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군기지의) 여러 가지 이점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현명하게도 제주해군기지와 관련해 침묵을 지켜왔다. 또한 앞으로도 침묵을 유지해야 한다"
미 해군의 한 장교가 미국 육군 대학원 보고서를 통해 권고한 내용이다. 데이비드 서치타(David J. Suchyta)라는 이름의 이 장교는 2013년 이 대학원에 '제주해군기지 동북아의 전략적 함의'(Jeju Naval Base: Strategic Implications for Northeast Asia)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에서 서치타는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로 제주해군기지의 전략적 함의를 자세히 분석하면서 미국이 취해야 할 태도는 '침묵'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침묵이 깨지고 말았다.
2013년 9월부터 올해 6월 초까지 주한 미 해군 사령관을 지낸 리사 프란체티 준장은 6월 5일 이임식 자리에서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 <연합뉴스> 영문판에 따르면 "미 해군은 한국의 남쪽 휴양지인 제주에 해군기지가 건설되는 즉시 항해와 훈련을 목적으로 함선들을 보내기를 원한다"고 밝힌 것이다.
프란체티는 "미 해군 7함대는 진심으로 한국의 항구 방문차 함정들을 보내기를 좋아한다"며, 미군이 제주해군기지를 비롯한 어떤 항구도 방문할 기회를 갖게 되면, 한국 해군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미 해군의 항해의 자유와 훈련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역사 문제를 둘러싼 한일간의 갈등으로 한미일 3각 동맹에 장애물이 조성되고 있다며, 한미일 3자 군사훈련은 3자 간 협력 강화를 위한 "좋은 첫 걸음"이라고 주장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로 가장 위협 받을 나라는 중국"
미군의 고위 관계자, 특히 주한 미 해군사령관이 제주해군기지의 이용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만큼 그 파장이 상당한 발언이다. 더욱 주목을 끄는 것은 앞서 언급한 서치타의 보고서 내용이다. 비록 개인적인 의견이라지만, 미 해군의 제주해군기지를 바라보는 시각의 일면이 잘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제주해군기지에 대해 미국이 두 가지 원칙에 입각해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하나는 "한국이 자신의 방위 부담을 더 많이 지려는 것을 계속 격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경기의 후퇴 및 재정난, 그리고 아시아 재균형 전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더 강력한 한국은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제주기지 건설로 가장 위협을 받을 나라는 중국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한국 국방부는 북한 위협 대처를 해군기지 건설의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로 내세우고 있지만, 서치타는 제주기지 건설로 가장 큰 위협을 받을 당사자는 북한이 아니라 중국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제주해군기지는 미국에게 커다란 유용성을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밝힌 이유는 아래와 같다.
"제주해군기지는 센카쿠 열도(尖角列島, 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에서 일본과 중국의 무력 충돌 발생시 일본을 지원할 수 있다. 게다가 중국 동부 대륙붕의 약 70%는 서해와 동중국해에 있다. 대만 해협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하면, 제주해군기지를 이용하는 미국 함정과 잠수함, 그리고 항공모함은 남쪽으로 향하는 중국의 북해함대를 막을 수 있다. 또한 중국의 동해함대의 측면을 공격하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서치타는 동아시아에서 무력 충돌 발생 시 제주해군기지가 중국의 숨통을 막을 수 있는 전략적 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간주했다. 그렇다면 데이비드는 왜 미국이 침묵을 지켜야 한다고 주문할 걸까? 그는 "중국이 과잉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우려했다.
"중국은 이전부터 한국이 탄도미사일방어체제(BMD)와 관련해 미국과 협력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출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주해군기지 문제가 잘 다뤄지지 않으면(미국이 제주기지를 사용할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현한다는 의미-역자), 제주기지는 중국을 자극해 중국의 전략적 억제력을 증강하고 그 결과 동북아 군비경쟁이 격화될 수 있다"
전략적 딜레마 현실화되나?
필자는 오래전부터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강행되면, 한국에겐 전략적 자산이 아니라 부담이 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더 많은 기항지를 원하는 미국과 반(反)접근 전략을 구체화하는 중국 사이에서 한국의 딜레마가 격화될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란체티는 제주해군기지를 사용하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서치타는 보고서를 통해 제주해군기지를 바라보는 미 해군의 전략의 일단을 드러냈다. 그리고 올해 말이면 해군기지가 완공될 예정이다. 내년부터 한국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신세'가 되지 않을까 심히 걱정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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