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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전용' 숙소라 가족은 묵을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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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전용' 숙소라 가족은 묵을 수 없어요"

[온 가족 세계여행기] 스위스의 자연과 사람들

교통정체가 정말 심했던 취리히

독일을 지나 스위스로 이동한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국경처럼 스위스도 고작 팻말 하나 있나? 그러나 스위스는 유로가입국이 아니라 그런지 국경통과 지점에 경찰이 있다. 지나가는 차량을 세워서 뭘 하기는 하는데, 우리 차량은 통제하지 않는다. 뭘 하긴 해야 하나? 특별한 제재가 없길래 그냥 가나보다 하며 스위스로 들어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고속도로 통행 딱지(유효기간 1년)를 사서 붙이는 거였는데, 그냥 통과해서 괜시리 걱정했지만 아무 주유소에서든 통행권을 사서(40스위스 프랑-1년 통행료) 붙이면 되는 거였다.

이렇게 스위스에 들어와 취리히(Zurich)에서 하루를 머물 생각으로 검색도 해놓고 복잡한 취리히 시내를 지나간다. 상상 이상으로 교통이 혼잡했다. 예전의 도시를 그대로 확장한 터라 도로가 좁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교통체계에 문제가 있는 듯했다. 신호가 바뀌고 차량 한 대 지나가고 나면 다시 정지신호로 바뀐다. 교차로 하나를 통과하는데 10분도 넘게 걸리기도 한다. 그 작은 시내를 통과하는데 1시간도 넘게 걸렸으니 취리히의 시내 교통정체는 말 다한 셈이다.

▲ 취리히 근처 한적한 시골 마을. ⓒ가온가람이 가족

취리히 시내의 교통정체를 뚫고 미리 검색해 둔 캠핑장을 찾아간다. 취리히의 호수가 한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절경과 고즈넉한 분위기가 참 좋다. 기분좋게 사파리 텐트에서 1박을 기대하며 가격을 물어본다. 가족 4명은 잘 수 없다고. 4명이 자려면 사파리 텐트 2개를 빌려야 한다는데 무려 텐트당 150프랑, 총 300프랑이란다. 너무 비싼 가격에 고개가 절레절레 하룻밤을 이 가격을 주고는 절대 잘 수가 없다. 여기는 안되겠고, 리셉션에 물어물어 4명이 잘 수 있는 카라반이 있는 캠핑장의 위치와 가격을 안내받았다. 그곳에서 대략 20~30km는 떨어져서 꽤 멀었지만 별 다른 대안이 없어서 그곳으로 고고씽.

평범한 작은 계곡 옆이지만 카라반에서 처음 캠핑하는 거라 설레기도하며 도착한 곳!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건 아니지"다. 우선 가격을 말하는데 뻔히 90프랑인걸 알고 왔는데, 100프랑이란다. 우리가 90프랑으로 알고 왔다는데도 청소도 해야하고, 화장실에 사용할 물도 충전해야 하는 등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100프랑이란다. 당연히 갖춰져야 할 것들인데도 여자 주인의 설레발과 숙소를 찾느라 많이 지쳐서 그냥 웃으며 받아주었다. 그런데 들어간 카라반은 몇 개월은 안 썼는지 지저분한데다가 옷장도 일부가 부서져 있고, 그나마 시트를 새것으로 갈아줘서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적당히 저녁을 때우고 잠자리에 들었다. 근데 한밤이 되어 히터가 작동되지 않는다. 뭐냐? 나중에 알고보니 충전된 기름이 다 떨어졌던 가보다. 이미 새벽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날씨도 꽤 쌀쌀했는데 그냥 떨면서 잤다.

그래도 여행하다보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으니 뭐 어쩌겠냐 싶어 짐정리하고 떠나려는데, 우리더러 부엌청소를 안해 놨다며 청소를 하던지 20유로를 추가로 더 내란다. 오래 사용 안해서 원래 상판이 더러웠던 걸 아무소리 안하고 쓴 건데 말이다.
더 따질 수 있는 대화실력도 안 되는데다가 잘못하면 20유로를 더 내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돌아가 청소를 하고 왔다. 그리고 체크 아웃을 하는데 새벽에 떨고 잔 것도 화가 나고 남자 주인 아저씨가 청소 담당인 듯한데 본인의 실수를 우리에게 떠넘기는 것도 화가 나서 방값을 덜 내야겠다고 따져야겠는데 착한 남편은 군소리 없이 그새 카드를 건네주고 계산을 하는 중이다.

계산은 했더라도 할 얘기는 하자하며 '어제 새벽 히터가 멈춰서 추워서 잠도 제대로 못 잤다'고 하니 여주인이 그 일은 미안하단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부엌상판 청소에 20유로라면, 기름이 떨어져서 떨고 잔 것에 대해서는 30~40유로는 반환해줘야 할 것 같은데도 말뿐다. 이미 계산은 끝났으니 말이다.

내가 겪은 스위스의 단편적인 경우에 불과하지만, 뻔히 정해진 가격에 바가지를 씌운 것도 모자라 우리가 쓴 모든 접시와 숟가락 등 가제도구를 모두 정리해 놨는데도 싱크대 상판 청소를 안했다며 패널티 요금을 운운하질 않나, 정작 본인들의 실수인 히터 문제는 아무런 말이 없다.

원래 스위스가 주변 강대국 사이에 낀 아주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일찍이 중립국임을 선언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지 않고 주변국과 갈등이나 전쟁을 피해가며 생존한 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지만, 각국의 검은돈과 비자금을 스위스 은행에 보관해주고 높은 수수료를 받아 호의호식하는 그들의 비열함(?)을 익히 알고 있기에 이날 캠핑장에서의 기억은 "그럼 그렇지"라는 생각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게다가 우리가 1년 여행 중이라고 얘기하자 '와우~ 원더풀!' 하면서도 '정상적이지 않아(No normal)'라는 농담으로, 사고라도 치고 돌아다니는 부랑아 가족 보는듯한 캠핑장 부부의 태도 또한 기분을 상하게 했다. 물론 동양인이라고 우습게 보기도 했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스위스에 머무는 동안 전반적으로 사람들에게 느낀 감정은 무미건조함이다. 멀리서 볼 때는 구릉 위에 멋진 집들이 멀찌감치 떨어져서 여유로워 보였지만, 그들의 태도에 비춰보면 간섭을 싫어하고 타인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무관심으로 보였다. 또한 주변사람들에게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으며 멀뚱멀뚱 쳐다보던 영혼없는 얼굴은 스위스를 지나가는 내내 느꼈던 그들의 표정이다.
단지 몇 가지의 사실로 사회를 속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독일을 지나오며 독일인들이 매번 보내던 미소와 대비되어 자꾸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다.

최고의 경관을 가진 천혜의 자연환경 융프라우

알프스의 최고봉 융프라우(Jungfrau)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자연이 선물한 최고의 경치를 보여준다. 가는 길 내내 만년설이 녹으면서 천천히 만들어 놓은 크고 작은 호수, 그 호수의 물방울을 머금은 뭉게구름, 어떤 물감으로도 표현하기 힘들 것 같은 파란 하늘, 이제 막 봄 기운이 올라와 연두빛 새순들의 생기발랄함을 드러내는 초록 구릉과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겠다는 듯 띄엄띄엄 널찍이 떨어진 동화책 속 집들이 보인다.
▲눈에 덮힌 융프라우. ⓒ가온가람이 가족
어디서나 저 멀리 만년설이 보이고 그 만년설이 녹아내리는 첫 지점부터 산의 굴곡을 따라 크고 작은 폭포가 생겨나 지상까지 물줄기를 뿜어낸다. 쏴쏴~하며 쏟아지는 폭포소리는 마치 하늘에 홀이 뚫려 쏟아져 내리듯이 주변의 소리를 다 삼켜버린다. 보편적으로 우와!하며 관광지로 불릴만한 폭포가 수도 없이 나온다. 그런 폭포의 물줄기 몇 개가 만나는 지점에서는 여지없이 크고 작은 호수가 만들어진다.

그러니 절대로 녹지 않는 설산과 고개를 끝까지 젖혀야만 꼭대기를 볼 수 있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착각을 일으키는 폭포, 청명해서 슬프게까지 보이는 푸른 호수, 생동감으로 넘쳐나던 초록빛 구릉위의 그림 같은 집, 조금만 발돋움을 해서 폴짝 뛰어오르며 손을 내밀면 닿을 것 같던 뭉게구름과 그들을 품은 파란 하늘! 그 중 하나만 있어도 가고 싶은 여행지 목록에 오르내리며 회자될텐데 그 모두를 한데 모아놓았으니 오죽하랴.
거기에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결합되며 알프스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자연을 선물한다. 융프라우로 가던 길에 세워진 놀이터는 산악지대라서 작은 평지뿐인데도 평지에는 그네나 덤블링대를 설치해놓고 미끄럼틀은 경사를 가진 구릉에 턱 올려놓아 돌 하나 치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연에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경사를 이용한 미끄럼틀은 어른 아이할 것 없이 그곳으로 한번 미끄러지면 동심의 세계로 빠져드는 마법의 통로처럼 입구에 들어갈 땐 멋쩍은 표정이다가 내려가서는 방긋 웃는 웃음을 짓곤 한다. 난 둘째 가람이의 성화에 못 이겨 꽤 경사를 지닌 미끄럼틀을 '으악' 하는 괴성을 내지르며 한 두번 통과하고 나서야 어린아이의 미소를 가져본다.

▲지형을 이용한 놀이터. ⓒ가온가람이 가족

융프라우는 양쪽에 두개의 호수가 연결된 곳에서 시작하는데 이곳이 인터라켄(호수의 사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이곳보다 더 높은 곳인 차로 갈수 있는 가장 먼 쪽 캠핑장에 숙소를 잡았다. 만년설이 녹아내리는 크고 작은 폭포 중 가장 큰 폭포가 한눈에 보이는 곳, 캠핑 융프라우(camping jungfrau). 4인 기준 모바일 홈이 140프랑으로 우리가 간 캠핑장 중에서 가장 비싸게 묵은 곳이다. 물론 텐트를 치면 좀 더 저렴하겠지만, 이곳은 추워서 텐트치고 자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스위스의 물가와 세계 최고의 명소를 감안하면 그렇게 놀랄 가격은 아니라고 마음을 추스른다. 가격을 제외하면 서비스나 시설, 경관, 편리성은 모두 만족할 만하다.

▲ 인터라켄에서 신이 난 가람이. ⓒ가온가람이 가족
그러나 우리는 기차타고 융프라우 정상에 가지 못했다. 우리가 갔을 때가 비수기라 1개의 노선만 운행하는데다가(1개의 메인노선에 2~3개의 지선이 있는데 가격은 1일 자유이용권으로 1개를 이용하나 모두 이용하나 같다) 머무는 동안 날씨가 좋지 않아서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올라간 정상에서 하얀 구름에만 갇혀있을 공산이 컸기 때문이다. 그 대신 자동차로 둘러볼 수 있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차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서는 비바람이 꽤나 세게 불었다. 눈앞에 설산이 있었지만, 가득 찬 구름은 우리에게 융프라우를 보여주지 않았다.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도시 로잔느

알프스의 최고봉 융프라우는 우리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스위스를 출발해서 프랑스로 향한다. 이탈리아 쪽을 경유해서 가는 것이 가장 단거리다. 아침부터 일찍 서둘러야 프랑스에 도착해서 저녁도 먹고 숙소도 정할 수 있다. 스위스에서 이태리를 경유해서 프랑스로 가기로 결정하고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데로 길 따라 '고고(go go)'. 유럽의 가장 큰 산맥으로 둘러싸인 알프스를 쫙 뚫린 길로 가볍게 빠져나오는 것을 상상했던 우리의 무지였을까? 결국 우리는 이날 스위스를 떠나지 못했다.

이태리를 경유해서 프랑스로 가는 길이다. 고속도로나 대로를 따라 갈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과 달리 차가 산으로 올라간다. 그냥 둥글둥글 평범하게 올라가는 산길이 아니다. 경사가 높아서 왔다 갔다를 반복하여 올라가는 산길이다. 뭐 길은 길에 연해 있으니 가면 되겠지 하며, 온통 눈으로 덮인 지그재그 산길을 올라가는데, 빼곡이 채워진 나무마다 하얀 눈꽃이 피어서 눈꽃산을 이루고 있었다.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운 광경에 '우와'를 연발하며 가기를 두어시간. 눈도 오고 간간히 안개도 끼었지만 산길운전이 한두 번인가?

▲ 스위스-이태리 사이 산길의 설경. ⓒ가온가람이 가족

그러나 옅은 안개가 점점 짙어지더니 급기야 1m앞도 안 보인다. 옆은 낭떠러지인데 구름인지 안개인지에 휩싸여 앞은 안보이고 간간히 동굴인지 터널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장애물들이 우리 앞을 가로막는다. '아 급기야 여기에서 뉴스에 나오는구나' 싶었다. '1년 여행 떠난 온 가족 산속에서 실종'하는 뉴스와 함께. 애들이 있어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간담이 서늘해졌다. 몇 분이 지나자 휴게소인 듯 한 집이 보인다. 휴 여기서 쉬면서 날씨상황도 좀 보면서 가면되겠구나? 그러나 인적은 온데 간데 없고 힐끔 옆을 보니 차단막이 내려져 있다. 날씨가 나빠서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고 길을 막아놓았다. 지금까지 온 길을 생각하면 차단막 이후의 길은 어떨지 충분히 상상이 되지만, 그러면 입구부터 갈 수 없다는 안내판이나 지시가 있었어야 할 것 같은데, 여튼 두어시간 왔는데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것도 안개와 구름에 갇힌 그 길을 말이다. 하지만 어쩌랴. 계속 갔다가는 죽을 수도 있으니 돌아갈 수밖에

연발 탄성이 터져 나오는 경치를 제공한 스위스~이태리 간 산길은 결국 우리를 원래의 출발점으로 다시 돌려보냈다. 4~5시간 헛고생한 것도 화가 났지만 준비성 없는 자신에게도 또 여행계획을 좀 치밀하게 세우지 못한 남편에게도 화가 났다. 결국 인터라켄으로 다시 돌아와서 스위스를 떠나는 시점에 지도를 새로 사서 살펴보며 경로를 고민한다. 단거리로 산맥을 넘어가는 몇 가지 길이 있긴 하지만, 헛고생으로 우리를 돌려세운 도로보다도 작은 길들이다. 산을 넘어서 프랑스로 가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하는 수 없이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스위스 한참 위쪽까지 올라가서 다시 내려오는 길로 경로를 잡는다.

이렇게 달리기를 한참. 벌써 저녁 6시가 넘어가고 있다. 아무 곳이나 가서 숙소부터 잡아야한다. 그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로 고속도로를 빠져 내려간다. 무작정 빠져나갔는데, 그곳은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도시 로잔느였다.
▲건너 편에 몽블랑이 보이는 로잔느. ⓒ가온가람이 가족

로잔느(Lausanne)는 호수 건너에 프랑스의 몽블랑이 보이는 여유롭고 한적한 도시였다. 지금까지의 스위스와 달리 왠지 프랑스 같은 느낌이다. 언어도 모두 불어를 쓴다. 우리는 시내에 있는 작은 호텔을 검색해서 찾아갔다. 4인 가족이라고 말하자 여성전용 호텔이라며 숙박이 안된다. 난 지금까지 여성전용(for only woman) 숙소는 처음 봤다. 여기저기 타투하는 곳도 보이고 흑인들도 많이 보이고 동양음식점이나 동양 식재료 파는 곳도 제법 보인다. 숙소를 찾느라 여기저기 골목을 제법 누비고 다녔는데, 아주 단정하지 않지만, 자유로운 분위기다. 그냥 전해지는 느낌으로도 다양한 사람들과 성소수자들의 권리도 인정할 것 같은 규격화되지 않은 도시로 보인다. 도시 전체가 권위를 상실한 듯한 느낌, 내가 좋아하는 자유로운 도시다.

다음날 화창한 아침에 본 로잔느의 호수가는 어제 저녁 석양보다도 더욱 아름답고 한가로우며 편안해보였다. 호수건너에 보이는 프랑스의 몽블랑, 그리고 호수를 한가로이 떠다니는 오리들, 호숫가 공원 놀이터에 산책 나온 가족들, 심지어 길가에 규칙적으로 피어있는 튜울립까지 나의 마음을 두드렸다. 길이 막혀 돌아오는 바람에 우연히 들른 로잔느는 취리히부터 융프라우를 지나오며 밋밋하고 무관심해보였던 다른 도시와 달리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자유로운 도시로 나의 마음 한켠에 진한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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