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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싼 전기요금, 꼼수는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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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값싼 전기요금, 꼼수는 따로 있다

[함께 사는 길]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전면 수정돼야…

지난달 18일 산업통상자원부는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 공청회를 진행했다. 발전소와 송전탑 건설로 직접적인 피해를 겪는 지역주민들을 선별해서 입장시킨 상태였다. 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은 핑계였다. 한 언론사에 따르면, 빈 좌석 수는 150석에 이르렀다. 그리고 사흘 뒤 21일 주택용 여름철 전기요금 인하와 중소기업 사업장의 토요일 전기요금 인하 시책 등을 발표했다.

비정상적인 전력수요 전망 뒤 전기요금 인하 꼼수

정부의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029년까지 전력소비량과 최대전력소비 모두 연평균 2.2퍼센트(%) 증가하는 것을 전제로 각각 14.3%, 12% 절감한 목표전력소비량에 맞춰 석탄과 원전을 대규모로 늘리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신규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이 아니라 값싼 산업용전기요금 정상화 등을 통해 전력수요를 다시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전기로 철을 녹이는 광양 제철소 ⓒ함께사는길(이성수)


우리나라 1인당 전기수요는 현재도 비정상적으로 높다.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하고 있는데도 OECD국가 중 미국, 캐나다, 스웨덴, 핀란드 등 특수한 상황에 놓인 나라들 외에는 우리보다 1인당 전기수요가 높은 나라들이 없다. 우리나라의 전기과사용은 80년대 전력설비가 남아돈다면서 아홉 차례에 걸쳐 진행된 전기요금 인하와 물가상승률보다 낮은 전기요금 인상률 등 때문이다. 싼 전기요금으로 인해 2000년대 들면서 전기난방과 전기냉방이 급속히 확대됐다. 그 결과 한겨울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최대전력소비 때 전기난방이 차지하는 비중은 25%로 원전이 생산하는 전기와 맞먹을 정도가 되었다. 전기에너지는 화석연료나 핵분열에너지의 열을 이용해 만든다. 이 과정에서 30~40%만이 전기에너지로 전환될 뿐이다. 그런데 이를 다시 난방을 위해 열로 만든다는 것은 에너지를 이중으로 낭비하는 소비구조다. 그럼에도 정부는 싼 전기요금으로 이런 상황을 조장해왔고 그렇게 늘어난 전기수요를 충당해야 한다며 대형 석탄화력, 원전, 초고압 송전탑을 계획해 건설해온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소극적인 전력수요관리정책에도 최근 3년간의 전력수요는 정체단계로 돌입했고, 작년 전력소비 증가율은 0.5%에 머물렀다. 전력수요의 상당 부분이 전기냉난방이나 전기가열과 같은 전기열 수요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는 중장기적으로 전기수요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줄어들 것으로 전망해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2029년까지 연간 2.2%대의 전력수요 증가를 전망했다. 과도하다 못해 기이하기까지 하다. 특히, 전기수요 증가율을 작년 0.5%에서 올해 갑자기 4.3%로 전망한 것은 비현실적이다. 이대로라면 한국의 1인당 전력소비는 미국보다 많아지게 된다.

'전기 더 사용하라' 부추기는 정부

여기엔 전기요금을 여전히 싸게 유지하겠다는 정책의지가 반영돼 있다. 이를 증명하듯 최근 정부는 여름철 전기요금 인하 시책을 발표했다. 여름철(7~9월) 주택용 전기요금과 중소규모 사업장의 토요일 전기요금(8월 1일부터 1년간) 등을 인하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비정상적으로 싼 전기요금으로 인해 전기열수요(전기냉방, 전기난방)가 급증했으므로 전기요금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정부 정책목표와 완전히 어긋나는 것이다. 전기냉방으로 인한 여름철 전기수요를 낮추기 위해 수요관리정책을 도입할 생각은 않고 인기영합성 전기요금 인하정책을 편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 초기인 지난해 1월, 2차 에너지기본계획은 정책목표를 수요관리 중심의 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이고 정책과제는 전기요금 체계 개선이었다. 그런데 인제 와서 전기소비를 부추기는 전기요금 인하를 발표하는 것은 에너지정책에 관한 정책기조도 일관성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원전을 더 짓기 위해 전기수요를 끌어올리려 한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 월성원자력발전소. 월성1호기는 설계수명이 만료되고 안전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지만 정부는 수명연장을 승인했다 ⓒ함께사는길(이성수)

전기요금이 싸다고 국민 생활이 행복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가정용 전기소비는 6단계 누진제로 정체 상태에 들어갔다. 문제는 산업용 전기요금이다. 저렴한 산업용 전기요금으로 산업용 전기수요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것이고, 그로인해 1인당 전기소비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급증했던 것이다. 특혜를 받는 이들은 전기다소비 업종들인데 이들은 부가가치 생산율도 낮고 고용창출효과도 낮아서 서서히 퇴출될 수밖에 없는 기업들이다. 이들을 위해서 싼 전기요금 체계를 계속 유지할 수는 없다.

주택용 전기수요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6단계에 이르는 누진제 역할이 컸다. 4구간인 400kWh를 넘어 전기를 소비하는 가구는 전체의 8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4구간 이내에서 전기소비를 한다. 정부는 4구간을 3구간 전기요금으로 인하해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4구간의 최고전기요금은 7만8860원이다. 그런데 이번 조치로 4구간의 최고 전기요금은 6만8320원이 된다. 전기요금이 13% 낮아진 것이다. 이들 가구들은 저렴해진 전기요금에 반응해서 전기소비를 늘릴 것이다. 4구간에 해당하는 주택 비중은 약 25%다. 정부가 전국의 25% 가구에게 전기소비를 13% 늘려도 된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한편, 중소기업들은 전기소비 효율을 높이는데 투자할 여력이 없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전기요금 인하가 아니라 효율 투자 지원이다. 그런데 토요일까지도 공장을 가동해서 전기소비를 늘리라고 신호를 준 것이다.

석탄 21기, 원전 13기 추가 건설

전기요금 인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전기를 더 많이 쓰게 하고 특히나 원전 건설의 구실이 된 최대전력소비를 끌어올리려는 꼼수다.

산업통상자원부의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보면 설비예비율이 22%다. 이 때문에 지금보다 발전 설비는 약 41기가와트(GW), 원전 41개가 더 늘어야 한다. 폐지설비까지 고려하면 48GW가 늘어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 신규원전을 13기나 더 짓고 석탄화력발전소를 21기 신설하겠다고 하는 것이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내용이다. 하지만 총전력소비에 비해 높은 증가율을 보이던 최대전력소비(피크전력소비) 증가율 역시 지난 여름을 제외하고는 최근에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겨울과 여름의 최대전력소비는 전기난방과 전기냉방 소비로 정부가 조금만 신경 쓴다면 줄일 수 있다. 스마트 그리드와 연계한 피크전력요금제만 도입해도 관리할 수 있는데 앞으로 15년을 전망하면서 지금보다 최대전력소비가 훨씬 더 늘어나는 것으로 전망한 것은 효율 정책을 시행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특히나 신규원전설비 3GW를 겨울철 최대전력소비에 맞추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는데 이는 전기난방의 지속적 증가를 전제로 한 비현실적, 시대착오적인 전망이다. 전기난방은 크게 늘어날 가능성도 낮으며 비효율적인 에너지 소비방식이므로 앞으로 줄여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설비예비율을 22%로 적용하다 보니 1년 중 전기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1주일도 안 되는 때조차 원전 25개 분량을 예비로 남겨두게 생겼다. 이렇게 되면 전기소비가 가장 적은 때는 원전 80~90개 분량의 발전소가 가동되지 않는 기이한 상황까지 벌어진다.

더위와 추위로부터 쾌적한 실내를 유지하는 데에는 원전이나 석탄화력 전기밖에 해답이 없는 것이 아니다. 2차 에너지인 전기가 아니라 1차 에너지인 가스를 이용한 냉난방시설도 있다. 선진국들은 단열개선사업을 통해 아예 에너지가 필요 없는 집을 만들기도 하고 건물에 태양광 패널을 부착해 생산된 전기로 냉난방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만 유독 싼 전기요금을 고집하며 전기소비를 부추기는 정책을 써왔고 늘어난 전기수요를 대형 석탄화력과 원전 건설을 구실로 삼았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 늘어나

박근혜 정부의 에너지계획 중 최상위 계획인 2차 에너지기본계획이 2014년 1월에 수립되었다. 이 계획은 방향을 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에 맞춰 전력수급기본계획 같은 하위계획이 수립되기 때문이다. 2차 에너지기본계획의 첫 번째 정책목표는 '수요관리 중심의 에너지정책 전환'이었으며, 그 첫 번째 과제가 '전기요금 체계 개선'이었다. 하지만 하위 계획인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 상위 계획을 전면 부정한 것이다.

이번 전력수급계획은 송전망 가능성을 먼저 확인한 후에 발전소 건설계획을 추진한다는 2차 에너지기본계획의 기본 방향도 정면으로 위배했다. 현재 건설 중인 신한울 원전 3, 4호기조차 신규 765kV 송전망을 확보하지 못하면 가동이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로 2019년까지 강원도를 가로질러 경기도까지 신규 765kV 송전탑을 건설해야 하지만, 주민들 반발로 강원도 송전선 경로와 경기도 변전소 후보지조차 정하지 못한 상태다. 송전선 노선도, 변전소 장소도 정해지지 않은 채 신한울원전 3, 4호기부터 건설하고 있는 것이다.

▲ 노후 원전인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의 폐쇄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삼보일배 ⓒ서토덕

만약 삼척과 영덕에 신규원전을 건설하면 추가로 또 각각 765kV 송전선로를 깔아야 한다. 하지만 이는 현실 가능성이 낮다. 또 이미 송전망 포화상태인 수도권으로 대규모 전력을 더 보내는 것은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해치고 대정전 등을 발생시킬 위험이 있다.

산업부는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된 4개의 석탄 화력발전소(영흥 7, 8호기, 동부 하슬러 1, 2호기)를 취소하는 대신 보류했던 2기의 신규원전을 추가했으며 이는 기후변화에 대응한 전력수급기본계획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25기(2만1520MW)의 석탄화력발전소 중 4기(3740MW)만 취소했을 뿐이다. 또한 실제로 이번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으로 연간 4600만 톤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난다. 이는 2020년의 목표온실가스 배출량(5억4300만 톤)의 약 9퍼센트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이다.

4기의 석탄화력발전 취소는 원전을 확대하는 구실을 만들기 위한 수사에 불과하다. 신규원전은 11기(1만5200MW)에서 1500MW짜리 두 기를 더해 13기(1만8200MW)로 늘어났다. 2029년까지 예상된 11기의 노후원전(고리1호기 제외)들 역시 폐지계획이 제출되지 않았다. 산업부는 원자력안전위원회 핑계를 댔지만 발전소 설비용량에는 이들 용량이 포함되어 있다. 원전 사고 위험은 더 커졌고 처리 못 할 핵폐기물이 대량으로 발생하게 된 것이다.

중장기적인 전기요금 인상계획 필요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담겨야 할 내용은 비정상적인 전력수요전망과 발전소 설비계획이 아니라 중장기적인 전기요금 인상계획이다. 전반적인 인상과 함께 거리별 요금제, 피크 요금제 등을 도입하면 6차 계획에 반영된 신규 석탄화력과 원전 설비 모두 필요 없다. 석탄화력발전과 노후한 송전망 설비로 곤란을 겪고 있던 호주가 좋은 사례다. 2010년 이후 3년간 64%의 전기요금 인상으로 전력수요는 줄어들었고 태양광발전과 같은 분산형 전원은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며 관련 산업이 성장해 GDP 증가에 도움을 주었다. 전기요금 인상분은 전액 세금으로 환수해 전력수요 절감산업, 재생에너지 산업에 재투자하면 새로운 경제성장의 기회도 제공하고 고용창출 효과도 발생할 것이다.

지난 2012년 에너지대안포럼은 전기요금인상안을 반영한 전력수요를 전망했다. 에너지대안포럼에서 제시한 전기요금 인상안은 두 가지다. OECD국가의 1인당 전력수요수준으로 전기요금을 현실화하는 안과 이보다 훨씬 약한 전기요금 인상안 즉, 산업용 전기요금은 2020년까지 매년 2~3%, 2021~2030년에는 매년 1% 인상하고, 가정용은 매년 1%씩 인상하는 방안이다. 이를 최대전력소비증가율에 반영하면, 전자의 경우 전력수요는 서서히 줄어들어 2029년이 되면 현재(2015년 6월) 발전설비량 95.681GW에서 발전설비를 전혀 늘리지 않아도 설비예비율이 25%나 된다. 후자와 같이 전기요금을 서서히 인상할 경우 전력수요가 늘어나지만 서서히 늘어나므로 현재 설비에서 19GW 정도만 반영하면 된다. 이는 천연가스 발전소 물량과 재생에너지로 충당 가능한 양이다. 전기요금 정책과 수요관리 중심의 에너지정책을 전면 시행한다면 앞으로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 지난 6월 18일 산업통상자원부는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확정에 앞서 시민과 지역주민들의 의견수렴을 위한 공청회를 열었지만 시민들의 입장을 제한하고 일방적으로 행사를 진행했다. ⓒ삼척평화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전면 수정돼야


정부는 전기요금 인하시책을 발표하면서 에너지신산업에 대한 투자도 발표했는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생색만 내는 정도다. 재생에너지에만 수십조 원을 투자하는 나라들이 수두룩하다. 우리보다 경제수준이 낮은 동남아 국가들도 우리보다 재생에너지 투자비가 몇 배는 많다. 독일은 우리나라보다 전기요금이 세 배 이상 비싸다. 그중 10퍼센트는 재생에너지에 투자하는 목적성 세금이다. 정부 정책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독일 국민이 우리보다 전기요금 비싸서 덜 행복한가. 싼 전기요금 뒤에는 싹도 피우지 못하는 에너지 신산업, 망해가는 재생에너지산업, 증설하는 석탄화력발전소와 원전, 눈물을 타고 흐르는 송전탑, 기후변화와 방사능 오염이 있다.

2029년이면 지금부터 14년 후다. 미래에도 현재와 같이 대용량 석탄화력과 원전을 장거리 송전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방식이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은 시대를 거꾸로 되돌리려는 원전마피아들만의 바람이다. 이미 2050년 재생에너지 100%를 전망하는 나라들이 앞선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다. 전력소비를 줄이며, 현재의 석탄화력과 원전을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계획이 미래에너지 신산업의 방향을 반영한 계획이다.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전면 수정되어야 한다.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바로가기 : <함께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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