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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소 때려잡는 시장? 또 다른 재앙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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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소 때려잡는 시장? 또 다른 재앙의 씨앗!

[초록發光] 베를린의 전력 반란

최근에 대구에서 개최된 세계 에너지 총회는 여러모로 관심을 끌었다. 밀양과 청도 송전탑 주민의 항의 시위가 있었고, 핵발전 중독증을 보인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도 있었다. 큰 주목을 끌지는 못했어도 흥미로운 발표도 있다. 세계에너지협회가 발표한 2050년까지의 세계 에너지 전망이었다.

시장을 주도하면 핵발전소는 위축된다?

두 가지 시나리오가 제시된다. '재즈 시나리오'라고 명명된 것은 에너지 산업을 시장이 주도하는 것을 상정하고 있는데, 이 경우 핵발전량은 얼마간 증가하지만 전체 에너지 생산 중 비중은 하락한다(2010년 5.5%→2050년 4%). 한편, 국가에 의해서 에너지 산업이 주도되는 것을 상정한 '심포니 시나리오'는 핵발전량도 대폭 증가하고 그 비중(2050년 11%)도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전망되었다.

시나리오의 결과도 흥미로운 것이지만, 사실 시나리오를 구성한 방법이 더 많은 토론거리를 제공해주었다. 세계에너지협회는 에너지 산업을 시장이 주도하는가 혹은 국가가 주도하는가의 여부를 핵심적인 변수로 사용하였다. 이는 핵산업에서 시장 및 국가의 역할에 대해서 주목하는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핵발전소의 운명은 숨겨진 모든 '진짜 비용'을 가격에 반영하고 국가가 핵산업에게 제공하는 특혜적 지원을 제거하여 공정한 시장 경쟁에 맡겨질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시장 주도의 시나리오는 핵발전의 비중이 줄어드는 반면 정부 주도의 시나리오는 핵발전량과 비중 모두 크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주목할 만한 발표였다. 시장 역할의 중요성이 조명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시장의 역할에 대한 강조에서―의도한 것은 아닐 수 있지만―일부 탈핵 운동 진영이 신자유주의자들과 발걸음이 일치할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새삼 떠오르게 만든다(다행스럽게도(?) 이런 지적을 비난으로 받아들이지도 않는 듯하다). 핵발전의 '진짜 비용'을 모두 반영한 경제성 계산을 통해서 그것을 시장으로부터 몰아낼 수 있다는 구상은 전력 시장의 민영화(사유화) 논의와 쉽사리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 탈핵은 전력 시장 자유화의 덕?

이에 대한 현실적인 근거를 미국, 영국, 독일 등에서 상당히 찾을 수도 있다. 사실 대표적인 탈핵 국가인 독일이 그렇다. 독일의 탈핵 정책 비결이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에, 베를린자유대학 환경정책연구센터 소장 미란다 슈로이어는 몇 가지 다른 이유와 함께 '전력 시장의 자유화'를 꼽았다.

탈핵 에너지 전환 주장과 에너지 산업의 공공성 주장을 결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운 대답이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볼 여지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독일 전력 기업들의 시장 경쟁이 어떤 장(場) 위에서 펼쳐지고 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독일의 거대 전력 기업들은 핵발전에 우호적인 법제도 및 예산 지원을 기대할 수 없으며, 엄격한 안전 규제에 의해 핵발전의 '숨겨진 비용'을 누락시키기 어려운 시장 환경 속에서 놓여 있다. 또 특혜라고까지 평가할 수 있는 발전 차액 지원 제도(FIT)의 법제화(EGG)를 통해 지원받고 있는 재생에너지기업과도 힘겹게 경쟁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단순히 모든 것을 시장에게 맡기자는 주장을 어렵게 만든다(시장 활용론자들이 이렇게 단순히 이야기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굳이 긍정적으로 묘사해 보자면, 경쟁을 통해 거대 에너지 공기업의 관료적 경직성을 깨고 에너지 전환과 같은 사회적 목표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시장과 국가 개입을 적절히 뒤섞여야 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을까.

독일 전력 자유화의 문제점과 비판

그러나 여기까지다. 전력망과 발전 설비를 사실상 지역 독점하고 있는 사적 거대 전력 기업에 대한 독일 시민들의 불만도 대단하다. 전력 대기업들은 전력망의 유지, 관리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하면서도 전력 가격만 인상하여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고 있다는 불만과 비판이 터져 나오고 있다. 게다가 핵발전과 석탄 발전 등에 과거 에너지 시설에 고착되어 있는 전력 기업들은 에너지 전환 노력에도 게으르다.

독일의 에너지 전환은 이들 전력 대기업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현재 독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재생 에너지 전력의 대부분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소규모 기업(이들 중에는 협동조합도 큰 몫을 하고 있다)가 소유한 1300만 개의 재생 에너지 시설에서 생산되고 있다. 2013년 현재 4대 거대 기업이 생산한 재생 에너지 전력량은 5%를 밑돈다.

베를린 시민의 에너지 반란

지난 5월에 방문한 '베를린 에너지 원탁 회의'는 그런 비판적 인식 위에 서 있는 55개의 다양한 단체의 연대 기구였다. 이들은 거대 에너지 기업(초국적 기업 바텐팔)에 맡겨진 전력망을 되찾아오자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원탁 회의의 스텐판 타시너는 1998년 이후 전력 산업이 자유화되면서 공적으로 운영되던 베를린의 전력망과 발전소를 민간 기업이 맡게 되었지만, 전력망 낙후, 전기 요금 폭등, 에너지 빈곤 심화(2011년 현재 2만5000가구가 단전 조치되었다), 그리고 에너지 전환 노력의 미비 등의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이제 베를린의 전력망 운영권을 민간 기업으로부터 되찾아서 재공공화할 때라는 것이다.

당시 원탁 회의는 주민 투표 발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은 베를린 시정부가 직접 시영 발전소 및 전력망 회사를 설립, 운영하도록 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이 법이 통과될 경우에 시정부가 설립해야 하는 시전력 회사는 "장기적으로 베를린에 분산형으로 생산된 재생 에너지를 기반으로 100% 에너지 공급을 담당"하며 "시민들에게 에너지를 공급하고 에너지 빈곤의 감소를 임무"로 한다고 명시하였다.

발전사와 전력망 회사를 분리하도록 한 유럽연합(EU) 규정에 따라서 나눠서 설립되는 이 회사들의 경영은 시정부, 베를린 시민 그리고 회사 노동자의 대표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담당하도록 규정했다. 이 법안의 이름은 '민주적, 생태적 그리고 사회적인 베를린 에너지 공급법'이다.

▲ 베를린 에너지 원탁 회의가 주민 투표 청원 서명 운동을 독려하는 지하철 광고. ⓒ한재각

▲ 지난 5월 메이데이 축제에서 이루어진 에너지 원탁 회의 주민 투표 청원 캠페인. ⓒ한재각

시정부, 주민 그리고 노동자가 경영하는 전력 회사

주민 투표의 실시 조건인 17만여 명(유권자의 7%)의 서명을 받기 위해서 캠페인을 벌였다. 그리고 원탁 회의는 26만여 명의 서명을 얻어 주민 투표 요건을 성공적으로 '가뿐히' 충족시켰다. 다음달(11월) 3일 주민 투표를 앞두고 있다.

현재 베를린의 사회민주당/기독민주당 연립 정부는 기본적으로 이런 주장에 부정적이다. 그들은 맞불을 놓기 위해 시영 발전 회사를 설립하였지만, 사장 1명만 임명된 '종이 조직'에 불과한 것이어서 시민들의 열망과는 거리가 한참 먼 것이었다. 지속적인 주민 운동은 주민 투표라는 정치적 카드를 쥐는 성공을 얻었고, 최근 시정부가 시영 발전 회사를 실질화하여 재생 에너지 확대를 위해서 나서겠다는 진전된 입장을 내놓도록 만들었다.

이런 에너지 산업의 재공공화 움직임은 베를린만의 일은 아니다. 최근(9월) 독일 총선과 함께 치러진 독일 제2의 도시, 함부르크의 주민 투표에서 시민들의 과반수가 시의 전력망과 가스망을 재공공화(시영화)하자는 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전력 산업의 재지역화 움직임

최근(2013년)에 발간된 부퍼탈 연구소의 보고서에 의하면, 2005년 이래 민영화된 전력망을 지방자치단체가 되찾아 시영 전력 회사를 설립한 사례는 72개에 달한다. 더 작은 행정 단위인 공동체가 되찾아온 사례는 190개로 기록되고 있다. 전력 민영화 이후 15년 후, 신자유주의 흐름을 거슬러 가면서 전력 산업의 재공공화―이를 '재지역화(recommunalization)'라고 부르고 있다―움직임이 독일 전역에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 2005년 이래 전력 서비스를 재지역화한 독일 지방자치단체들. ⓒwupperinst.org

그런데 이런 주민 운동이 가능한 것은 한국과 다른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독일에는 에너지 지역 주권이 존재했고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즉, 지방자치단체마다 자신의 전력망과 발전소를 가지고 운영해왔던 역사가 있으며, 전력 산업이 자유화된 이후에도 거대 기업들에게 권한을 넘기지 않고 스스로 운영해오고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상당하다.

2000년대 중반 현재, 지방자치단체 소유의 회사로 80여 개 안팎의 중소 규모 지방 공사와 800개 안팎의 시 단위 배전 회사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사례가 독일 남부의 뮌헨이다. 시영 발전 회사는 현재 재생 에너지로 15%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으며 2025년까지 100%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전력은 시영 전력망 회사를 통해서 공급되고 있다.

독일 지방자치단체가 가진 전력망 운영 권한

베를린의 경우 시정부는 15년 단위로 경쟁 입찰에 지원하는 기업 중에서 심사를 통해 시내 전력망(배전망)의 운영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내년(2014년)이 지금까지 바텐팔이 맡고 있던 배전망의 운영 권한을 새롭게 부여해야 할 상황이다.

베를린 시민들은 시정부에게 에너지 전환과 에너지 복지를 위해서 그런 권한을 바람직하게 사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베를린 시민들이 주도한 주민 투표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베를린 시정부는 자신의 전력망 회사를 세워 그 운영 권한을 직접 시행할 수 있도록 이 경쟁 입찰에 참여해야 한다.

만약에 주민 투표에서 실패하더라도, 이들은 복안을 가지고 있다. 시민들이 에너지 협동조합을 통해 그 경쟁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가장 큰 관건은 전력망 구입 비용을 조성하는 것이지만, 여기에도 방법은 있다. 독일의 많은 에너지 협동조합의 그런 것처럼, 조합원을 모집하여 재원을 만든 후 그것을 담보로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활용할지 모른다.

원탁 회의의 타시너는 베를린 시정부가 시영 전력망 회사를 설립한다고 하였을 때도 은행 대출을 활용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 7%의 전력망 운영 수입이 예상되기 때문에 대출금 이자(연 4%)를 충분히 갚아갈 수 있다는 것.

쟁점은 바텐팔이 부르는 가격이다. 건설시 들어간 비용 20~30억 유로를 그대로 제시하고 있지만 그동안 사용한 것을 감안하면 그 비용은 4억 유로로 불과하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베를린 상공회의소). 결코 쉽지 않은 일들이 남아 있지만, 이들은 11월 3일의 주민 투표를 위해서 캠페인에 집중하고 있다.

민영화 논쟁의 제3의 입장, 지역화론을 제안한다

베를린에서 서울로 시선을 돌려보자. 박원순 시장이 들어선 후 '핵발전소 1기 줄이기' 정책을 수립, 집행하는 과정을 직간접적으로 접하면서, 지방자치단체의 에너지 관련 권한, 조직과 시설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대부분의 권한과 수단은 산업자원부, 한국전력(지역본부)과 지역 내 가스 회사에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제약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지역 주민 그리고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에너지에 관한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 우리 동네 전봇대를 세우고 운영하는 회사를 주민이 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위로 핵전기가 아니라 태양 전기가 흐르도록 해줄 지역 소유의 회사가 필요하다. 지역의 에너지 빈곤을 돌볼 지역에너지공사를 만들자. 그럴 권리를 요구해야 한다.

탈핵 에너지 전환은 에너지 효율화와 함께 통상 소규모의 지역적 분산화된 재생 에너지에 기반을 둔 에너지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는 지역 공동체가 소유하고 생산해야 한다는 주장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독일에서 베를린 시민들의 에너지 반란을 '재지역화'라고 부른다.

한국의 전력 산업 민영화 논쟁에서 이 제3의 입장을 '지역화론'라고 부르자.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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