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된 희극, 월성1호기 폐연료봉 추락 은폐
역사는 반복된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여기에서 반복된 희극은 사실 원래의 비극보다 더 끔찍한 비극을 말한다. 결코 웃을 수 없는, '역사적' 희극인 셈이다. 이틀 전 보도된 충격적인 사고를 보자마자 이 경구가 떠올랐다.
사고의 개요는 이렇다. 수명 연장 심사를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 된 핵발전소 월성1호기(경상남도 경주)에서 죽음의 물질이라 불리는 사용후 핵연료 그러니까 폐 연료를 옮기던 중 그 다발이 파손되었고, 이로 인해 연료봉이 연료 방출실 바닥에 떨어졌다.
한국수력원자력 연료 팀의 직원들이 이런 상황을 인지한 시점이 13일 18시 4분경, 이후 연료봉이 떨어진 위치가 확인된 시점은 다음 날인 14일 새벽 1시 40분경. 그리고 당시 연료봉이 떨어진 연료 방출실에는 한국수력원자력이 측정한 바로도 연료봉 표면으로부터 1미터 거리 방사선량이 계측기의 계측한도를 넘어서는 시간당 1000라드(rad) 즉 1만 밀리시버트(mSv) 이상 되는 방사능이 누출되고 있었다. (일반인에 대한 일상적인 연간 방사능 피폭한도는 1밀리시버트, 핵발전소 종사자의 연간 최대 허용치는 50밀리시버트이며, 5000밀리시버트 이상 노출될 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그리고 최첨단 기술의 집합소라는 핵발전소에서 사고를 인지한 지 9~10시간 만에 내려진 조치는, 이 상상할 수도 없는 치사량의 고(高)방사능 환경에 사람이 직접 들어가 수거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 사고가 발생한 시점이 2014년 올해 바로 어제나 그제가 아니라 2009년 3월 13일과 14일이라는 사실이다. 이 엄청난 사고는 핵발전소 비리 관련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나온 진술을, 정의당 김제남 의원실이 핵발전소 비리와 관련한 조사 기록 등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발견해내 5년이나 지난 지금에야 알려지게 됐다.
더 가관은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직접 책임자 한국수력원자력, 그리고 이를 감시·감독하는 규제 기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행태다. 한국수력원자력의 해명은 연료봉은 파손되지 않았고, 작업자의 피폭량은 핵발전소 근무자의 연간선량한도 이하로 건강 검진 결과 이상이 없었으며, 이 사고는 당시 정보 공개 대상은 아니었으니 은폐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사고를 진즉에 파악하고 조치를 취했어야 할 원자력안전위원회는? 4년도 넘게 지난 작년 8월에야 검찰의 통보로 뒷북 현장 조사를 해놓고도, 이를 국민들은커녕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에게도 보고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와서 머리 숙여 사죄하는 대신 그래도 월성 원자력안전협의회에는 알렸다는 걸 해명이라 하고 있다. 또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법원 제출 자료에서 스스로 "사건 발생 장소는 정상 운전 시에도 사용후 연료가 방출되는 경우에는 고방사선 경보(시간당 10라드)가 발생하는 지역이며 작업자 및 운전원의 출입이 통제되는 지역"이라면서도 수거 작업자의 피폭선량이 5.39mSv라는 믿기 힘든 말을 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수력원자력이나 원자력안전위원회나 달랑 보도 자료 1~2쪽만 냈을 뿐, 그 근거 자료는 공개하지도 않은 상태다. 규제 기관이 이럴 정도면 가히 은폐의 왕국이다. 이들의 행태가 뻔뻔해서 화가 나는 것보다 도대체 보고되지 않은 은폐는 얼마나 많을지 식은땀이 나는 대목이다.
그러나 아직 사건의 마지막 조각이 남았는데, 사고가 발생한 2009년은 한국수력원자력이 월성1호기 수명 연장 신청서를 제출한 해였다. 은폐의 동기가 완벽히 성립되는 셈 아닌가.
복기해야 할 비극, 고리1호기 정전 은폐
이쯤에서 큰 그림을 보자면 우리가 복기 해봐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월성1호기보다 더 오래 된 고리1호기. 지난 2012년 2월 9일, 고리 1호기에 전원 공급이 상실되는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비상 디젤 발전기를 '2대나' 마련해 두었지만, 1대는 정비 중이었고 1대는 밸브 이상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작동되지 않았다.
결국 고리 1호기는 12분 동안 전력 공급이 끊기면서 후쿠시마 사고와 같이 냉각 기능을 상실했고, 원자로 냉각수와 사용후 핵연료의 온도가 상승했다. 정말 아찔하다. 그런데 대담하게도 한국수력원자력 간부는 물론 발전소장까지 가담한 조직적인 은폐로 이 사고는 한 달 동안이나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럼, 이때는 규제 당국이 제 역할을 했을까? 아니다. 이 사고는 순전히 우연에 의해 발각되었다. 식당에서 식사 중이던 한 시의원이 옆 테이블의 고리 1호기 직원들 이야기를 듣고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 사고는 한 방송사에서 다시 다뤄지며 온 국민을 충격에 빠트렸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방송에서 고리1호기의 직원은 고리1호기가 수명 연장 이후에 오히려 고장이 감소했다고 당당하게 홍보해 황망함을 더했다.
그럼 혹시 이 사건은 어떻게 처리됐을까? 2013년 2월, 부산지법 형사항소2부(한영표 부장판사)는 '놀랍게도' 이 사고를 은폐한 간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 등에 사고를 보고할 의무가 한국수력원자력에 있기 때문에 이를 은폐한 직원들은 처벌할 수가 없고, 직원의 은폐로 사고 자체를 알 수 없던 한국수력원자력도 보고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무슨 논리인가? 국가의 존폐를 흔들 수 있는 핵발전 사고를 은폐했는데 아무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인가? 이런 가운데 같은 해 7월에는 18시간 동안이나 비상 디젤 발전기 2대가 모두 정지하는 사태가 또 발생했고, 한 달이 넘도록 또 은폐되었다가 언론에 의해 알려졌다. (이 단락은 <삶이보이는창> 통권100호에 실린 필자의 글 "이번에야말로 핵의 '고리'를 끊자"를 참고했다.)
그리고 올해 한국수력원자력은 2017년 고리1호기를 한 번 더 수명 연장할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사고'와 '은폐'의 장, 핵발전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리1호기, 두 번째로 오래된 월성1호기의 수명 연장을 앞두고 벌어졌던 이 사고와 은폐의 기막힌 유사성은 우연일까? 다시 반복될 희극은 얼마나 더 끔찍할까?
2009년 한국수력원자력이 사고를 은폐하면서까지 신청한 월성1호기의 수명 연장 심사 결과가 올해 9월 문제의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처음으로 보고되었다. 이때 보고된 '월성 1호기 계속 운전 심사 결과' 자료에 따르면 월성원전 1호기는 수명 연장에 아무런 문제가 없단다. 하지만 월성원전 1호기 수명 연장 심사는 법적 심사 기간 18개월을 훌쩍 넘겨서 지난 8월까지 56개월간 심사가 진행되었다.
심사를 담당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서류 보완 기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라는데, 2012년과 2013년 국정 감사에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과 한국수력원자력 사이에 수차례 안전성 논박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보고 자료에 이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다. 국회에서 어떤 논란이 있었는지, 안전성에 대한 어떤 쟁점이 있었는지, 심사 기간은 왜 길어졌는지 등 알맹이는 빠져 있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심사한 안전성 확인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보고서들 즉, <주기적 안전성 평가 보고서>, <주요 기기 수명 평가 보고서>, <방사선 환경 영향 평가서>는 비공개다. 2007년 고리1호기의 수명 연장이 결정될 때에도 그랬다. 안전성 관련 보고서는 공개되지 않은 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심사 보고서만으로 수명 연장이 결정되었고, 그 뒤로 사고와 은폐가 반복되었다.
앞으로도 한국수력원자력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스스로 다른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어디 있는가? 이 글의 첫머리에서 인용했던 마르크스의 경구를 제목으로 한 책에서, 슬라보예 지젝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위험한 선택의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사회에서는 소수만이 '선택하기'를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기'를 한다"고.
그래서 지금 중요한 것은 그 나머지 사람들이 '무릅쓰기' 대신 '선택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 선택이 안전성 심사일 필요가 있을까? 사고와 은폐의 장이 되어버린 핵발전소의 수명은 결코 연장할 것이 못 된다. 그게 다음의 끔찍한 희극을 막을 유일한 선택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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