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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 모두가 MB의 공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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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 모두가 MB의 공범이었다"

[함께 사는 길] 5년 전 이포보 고공 농성자들

2010년 7월 22일 새벽 3시 30분. 어둠을 뚫고 경찰의 눈을 피해 세 명의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이 공사 중인 남한강 이포보에 올랐다. 그들은 "국민의 소리를 들어라"라는 문구가 적힌 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4대강 사업 공사 중단과 국민 대화 기구 및 국회 검증 특위 구성'을 요구하는 고공 시위를 시작했다.

같은 날 새벽, 이환문 진주환경연합 사무처장과 최수영 부산환경연합 사무처장은 낙동강 함안댐 건설 현장의 타워크레인에 올라 고공 농성을 시작했다.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에서 무관심으로 국민들이 지쳐갈 때 벌어진 이들의 고공 시위는 국민들의 눈과 귀를 다시 4대강으로 이끌었다. 이포보와 함안보는 4대강 사업 반대 운동의 상징이 됐다.

그들은 함안보에서 20일, 이포보에서 41일 동안 고공 시위를 전개했다. 7000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이포보를 찾아 이들을 응원했다. 그로부터 5년. 끝내 국민의 소리를 외면하고 4대강 곳곳에 대형 댐들이 세워졌다. 5년 전 이포보 고공 시위의 주역들인 염형철 사무총장, 박평수 전 고양환경연합 집행위원장, 장동빈 경기환경연합 사무처장이 지난 7월 14일 다시 이포보를 찾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이포보에서 들었다.

▲ 2010년 4대강 사업을 반대했던 이포보 위에서 환경연합 활동가와 회원들은 4대강을 흐르게 하라며 퍼포먼스를 벌였다. ⓒ함께사는길(이성수)

- (5년 만에) 이포보에 다시 섰다


장동빈, 박평수 : 참담하다!

염형철 : 물이 찬 이 앞으로는 원래 드넓은 백사장이었다. 이포 습지가 저기였는데, 한강 습지 중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곳의 하나였다. 저 아래 있던 여울에는 낚시꾼들이 많았다. 지금과 풍경이 많이 다르다. 분명한 건 '좋은 강은 다양하고 많은 생물들이 서식하는 강'이라는 사실이다. 지금의 강 생태계는 단조롭다. 4대강 사업이 강 생태계를 망쳤다.

- 당시 이포보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

염형철 : 2009년 10월 말부터 4대강 사업이 본격화됐다. 공사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 되기 전에 다시 한 번 사업 타당성에 대해 사회적으로 논의하자는 것이 우리의 요구였다. 7월 홍수기 직전이었다. 일반적으로 홍수기엔 강에서 공사를 중단한다. 그러니 우리 시위를 계기로 공사를 중단하고 사회적으로 논의의 시간을 갖자는 거였다. 또한 정부가 건설하겠다는 보의 엄청난 규모를 우리들의 작은 몸과 비교해 보여준다면 4대강 사업이 강에 행사하는 폭력의 정도를 국민들이 더 잘 알게 되리란 기대도 했다.

- 당시 지지자들이 많았지만 지역 주민들 일부와 언론 등의 일방적인 비난도 많았다

박평수 : 가장 큰 분노를 느낀 대상은 언론이었다. 4대강 사업의 진실에 대해 제대로 짚어볼 기회를 만들려고 올라간 것인데 그들은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침묵하거나 축소했다. 그러더니 지지 방문객들이 수박껍질을 땅에 묻은 걸 갖고는 대서특필했다.

염형철 : 이포보를 내려오면서 보니, 1500년 만에 찾아온 지역 발전의 기회를 외부 세력이 뺏는다며 잠도 못 자게 소음 방송을 한 이들의 정체는 부동산 업자들이었다. 그들에게 발전의 기회란 곧 땅값 상승의 기회였다. 그 부동산 업자들을 주민들이 비호했다. 농사에 하등 도움이 안 될 시설물 짓는 일에 농민들이 동의했던 까닭은, 땅값이 올라 농지를 팔 때 생길 이득에 맘이 팔렸기 때문이다. 농촌과 농업이 붕괴된 결과이긴 하나 '농부라는 자부심'까지 붕괴된 현실이 가슴 아팠다.

장동빈 : 지금 이곳이 신경기 변전소 예정지다. 변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현수막이 엄청 걸려 있다. 당시 여주가 1500년 만에 맞은 발전의 기회를 우리 세 사람이 방해한다며 비난했던 논리가 '국책 사업을 왜 반대하느냐?'는 거였다. 신경기 변전소 사업도 사실상 국책 사업이다. 이런 문제는 계속 발생할 것이다.

- 올라간 대가가 혹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박평수 : 재판 받으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소송이 두 개 진행됐다. 대림에서 협력 회사를 통해 업무 방해 죄로 형사 소송을 냈고 또 민사로 손해 배상 청구 소송도 걸었다. 민사 소송과 관련해서는 법원의 퇴거 명령이 난 이후부터 한 명당 하루에 300만 원씩, 총 1억800만 원을 물어내라는 판결이 났다. 그리 걱정되지는 않았다. 가난한 활동가가 뭐가 있겠나. 가압류를 한다 해도 폐차 직전의 차밖에 없더라. (웃음) 아직 못 냈다.

- 많은 시민들의 반대와 고공 농성에도 4대강 사업이 끝내 완공됐다

염형철 :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의지 말고도 각 부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탓도 크다. 공정위는 기업들의 담합을 방조하거나 조장했고 수자원에 대한 기본적인 기획을 해야 했던 국토부, 환경적인 영향을 분석하고 감시하고 평가해야 할 환경부, 문화재 조사와 보호를 해야 할 문화재청 등이 제 역할을 못했다. 기획재정부도 국가재정법상 500억 원 이상의 토목 사업은 예비 타당성 조사를 해야 하는데 시행령을 고쳐 멋대로 대규모 사업을 해버렸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야당도 치열하게 싸웠다면 4대강 사업 예산의 상당 부분을 삭감했을 것이고 사업의 절차를 더 엄격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야당은 자기 지역구에 더 많은 예산을 가져가려고 4대강 사업을 예산 협상의 지렛대로 삼았던 적이 더 많다. 검찰도 부정부패에 대해 조사하지 않았고 법원도 우리가 제기한 공사 중지 소송 재판을 계속 미뤄 공사 진행을 방조했다. 언론은 노골적 찬성 아니면 보도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찬성했다. 터무니없는 개발 환상으로 공범이 된 이들도 많았다. 환경 단체들도 반대 여론을 더 잘 조직하지 못했고 강하지 못했다. 4대강 사업은 우리 사회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내보인 사건이다.

- 4대강 사업 이후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지만 4대강 사업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들이라고 주장한다

염형철 : 시간이 지나면 잊힐 수는 있지만 좋아질 수는 없다. 한강 하구 신곡보가 1987년도에 만들어졌는데 30년이 가까워지면서 그 후유증이 심각해졌다. 신곡보 건설 당시 한강은 오염이 심해 보 건설에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해가 지나고 강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늘어나면서 신곡보가 문제라는 사실이 확연해졌다. 4대강사업은 진행과정부터 많은 이들이 우려하며 건설 과정을 지켜본 것이라 그 부작용을 더 많은 이들이 비판하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 4대강 사업 이후에도 댐이나 준설 등 강을 망치는 계획들이 계속 나오고 갈등을 빚고 있다

염형철 : 전국적으로 물 정책이 파산상태다. 4대강 사업의 트라우마는 정부에도 있다. 자기들이 너무나 터무니없는 짓을 했다는 걸 안다. 정책 담당자들도 많이 바뀌었다. 우리나라 물 정책을 어떻게 끌고 가야겠다는 사명감이 없는 상태로, 4대강 사업 후유증을 면피할 생각만 한다. 국가 차원의 수자원 정책에 대한 고민과 판단을 포기한 상태다. 이런 집단은 사회적 흉기와 마찬가지다. 사실상 국가 차원에서 지어야 할 댐이나 제방 건설의 시대는 끝났다. 물 정책은 새로이 진화해야 한다.

- 4대강 사업이 문제라는 것이 이미 다 드러났음에도 박근혜 정부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나?

염형철 : 대통령이 바로잡겠다는 의지도 정치적으로 전 대통령 책임을 추궁할 의사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토부와 4대강 사업 공사를 한 바로 그 집단에게 4대강 사업 조사 평가를 하라고 한 것이다. 이들이 낸 보고는 '문제가 많지만 긍정적인 부분도 조금 있다'고 보고했다. 이걸 두고 정치 집단과 언론은 '긍정과 부정 양면이 다 있다, 평가하려면 시간을 더 두고 봐야 한다, 실패라고 볼 순 없다'는 식으로 각색했다. 대통령의 의지박약과 4대강 사업 추진 집단들의 부실한 자기 평가, 여전히 그 집단에 빌붙어 있는 언론과 정치인들의 아전인수가 뒤죽박죽된 상황이다. 이런 현실이 여전히 우리가 4대강 사업에서 손을 뗄 수가 없는 이유다.

▲ 이포보에 올라 고공 시위를 했던 이들은 여전히 4대강 사업을 반대하며 강을 살리기 위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왼쪽부터 장동빈 경기환경연합 사무처장, 박평수 고양환경연합 전 집행위원장, 염형철 환경연합 사무총장. ⓒ함께사는길(이성수)

- 강을 다시 살릴 수 있을까? 강의 회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박평수 : 환경 운동가는 긴 호흡으로 미래를 봐야 한다. 불과 몇 년 안에 망가졌지만 살리는 것은 몇 십 년이 걸리더라도 해야 할 일이다. 자연은 더디지만 복원력이 있다. 물이 흐를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끝내 관철시킨다면 강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포보 철거 운동을 진행했으면 한다.

장동빈 : 익숙해진다는 것은 참 무섭다. 이 시기가 지나면 많은 사람들이 이 강의 모습에 익숙해질 것이다. 그 생각이 우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느껴지기 전에 예전의 강을 되찾아야 한다.

염형철 : 시민들은 궁극적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선거에서 4대강에 대해서 더 분명한 태도와 공약을 요구하고, 공약 이행을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일상생활에서도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4대강 사업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단체를 지원하는 활동도 해야 한다. 국민들이 잊지 않으면 정치인들도 잊을 수 없게 된다. 기억하고 행동해야 미래를 바꿀 수 있다.

- 다시 이포보에 섰다. 소회와 강 살리기 운동의 각오를 묻는다

염형철 : 4대강 사업은 우리 인생 안에 들어와 버렸다. 41일이었지만 굉장히 강렬했던 시간이었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응원했다. 그들의 삶도 우리의 삶에 각인되었다. 평생 우리 인생에서 같이 갈 수밖에 없다.

장동빈 : 사실 이포보에서 내려오고 한 1년 동안 이쪽으로 오기 싫었다. 이후에 진행된 소식들을 들으면서 오기 싫었다. 그러다가 어떻게 하는 것이 환경 운동가로서 현명한 판단일까 고민하다가 올해 다시 이곳에 오고 있다. 매월 남한강 조사를 하고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박평수 : 부채의식이 좀 있다. 지금도 당시 이보포 위에서 우리가 했던 발언을 기억하고 그분들이 다시 전해주기도 한다. 스스로 한 말과 받은 신뢰에 값하려면, 우리는 평생 강을 살리고 지키기 위해 활동해야 한다.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바로 가기 : <함께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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