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미래를 예측하는 것과 무관하게 누구에게나 각자가 원하는 미래가 있다. 바라는 미래의 상이 모두 같다면 좋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기에 서로 원하는 미래들 사이에서 충돌이 발생한다. 우리는 이 충돌을 합리적으로 관리하고 회피하기 위해 대의제라는 수단을 선택해 왔다. 그러나 정보와 참여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대의 민주주의가 언제나 바람직한 미래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에너지 미래, 누가 결정하는가?
에너지 문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핵발전소의 위험과 전 지역을 송전탑으로 뒤덮을 수밖에 없는 지금 같은 정의롭지 못한 에너지 시스템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또 누군가는 지금보다 더 풍요롭고 편리한 삶을 위해 더 많은 에너지의 사용을 원한다. 이 지점에서 충돌을 관리하고 회피하도록 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바람직하기로는 각자가 원하는 에너지의 미래를 상상하고, 그 중에서 사회적 수용성이 크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형평성을 유지하는 에너지 미래를 선택하는 것이 좋겠지만, 현재 이 몫은 시장, 즉 화폐 경제로 넘어간 상태다. 이로 인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도 별 문제 될 게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장 기제는 에너지 시스템의 바람직한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 가격과 무관하게 삶의 필수재인 에너지 서비스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에너지 빈곤층이 늘어나고 있고,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면서도 에너지 자급률이 낮은 수도권 지역은 핵 발전과 석탄 화력 발전의 위험에서 상대적으로 벗어나 있다. 이런 불평등을 해결하려고 전기 요금 지역 차등 같은 가격 조정 기제를 활용하자는 대안이 제시되고는 있지만, 이미 고착된 핵에너지와 화석 연료 기반의 중앙 집중식 에너지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는 해결책이 되기엔 한참 모자라다.
첫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미래에 어떤 에너지를 쓰며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고 싶은 걸까? 진지하거나 발칙한 상상력이 필요한 물음이다. 이런 상상하기는 단편적인 개선책보다 지금의 에너지 시스템을 깨는 과감한 태도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미래의 대안이 결국 핵 발전인가?
최근 에너지와 관련한 논쟁의 중심에는 제7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과 유엔에서 논의하고 있는 2020년 이후 신기후 체제 협상을 위한 온실 기체 감축을 위한 자발적 기여(INDCs)가 자리 잡고 있다.
전자는 국내의 전력 수요를 예측하고 어떻게 하면 안정적으로 공급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이고, 후자는 기후 변화로 죽어가는 지구와 인간을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별 관계가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이 두 의제는 앞으로 한국의 에너지와 기후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제7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은 현재 상위 계획인 에너지 기본 계획과 올해 유엔에 제출해야 하는 자발적 기여 목표치를 맞춰야 하는 상황에 봉착하면서 공식 발표가 점점 늦어지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지속적인 에너지 수요의 증가에 부합하면서도 의욕적인 온실 기체 감축이라는 국제적 공약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하는, 일종의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그러던 중 6월 1일, 언론은 일제히 수급분과회의를 통해 제7차 전력 수급 기존 계획 초안이 확정되었다고 보도했다. 석탄과 LNG 발전소를 일부 제외해 화석 연료 사용을 제한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 그 대안으로 다시 핵 발전을 선택했다.
이런 내용은 기본적으로 국내 에너지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제7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 잠정안을 보면, 국내 전력 수요가 2029년까지 매년 3%씩 늘어난다고 예측했다. 이에 따라 기존에 계획한 발전소 외에도 3기가와트의 신규 발전 설비가 필요하고, 이를 신규 핵발전소(원전) 2기로 충당한다는 이야기다.
여기에는 미래세대를 위한 안전하고 안정적인 기후 에너지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정책 의지는 찾아볼 수 없다. 지구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기후 변화의 대응책으로 '핵 발전(원자력) 카드'를 꺼내 들었는데, 이는 결국 미래세대를 더 위험한 미래로 안내하는 것이다.
지구의 미래 없이 국익이 무슨 의미인가?
제7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만큼 중요한 것이 한국의 온실 기체 감축 목표이다. 올해는 2020년 이후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전 세계가 참여하는 새로운 체제가 만들어져야 하는 만큼 어느 해보다 중요하다. 모든 국가는 지구 온도의 상승폭을 2도 이내로 묶는다는 전제 아래서 각자의 감축 목표치를 제출해야 한다. 한국은 본래 9월쯤 발표를 할 것으로 공언했으나, 6월중에 발표하겠다고 시기를 당겼다.
현재 기후 변화와 관련해 가장 권위 있는 기관은 유엔 산하의 각국 전문가로 구성된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다. IPCC는 5~6년 단위로 보고서를 발간해 기후 변화와 인간의 활동 간의 상호 연관성을 확인했으며, 가장 최근 발표된 5차 보고서에서는 온실 기체가 계속 배출되면 온난화가 더 많이 진행되고, 기후 시스템의 모든 구성 요소가 변화할 것이라 경고했다.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서는 온실 기체의 배출의 상당량을 지속적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현재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는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이하로 억제하는 것을 공동의 비전으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산업화(1861 -1880년) 이후의 온실 기체 누적 배출량이 이산화탄소로 환산해서 2900기가톤 이하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2011년까지 이미 1900기가톤이 배출됐다.
환경부가 세계은행과 세계자원연구소 등의 자료를 인용한 보도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우리나라의 국내 총생산(GDP)은 1조7898억 달러로 세계 13위, 1인당 GDP는 2만8739달러로 세계 29위이며 1820년~2008년까지의 에너지 사용에 따른 이산화탄소 기준 누적 배출량은 108.4억 톤으로 19위, 2011년 배출량은 6억9770만 톤으로 세계 8위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얼마나 온실 기체를 감축하여 국제 사회의 기후 변화에 대응에 '기여'해야 할까?
이명박 정부는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 기후 총회에서 '2020년 전망치 대비 30% 감축' 목표를 제시하고, 이 목표 달성 기준이 되는 2020년 배출량 전망치를 8억1300만 톤으로 산정했다. 이에 따라 2020년에 우리나라가 최대로 배출할 수 있는 온실 기체는 여기에서 30%가 삭감된 5억 6900만 톤으로 잡은 바 있다.
하지만 지난 해 4월 환경부는 "2010년 온실 기체 배출량이 전망치를 웃돌았고, 2012년도 전망치를 상회할 가능성이 높다. 국제 사회에 약속을 지키려면 2015년부터 온실 기체 배출량 증가세가 꺾여야 하지만, 전 정부에서 온실 기체를 줄여놓은 부분이 없다"고 이실직고 했다.
지난해 페루 리마 총회의 결정문에는 '후퇴 방지' 원칙이 정해졌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가 공언한 온실 기체 배출 감축 목표보다 후퇴한 목표를 세운다는 건 국제 사회에서 용인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목표를 정하는 정부 위원회의 4가지 시나리오 모두 철저하게 후퇴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온실 가스 감축목표, 국익이 우선이다"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정부출연기관의 한 연구자의 글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 볼 수 있는데, 주류 경제학 측면에서 기후 변화를 바라보는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기후 변화는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차치하고 이야기할 수 없다. 기후 변화는 명확한 '시장 실패'이자 '국가 실패'의 결과이다. (☞관련 기사 : 온실가스 감축목표, 국익이 우선이다)
수많은 과학자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시나리오'로 치닫는 미래를 외면하고 국익만을 따져 묻는 것은 기후 변화를 환경의 문제로 보는 것보다 더 협소한 경제학 중심의 시각이다. 기후 문제가 환경에 국한되거나 경제로 환원되는 문제가 아니다.
죽은 지구에는 경제도 없고 일자리도 없다. 기후 변화에는 국경도 없고 국익도 없다. 국경을 만들고 국익을 만들려는 세력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지금 진지하게 경계해야 할 것은 에너지와 온실 기체 이슈를 국익의 위기로 몰거나 시장 확대의 기회로 삼으려는 세력이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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