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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불' 아들이 15년 만에 찾아 "아빠, 불쌍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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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불' 아들이 15년 만에 찾아 "아빠, 불쌍하구나"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 ⑤] 안보 강연만 30년, 종북 변호사를 찾아간 이유

지난해 12월, 미국에서는 충격적인 보고서 하나가 공개됐습니다. 9.11 사건 이후 미 중앙정보국(CIA)의 테러 용의자 고문 실태를 담은 것이었습니다. 7일 이상을 잠 못 들게 하거나, 체내에 물을 주입하는 고문, 또 불 밝은 흰 방에 넣어 큰 소리로 음악을 듣게 하는 '감각 이탈' 고문까지…. CIA가 비밀 시설에서 알카에다 대원들에게 자행한 고문은 실로 끔찍했습니다.

신문을 펼쳐 보던 김 할아버지는 "이게 다 내가 당한 고문과 비슷한 것 아닙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다지 놀라운 기법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김 할아버지를 놀라게 한 것은 미국 오바마 정부의 대응이었습니다. 보고서 공개에 환영 입장을 밝히고, 고문 금지를 약속한 것이지요. 김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과거에 천인공노할 만행을 스스로 까발린 일이 있습니까? 제가 고문받은 건 40년도 더 지난 옛적의 일입니다. 깔끔하게 사실을 인정하고 '다신 그런 일 없도록 하겠다'고 하면 될 일을, 우리 국가정보원에서는 오리발만 내밀고 있습니다. 미국 사례에 비춰 보면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김관섭 씨. ⓒ프레시안(최형락)

"가혹 행위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

대성공사 수용 생활 이후 고문 후유증과 가난에 시달리는 김 할아버지를 아는 주변 귀순자들은 그를 딱하게 여겼습니다. 지인들은 그에게 '국가에 배상이라도 받아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뒤늦게 무슨 소용일까' 고민하다가 결국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에 대성공사 시절 가혹 행위에 대한 피해보상과 국가유공자 지정 등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김 할아버지를 독려했던 귀순자들 모임인 '통일연구회' 사람들이 다시 만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국정원으로부터 정기적으로 받는 지원금이 끊긴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의 간청을 뿌리칠 수 없었습니다. 진정서를 철회했습니다. 체념한 채로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지난해 2월. '유우성 간첩 조작 의혹 사건'으로 나라가 들썩였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때가 왔다고 판단했습니다. 7년간 묵혀뒀던 진정서를 다시 꺼내어 다듬은 뒤 청와대에 제출했습니다. 두 달 후쯤 청와대를 경유해 국정원 측 답변서가 날아왔습니다. "가혹 행위를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고 했습니다. 당시 조사에 참여했던 신문관 중 7명은 사망했거나 소재 파악이 안 되고, 나머지 생존자 3명은 "고문 사실과 인권유린 사항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는 것입니다.

"생사람을 고문해놓고 아니라 하니, 분통이 터집니다. 엉터리 답이 올 줄은 알고 있었어요. 간첩 증거 위조 사건으로 국정원 존립 자체에 문제가 생긴 판국이었으니까요."

같은 내용의 진정서를 다시 인권위에 보냈지만 여기서도 답변이 신통치 않았습니다. 인권위는 인권위원회법 제32조 제1항 제4호의 규정에 따라 "1년 내 사건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진정서를 각하, 통보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김관섭 씨에게 보낸 회신. ⓒ김관섭

'종북 변호사'를 찾아가다

대성공사 수용 당시 고문 사실을 증명해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너무나 많은 시일이 흘렀습니다. 김 씨를 고문했던 신문관들 중 다수는 이미 죽거나 생사가 불분명합니다. 생존한 이들의 경우 혐의를 발뺌하면 그만입니다. 이제 와서 '이근안처럼 고백하라'며 설득하기도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답답한 마음에 그가 찾은 사람은 '간첩 전문 변호사', 극우 단체 표현에 따르면 '종북 변호사'로 알려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의 장경욱 변호사였습니다. 김 할아버지와 몇 차례 만나 면담한 장 변호사는 혀를 내둘렀습니다.

"평생 안보 강연 다니고 보수단체 간부를 지내신 분이 '종북 변호사'로 알려진 저에게 찾아와 변호해달라고 하다니, 이게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입니까?"

김 할아버지는 80세 노구의 몸을 이끌고 국가를 상대로 한 싸움을 준비 중입니다. 장 변호사의 주선으로 국가폭력피해자 지원 단체인 비영리민간단체 '민들레' 후원을 받아 조만간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할 예정입니다. 고문 사실을 직접적으로 증명할 자료는 없지만, 대성공사에 3년 6개월 동안 있었다는 사실은 군에서 보관 중인 귀순자 공적 조서에 나와 있습니다. '3년 6개월' 수용 사실은 진실을 밝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게 김 할아버지와 변호인단의 생각입니다.

ⓒ프레시안(서어리)

"남한서 고문당했다 하면, 어느 북한 사람이 오고 싶어하겠어요"

지난해 12월에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앞으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고문과 인권 유린 사실을 나 몰라라 외면하고 심지어 은폐하는 현실을 보고 국가에 대한 믿음이 무너졌다"며 면담을 요청한 것입니다.

그는 "새누리당에서 저를 그냥 무시할 순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김 할아버지는 사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는 데 제 몫을 단단히 했습니다. 지난 2012년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 캠프에서 위촉장이 날아왔습니다. '100% 대한민국 대통합위원회 지역통합본부 수도권통합본부 남북소통위원회 고문', '경기도위원회 고문'에 임명됐습니다. 그는 탈북자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1번'을 권유했습니다.

김 할아버지와 같은 많은 탈북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당선된 박 대통령은 거듭 '통일 준비'를 주문합니다.

김 할아버지는 통일에 대비하는 차원에서라도 정부가 나서서 자신과 같은 고문 피해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통일 국면에서 탈북자들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하면, 최고로 좋은 일은 탈북자들이 북에 있는 가족들에게 '대한민국, 남한 사람들이 참 좋다'고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저 말고도 억울하게 고문당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이 다 '대한민국이 나를 고문하고, 사과도 않고 힘들게 했다'고 말하면, 어느 북한 사람이 그걸 듣고도 남한에 오고 싶겠습니까. 남한을 미워하는 탈북자들이 많아지는 것이야말로 북에 이로운 일입니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캠프에서 김 씨에게 보낸 위촉장. ⓒ김관섭

15년 만에 아들이 전해 준 편지 한 통

김 할아버지가 한창 '전투'를 준비하던 지난해 겨울,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15년 전 행방불명된 아들 정현 씨한테서 연락이 온 것이었습니다.

"아들이 집에 온다고 해서 청소를 깨끗이 해놨는데, 제 집을 빙 둘러보던 녀석이 저한테 "아빠 불쌍하구나"라고 하더라고요. 얼마나 속상하던지… 그래도 이번에 만나 얘기하면서 오해가 다 풀렸어요. 아들이 저한테 힘드셨겠다고 하더라고요. 감격스러웠습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알아줘서."

서른 중반에 다다른 아들은 이제야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저는 그때 아빠가 가족을 다 속였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사람들과 다른 가정환경인 것도 싫었고. 그런데 슬슬 나이를 먹다 보니, 제가 철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가족이 서로 믿고 의지해야 하는 건데…. 아빠가 예전에 어떤 힘들고 억울한 일을 겪었는지를 최근에야 알았어요. 그런 일만으로도 힘들었을 텐데, 저도 떠났으니 정말 죄송한 마음뿐이에요. 이제 잘해드려야죠."


▲김 씨 아들 정현 씨가 일하는 음식점 사장 내외가 김 씨에게 보낸 편지. ⓒ김관섭

음식점 배달원인 정현 씨는 성실함을 인정받아 사장 내외와 사이가 무척 좋았습니다. 어느 날 정현 씨는 사장 내외에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터놓았습니다. 정현 씨의 이야기를 들은 사장 내외는 그에게 편지 한 통을 건네주었습니다. '아버님께 갖다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부자는 함께 4장에 걸친 긴 편지를 읽었습니다.

"거칠고 적응하기 쉽지 않은 남한 사회에서 많은 우여곡절과 배신을 겪으면서 얼마나 실망과 분노와 좌절을 느끼셨는지요. 대한민국 한 사람으로서 제가 다 부끄럽습니다. (중략) 고스란히 나에게도 그 애잔함이 느껴졌습니다. 이제! 아주 깊이 옛날 생각을 영원히 묻어버리세요."

김 할아버지는 편지에서 오래도록 시선을 떼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버티고 산 보람이 있습니다. 아들도 다시 만나고, 이런 응원 편지도 받고."


▲김 씨와 아들 정현 씨가 함께 편지를 읽고 있는 모습. ⓒ프레시안(서어리)

"대한민국, 일본에 위안부 진실 밝히라고 할 자격 있나"

김 할아버지는 "지원군도 생겼으니, 더 힘을 내겠다"고 했습니다.

지난 2월에는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대통령님, 탈북자 고문 사실 밝혀주십시오'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였습니다.

"청와대에 시위를 하러 오니 감회가 남다르더라고요. 예전에 훈장을 받은 덕분에 청와대 초청을 받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을 다 만났긴 했는데, 말할 용기도, 기회도 없어서 억울한 이야기를 할 수 없었거든요.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렇게라도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니 속이 후련합니다."

현재 인권위에서는 김무성 의원실을 통해 들어온 요청에 따라 김 할아버지 일을 조사 중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희망을 품긴 여전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담당 조사관은 8년 전과 마찬가지로 '1년 이내 사건이 아니라 진정서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확률이 높다'며 비관적으로 전망했습니다.

소송도 마찬가지입니다. 변호사들은 김 할아버지의 소송에 대해 '이기기 쉽지 않은 싸움'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그러나 김 할아버지는 소송이든 인권위 진정서든 결과에 연연해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오래 걸리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설령 지더라도, 증언을 멈추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일본에 일본군 위안부 진실 제대로 밝히라고 하지 않습니까. 북한에도 천안함 사건을 사실대로 얘기하라고 합니다. 그럼 대한민국도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우리가 거짓 냄새가 나는데 어떻게 남한테 진실을 얘기하라고 할 수 있습니까. 우리 내부에서 인권 유린하고 고문하는 비인간적인 사실이 지속되는 한 사과하라고 보상하라고 할 명분이 없습니다.

자유를 찾아 남한에 온 탈북 귀순자를 무고하게 간첩으로 몰고 고문한 과거를 국가가 어서 인정하고 사과하기를 바랍니다."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김관섭 씨. ⓒ프레시안(서어리)


* 이 기사는 미디어 다음과 공동 게재합니다.
(☞바로 가기 :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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