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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의 복수, "내가 다 퍼뜨리고 다닐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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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의 복수, "내가 다 퍼뜨리고 다닐 거야!"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메르스 낙인

메르스 낙인은 위험 수준

메르스 환자나 접촉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낙인이 더는 두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심지어 메르스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일선 최전방 보건의료 전사(戰士)들과 그 가족들에게까지 위험 인물로 낙인을 찍어 접촉을 기피하거나 따돌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삼성서울병원을 비롯해 메르스 환자가 나왔거나 거쳐 간 이력이 있는 의료 기관에서 온 환자들은 다른 병원에서 받아주지 않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고 한다.

메르스에 걸렸다 회복됐거나 시설, 자택 격리 됐다 해제돼 자유의 몸이 된 사람들까지 기피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일부 학교에서는 부모가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한 뒤 학교에 나오지 말라고 말하는 교사가 있었다고 한다. 정말로 믿기 어려운 일이다. 대한민국 전체가 메르스 낙인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이건 아니다. 정말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허술한 정부 대응과 삼성서울병원 등 몇몇 병원의 병원 감염 관리, 방역 실패로 이들 병원들은 메르스 확산 진원지가 되었거나 될 위험에 놓여 있다. 일부 환자들이 본의 아니게 타인에게 메르스 바이러스를 전파시킬 수 있는 위험 행위를 한 일도 물론 있었다.

이런 소식을 접한 보통 시민들로서는 불신과 분노와 함께 공포를 가질 수 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메르스 감염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들의 가족들까지 싸잡아 기피해야 할 대상이나 범죄자 취급하는 것은 결코 해서는 범죄나 다를 바 없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이런 비정상적인 사회적 낙인을 가장 좋아한다.

낙인(烙印)이 어떤 것인가. 옛날 쇠붙이에 문양을 넣어 불에 달군 뒤 범죄자의 얼굴 등에 찍어 영원히 지울 수 없도록 한 징표, 즉 주홍글씨가 아닌가. 이런 일은 이미 사라진 과거의 악습이다. 지금은 다시 씻기 어려운 불명예스럽고 욕된 판정이나 평판을 낙인(stigma)이라고 한다.

감염병으로 낙인은 안 돼

낙인은 현대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반인권적 행위이다. 메르스가 아니라 그보다 몇 배, 몇 십 배 더 공포를 자아내고 더 치명적인 감염병(전염병)이 유행한다 하더라도 낙인은 절대 안 된다.

감염병이나 질병과 관련해 환자들에 대한 낙인은 동서고금을 따질 것도 없이 인류 감염병 역사에서 있어 왔다. 질병에 대한 지나친 공포가 이런 비이성적인 사회적 낙인이란 바이러스를 퍼트린 것이다.

에이즈 공포가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에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에이즈 환자에 대한 낙인이 매우 심각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에이즈 공포가 극심했던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 에이즈 환자와 감염자는 국가가 24시간 성생활까지 감시해야 한다거나 집단 수용해 사회와 영구 격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일반 시민뿐만 아니라 언론, 국회의원까지 나서 이를 주창하기도 했다. 지금은 모두 머쓱해하는 일들이었다.

이런 영구 격리 논리는 감염되지 않은 사람의 감염을 막기 위해서는 그 어떤 수단도 마다지 않아야 하며 그것이 사회가 추구해야 할 선(善)이라는 믿음에서 비롯했다. 격리는 어디까지나 공기나 접촉 등으로 쉽게 질병에 걸리는 결핵, 콜레라, 페스트, 장티푸스 등에 한해 일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에이즈는 완치가 아직 불가능한 감염병이므로 일시적 격리는 아무런 소용이 없고 영구 격리만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에이즈는 쉽게 감염되는 감염병이 아니다. 국가가 혈액 관리 등만 잘하면 오로지 안전하지 못한 성관계를 통해서만 전파된다. 영구 격리는커녕 일시 격리 대상도 아닌 것이다.

메르스 낙인, 부메랑으로 돌아와

에이즈에 대한 지나친 공포와 사회적 낙인은 일부 에이즈 환자, 감염자로 하여금 사회에 대해 복수극을 펼치게 만드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1994년 이스라엘에서는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조건으로 많은 남성과 성관계를 가진 미녀 여교수 사건이 있었다. 그가 에이즈로 죽은 뒤 발견된 일기장에는 자신이 에이즈 감염자이며 불특정 남성들을 대상으로 복수극을 펼쳤다고 털어놓아 이스라엘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1995년 이탈리아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에이즈 유행, 공포 시기에 벌어진 에이즈 환자, 감염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불러온 부작용은 이밖에도 매우 많다.

지난 13일 메르스 환자 확진을 받은 40대 141번 환자가 확진을 위해 하루 전인 12일 검사를 받던 중 "내가 메르스에 걸렸다면 다 퍼뜨리고 다니겠다."며 소란을 피운 뒤 대기하던 선별 진료실 문 걸쇠를 부수고 진료소를 벗어나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간 일이 있었다고 15일 보도된 사건도 메르스에 대한 공포와 메르스 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사회적 낙인이 횡행하면 메르스 환자는 증상이 나타나도 이를 숨기려 들 것이다.

이처럼 감염병 환자 또는 접촉자와 그 가족 등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그 사회 구성원들의 자해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목숨을 내놓고 메르스와 싸우고 있는 의료인과 그 가족들에게 낙인을 찍는 것은 메르스 바이러스를 향해야 할 총부리를 아군에게 겨눠 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향해 우리가 총을 쏜다면 그 전쟁은 두고 볼 것도 없이 패배한 것이다.

메르스 환자, 접촉자에 대해 낙인을 찍는 사람은 자신은 결코 환자나 접촉자가 되지 않을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부류의 사람이다. 만약 메르스가 지역 사회에서도 본격 유행한다면 그 누구도 메르스로부터 안전지대에 놓여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메르스 환자에 대해 낙인을 찍는 사회 구성원은 언제 자신이 그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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