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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카페에서 마주친 프루스트와 조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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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가을, 카페에서 마주친 프루스트와 조이스

9월 문학과철학학교

문학과철학학교(교장 양운덕, 철학박사)가 가을학기 9-10월 강의를 준비합니다. 주제는 <가을, 카페에서 마주친 프루스트와 조이스-시간을 잣고 언어로 빚는 문학의 두 거장>입니다.

양운덕 교장선생님은 이번 가을학기를 준비하며 이렇게 얘기합니다.

책장 속에 갇혀있는 프루스트, 어려워서 근처에도 못가는 조이스?

내 삶이 저렇게 떨어지는 낙엽과 같다면 나는 바스러지는 소리 너머에 무엇을 지니고 있는가? 자연의 품에서 존재자들이 익어갈 때 내 안에는 무엇이 익고 있는가? 번쩍이는 부와 권력? 죽음과 허무의 열매들?

우리 모두는 시간 안에서 스러져간다. 일상에서, 사랑에서, 웃고 절규하는 상황에서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저 시간을 잃어버리면서. 영광과 행복의 기억들로 지나간 시간을 보상받을 수 있을까? 타인과의 만남, 사회 역사적인 사건들의 난류에서 질서와 의미를 마련할 수 있을까? 어떻게, 무엇으로, 누가?

▲프루스트, 문학으로 되찾은 잃어버린 시간

우리는 (종교, 정치, 경제, 과학, 철학 등의 빛나는 진리들이 아니라) 문학적 모험에서 길을 찾고자 한다. 먼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탐구에서. 공허한 만남들과 사랑의 고뇌를 뛰어넘어 ‘되찾은 시간’을 창조하는 예술의 길을 음미하고, 이어서 조이스가 그려낸 새로운 오뒷세우스의 모험에서, 고립, 정신적 공허, 소통의 부재, 자기 상실에 빠진 일상에서 신성함과 세속적인 세계, 진리와 비진리가 혼재하는 세계를 새로운 언어로 총체화 하는 시도에 동참하고자 한다.

프루스트는 어떻게 시간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이 감각적 구체성에서 진리의 차원과 마주하면서 예술적 창조에 눈뜨게 되는지를 제시한다. 유명한 마들렌 과자의 맛에서 펼쳐진 ‘초시간적인’ 과거를 어떻게 영속화하고 공명하는 시간들로 형상화할 수 있을까?

조이스는 20세기 초 더블린에서 살아가는 오뒷세우스(블룸)와 텔레마코스(스티븐)의 모험과 방황을 현대인의 삶의 공간에서 다르게 되풀이하고 형상화한다. 출렁이는 바다와 같은 언어적 변신들은 혼란과 무의미의 조각들을 새롭고 넉넉하게 담을 예술 세계로 새로운 혼돈-질서chaosmos를 빚어낸다.

오늘날을 사는 우리들이 프루스트와 조이스의 새로운 주인공이라면 어떻게 삶의 길에서 부딪히는 조각들을 벼리고 다듬어서 예술품으로 빚어낼 수 있을까? 우리 삶의 구체성을 어떤 표현의 그릇에 담을 것인가?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새로운 질서를 찾을 수 있을까? 궁핍한 시대에 문학은 무엇을 위한 (쓸모없는) 시도인가?

▲조이스의 언어적 모험, 카오스 모스를 향하여

문학과철학학교 2015년 가을학기 강의는 9, 10월 매주 화요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총 8강으로 열립니다. 강의 내용과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부> 프루스트, 문학으로 되찾은 잃어버린 시간

제1강[9월1일] 사라졌던 세계가 마들렌 과자의 맛에서 펼쳐지다

*죽음까지 넘어서는 행복을 주는 기억의 수수께끼
*시간의 주름을 펼치는 감각적 구체성들
*잃어버린 시간과 되찾은 시간의 관계는?

제2강[9월8일] 스완의 사랑, 사랑의 진리 찾기?
*고통스러운 사랑의 진리인가, 의혹과 기만으로 괴로움을 주는 사랑의 달콤함인가?
*질투가 사랑을 낳는가?
*사라지는 사랑의 순간들을 담은 예술적 표현

제3강[9월15일] 꽃피는 아가씨들 그들에서 잃어버린 시간들, 사랑인가 예술인가?
*예술가의 아틀리에와 아가씨들의 매혹 사이에서: 예술을 밀쳐놓고 눈앞의 사랑을 좇아서
*사랑의 틈새로 엿보는 예술-예술이 창조하는 공간과 시간을, 내적 세계의 풍요로움
*그녀의 얼굴은 하나인가? 바다처럼 변신하는 다양한 얼굴들

제4강[9월22일] 문학적인 시간은 어떻게 존재하는가?(문학적 시간의 존재론)
*왜 문학적인 시간은 초시간적(현실적이고réels 이념적ideaux)인가?
*살짝 열린 통처럼 사물, 감각들에 반쯤 담겨져 있는 진리들 해석하기
*잃어버린 시간들을 되찾고 창조하는 능력은?

<2부> 조이스의 언어적 모험, 카오스모스를 향하여

제5강[10월6일] 젊은 예술가의 초상

*종교적 죄의식에서 아름다운 불멸성을 창조하는 예술가-시인의 길

제6강[10월13일] 문학은 어떻게 총체성을 추구하는가?
*블룸과 스티븐의 대화: 과학적 교양과 예술적 고뇌, 현대적 일상과 예술적 초월을 어떻 게 종합할 수 있는가?
*척박한 현실 밑에서 흐르는 생명의 강줄기: 모든 욕망과 현실을 감싸는 긍정의 Y-E-S

제7강[10월20일] 방황하는 영혼의 길 찾기
*현상들의 기호 앞에서, 가시적인 것의 불가피한 양상들 앞에서 자신과 함께 걸어가는 길

제8강[10월27일] 더블린의 오뒷세우스(블룸)가 겪는 일상의 모험과 의식의 흐름들
*조각난 사건들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의식의 흐름들
*어떤 언어 형식으로 일상 경험을 이름붙이고, 분류하고, 재구성, 편집, 창조할까?
*단편적인 소리들로 어떻게 문학적 화음을 빚을 수 있는가?
**현실의 카오스에서 (예술적) 질서를 추구하는 의식의 흐름과 언어적 모험

<주요 교재>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김창석 옮김, 국일 미디어 (1, 2, 3, 4, 11권)/김희영 옮김, 민음사(1, 2, 3, 4권)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즈>(김종건 옮김, 범우사 1, 2, 4권)/(Penguin Books)/<젊은 예술가의 초상>

강의는 인문학습원 강북강의실(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 아래 약도 참조)에서 열리며 참가비는 22만원입니다. 참가신청과 문의는 인문학습원 홈페이지 www.huschool.com 이메일 master@huschool.com 으로 해주십시오.
강의실 예약관계로 수강신청을 8월 24일까지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전화 문의(050-5609-5609)는 월∼금요일 09:00∼18:00시를 이용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공휴일 제외). 회원 아니신 분은 회원 가입을 먼저 해주십시오(▶회원가입 바로가기). 문학과철학학교는 생활 속의 인문학 체험공동체인 인문학습원(대표 이근성)이 지원합니다. ▶참가신청 바로가기


양운덕 교장선생님은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철학과 대학원에서 헤겔 연구(<해겔 철학에 나타난 개체와 공동체의 변증법>)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서구사회 철학에서 전개된 개인과 공동체의 상관성이라는 주제를 탐구하면서, 질서와 무질서의 상관성에 주목하는 복잡성의 패러다임, 헤르메스적 인식론, 자율성과 창조의 원천인 ‘상상적인 것’ 등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연구실 ‘필로소피아’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다양한 철학과 문학의 고전들을 폭넓고 깊이 있게 소화하기 위한 모임과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대학 새내기들의 철학 입문서인 ‘피노키오 철학시리즈’ (<피노키오는 사람인가, 인형인가>(휴머니스트)외 3권), 보르헤스 해설서인 <보르헤스의 지팡이>(민음사), 철학자들의 문학 읽기를 소개하는 <문학과 철학의 향연>(문학과 지성사) 등이 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문학과철학학교를 열며> 이렇게 얘기합니다.

문학과철학학교는 문학과 철학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공부방이다. 문학과 철학은 우리의 삶과 세계를 비추는 두 거울이다. 문학과 철학이 없는 삶과 세계는 공허할 뿐이라면, 삶과 세계를 제대로 담고 질문하고 형상화하지 못하는 문학과 철학은 맹목적인 노력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문학과 철학은 배타적으로 맞서지 않는다. 서로가 삶과 세계를 인식하고 평가하고 풍성하게 하는 (타원의 두 초점처럼) 두 개의 중심을 마련하고 서로 배우고 가르치면서 새로운 합성을 추구할 수 있다.

철학이 없는 문학은 전체에 대한 객관적 이해 없이 개별적인 경험과 특수성의 혼란을 벗어나기 어려워서 차이들의 바다에서 길을 잃기 쉽고, 문학이 없는 철학은 고정된 본질로 모든 것을 단조로운 반복의 틀에 집어넣을 것이다. 이런 철학에서 나와 너, 기쁨과 슬픔, 이성과 감성, 삶과 세계의 다양한 차이들은 그저 동일한 것에 매몰되고 말 것이다.

문학은 어떤 질문과 함께 시작하는가?
문학은 현실을 모방하거나 재현하는가? 문학은 다른 현실을 창조하고자 한다.
문학은 어떤 길을 제시하는가? 문학은 진리와 도덕이 제시한 길에 만족하는가?
문학은 새로운 길, 길 없는 길, 갈 수 없는 길을 가고자 한다. 문학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새로운 가능성과 실험을 통해서 불가능한 것들과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언어로 포착하고자 한다. 문학은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고자 하고 실패의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불)가능성을 풍요롭게 하고자 한다.

문학은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 문학은 현명하고 절대적인 답을 앞세워 군림하거나 가르치는가? 문학은 질문 앞에 나서고, 거듭 새롭게 질문한다.

문학은 어떤 구체성을 구하는가? 문학은 가장 구체적인 존재의 경험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문학적 ‘하나’는 하나에 그치지 않고 ‘모두’의 경험이 될 수 있다. 문학은 단 하나의 사건, 존재의 사소한 고통, 가벼운 슬픔, 작은 질문을 크고 중요하게 여긴다.

문학은 자기만을 위한 것인가, 타자 앞에 서는 것인가? 문학은 타자에게 열리고 타자를 중심에 두려고 하고 자기를 내던지는 시도를 우회해서 자기에게 관심을 갖는다. 민주주의가 “자기와 타자가 공존하는 체제”이고, “다수자가 소수자들에게 권리를 부여”하고, “강한 적뿐만 아니라 약한 적과 공존”하는 역설적인 것이라면, “적과 공존하기convivir el enmigo! 반대파를 포용하는 정치gobernar con la opposicción!”는 문학적이다.

▲강의실 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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