될라

작년 하반기부터 한국은 미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한국 내 배치 문제와 관련해 미·중 관계에서 홍역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여기에는 경쟁 관계에 진입한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한국의 지정학적 딜레마도 있지만, 박근혜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탓도 크다. 더구나 사드 논란은 끝난 것이 아니다. 미국의 군사 전략 및 한반도 정세 변동에 따라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은 문제이다.

이처럼 사드 문제를 풀지 못한 상황에서 올해 말 완공을 앞둔 제주해군기지는 우리에게 엎친 데 덮친 격이 될 공산이 크다. 함정 규모와 숫자, 그리고 횟수는 유동적이지만, 미 함정이 제주기지에 기항할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려 있다. 반(反)접근 전략에 골몰하고 있는 중국도 어떤 형태로든 이에 맞대응하려고 할 것이다. 미 함정을 못 오게 하면 한미관계가, 오게 하면 한중관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제주해군기지는 우리에게 전략적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해군기지 건설을 결정한 노무현 정부도, 별 관심이 없다가 정치적으로 장사가 될 것 같으니까 임기 막판에 공사를 밀어붙인 이명박 정부도 이렇게 중차대한 문제를 별로 심사숙고하지 못한 것 같다.

결국 제주해군기지가 품고 있는 전략적 딜레마는 박근혜 정부가 풀어야 한다.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예방적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제주기지에 대한 합리적인 우려에 귀를 기울이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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