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이란 핵협상이 최종 타결됐습니다. 2002년 8월 핵문제가 불거진 지 13년만입니다. 앞으로 10년 이상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동결하는 대신 내년부터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단계적으로 해제한다는 것이 주요 합의 내용입니다. 이번 합의가 제대로 이행된다면 1979년 이후 36년간 숙적이었던 미-이란 관계가 정상화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이슬람국가(IS) 격퇴, 시리아 내전 해결 등 난마처럼 얽힌 중동 정세의 안정에 이란이 커다란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지난 30여년간 국제사회에서 고립됐던 이란이 미국과 함께 중동 지역의 안정자(stabilizer)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번 합의를 1971년 닉슨의 미-중 화해에 비견되는 대단한 외교적 성과로 평가합니다. 오바마의 최대 외교 업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물론 낙관은 이릅니다. 미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이 강력 반대하고 있는 데다 중동지역의 핵심 동맹국인 이스라엘과 사우디 등의 반발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번 합의는 미국의 세계 전략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 Iran Deal: Is Obama Channeling Nixon?)
159쪽에 이르는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 합의문서
미국 등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 및 독일(P5+1)과 이란은 지난 14일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18일 간의 마라톤협상 끝에 '포괄적공동행동계획(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JCPOA)'이라는 긴 이름의 합의문서를 채택했습니다. 무려 159쪽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입니다. 골자는 이란이 핵무기 개발 활동을 감축 또는 중단하는 대신 미국과 유럽은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단계적으로 해제한다는 것입니다. 경제제재가 모두 해제될 경우 이란은 국제적으로 동결된 금융자산의 회수와 원유 수출 확대 등 1천억 달러의 경제적 이득을 얻게 됩니다. 이를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오는 12월 15일까지 이란 핵활동 실태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며 미국과 유럽은 내년부터 경제제재 해제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구체적으로 이란은 핵무기 개발의 핵심 물질인 플루토늄 및 농축우라늄의 생산능력과 보유량을 대폭 감축하기로 했습니다.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아라크 중수로의 핵심 부품을 제거해 불능화 시키는 한편 새로운 중수로 건설도 포기합니다. 기존 우라늄 농축 시설의 3분의 2를 폐기하는 한편 포르도 지하 농축 시설의 가동도 중단합니다. 또한 보유 중인 저농축 우라늄의 96%를 해외로 반출하고 300Kg만 갖기로 했습니다. 나아가 군사시설을 비롯해 이란의 모든 핵개발 의심 시설에 대한 IAEA 사찰단의 접근을 허용할 예정입니다. 단 이란은 IAEA 사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으며 이 경우 P5+1과의 협의를 통해 이견을 조정하게 됩니다. 또한 이란에 대한 재래식 무기 금수 조치를 앞으로 5년간, 탄도미사일 기술 이전은 8년간 유지됩니다. 하지만 핵사찰 결과에 따라 해제가 앞당겨질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합의 사항이 제대로 지켜졌는지에 대한 IAEA 보고서가 12월 15일 이전에 제출되면 미국과 유럽은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경제제재를 해제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합의가 이행되지 않았다면 65일 안에 제재를 재개할 수 있습니다.
(☞ 오바마 "기회 놓치지 말아야"…'이란과 화해' 의지 확고)
(☞ Iran nuclear deal: world powers reach historic agreement to lift sanctions)
이란 핵협상 타결의 결정적 계기는 2013년 9월 로하니 신임 이란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였습니다. 2012년 시작된 유럽연합의 대이란 금융거래 및 원유 수입 제한 조치로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었던 로하니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협상 재개를 제안하면서 급물살을 타게 된 것입니다. 이란 핵문제는 2002년 8월 이란 반정부단체인 국민저항위원회(NCRI)가 나탄즈 비밀 우라늄농축시설과 아라크 중수로의 존재를 폭로하면서 시작됐습니다. 2003년 이란은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3개국과의 협상을 통해 핵개발 잠정 중단에 합의했지만 2005년 8월 강경파인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취임하고 우라늄 농축을 재개하면서 이후 무려 6차례의 국제 제재를 받게 됩니다. 유엔 안보리는 2006년 12월 첫 제재를 시작으로 4차례나 제재 결의안을 채택했고 2010년에는 미국이, 2012년에는 유럽연합이 제재에 나선 것입니다. 이란이 핵협상에 적극 나선 것은 6차례의 경제제재에 따른 국제적 고립과 경제난을 벗어나기 위해서입니다.
오바마-로하니 전화 통화 이후 2013년 11월 24일 이란과 P5+1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핵협상 타결을 위한 기본 합의를 도출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1월부터 구체적 실행방안 협상에 들어갔고 이후 4차례나 협상 기한을 연장한 끝에 1년 6개월 만에 이번 최종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오바마가 이란 핵협상에 전력을 기울인 이유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 핵협상 타결로 세계가 보다 안전해졌다면서 만일 미 의회가 이번 합의를 반대한다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서방언론은 이번 합의로 국제 핵비확산체제가 유지된 점을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오로지 핵비확산체제 유지만을 위해 이란 핵문제 해결에 전력을 기울인 것은 아닙니다. 이란 핵문제가 불거진 직후인 2002년 10월 부시 정부가 북한의 우라늄농축을 이유로 (1994년 이후 북한의 핵동결을 유지시켰던) 제네바합의를 파기한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줍니다. 북한은 이후 3차례나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스스로 핵보유국임을 선언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까요.
오바마가 이란 핵협상에 그토록 공을 들인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2001년 부시의 아프간 침공 이후 전쟁과 내전으로 얼룩진 중동 정세를 안정시키려면 이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지난해 6월 이슬람국가(IS)가 이라크 제2도시 모술을 함락하고 신정국가를 참칭한 이후 중동 지역에서 수니파 대 시아파 간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의 협력 없이 중동 정세의 안정은 불가능해졌습니다.
이란은 2003년 부시 침공 이후 이라크에 들어선 시아파 정부의 후견인 노릇을 하고 있으며 내전 중인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 레바논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하마스, 그리고 예멘 후티 반군의 배후 세력입니다. 따라서 이란의 도움 없이 중동 사태를 해결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합니다. 일례로 현재 이라크에서는 IS 격퇴를 위해 미군이 공습을 하고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가 지상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시아파 민병대를 사실상 지휘하고 있는 인물은 이란 혁명수비대의 카심 술레이마니 장군입니다. 즉 IS 격퇴를 위해 미군은 공습, 이란은 지상전을 각각 수행하고 있지만 현재 미국과 이란이 군사작전에 관해 직접 소통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만일 미-이란 관계가 개선된다면 양국의 합동 군사작전도 가능해지겠지요. 또한 시리아 내전, 예멘 내전, 팔레스타인 문제 등을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도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의 협력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사실 이란은 2001년 10월 미국의 아프간 침공 당시 탈레반 정권 제거에 적극 협조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부시가 이란을 이라크, 북한과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하면서 협력관계가 깨진 바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타결로 예전의 미-이란 협력관계가 복원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란 핵협상 타결의 승자와 패자들
30여년 숙적이었던 미-이란 관계가 정상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각국의 희비도 엇갈리고 있습니다. 영국 <가디언>은 이번 협상 타결의 수혜자로 오바마와 로하니, 그리고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시리아 아사드 대통령을 꼽습니다. 반면 IS 지도자인 아부바크르 알 바그다디, 살만 빈 압둘 아지즈 사우디 국왕, 그리고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최대 피해자로 지목합니다.
로하니와 오바마는 미-이란 관계 정상화의 물꼬를 텄고 핵무기 확산을 막았다는 점에서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인기가 오를 것입니다. 이미 2017년 대선에서 로하니의 재선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푸틴은 러시아가 이번 핵협상 타결에 적극 협력했다는 점에서 오바마의 긍정적 평가를 받았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서방측 경제제재의 완화를 기대해볼 수 있다는 것이죠. 아사드 역시 최대 후원세력인 이란이 미국과 협력관계에 들어서면 내전 해결 과정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될 것입니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은 에너지 최대 수입국인 중국도 세계 4위의 석유생산국 이란의 원유를 수입할 수 있게 됨으로써 혜택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반면 IS는 미-이란 합동군사작전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군사적으로 극히 불리한 입장에 놓일 것입니다. 이라크, 시리아, 바레인, 예멘 등의 시아파에 대한 이란의 지원을 아주 못마땅해 했던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는 미-이란 관계 개선이 결코 반갑지 않을 것입니다. 오바마 대통령 면전에서 이란 핵협상이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큰소리쳐왔던 네타냐후 총리는 최대 동맹국 미국과의 관계를 훼손했다는 점에서 이미 국내에서도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 Iran nuclear deal: the winners and losers)
핵합의 이행 저지를 벼르는 미 공화당
이란 핵합의 이행이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미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인 이번 합의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면서 합의 이행 저지를 벼르고 있습니다. 이란 의회도 합의안에 대한 심의를 하겠지만 역시 최대 장애는 미 의회의 반대입니다. 미 공화당은 최근 의회를 통과한 '이란 핵협상 승인법'에 따라 핵합의를 파탄 내려 합니다. 여기에 미 의회에 대한 최대 로비세력인 이스라엘과 사우디가 힘을 보탤 것입니다. 이 법에 따르면 미 의회는 60일간의 검토 기간을 거쳐 표결하도록 돼있습니다. 표결에는 최대 22일이 걸립니다. 그러니까 10월 초순쯤에는 그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미 거부권 행사를 예고했습니다.
러시아 언론 <RT>는 이란 핵합의가 좌초될 수 있는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합니다. 첫째, 미 의회 표결에서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3분의 2 이상 반대표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공화당 의원 전원이 반대하는 동시에 민주당에서 상당한 정도의 반란표가 나와야 합니다. 하원(435명)에서는 44표, 상원(100명)에서는 13표 이상입니다. 자당 소속의 대통령 오바마가 자신의 최대 외교 업적으로 내세우려 하는 미-이란 관계정상화에 반란표를 던지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따라서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2016년 대선에서 공화당 출신이 당선돼 핵합의를 파기하는 것입니다. 공화당 예비후보인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플로리다주)와 스콧 워커 상원의원(위스콘신주) 등은 벌써부터 합의 파기를 공언하고 있습니다. 가장 유력한 후보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완곡하게 반대의 뜻을 밝혔습니다. 이번 핵합의는 "위험하고, 매우 흠이 많으며, 근시안적인 거래"라는 것이죠. 그러나 미국이 일방적으로 합의를 파기할 경우 역풍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이고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다른 합의 당사자들이 반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들 국가들로서는 이란과의 경제 및 군사 거래를 중단하는 것이 달갑지 않기 때문이죠. 이것도 가능성이 그리 높지는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2017년 이후 공화당 출신 미 대통령이 은연 중 합의 이행을 무력화시키는 것입니다. 이란이 핵합의 이행에 진정성을 보이지 않는다고 비난하거나 또는 핵합의와는 무관한 사항, 예를 들면 (미국 입장에서 테러 단체인) 헤즈볼라에 대한 이란의 지원 등을 문제 삼아 경제 제재를 가하면서 이란의 반발을 유도해 핵합의 이행을 사실상 좌초시키는 것입니다. 만일 내년 대선에서 공화당 대통령이 탄생한다면 이런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습니다.
(☞ Spoiler alert: How US politics could wreck the Iran deal)
북핵 해결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국내 언론은 이번 이란 핵합의가 북핵 문제 해결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우선 오바마가 이란 핵협상에 전력을 기울인 가장 큰 이유는 중동 정세 안정을 위해 이란의 협력이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오바마 외교의 최대 현안은 2009년 발표된 '아시아 회귀'입니다. 즉 아시아에서 날로 커지고 있는 중국의 경제적, 군사적 영향력을 봉쇄하는 것입니다. 중국 봉쇄에 전력을 기울이기 위해 중동의 안정이 필요해졌고, 중동의 안정을 위해 이란과의 관계정상화를 추구한 것입니다. 반면 중국 봉쇄를 위해서는 '북핵 위협'이라는 현실적인 불안 요인이 필요합니다. 드러내놓고 중국과 대결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2002년 10월 '우라늄농축 의혹'이라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제네바합의를 파기한 것도 바로 당시 떠오르기 시작한 중국을 봉쇄하려는 원대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따라서 오바마 정부가 앞장서서 북핵 해결에 나설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현실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오바마는 남은 임기 동안 이란 핵합의의 순조로운 이행에 전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최대 외교 업적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북핵 해결에 신경을 쓸 겨를도 이유도 없다는 것이죠. 결국 북핵 문제는 최대 당사국인 한국이 적극 나서지 않는 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란 핵합의와 미-이란 관계 개선이 국제적으로는 희소식이긴 하지만, 우리에겐 좋은 소식이 아닐 수도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란의 협력으로 중동 정세가 안정되면 미국은 중국 봉쇄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고, 북핵 문제는 방채해둔 채 한국의 대중 군사포위망 참여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독창적이고 주체적이며 대담한, 한국 나름의 외교 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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