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향해 화를 내야 하는가
세월호의 실종자수는 조금씩 줄어들고, 사망자수도 정확히 그만큼 늘고 있다. 구조되었다는 생존자 소식은 아직도 전해지고 있지 않다. 실종자 가족들의 속은 시커멓게 타 들어가도, 희망의 소식은 어디에도 없다. 슬픔과 분노만 점점 더 세를 넓혀 가고 있을 뿐이다.
누굴 향해 화를 내야만 하는 것일까? 승객을 놔두고 먼저 탈출했다고 알려진 선장과 승무원들부터 눈에 들어온다. 어찌 그리도 무책임할 수 있을까. 실종자 가족이든 누구든 모두가 화가 나 있다. 아이들을 도우며 함께 실종된 승무원과 교사들, 그리고 더 어린 아이를 구해서 같이 탈출한 아이들의 소식들이 가슴 쓰라린 대비를 이루니, 더 하다. 하지만 선장과 승무원 개개인의 책임에만 초점을 맞출 일만도 아니다.
그들에게 면죄부를 줄 일도 아니지만, 그에만 매달리면 문제를 오도하기 쉽다. 여객선의 안전 운항과 조난시 구조의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따져 물어야 한다. 비난을 받고 있는 선장과 승무원은 그 시스템의 일부이며, 그들의 무책임만으로 시스템 전체가 불능에 빠졌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조난자들의 생사를 가르는 소위 '골든타임'을 허비하면서, 초기 구조자 이외에 어떤 실종자도 추가적으로 구조해내지 못한 탓은 누구의 책임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승객을 버린 선장을 두고 "살인과도 같은 행위"를 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말에 수긍하여 고개를 끄덕이기보다는, 그럼 대체 정부는 무엇을 했는지 되묻고 있다. 승객을 버린 선장도 문제이겠지만, 그 승객을 살려내지 못한 정부는 대체 무슨 행위와 같은 것일까. 재난을 막고 안전을 지켰다며 출범한 정권이 아닌가. 어찌 하여 단 한 명의 실종자도 찾아내 살리지 못하는 무능은 무엇인지 묻고 있는 것이다.
한국호의 침몰, 그때도 선장은 혼자만 도망갈 것인가
승객들을 놔두고 먼저 탈출했다는 세월호 선장의 이야기는 너무도 뼈아프고 쉽게 잊기 힘들다. 침몰하는 배와 함께 승객을 버린 선장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 대한 어떤 유비 혹은 징후로서 읽혀지고 있다. 한국 사회라는 거대한 배는 잘 항해하고 있는 것일까. 또 그 배를 몰고 있는 선장은 우리들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 줄 수 있을까?
이미 많은 이들이 세월호 조난 사고에서 부실하고 미숙한 정부와 그 수장인 박근혜 대통령을, 세월호의 무책임한 선장과 겹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한국호라는 배는 조만간 고장 나거나 좌초되고 침몰할지 모르며, 그 배를 지휘하던 승무원과 선장은 승객들을 놔두고 제 목숨부터 챙길 것이라는 우려와 의심이 늘어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세월호의 침몰과 대규모 실종자 발생에는 여러 징후가 있던 것으로 보인다. 무책임하다고 비난받은 선장을 비롯하여 많은 승무원들이 제대로 역할을 하기 힘든 비정규직이었으며, 안전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낡고 오래된 배는 기계적, 구조적 고장을 자주 일으켰으며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채 운행되고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를 밝힌 전직 항해사는 그로 인한 사고 불안으로 일자리를 그만두었다.
만약에 구조적으로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안정적인 고용 체계를 갖추고 제대로 된 안전 교육이 이루어졌더라면. 만약에 승무원들의 경고를 받아 들여 제대로 수리하고, 필요하다면 낡은 배를 퇴역시켰더라면. 만약에 안전 당국이 규제를 강화하여 낡은 선박의 도입과 구조 변경을 막았더라면. 만약에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호언장담했던 안전 정책과 재난 대책들이 제대로 작동만 했더라면. 만약에…만약에…만약에…고통스럽기만 한 가정법 질문들이 이어진다.
정부의 무능과 신뢰 상실은 전염된다
세월호의 실종자들에 대한 안타까움, 내게도 그 불행이 닥쳐올 수 있다는 공포심, 그런 재난들이 닥쳐왔을 때 아무것도 도울 수 없다는 무기력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능하고 무책임한 관련 책임자와 정부 당국에 대한 분노. 이 때문에 수많은 "만약에"를 되뇌다, 문득 이것이 세월호 사건만의 일일까 싶어 정신이 번쩍 든다.
거대한 기술 시스템에 점점 더 의존하고 있는데, 그것의 실패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감내해야 하는 일이 이것뿐일까? 멀리 갈 것도 없이, 3년 전 일본 후쿠시마에서 벌어진 핵사고가 그런 것이 아닐까. 이웃 나라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 때의 트라우마가 세월호 침몰 사건을 통해 다시 그리고 더욱 강하게 반복되고 있다.
눈길은 자연스럽게 잦은 고장에도 수명 연장을 이어가고 있는 고리 핵발전소로 향한다. 우리는 이 낡아 빠진 핵발전소를 한국수력원자력과 정부 당국이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세월호 사건을 대처하는 정부 당국의 무능과 무책임을 접한 경험이 핵 발전의 안전을 담당하는 정부당국의 신뢰를 갉아먹을 수 있다. 지금도 규제 당국으로서 독립성이 있는지 논란을 겪고 있는 마당이다.
이런 사고 때마다 회자되는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위험 사회' 이론은 거대 시스템의 기술적 취약성뿐만 아니라 관리 당국의 신뢰 상실도 문제를 삼는다. 이번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규제는 암 덩어리"라는 정책 기조와 "기념사진이나 찍자"는 대통령과 관료가 존재하는 한, 큰 차이가 아닐 지도 모른다. 만일에 하나 고리 핵발전소에서 핵사고라도 난다면, 그런 정부로부터 우리는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
낡은 고리 핵발전소는? 더 이상 "만약에…"를 되뇔 수 없다
세월호 사건에서 정부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우리는 핵발전과 관련하여 정부의 말을 신뢰하기 힘든 경험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나아졌을까? 자신할 수 없다. 고리 핵발전소의 수명 연장에 대한 국회에서의 집요한 질문에도 안전을 확신할 만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그래서 세월호보다 더한 세월 동안 가동되었던 고리 핵발전소를 이젠 그만 폐쇄하라고 줄기차게 이야기해왔다.
비유를 하자면, 고리 핵발전소는 한국호라는 배에 장착된 폭발 직전의 위태로운 엔진이 아닐까. 한국호의 선장은 지금 당장 배를 멈추고, 빨간 불이 깜박거리는 배의 엔진을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꺼야 한다. 지금까지의 일을 보면 박근혜 선장이 침몰하는 배에서 먼저 도망가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냉소할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라도 세월호 사건에 제대로 대체하기 간절히 바라는 만큼이나, 거듭 경고되고 있는 한국호의 위태로운 엔진, 고리 핵발전소도 어서 폐쇄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또 다시 "만약에…"를 되뇔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세월호 사건으로 희생된 이들의 명복을 빕니다.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지금 너무나 아픈 모든 이들과 함께 웁니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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