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8.15 광복 70주년 특별 사면의 컨셉은 '국민 사기 진작'이다. 그러나 면면을 들여다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 무색해질 정도다.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4대강 사업 참여 건설사의 담합 면죄부 사면, 둘째, 재벌 총수 특혜 사면 논란이다.
4대강 사업, 아직 적발되지도 않은 '담합'까지 사면한다
박 대통령은 4대강 사업 담합으로 인한 징벌적 행정 제제를 무더기로 사면해 줄 전망이다. 법무부는 13일 국무회의 직후 브리핑을 통해 "건설업체에 부과된 행정처분 중 입찰 자격을 제한하고 있는 부분을 선별적으로 해제하여 건설업체가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통해 서민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도록 배려"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특히 해외건설 수주 경쟁력을 제고하여 국익을 증대하고 위축된 건설경기 정상화 및 일자리 창출을 지원"한다고 했다.
이 조치에 따라 각종 제재 사면으로 혜택을 보는 건설사는 2200개사(명)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담합 판정 때문에 건설사가 받은 관급공사 입찰참가제한(부정당업자 제재)과 영업정지, 업무정지, 자격정지, 경고 등의 처분은 14일부터 해제된다. 2009년부터 진행된 4대강 사업 담합에 대한 적발이 6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데도, 사실상 '사면 특혜'가 해당 건설사들에게 주어질 예정이다. 호남고속철도 건설 담합 등 굵직한 사건들에 대한 제재 역시 상당 부분 풀릴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담합 결정이 내려졌지만 발주처로부터 부정당업자 제재 등의 처분을 아직 받지 않은 업체에 대해서도 사면이 이뤄진다. 담합 조사가 진행 중이거나 조사가 진행될 예정인 업체도 담합 사실을 일정 기간 동안 자진 신고하면 사면을 받는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불이익을 없애주는, 일종의 '미래 사면'이자 '창조 사면'인 셈이다.
이번에 풀리는 제재 조치 중 핵심은 부정당업자 제재, 즉 공공 공사 입찰 제한을 해제하는 부분이다. 현재 입찰담합으로 부정당업체 제재를 받은 업체는 78곳이다. 건설업계에서는 이를 해소하는 것을 숙원으로 여겨왔다. 그간 건설사들은 제재에도 불구하고 가처분 금지 신청을 내고 관급공사를 수주해왔다. 정부에서도 이를 눈감아줬다. 제재의 실질적 효과가 없었던 셈이다. 문제는 해외 공사 수주에서 발생했다. 외국의 발주처가 국내 관급공사 제재 조치 사실 등을 거론하며 국내 건설사의 입찰 참여에 불이익을 주자 국내 건설사들이 당황한 것이다. 법무부가 밝힌 사면 배경에서 "특히 해외건설 수주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사면을 한다는 문구는 여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올해 공정위가 담합 적발에 역량을 총동원한 것도 뒷말을 낳고 있다. 쉽게 말해 정부가 건설사의 담합을 집중 적발한 뒤, 그에 따른 행정제재를 일거에 해소해주는 셈인데,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냐'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지난 2011년 정부는 68개 건설사에 제재를 가한 후 이듬해인 2012년 1월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면죄부 수여', 혹은 '세탁 대행'에 가까운 행태다.
담합은 특정 사업자들끼리 짬짜미를 통해 상품이나 용역 가격을 조정, 다른 업체와의 경쟁을 피하는 방식으로 부당 이익을 챙기는 행위다. 특히 국책 사업의 경우 이같은 담합으로 인해 본 국가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된다는 점에서 죄질이 나쁜 것으로 취급을 받아왔다.
특히 이같은 '담합의 전성시대'는 이명박 정부가 밀어붙였던 4대강 사업을 배경으로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이명박 정부 시절, 삼성물산을 비롯한 현대건설, 대우건설, 대림산업, GS건설, SK건설 등 6개 회사가 4대강 사업 공구 입찰 과정에서 담합을 한 것으로 적발돼 논란이 일었다. 지난 4월에는 4대강 사업의 일환이었던 2200억 원 규모의 저수지 둑 높이기 공사에서 한화건설, 태영건설, 삼성중공업 등의 밀실 담합이 또 적발됐다. 이를 포함해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약 6년간 총 4차례의 담합이 적발됐다. 그만큼 4대강 사업이 남긴 상처가 크다. 이런 담합으로 인한 피해는 현재 국민 모두가 나뉘고 있는 중이다.
특사뿐 아니다. 박 대통령은 경제 활성화 명분을 내세우고 건설사에 각종 혜택을 몰아주고 있다. 이를테면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 폐지는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한 것이었다. 그러나 당선된 후 태도가 바뀌었다. 2012년 10월 29일 중소기업 타운홀미팅 및 정책간담회에 참석한 박 대통령은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제)을 폐지하겠다"고 밝혔지만, 인수위를 거치면서 전속고발권 폐지 공약은 공정위의 의무고발권 도입으로 후퇴했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만 했다.
정부는 또한 올해 초 건설사들의 담합에 대해 '입찰참가제한 제도 제척기간 5년 도입'을 추진했다. 쉽게 말해 담합 발생 5년이 지나면 제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5년의 '공소시효'를 두는 것으로, 이 역시 담합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담합이 벌어지는 이유는 과징금을 내는 것보다 담합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담합이 만연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를 해결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하다.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을 포함해 건설사들에게 '담합을 해도 좋다'는 시그널을 보낸 셈이 됐다. 공정한 경쟁을 하고 있는 업체만 피해를 보게 된다.
4대강 사업을 둘러싼 각종 의혹도 덮일 가능성이 크다. 일례로 4대강 사업 담합을 이명박 정부가 유도했다는 의혹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같은 의혹이 현 정부 안에서 규명되기는 어렵게 됐다. 이명박 정부가 초래한 4대강 사업 후유증이 박근혜 정부에서 대부분 '치유'되는 모양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박근혜, 최태원 횡령은 '중대 범죄' 아니라는 건가?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놓은 공약집 150페이지에는 "대기업 지배 주주, 경양자의 중대 범죄에 대해서는 사면권 행사를 엄격히 제한"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국민 사기 진작'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재계에 큰 선물을 줬다. SK 최태원 회장 사면 및 복권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한차례 특별사면을 받았던 최 회장은 사면된 지 3개월여 만에 범죄를 저질렀고, 다시 감옥에 들어갔다. 2013년 1월, 1심 결과 법정구속된 그에게 대법원은 징역 4년의 실형을 확정했다. 감옥 생활만 2년 7개월이다. 그가 재벌 총수 최장기 복역수가 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재판부가 그의 죄질을 굉장히 불량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최 회장이 새누리당 정권 하에서 또 사면을 받았다.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다시 SK그룹을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오를 수 있는 기회까지 한꺼번에 거머쥐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배임 혐의, 즉 회사에 수백억 원의 막대한 손해를 끼쳤던 최 회장은 푸른 수위를 벗자마자 명품 양복을 걸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복역 과정도 말들이 많았다. 최 회장은 하루 평균 3번 이상의 면회를 했고, 면회실을 휴게실처럼 썼다. '황제 면회' 논란이 일었다. 이에 따른 정치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스스로 내놓았던 말을 부정하면서까지 최 회장에 대해 각별한 신경을 썼다.
"중대 범죄"에 대해 사면권 행사를 제안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공약에 비춰보면, 최 회장의 수백억 원대 횡령 배임은 "중대 범죄"가 아닌 게 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박 대통령의 분명한 설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박 대통령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전 새누리당 의원)의 자살로 인해 불거진 '성완종 리스트' 파문 당시, 성 전 회장의 범죄가 노무현 정부의 사면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이와 함께 성 전 회장이 한 정부에서 두 차례 사면을 받은 데 대한 조사도 지시했다. 최 회장도 두 차례 사면을 받게 됐다. 이명박 정부, 그리고 박근혜 정부에서다. 두 정부는 새누리당 정권으로, 연속성을 가진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은 필요하다.
이번 8.15특사 핵심은 4대강 면죄부, 그리고 공약 파기 논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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