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총수 일가의 골육상쟁 경영권 분쟁을 보는 여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재벌 총수 사면과 대기업 대규모 투자 등의 '빅딜'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여권이 경제 살리기를 모색하는 상황에 롯데그룹 분쟁이 찬물을 끼얹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당-정-청이 본격적으로 롯데그룹에 대한 압박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당-정-청의 일련의 움직임은, 롯데 그룹의 구조 개혁 및 전방위 사정의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공정위, 국세청이 나섰다…새누리당은 '세금 탈루' 수사까지 요구
공정거래위원회는 5일 '롯데 관련 공정위 입장'이라는 제목의 보도 자료를 내고 "공정거래위원회는 현재 기업 집단 '롯데'의 해외 계열사 소유 실태(주주 및 출자 현황)를 파악 중"이라며 "동일인이 해외 계열사를 통해 국내 계열사를 지배하는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에, 해외 계열사를 포함한 전체적인 소유 구조를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공정위는 이어서 "지난달 말에 롯데 측에 관련 자료 제출을 요청하였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김정훈 정책위 의장도 기자들과 만나 "공정위에서 8월 20일까지 롯데그룹에 순환 출자 등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국민 정서 등을 감안) 20일까지 기다리면 너무 늦으니 내일 공정위와 당정회의를 열고 어떤 방향으로 이 사건을 다룰지 등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내일 오후 2시 공정위와 당정협의를 연다.
공정위는 강경한 태도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롯데에 이달 20일까지 제출을 요청했는데, 제출을 안하거나 허위 내용이 있으면 1억 원 이하의 벌금 부과와 검찰 고발 등 형사 처벌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점도 묘하다. 신격호 총괄회장과 장남 신동주 씨가 신동빈 회장을 해임함으로써 롯데 '형제의 난'이 본격화된 시점이 27일이다. 다음날 신동빈 회장은 아버지와 장남의 결정에 '쿠데타'를 벌였다. 공정위가 자료 제출을 요구한 시점과 맞물린다.
이는 공정위가 사실상 롯데그룹 사건을 계기로 대대적인 수술을 하기 위해 나선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위의 이런 대응은, 청와대의 교감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분석이다.
청와대 안종범 경제수석은 "롯데 문제가 경제 활성화 등의 분위기를 흐리고 있다"는 취지의 질문에 "롯데 문제는 개별 기업 문제이기 때문에 언급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표면적인 반응이지만, 청와대도 내심 부글부글 끓는 분위기다.
국세청의 '특수부'로 불리는 조사4국이 롯데그룹 계열사에 대해 세무 조사에 착수한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 정부는 연매출 약 2조5000억 원 규모의 롯데면세점 재허가를 백지 상태에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의 압박으로 한국 시장에서 막대한 손실을 떠안게 될지 모르는 상황인데, 국내에서 90%이상 매출을 올리고 있는 롯데가 버티기로 일관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새누리당도 강한 압박에 돌입했다. 서청원 최고위원이 롯데그룹 사태를 놓고 "국민에 대한 역겨운 배신"이라고 맹비난한 데 이어 심재철 의원은 이날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롯데면세점 취소와 국세청 세무 조사, 나아가 검찰 수사까지 가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놓았다.
심 의원은 "롯데를 지배하는 것은 정체불명의 일본의 광윤사라는 페이퍼 컴퍼니와 투자 회사로, 일본의 지분이 99%지만 구체적인 지분이나 지배 구조는 전혀 알 수 없게 돼 있다. 정부는 다음 면세점 허가 때 롯데의 이런 볼썽사나운 싸움을 분명히 반영해야할 것"이라며 "외국 기업이라고 해도 좋을 이런 불투명한 기업에 알짜 면세점 허가를 내줄 이유가 없다"고 정부를 압박했다.
심 의원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세무 조사도 철저히 해서 롯데의 세금 탈루가 있었는지 여부가 분명히 가려져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검찰 수사를 염두에 둔 강력한 세무 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신 씨 일가가 두려워 하는 '그것'이 오고 있다
롯데 총수 일가가 두려워 할 만한 일은 면세점 등 수조 원의 국내 사업 손실 가능성과 함께, 롯데의 불투명한 지배 구조 개선에 정부와 여당이 두 팔을 걷고 나서는 일이다. 롯데 측의 입장은 일본 상법에 따른 비상장 회사 등의 자료를 공개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정부는 롯데 측에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다.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이날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지금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으로 국민들의 분노가 거세지고 있다"며 "제가 정무위원장일 때 2013년도에 경제 민주화의 일환으로 출자 총액을 제한하면서 신규 순환 출자는 금지하되 기존 순환 출자는 사회적 비용 등의 문제로 해당 대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정리하도록 했다. 대기업 오너가 미미한 지분을 가지고 순환 출자를 통해 대기업을 자신의 개인 회사처럼 좌지우지하는 것은 경제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 의장은 "이번 롯데 사태는 이런 관점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본다. 순환 출자 금지를 규정한 공정거래법을 개정한 지 2년이 지난만큼 해당 대기업들의 지배 구조 문제를 한 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심재철 의원도 "이번 롯데의 집안 싸움으로 국민들은 롯데의 지배 구조가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신 씨 일가가 불과 2.4%의 지분으로 416개 계열 회사를 지배하는 것은 순환 출자 때문인데, 정부 당국은 꼬리가 몸통을 흔들 수 없도록 순환 출자에 대해 분명한 기준을 만들어야한다"고 말했다.
심 의원은 "또 외국 기업이라도 한국에서 매출 이익의 대부분이 발생하는 경우 주주 등 지배 구조와 경영 내용이 국민에게 당연히 공개되는 방안이 마련돼야한다"고 주장했다.
마침 야당에서도 심 의원의 이같은 주장과 결이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준비중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신학용 의원은 롯데 그룹 등 국내 계열사를 지배하는 해외 법인에 대한 정보를 공개토록 하는 법안을 추진한다.
요컨대 경제 민주화의 일환으로 여야가 합의해 만든 순환 출자 해소에 왜 롯데만 예외여야 하는지 근본적인 점검 및 수술에 나서겠다는 의지다. 롯데는 일본 상법에 의한 회사가 핵심이므로, 다른 대기업이 구조 개혁에 나설 때, 거의 아무런 '셀프 개혁'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롯데그룹의 상호 출자 고리는 무려 416개다. 삼성의 상호 출자 고리가 10개에 불과한 데 비춰보면 롯데그룹은 지극히 복잡하고 불투명한 지배 구조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는 기업의 '오너 리스크'를 키우고, 그에 따른 피해는 소액 주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같은 '총수 중심적' 구조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여당의 의지인 셈이다.
경제개혁연대는 "비상장 계열사에 대한 강화된 정보 공시 의무 부과 등과 같이, 글로벌 스탠다드보다 더 엄격한 강행 규정을 유지할 필요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이는 근본적인 처방은 될 수 없으며 "소액 주주 참여를 활성화하는 상법 개정과, 기관 투자자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함께 내놓았다.
일단 롯데 그룹이 기업 정보 공개를 하지 않고 '버티기'를 하더라도, 제도의 '칼'을 쥐고 있는 당-정-청의 전방위 압박을 받게 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오너 일가의 볼썽사나운 집안 싸움이, 롯데그룹 지배 구조 개선과, 투명성 향상의 계기가 될 수도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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