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지구촌의 핵 문제는 북핵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5대 핵 보유국들은 각기 다양한 방식으로 핵무기 현대화에 착수하고 있다. 핵 확산 금지 조약(NPT) 가입을 거부해온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의 핵 문제도 여전하다. 후쿠시마 사고로 그 위험성이 새삼 확인된 핵 '발전'(發電)의 문제도 핵 '무기' 못지않게 중대하다.
어쨌든 우리로서는 이란 핵 타결이 한반도에 미칠 영향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긍정적 영향은 별로 없고 오히려 부정적 영향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우선 이란 핵 타결의 교훈을 둘러싼 동상이몽이 여전하다. 북한은 평화적 핵 이용을 추구한 이란과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미국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미국은 북한도 이란처럼 핵 개발을 포기하고 국제 사회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미-중 간의 신경전도 거듭 확인되고 있다. 중국은 대화와 협상에 의한 이란 핵 타결이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도 유효할 수 있다며 조건 없는 회담 재개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협상의 문은 열려 있지만, 북한이 먼저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오바마 행정부의 적대국 외교에서 북한은 앞으로도 열외로 남을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집권 1기(2009~2012년)에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던 오바마 행정부는 2기 들어 적대국 화해 외교에 박차를 가했다. 쿠바에 대해서는 "봉쇄 정책이 실패했다"고 인정하면서 반세기만에 외교 관계를 복원했다. 또한 미얀마, 베트남 등 과거 적대국과의 관계 개선에서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국내외의 엄청난 저항에도 불구하고 이란 핵 협상을 타결지었다. 이제 사실상 북한만 남은 셈이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가 자발적으로 북한과 협상을 선택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앞선 글에서 다룬 것처럼, 이란 핵 협상 타결은 새로운 시작을 수반하고 있다. 미국 내부적으로는 공화당 주도의 의회와의 건곤일척 승부를 앞두고 있다.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의 동맹국들을 어떻게 달랠 것인가의 중요하다. 여기에 더해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필자는 앞선 글에서 이란 핵 협상 타결에 세 가지 요인이 주요하게 작용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중재자, 신뢰 구축, 선택과 집중이 바로 그것들이다. 그런데 한반도 핵 협상에는 이들 세 가지가 크게 결여돼 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중재든, 촉진이든 한국이 중국과 손을 잡고 그 역할을 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이후 한국의 이러한 역할은 자취를 감췄다. 이 기간 동안 한미 동맹과 북한은 신뢰 구축은 고사하고 불신의 골만 키워왔다.
선택과 집중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 저지에, 이란은 제재 해제라는 분명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한반도는 판이하게 다르다. 각자가 정확히 원하는 게 무엇이냐도 혼란스럽고 또 상대방에게 원하는 게 너무 많다. 가령 북한은 조건이 맞으면 핵을 포기하겠다는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반면 미국은 북한에 핵 이외에도 인권 문제, 미사일(로켓) 등 다양한 문제를 내걸고 있다. 한국마저도 흡수 통일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보다 큰 차원에서 한반도 정세를 전망할 필요도 있다. 우선 미국의 전략적 그림에서 북핵과 이란 핵 문제 사이에 차이가 존재한다. 오바마 대통령도 역설한 것처럼, 이란 핵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중동의 핵 도미노 현상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을 막는 게 힘겨워진다. 반면 미국은 북핵 문제에도 불구하고 동북아의 핵 도미노를 제어할 수 있다고 여긴다. 아울러 이스라엘과 달리 한국이 북핵을 선제공격하고 이로 인해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도 낮고, 또한 한국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이에 반해 미국에게 북핵의 효용 가치는 과거보다 커진 상황이다. 중국 봉쇄와 아시아 패권 유지를 위한 '재균형 전략'의 핵심은 한-미-일 삼각동맹 구축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주한-주일 미군의 안정적인 주둔 여건 확보 및 아시아-태평양 전력 증강,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및 군비 증강, 한일 군사 협력 강화, 미사일 방어 체제(MD) 협력 강화 등이 필요하다. 북한 위협은 이를 위해 더없이 좋은 구실로 이용돼왔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 핵 타결이 '풍선 효과'를 동반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우선 초미의 관심사인 사드(THAAD) 문제이다. 얼마 전까지 사드 우선 배치를 놓고 주한 미군 사령관과 중동을 작전 범위에 둔 중부군 사령관이 신경전을 벌여왔다. 그런데 이란 핵 타결로 인해 중동의 사드 배치 시급성은 반감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곧 주한 미군 사령관의 발언권이 강해질 것임으로 예고해준다. 아울러 미국이 유럽형 MD의 수위를 낮출 경우 동북아 MD가 상대적으로 커질 가능성도 있다.
이란 핵 협상과 관련해 우리가 길어올릴 수 있는 핵심적인 교훈은 '중재의 힘'이 아닐까 한다. 미국과 이란 관계가 악화 일로를 걸었던 2012년, 중동의 작은 나라 오만은 양측의 대화를 주선했다. 이를 근거로 <뉴욕타임스>는 오만의 술탄을 '숨은 공로자'로 칭송했다.
그런데 한국은 제3자도 아닌 직접 당사국이다. 북핵 문제가 악화되면 최대 피해자가 될 수 있고, 반대로 북핵 해결 시 가장 큰 수혜자가 될 수 있다. 6자 회담의 참가국이자 미국과는 동맹 관계를, 북한과는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에 있다. 중재든, 촉진이든, 주도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체제 프로세스에서 제 역할을 찾아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당사국이 바로 한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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