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과 녹색당,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는 '함께 사는 돈 탐방기'라는 공동기획을 시작합니다. 지금은 '각자 생존'의 시대라고 합니다. 노인빈곤율이 OECD 최고수준인 48.1%에 달하고, 체감 불평등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장년층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함께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점점 높아지고 있는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도 이런 현실의 반영입니다.
그래서 이 기획에서는 우리 사회의 소득 실태에 대해 진단하고, 지역과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대안을 모색해 보려고 합니다. 각자 생존이 아니라 함께 사는 길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많은 관심과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관련기사 : [함께 사는 돈 탐방기]"청년들, 중동 가라?"…살벌한 대한민국)
미국의 독립과 프랑스 대혁명에 큰 영향을 끼친 사상가로 토머스 페인이 있다. 1797년에 기본소득을 주장했다. 그는 상속세로 걷은 돈으로 노인, 청년, 그리고 장애인에게 '조건 없이' 현금을 지급하자고 제안했다. 그의 제안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곱씹어볼 부분이 많다. 200년도 더 전에 장애인의 권리로 '기본소득'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토지 등 공유재에서 나오는 수익을 배당받을 권리가 있는데, 특히 임금노동을 하기 힘든 장애인들에게 우선적으로 그런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장애인은 '인권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동정이나 시혜의 대상으로 취급받고 있다. 그 편견의 벽을 깨기 위해 지하철 광화문역에는 1000일이 넘게 장애인 인권단체가 농성하고 있다.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가 핵심요구 사항이다.
지난 6월 21일 대학로에 있는 노들야학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분들을 만났다. 우선 장애등급제 폐지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에 대해 들어 보았다. 장애등급제 폐지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했다.
"정부는 예산타령만 합니다. 그래서 장애등급제를 폐지하는 게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등급제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최근 정부는 장애등급 1,2,3등급을 중증, 4,5,6등급을 경증으로 분류해서 단순화하는 방안을 얘기했습니다. 결국 등급제 자체는 유지하겠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장애인과 관련된 예산이 늘어나는 것을 어떻게든 회피하려고 합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의 얘기이다. 전국장애인차별 철폐연대는 장애등급제를 사람을 물건 취급하는 제도라고 본다. 누구는 몇 급, 누구는 몇 급… 이런 식으로 판정하기 때문이다. 장애등급이 1,2급이 나와야 여러 혜택을 받을 수 있으므로, 장애인들은 장애가 심한 것으로 판정이 나오기를 바라야 하는 상황이다.
존엄성을 가진 인간, 물건처럼 판정의 대상이 된다
철문 앞에서 심사관이 지키고 있고, 심사대 앞에 선 사람들은 초조한 마음으로 심사를 기다리게 하는 시스템이다. 칼자루는 심사관이 쥐고 있고, 존엄성을 가진 인간은 어느 순간에 물건처럼 판정의 대상이 된다.
장애등급제는 장애인의 실제 상황을 고려해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의학적 잣대를 일률적으로 들이댄다. 실제로는 거동조차 어려운데, 장애등급은 엉뚱하게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많은 장애인이 활동보조서비스와 같은 필수 서비스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어 왔다.
다른 한편 장애인들에게는 소득보장도 절실한 과제다. 임금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얻어 소득을 올리기 힘든 장애인들에게 소득을 보장할 방법은 무엇일까? 모두에게 조건 없이 기본적인 소득을 보장하자는 ‘기본소득’에 대해 장애인 인권 운동가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우선 지금 시행되고 있는 장애인연금제도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부터 들어 보았다.
"장애인연금은 현재 장애등급이 1급, 2급인 사람과 3급인데 중복장애를 가진 사람에게만 지급됩니다. 그리고 소득과 재산심사를 통과해야 합니다. 가난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지금 장애인연금을 받는 장애인 수는 30여만 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등록장애인이 250여만 명인데, 그중에 아주 일부만 장애인연금을 받을 수 있는 거죠."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11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1-2급 장애인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17.8%로 국민 평균인 62.1%에 비해 한참 낮다. 실질적으로 경제활동을 통해 소득을 올리기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애인연금제도가 도입되었지만, 실제로 받는 금액은 얼마나 될까?
<표> 장애인의 경제활동 특성
2015년 기준으로 장애인연금 액수는 1인당 월 20만2600원이다. 이것이 기본급여이다. 그리고 부가급여까지 받으면 8만 원이 추가된다. 만약 장애인연금도 받고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이기도 하다면, 최대 78만 원 정도를 받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충분한 급여라고 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장애로 인해 추가로 발생하는 비용(각종 의료비, 교통비, 재활치료비 등)을 보전하기 위한 것이 '부가급여'다. 2011년의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에서는 23만6000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정작 정부가 지급하는 부가급여액은 8만 원에 불과하다.
대선 때 약속한 박근혜 대통령, 하지만…
장애인연금을 받을 수 있는 범위도 매우 좁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에 모든 중증장애인에게 장애인연금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중증이면 당연히 3급까지를 포함한다. 그러나 지금도 3급 장애인은 중복 장애가 아니면 장애인연금을 받을 수 없다. 공약을 파기한 것이다. 모든 노인에게 20만 원의 기초연금을 지급하겠다고 했다가, 소득 하위 70%로 제한하고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인 노인들을 배제한 것과 똑같은 행태이다.
결국 예산을 아끼기 위해 끊임없이 심사하고 대상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그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기본소득이다. 조건 없이, 그리고 심사 없이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장애인에게 장애인연금(기본연금)을 지급한다면, 그것은 기본소득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장애등급이나 소득/재산과 관계없이 지급하면, 복잡한 심사제도도 필요없다. 사각지대도 발생하지 않는다.
거기에 덧붙여서 장애로 인해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을 월 8만 원이 아니라 현실적인 금액으로 책정해서 '부가급여' 형식으로 받는다면 어떨까?
"기본소득이 지급되고, 추가비용을 장애인연금 같은 형식으로 받는다면,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소득이 없는 장애인에게 최소한의 소득은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도 정부는 재원이 없다면서 3급 장애인으로 확대하는 것조차 거부하고 있습니다. 3급 장애인까지 확대하는데 5000억 원의 예산이 더 들어간다는 것이죠."
역시 마지막에는 현실성이 문제다. 정부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든, 한부모가족이든, 장애인에게든 늘 '돈이 없다'는 얘기를 한다. 그래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도 외면한다. 그러나 과연 정말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을까? 담대한 조세개혁, 재정개혁을 한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세계 최고의 복지를 누리는 대가로 세계 최고의 조세부담률을 기록하고 있는 국가가 덴마크다. 덴마크도 처음부터 조세부담률이 높았던 것은 아니다. 지금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48.6%의 국민부담률(조세와 사회보장기여금을 합해서 계산)을 보이는 덴마크지만, 1965년에 덴마크의 국민부담률은 29.5%였다. 그런데 덴마크는 1971년에 국민부담률을 40.8%까지 끌어올린다. 불과 6년 사이에 조세부담률이 11.3%나 올라간 것이다. 사회적 합의만 있다면, 증세를 위한 조세개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대한민국처럼 '새는 곳'이 많은 조세제도, 예산 낭비가 많은 국가재정구조를 가진 나라라면 더 쉬울 수도 있다.
장애인인권단체들은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모든 장애인에게 최저소득을 보장하는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주장해 왔다. 인간으로 존중받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청년들, 노인들, 장애인들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해야 한다는 토머스 페인의 이야기가 21세기도 한참 지난 지금에는 현실로 되어야 하지 않을까?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