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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 지지한 샤갈, 환상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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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 지지한 샤갈, 환상을 그리다

[온 가족 세계여행기] 지중해, 투명한 에머랄드 빛 바다

이름만으로 설레었던 로잔에서 억 소리 나는 고속도로 통행료를 지불했던 이탈리아를 지나 프랑스 지중해의 남부도시 니스에 한밤중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지중해 연안의 대표도시인데 그 명성만큼 감동스럽진 않았다. 좁은 도로, 부산하고 지저분한 도시, 자갈 해변, 전형적으로 거쳐가는 관광지 느낌이다. 지금 생각하면 독일과 스위스를 지나오며 단정한 도시에 길들여져 있다가 다소 산만한 프랑스 남부도시에 와서 잠시 적응하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 상황을 감안해도 니스는 좀 어수선하고 산만했다. 특히 니스를 실망스럽게 만든 이유는 또 다른 곳에 있었다. 숙박시설도 가격대비 열악했지만,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태도가 동양인들에 대한 숙덕거림과 야유를 포함해서 거만하고 불친절했다. 불친절의 최고조는 니스의 유심 파는 가게에서 겪은 일이었다.

인터넷 강국 한국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을 접속할 수 있어서 휴대폰이나 컴퓨터, 노트북 없이 무엇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처럼 생각되었다. 사람이 관성의 동물이라 여행을 떠나올 때는 정보도 찾고, 사람들과 연락도 하고, 또 간간히 소식도 전하려면 통신이 해결되어야 하는데, 어떡하나하며 막연히 고민만 하였다. 그러나 여행의 첫 나라 베트남에서 너무 쉽게 저렴한 가격의 현지유심으로 통신을 이용하며 전혀 불편함 없이 여행했기 때문에 어느 나라든지 유심만 교체하면 되는 일이라고 아주 쉽게 생각했다.

우리는 프랑스에 여러 날 머물게 될 것을 고려하여 유심을 사서 통신을 접속하고 정보도 검색하고 전화도 사용할 양으로 동남아와 독일에 이어 프랑스에서도 유심을 샀다. 으레 동남아에서 현지 유심으로 잘 연결하여 다녔고 유럽의 첫 나라 독일에서도 도착 즉시 공항에서 유심을 개통하여 인터넷과 전화를 잘 사용했고 EU라는 하나의 공동체로 묶여있고, 선진국이니 동남아보다도 훨씬 시스템이 잘 되어있어서 그냥 척척 될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나보다. 실제로 통신사용이 가장 어려웠던 곳이 유럽이었는데도 말이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현지유심으로 통신을 연결해야만 여행을 원활히 할 수 있을 것 같은 강박이 있었나보다. 왜냐면 며칠간격으로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 때문에 다음 도시에 대한 정보수집과 숙식해결을 위해서는 통신접속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행이 초중반을 지나가자 통신이 되면 이용하고 안 되면 그냥 현지에서 해결하는 것도 이력이 났지만 말이다.

베트남, 라오스, 태국에서는 아주 저렴한 통신료로 다닐 수 있었고, 독일에 와서는 유심가격이 꽤 비쌌지만, 유럽물가라고 생각했다. 프랑스도 유심가격이 싸지 않다. 하지만 여행 중 정보이용도 필수이니 어쩔 수 없이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저기 가게마다 붙여진 가격 중에서 가장 저렴하게 유심을 파는 가계를 찾아 유심을 구입하고 추가로 충전도 했다. 여행 동안 동남아에서도 그랬고, 독일에서도 역시 유심을 사면 그 가게에서 통신을 개통해주고 인터넷접속도 도와준다. 프랑스도 의레 그럴 거라 생각하며 유심 파는 편의점! 유심을 사서 끼우고 충전까지 했는데 데이터 접속이 안 된다. 가게 주인에게 유심을 샀으니 인터넷 접속해달라고 했더니 본인은 못한단다. 우리보고 콜센터에 연락해서 연결하라고? 영어로 잘 설명이 나오니까 그대로 하면 된다면서. 우리는 "다른 나라에서는 유심파는 가게에서 모두 해 준다"고 했더니, 그건 그거고 "자신은 할 수 없다"고. 우리는 재차 부탁을 했다. 프랑스에 처음왔고, 통신이용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니까 우리를 좀 도와달라고도 부탁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반응은 좀 상식 밖이었다. 자신이 충분히 도와줬는데도 뭘 더 해달라는 거냐며, 자신은 유심을 파는 사람이고 충전도 마쳤으니 나머지는 우리가 해야 한다며 버럭 소리를 지르는 거였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더 이상 실랑이를 할 수는 없는 상태였다.

그렇게 그곳에서 데이터 연결을 실패하고 결국 콜센터에 전화하고 인터넷으로 검색도 해 봤지만 불가능! 이런 저런 시도를 하다가 시간만 소모하고 말았다. 몇 가지 간단한 조작만 하면 가능할 것 같은데도 되질 않는다. 그 후 프랑스의 남부 도시를 지나오며 여러 통신사를 함께 관리하는 매장도 들러서 접속을 시도를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아직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찾아갔던 매장의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안 된다고 말했다.

때로는 "지금은 휴일이기 때문에 접속을 할 수가 없다.", 또 때로는 "지금은 통신량이 많아서 접속이 안된다"는 등. 그 이후 우리는 현지 유심으로 통신하는 것을 포기하고, 무료인터넷(free wifi)이 가능한 숙소를 찾아서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렇게 니스에서 여행의 쓴맛(?)을 톡톡히 보고서야 여행을 하면서 모든 걸 완벽하게 갖추고 다닐 수 없다는 사실과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것과 실제로 현실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처음보다는 살짝 가벼워진 마음으로 여행하기 시작했다.

투명한 에메랄드 물빛을 가진 프랑스 남부 지중해

지중해(地中海)는 "땅 한가운데에" 있다는 뜻으로 대서양으로 이어지는 바다인데 위로는 유럽, 아래로는 아프리카, 오른쪽으로는 아시아로 둘러싸여 있다. 우리가 지나간 니스에서 마르세유까지는 프랑스 남부지방에 위치한 코트 다쥐르 지역으로 크고 작은 아기자기한 프로방스 마을들이 모여 있다.
특히 이곳은 반 고흐, 르누아르, 피카소, 샤갈, 마티스 등 미술책에 항상 등장하는 화가들이 사랑했던 마을과 아틀리에가 있는 프로방스.

그래서인지 가는 동네마다 크고 작은 미술관이 여기저기 있었다. 니스에서 들렀던 샤갈미술관. 특히 샤갈이 러시아 혁명을 지지하며 그렸다는 작품은 창문사이로 흘러나오는 빚을 통해 환상적 세상을 표현하는데, 우리는 이 그림에서만 거의 1시간 가량 앉아있었다. 한참을 보다보면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오묘한 작가와의 교감을 체험하게 되는데, 유리조각 안에 인간의 다양한 삶을 그려 넣고 색깔을 입혀 빛의 강도와 상태에 따라 모양이 달라보이게 되는데, 아마도 그 시절 샤갈이 꿈꾸는 유토피아 같은 세상이 아니었을까?

▲ 샤갈미술관에서 본 작품. ⓒ가온가람이 가족

지중해의 투명한 에메랄드 빛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간다. 니스에서 마르세유까지의 해변도로가 프랑스 남부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길이라고~ 곧게 뻗은 고속도로가 있지만, 우리는 구불구불 거리는 해안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다. 고속도로는 하루 만에 갈 수도 있지만 해안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우리 귀에 익숙한 도시도 만나게 된다.

그 유명한 스타들과 감독들이 평상복으로 절대 입을 수 없는 파티복을 입고 레드 카펫을 밟고 트로피를 받으며 환호하는 TV 화면 속 장면에서 항상 배경으로 흐르던 그곳, 칸도 지나간다. 우리는 스타가 아니라서 일까? 화면속의 환호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작고 소박한 프랑스의 한 해안도시다. 그렇게 칸을 지나서 더 남쪽으로 내려간다.

해안선을 따라 나 있는 도로는 크고 작은 마을에 마실 가듯 산과 계곡을 오르내리며 투명한 지중해의 잔잔한 파도와 함께 출렁거린다. 구불구불한 산과 계곡을 지나는데, 큰애가 계속 헛구역질을 한다. 워낙 멀미가 심한데다가 산길을 지나가니 위에서 전쟁이 일어난 듯 통증이 심하다. 뭐 어떻게 해줄 도리가 없다. 우선 잠시 내려 본다. 멀미의 원인은 차이므로 차에서 떨어지는 수밖에. 차에서 내려서 산길을 걷는다. 멀미를 잠재울 때까지 몇 백 미터라도.

큰애는 한국에 두고 온 친구들 생각에 우울하다. 이날도 친구들이 보고 싶고, 같이 수다도 떨고 싶고, 만나서 맛있는 것도 먹고 싶다고 투정이다. 한참 사춘기 아이가 가지는 당연한 감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행을 떠나왔고, 어디 숫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큰애가 이곳에서 친구를 사귀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내가 "네가 먼저 애들에게 다가가서 말을 해봐!"라고 했더니, 큰애의 답변이 꽤 명쾌하다. "가람이같은 애들은 엄마 아빠랑만 여행을 오기도 하지만, 내 나이 또래의 애들은 엄마 아빠랑만 오는 애들은 거의 없고 친구그룹이나 가족그룹들과 같이 와서 내가 끼어들 틈이 없어!"라고. 맞는 지적이다. 이곳엔 친구가 없고 꿩 대신 닭이라고 내가 수다의 대상이 되어주는 수밖에~ 이런 저런 수다를 떨며 산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멀미는 사라져 있다.

산속에 빽빽이 솟아 있는 나무사이로 향기로운 바람이 분다. 코너를 끼고 돌때는 투명해서 바다 속 자갈들이 훤히 비치는 바다와 나무사이에 숨어있는 집들이 보인다. 아마도 어느 누구의 별장인 듯하다. 프랑스 사람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여름휴가를 즐기기 위해 가장 많은 별장을 가지고 있는 곳이 이곳이라니 말이다.

해안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코트 다쥐르 지역에 속하는 엑상프로방스의 절경과 그림 같은 마을을 지나가게 되는데 피카소 미술관과 전통적인 프랑스 남부 해안마을의 아름다움을 만나게 된다. 우연히 열린 그곳 장터를 어슬렁거리다가 우리의 고추장, 된장과 비슷한 맛을 내는 소스를 무려 70유로도 넘게 주고 샀지만 바게트와 밋밋한 음식만 먹다가 만난 유사 고추장 된장에 감동해서 뿌듯함에 아저씨와 사진까지 찍었다.

이렇게 구불거리는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해가 저물어 간다. 그 근처의 갈만한 캠핑장을 찾아본다. 이 해안이 지형상 움푹 들어와 있는 곳에 캠핑장이 하나 있는데, 모래해변도 있고 꽤 시설도 좋아 보인다. 캐빈같이 생긴 모바일홈이 있는지를 물어보고 가격을 물어본다. 생각보다 비싸지 않다. 가격표를 자세히 보니, 지금이 딱 비수기다. 날씨가 아주 덥지 않아서 수영하기도 마땅치 않고 휴가철도 아니라서 가격이 싸다. 여름 휴가철에는 가격이 5배는 비싸다. 여튼 우리는 그 덕에 저렴한 가격에 좋은 시설에서 머무는 것이 신나기만 하다.
짐을 풀고 해변으로 나가 본다. 이곳은 지중해 해안에서도 물이 푸르고 낮은 해변이 멀리까지 펼쳐져 있다. 마치 인공으로 조성해놓은 수영장처럼 낮고 푸른 넓은 해안이 족히 100m는 되어 보인다. 해변에서 50~100m쯤 떨어진 바다에서 발리볼을 하기도 하고 어린아이부터 나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도 해변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수영을 즐기고 있다.

특히 해변 바로 앞에 있는 방갈로는 그 어떤 바닷가 별장이 부럽지 않을 정도다. 게다가 스파가 있는데, 윌풀, 사우나, 습식사우나까지 있다. 여행 후 한국의 목욕탕이 너무 그리웠는데, 월풀에 사우나라니 눈이 돌아간다. "1시간에 17유로라서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이들과 다 함께 가면 비싼데"하며 고민하는데, 아이들은 입장 불가란다. 아이들에게 조금 미안하지만, 혼자서 우아하게 월풀에서 쉬고 사우나에서 누워 있다가 습식사우나까지. "후, 좋다"
이 좋은 해변에서 하루라도 쉬자면서 다음날 수영에 열중한다. 남편은 물을 싫어해서 수영도 안하고 바닷가도 잘 안 나간다. 여자 셋이서 아침부터 해변에서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모래장난하고 또 물속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한다. 그러다가 가람이 또래인 듯 보이는 여자 아이가 말을 건다. 물론 불어라서 알아들을 수가 없다. 큰애가 몇 차례 대화를 시도하지만 역시 통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이들은 순수하기 때문일까?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는데도 함께 노는 데는 지장이 없나보다. 덤블링도 보여주고 같이 모래장난도 하고, 따라해보라는 시늉도 하며 깔깔거리고 뒤로 넘어지고 구르고 난리도 아니다. 물속에 들어가서도 바닷물에 빠트리고 또 일어나서 또 넘어뜨리고 에너지가 한없어 보였던 프랑스 꼬마 리아.

점심을 먹으러 가야한다고 하자 울먹거리며 점심 먹고 다시 만나자고 한다. 우리가 점심 먹고 다시 온다고 하자 울먹거리던 얼굴이 다시 방긋해지던 예쁜 감성의 아이와 수수해보이는 프랑스 가족들! 그들의 자유로움과 긍정성이 가득한 에너지는 니스의 불친절 따위는 아예 생각되지 않을 만큼 크고 강했고 프랑스를 조금씩 조금씩 좋아하게 만들었다.

▲ 지중해. 속이 훤히 보이는 투명한 물빛. ⓒ가온가람이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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