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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진실…"이란과 북한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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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진실…"이란과 북한은 다르다"

[정세현의 정세토크] 압박으로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겠다?

13년 동안 계속됐던 이란 핵 문제가 역사적인 타결을 이뤄냈다. 다음은 북핵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북한은 마치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들과 이란은 다르다고 못 박았다.

지재룡 주중 북한 대사는 지난 28일(현지 시각) 기자 회견에서 자신들은 이란과 실정이 다르며, "핵 억제력은 반세기 이상 지속되고 있는 미국의 핵 위협과 적대 정책으로부터 나라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 수단으로써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을 흥정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지재룡 대사의 언급대로 북한과 이란이 처한 상황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아직 명백히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란은 협상 당시 핵무기를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란은 핵 협상만 잘 풀리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이 눈앞에 확실히 보이는 상황이었다. 석유와 선박에 붙은 제재가 풀리면 세계 4위 산유국 이란은 석유를 내다 팔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위축됐던 경제가 다시 살아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북한은 다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은 핵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도 그 대가로 거둘 수 있는 경제적 효과가 뚜렷하지 않다"면서 "이란의 석유와 같이 확실한 내부 자원이 없는 북한은 외부로부터 경제적 지원이 들어올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미국을 비롯한 나머지 6자 회담 참가국들이 북한에 어떤 경제적 반대급부를 얼마나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전망이 서지 않으면, 북한은 회담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압박과 설득을 병행해서 요지부동인 북한을 회담 테이블로 이끌어내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에 한-미-일 6자 회담 차석 대표가 오는 31일 도쿄에서 회동을 갖는 것을 비롯해 6자 회담 관계자들은 활발한 상호 방문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실제 문제 해결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 정 전 장관의 지적이다. 그는 "한-미-일 대표가 만날 것이 아니라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대표들이 미국으로 가야 한다. 미국이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의를 보이겠다는 사인을 주면 그걸 들고 평양으로 가서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겠다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전 장관은 "이런 전략으로 움직인다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자꾸 언저리만 돌고 있으니 답답하다"며 "북한과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이 조정자가 되고 그 중심에 한국이 있어야 한다. 중국 역할론이 아니라 한국 역할론이 돼야 한다. 우리가 가장 큰 피해 당사자이기 때문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터뷰는 지난 28일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이란 핵 문제가 타결된 이후 다음은 북핵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실제 27일에는 시드니 사일러 미국 국무부 6자 회담 특사가 방한했고 오는 31일에는 한-미-일 6자 회담 차석 대표가 도쿄에서 만날 예정입니다. 한국의 6자 회담 수석 대표인 황준국 평화교섭본부장은 지난주 중국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6자 회담과 관련해 곳곳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실제 이러한 움직임이 6자 회담 재개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정세현 : 장난이 심하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북한을 제외한 6자 회담 관련 국가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데에도 불구하고 북핵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은 북한 때문이라는, 책임을 넘기려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정말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기식의 행정과 비슷한 이른바 '전시외교'를 하는 것 같습니다.

6자 회담 수석 대표를 포함해 관련 국가들이 분주히 움직이면 북핵 해결의 길이 열릴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는 떡 줄 사람은 생각하지도 않고 있는데 김칫국부터 먹느라고 요란하게 돌아다니는 것밖에 안됩니다. 떡 줄 사람, 즉 문제를 해결할 당사자는 미국과 북한인데, 이 둘이 만나지 않은 채 언저리만 돌고 있는 겁니다.

물론 우리도 북핵 문제의 당사자이긴 합니다. 다만 우리는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 때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을 당사자이지, 해결의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당사자는 되지 못합니다. 그런 점에서는 중국, 러시아, 일본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1993년 북핵 문제가 불거진 이후 북한이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것들은 모두 미국과 해결해야 하는 사안들입니다. 북한은 미국과 수교, 그리고 그에 따르는 경제적인 조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1994년에는 제네바 합의를 통해 수교와 경제적 지원으로 핵 활동을 중지시키겠다는 데 합의를 이뤘고, 2005년 9.19 공동 성명에서는 평화 협정 문제까지 어젠다로 올라왔습니다.

이런 측면을 생각해보면 6자 회담 수석 대표든 차석 대표든 북한과 미국으로 가야 합니다. 중국이나 일본 등 북한과 미국을 제외한 곳들을 돌아다닐 이유가 없습니다. 31일 6자 회담 차석 대표들이 도쿄에서 만난다는데, 밥먹는 것 이상의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6자 회담 참가국들이 정말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싶으면 우선 미국의 마음을 바꿔놓아야 합니다. 미국의 마음이 바뀌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을 때 북한의 마음도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버락 오바마 정부는 이른바 '전략적 인내'의 첫 번째 조건으로 '중국 역할론'을 내세웠습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다는 제스처를 먼저 취하게끔 중국이 북한을 설득하든 압박하든 나름의 역할을 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중국이 이러한 역할을 하려면 미국으로부터 확실한 '사인'이 와야 합니다.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아들이고 현재 핵 활동을 중지하는 것에 대해 반대급부를 얻어내려고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해 미국이 확실한 보장을 해줘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나머지 6자 회담 참가국들은 이를 보증하는 방식을 취해야 합니다.

얼마 전 한-미-일 6자 회담 수석 대표들이 중국에서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 문제 특별대표를 잇따라 만났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습니다. 한-미-일 3국이 인권 문제까지 포함해 북한을 압박하자고 했지만 중국은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해 자기들 방식대로 노력하겠다는 입장만 밝혔습니다.

한-미-일이 모여봐야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미국의 생각을 바꾸는 것도 아니고 북한 입장을 바꾸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 김건(오른쪽) 외교부 북핵외교기획단장과 시드니 사일러 미 국무부 북핵 특사가 27일 오후 서울 도렴동에 위치한 외교부 청사에서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미-일 수석 대표가 만날 것이 아니라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대표들이 미국으로 가야 합니다. 미국에 가서 메시지를 받고 이를 북한에 전달해야 합니다. 미국이 이란 핵 문제도 해결했으니,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의를 보이겠다는 사인을 주면 그걸 들고 평양으로 가서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겠다는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이런 전략으로 움직인다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자꾸 언저리만 돌고 있으니 답답합니다. 북한과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이 조정자가 되고 그 중심에 한국이 있어야 합니다. 중국 역할론이 아니라 한국 역할론이 돼야 합니다. 우리가 가장 큰 피해 당사자이기 때문입니다.

현 정부는 북한 붕괴를 믿고 있기 때문인 건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통일 문제는 거창하게 이야기하면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상황을 조성하는 역할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이 '중국 역할론', '북한 선(先)행동론'만 합창하면서 사실상 북핵 문제를 방관하는 이유가, 망해가는 북한을 괜히 6자 회담이니 뭐니 하며 국제사회로 끌어들이면, 체제가 더 오랜 기간 동안 존속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이란, 핵 포기할 만한 확실한 대가 있지만…북한은?

프레시안 : 그런데 이란 핵 문제가 풀리고 나니 북한도 잘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자신들과 이란을 비교하지 말라면서 자신들은 '핵 보유국'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대화에 쉽게 응할 것 같지 않다는 관측이 우세한데요.

정세현 : 이란은 핵 활동을 막 시작하려는 시기에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핵 능력이 고도화되기 전에 협상으로 막은 것입니다. 이란이 만약 지금 핵무기를 가지고 있었다면 협상을 통해 받아내려는 반대급부가 더 커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자기들이 스스로 이야기하듯이 핵 보유국이라고 선언했고 미국에서도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인정해 버렸습니다. 조엘 위트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교 초빙연구원은 북한이 현재의 추세로 핵 개발을 지속할 경우 2020년까지 최대 100개에 달하는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고 밝히지 않았습니까? 물론 위트는 그렇기 때문에 북핵 문제를 빨리 협상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 위해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은 절대로 이를 그냥 놓치지 않는다는 겁니다. 몸값이 엄청나게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협상 전략 측면에서 보자면 위트의 발언으로 북한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요구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받아낼 수 있게 된 셈입니다. 북한을 굉장히 유리하게 만들어준 측면이 있는 것이죠. 또 북한 무기에 대응하기 위해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키워주는 결과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핵 보유국이라고 주장하는 북한은 이제 6자 회담은 필요 없고 동북아에서는 핵 군축 회담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핵이 없는 한국과 일본은 빠지고, 미국·중국·러시아와 해결을 보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북한의 본심일까요? 이 역시 몸값을 높이기 위한 차원의 이야기일 가능성이 큽니다. 핵 군축 회담만 가지고는 북한이 원하는 평화 협정을 끌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협상해도 소용없다는 협상 '무용론'이 북한 내에 퍼져있는 것도 이란과 다른 점입니다. 이란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02년 미국 의회 연두교서를 발표하는 연설에서 북한과 이라크, 이란을 '악의 축'으로 지정한 이후부터 협상을 시작, 13년 만에 타결을 이뤄냈습니다. 게다가 본래 이란은 중동 지역의 대표적인 친미 국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이란과 다릅니다. 2005년 9.19 공동 성명에 합의했지만 미국 재무부는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에 있는 북한 자금을 동결시켰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9.19 공동 성명의 순조로운 이행을 어렵게 했고, 북한은 미국과 핵 협상을 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인식을 갖게 됐습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북한도 '핵 협상 무용론'에 빠진 겁니다. 서로가 무용론을 견지하면서 샅바 싸움만 하다가 시간이 이렇게 흘러버렸습니다.

▲ 지난 28일 지재룡 주중 북한 대사의 기자 회견. 지 대사는 북한은 핵 보유국이며 북핵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AP=연합뉴스

프레시안 : 그런데 정부는 이란 핵 협상을 예로 들면서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화 테이블에 나올 수 있도록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데요.

정세현 : 1993~94년 제네바 합의와 2003년 6자 회담으로 시작해서 2005년 9.19 공동 성명을 이끌어내기까지의 과정을 복기해보면 북한은 압박한다고 대화 테이블로 나오지 않습니다. 이란의 경우에는 걸프만 주변 지역 국가와 관계도 있지만, 핵 협상을 타결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이 너무 분명하게 보입니다. 그렇다고 핵을 보유하고 있지도 않아서 몸값도 높지 않은데, 핵 활동만 멈추면 경제적으로 굉장히 풍족해질 수 있으니까 협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북한은 다릅니다. 핵 문제를 해결하면 당장 제재는 풀 수 있겠지만, 그 대가로 거둘 수 있는 경제적 효과가 뚜렷하지 않습니다. 이란의 석유와 같이 확실한 내부 자원이 없는 북한은 외부로부터 경제적 지원이 들어올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미국을 비롯한 나머지 6자 회담 참가국들이 북한에 어떤 경제적 반대급부를 얼마나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전망이 서지 않으면, 북한은 회담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건 압박으로만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내기 위한 압박과 설득을 동시에 하는 이른바 '투 트랙' 전략을 쓰겠다는 건데, 사실 이란 핵 협상이 이런 전략을 써서 해결된 것도 아닙니다. 이란 핵 협상은 제재가 해제되면 그 순간부터 이란 경제가 살아난다는 것이 확실해지기 때문에 핵을 포기한 겁니다.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내부적인 조건이 갖춰진 곳입니다.

그렇다면, 북한은 내부적 조건도 갖추지 못한 곳이니 더 세게 압박을 가하면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회담에 나올까요? 지금까지 북한의 행태와 제가 상대해 본 북한을 봤을 때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끝까지 물고 늘어지고 없는 살림에도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북한 특유의 기질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6자 회담 조정자 한국?…남북 관계도 갈피 못 잡아

프레시안 : 한국이 6자 회담에서 협상의 조정자 역할을 하려면 남북 간 신뢰가 전제돼야 하는데요. 정부는 내년부터 남북협력기금의 예산 구조를 바꾸겠다고 밝혔습니다. 기존에 북한을 지원하는 개념에서 개별 협력 사업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건데요. 이렇게 되면 쌀이나 비료의 대규모 지원은 사실상 없어지게 됩니다. 북한이 사실 남한에게 바라는 것이 이러한 형식의 지원인데 남북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요?

정세현 : 우리가 예전에 미국에서 원조를 받을 때 'Food for work' 방식이었습니다. 일하면 먹을 것을 준다는 겁니다. 가난한 사람들한테 일방적으로 먹을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는 대가로 줘야 한다는 겁니다. 김대중 정부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의 일부 의원들도 쌀과 비료를 그냥 주지 말고 이같은 개념으로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그래야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모자 보건 사업이나 복합 농촌 단지 사업 등을 중심으로 대북 지원을 바꿔나가겠다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지난해 드레스덴 선언에서 언급됐던 사업들인데, 결국 드레스덴 선언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죠. 나무 심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농촌을 개량하는데 필요한 자재 장비를 준다는 식으로, 소위 프로젝트별로 지원을 해주겠다는 것인데 북한이 이걸 받을지 모르겠습니다. 자존심이 걸려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다른 나라가 이렇게 한다고 하면 상관 없습니다. 가령 중국이나 미국이 일한 만큼 주겠다고 하면 북한은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남한이 이런 방식으로 준다고 하면 자존심 문제가 나옵니다. 우리가 북한이 그냥 다른 나라가 아니듯이 북한 역시 우리가 '남'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쌀과 비료를 대규모로 지원했다고 하는데, 지원 수량을 돈으로 환산하면 2조 원 정도입니다. 쌀과 비료 지원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기반 사업이라고 생각한다면, 무기를 사들이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게 평화를 지킬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가 하면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금강산 관광과 5.24 조치는 별개의 문제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실관계의 옳고 그름을 넘어서 이러한 발언이 북한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게 될까요?

정세현 :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을 묶어서 해보자는 의도로 보입니다. 어차피 이산가족 상봉을 하려면 금강산에서 하는 것이 가장 좋고, 또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상징성이 큰 사업을 위해서 금강산 관광까지는 재개해줄 수 있다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그런데 이것이 5.24 조치와 별개라는 이야기는 단순한 입장을 표명한 것 같지만, 한 번 더 생각하면 5.24 조치만큼은 쉽게 풀어주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반면 북한은 5.24 조치를 해제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6월 15일에 발표된 공화국 정부 성명에서도 5.24 조치를 거론했습니다. 5.24 조치 해제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가 국내 정치적으로 성과를 과시할 수 있는 이산가족 상봉 사업만 하려고 하면 북한과 대화가 되겠습니까?

안 그래도 북한은 6자 회담뿐만 아니라 남북 대화에도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단 문제와 5.24 조치 해결하라는 건데, 이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고 우리가 제시하는 대화 형식에 응답하라고 하면 북한이 여기에 호응할까요?

대화를 하려면 상대방의 요구를 헤아려야 합니다. 우리가 국내 정치적인 수요가 있다면 북한에도 이러한 수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북한이 가난해도 명색이 체제, 정권이 있는 국가입니다. 남한과 관련된 사안들을 결정하는 통일전선부나 국방위원회 사람들이 '이거 장사 되겠는데? 이정도 되면 우리가 나가줘야지. 최소한의 조건은 갖춰졌으니까'라는 생각이 들도록 조치를 취해가면서 북한과 대화에 접근해야 합니다.

대화가 성사될 여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면서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을 묶어서 이야기해보자고 하면 북한이 나오겠습니까? 게다가 남한 정부마저 지금 이렇게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면, 김영삼 정부 시절 대통령이 북한 붕괴를 확신하는 바람에 남북 접촉이나 대화가 일체 없었던 상황이랑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프레시안 : 남북이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한동안 소원했던 북-중 관계가 가까워지려는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년 만에 평안남도 회창군에 있는 '중국인민지원군열사능원'에 화환을 보내면서 중국 인민군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습니다. 시기적으로 묘하게도 오는 9월 초에 있을 중국 전승 기념식을 앞두고 양국이 가까워지는 모양새가 보이고 있습니다.

정세현 : 중국 입장에서는 전승 기념식에 김정은 제1위원장 같은 인사를 불러들이는 것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또 북한 역시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일인 10월 10일 기념 행사에서 시진핑(習近平) 주석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전인대 상무위원장 아니면 서열 5위 이내의 인사가 오기를 바랄 것입니다. 실제 중국 당국은 지난해 말, 주중 북한대사관에서 열린 김정일 위원장 3주기 행사에 공산당 내 서열 5위인 류윈산(劉云山) 정치국 상무위원을 파견한 바 있습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항일 항쟁의 근거지가 중국이기 때문에 중국의 고위 대표단이 와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김정은의 정치적인 위상을 대내외적으로 확고히 하겠다는 의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뜻대로 하려면 지금부터 어느 정도 물밑 작업을 해놓아야 합니다. 또 9월 중국에서 열릴 전승 기념식 행사 때 어떤 인사를 보낼 것인지도 결정해야 합니다. 즉 10월 10일에 중국에서 고위 인사가 북한을 방문하게 하려면 북한도 어느 정도 성의를 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미묘한 작업에 들어간 겁니다.

▲ 훈춘 지역 개발을 홍보하고 있는 대형 간판. ⓒ황재옥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언제까지 이렇게 불편한 관계로 지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시진핑 주석의 선양 방문이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신호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는 건데요. 27~28일에 이뤄진 시 주석의 이번 방문은 랴오닝성(辽宁省)이 추진하고 있는 대외 개방 정책 등 주로 경제 분야를 점검하기 위한 것이라고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불과 열흘 전인 16~18일 지린성(吉林省)을 방문한 이후 북한과 가까운 동북 3성 지역을 잇따라 찾은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옵니다.

사실 북-중 경제 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 랴오닝성(辽宁省)과 지린성(吉林省)이 중요한 거점이기도 합니다. 함경도와 지린성 간의 경제 협력 관계와 훈춘을 통해 나진-선봉 지역으로 진출해야 하는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적극적인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북한이 김정은 시대의 위상을 과시한다면서 10월 10일에 맞춰 장거리 미사일과 핵실험을 해버리면 중국이 상당히 곤란합니다. 실제 북한의 군사적 행위가 현실화되면 국제 여론은 중국에 그 화살을 돌릴 겁니다. 사전에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영향력도 없고,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 등등 중국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들이 나올 겁니다. 중국은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사고를 치지 못하도록 관리하는 차원에서라도 북한과 관계 개선이 필요합니다.

미국에서 10.10을 전후로 북한의 도발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북한이 소위 핵·경제 병진 노선을 국가 운영의 기본 방침으로 제시해 놓은 상황에서 핵을 실전에 쓸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북한이 이렇게 나가면 경제 활동은 제대로 못 한다고 봐야 합니다. 중국으로써는 이런 점을 활용해서 북한에 "경제는 우리가 좀 도와줄테니까 핵은 구호로만 남겨두고 실제로는 쓰지 말자"는 식으로 북한을 관리하려고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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