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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에 무능했던 중국, 메르스에 무너진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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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에 무능했던 중국, 메르스에 무너진 한국

[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위기 대응 능력 '제로'인 박근혜 정부

세월호 참사,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국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로 또 다시 공포에 떨고 있다. 헌법에서 규정한 국가의 국민에 대한 생명과 안전 보호라는 기본적 의무조차 제대로 준수되지 않고 있는 나라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걱정이다.

물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위기'는 비단 한국이 아니어도 언제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다. 위기가 단순한 위기로 끝나느냐 재난으로 발전하느냐 하는 문제는 결국 위기를 맞은 국가와 국민의 대응 능력과 의지에 달려있다.

중국 사스 초기대응과 너무도 닮은 한국의 메르스 대응

한국 정부의 메르스 초기 대응은 안타깝게도 2003년 중국 정부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대응과 너무도 닮아 있다. 2003년 당시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사스 대응 모범국 인정을 받은 한국이 말이다. 사스 발생 당시 중국은 위기의식 상실, 조기경보 시스템의 부재, 전문기관 부족, 낙후된 법제도, 정부 및 사회 협력 부족 등으로 초기대응에 실패했다. 결국 사스가 전 세계로 확산됐고, 중국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메르스에 대응하는 한국도 이와 다르지 않다.

▲ 국내에서 첫 메르스 확진환자가 나온지 보름여가 지난 6월 3일, 박근혜 대통령은 메르스 대응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를 주재했다. ⓒ연합뉴스

당시 중국은 공공위생에 관한 위기의식조차 결여돼 있었으며, 무엇보다 이에 대한 법률시스템 자체가 부재한 상태였다. 이에 비하면 메르스를 대면한 한국은 이미 위기에 대응한 몇 번의 경험이 있고, 세월호 이후 위기 대응 체제를 재정비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가 또다시 재난이 되었다는 것은 비단 시스템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문득 세월호 사건이 발생 했을 때, 한 교수가 한국의 위기대응을 '스위스 치즈 모델'로 설명했던 것이 떠오른다. 구멍이 뚫린 스위스 치즈는 여러 장을 겹쳐 놓으면 구멍이 메워지듯이 위기에 대응하는 여러 장치 하나라도 제대로 작동하면 재난은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스 이후 중국은 자연재해, 공중위생 및 사회 안전에 있어 위기관리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중국은 헌법 개정을 통해 위기대응 법제 제정을 위한 근거를 우선적으로 마련하였다. 국가 긴급사태의 원인을 기존 규정에서 계엄이나 전쟁으로 한정하던 것을 자연재해, 인위적 사고, 공중위생사건, 테러 등으로 확대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2004년에 총 7장 70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돌발사건대응법'(突发事件应对法)을 제정했다.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기본적인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중국은 이를 근거로 재난에 대한 사전 예방에 열과 성을 다하는 추세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

중국의 사스나 한국의 세월호, 메르스 등 사태가 발생하면 어김없이 관련 제도와 정책이 도마위에 오르게 된다. 현재 한국의 언론 보도 내용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제도나 정책은 사회의 변화와 흐름에 따라 또는 제정 당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발생하게 되면 거기에 맞게 수정하고 보완하는 것이 당연하다. 위기 상황의 대응을 놓고 시스템의 문제만을 부각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위기는 선진국과 후진국을 불문하고 발생한다. 위기대응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 독일, 일본 등도 한국과 중국처럼 위기가 국가 재난이 되는 사태를 겪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저들은 위기대응 선진국이 되었고 한국은 이렇게 위기 앞에서 허둥대고 있는가?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경험을 결코 교훈으로 삼지 않는다는 데 있다. 국민의 생명 및 안전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위기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속함이다. 축적된 위기관리 노하우를 통해 신속하게 판단하고 빠르게 행동을 개시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의 뼈아픈 실패 경험과 훌륭하게 대처했던 성공 경험들을 모두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교훈들이 현장에서 적시에 발휘되려면 무엇보다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의 전면적인 배치가 중요하다.

재난대응 선진국인 미국도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재난이 발생하였다. 당시 연방재난관리청(FEMA) 청장은 낙하산 인사로, 최고위직 관리 8명 중 5명이 재난 관리와 무관한 경험자였다. 게다가 이들 중 일부는 대통령선거 운동에 참가한 사람이었다. 무능한 관료로 참극을 키웠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반면, 사스의 뼈아픈 경험을 교훈으로 삼은 중국의 메르스 대응은 매우 신속했다. 과거 사스 퇴치 권위자로 알려진 중난산(钟南山) 교수를 중심으로 방역 전문가, 임상 전문가, 병원 전문가가 전담팀에 배치되어 적극적으로 대응한 사례는 우리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선진국이라는 미국도 전문가의 손을 벗어난 위기관리로 국가 재난사태를 맞았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담보하지 못하는 시점에 이르렀는데도 계속 관료주의적 관행만을 되풀이 하고 있다. 스스로 이를 타파할 수 없다면, 재난 관련 총지휘자 및 지휘부 관계자들의 임용 자격을 법률로 명시하는 극단의 조치라도 취해야 하는 것 아닌가.

위기, '처리'가 아닌 '관리'가 필요

한국이 위기대응 후진국으로 머무를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원인은 국민들에게 있다. 이번 메르스 사태를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메르스를 이용하여 개인의 이익을 취하려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확진 가능성이 농후한 환자가 정부의 조치를 무시하고 멋대로 행동하는 등 공공의 안전은 뒷전인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그 만큼 위기와 재난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아, 위기 대응에 대한 의식 자체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것이다.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하는 일본 국민들의 경우, 위기에 대비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다. 이는 실제 재난이 발생하였을 때 피해를 최소화하는 주요 요인이 된다. 중국의 경우는 민간의 재난 대비를 법률로 규제하고 있다. '돌발사건대응법'에 따라 자연재해, 사고재해, 공중위생 관련 돌발사건 발생 시 적극적인 예방조치나 대응 방법을 취하지 않아 위험이 확대된 경우, 관련 기관 및 정부는 생산 및 영업 정지, 영업허가 보류, 허가증 취소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또한 최소 5만에서 최고 20만 위안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반면 긴급 구조 활동이나 사회 질서 유지에 참여한 기업 및 일반 시민에게는 그에 따른 보조금 및 보상을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의 위기대응 의식, 교육을 통한 대응 능력 훈련을 통해서 이제는 위기에 대한 사후처리가 아닌 사전관리에 더욱 만전을 기해야 한다. 중국처럼 경제적인 제재를 가해서라도 말이다.

(윤성혜 교수는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법률연구소의 연구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홈페이지에서도 '한중 관계 브리핑'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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