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어느 날 삼성 본관에서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집회를 하는 날, 키가 작고 꽁지머리를 한 남자 분이 사진을 찍으며 열심히 취재했습니다. 그분은 자기를 실명(엄명환) 대신 가명으로 소개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다산인권센터 자원 활동가 '오렌지가 좋아'입니다. 줄여서 '오렌지'라고 해도 돼요."
아주 부드러운 말투로 꽁지머리 젊은 남자가 자기를 오렌지라고 불러달라고 하니, 슬픔을 안고 집회하던 우리는 조금이나마 웃을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오렌지는 반올림 활동에 누구보다 주도적으로 결합했습니다. '오렌지가 좋아'라는 가명이 웃겨서 저는 오렌지를 만나면 "오렌지가 좋아, 내가 좋아?" 라며 농담도 자주 건넸습니다. 반올림에서 단체 사진을 찍을 때면 김치나 치즈 대신에 늘 "오렌지~" 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렌지는 사진 찍는 게 주특기였습니다. 기자 회견이든 일인 시위든 삼성 본관 앞 집회든 그 어디든 사진기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삼성 경비의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았습니다. 삼성 본관 앞 일인 시위를 할 때 오렌지가 카메라를 들고 나타나면 경비들도 욕설과 시비를 주춤하며 물러설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오렌지가 투석 환자(1급 장애인)인지 모르고 삼성 경비와 경찰이 오렌지의 팔을 잡아당겨서 위급한 상황이 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위험한 현장인데 오렌지는 늘 우리를 보호하고자 그리고 세상에 이 싸움을 알리고자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오렌지는 신장이 안 좋아 어릴 적부터 투석을 해왔습니다. 이틀에 한 번씩 투석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는 투석하고 하루는 활동하는 그런 생활입니다. 건강한 사람도 힘든 일인데도 오렌지는 참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삶을 가꿔갔습니다. 구김살 없는 얼굴로 먼저 사람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넸고, 어느 현장이든 카메라를 대면서 포즈를 취하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런 오렌지 덕분에 삼성 직업병 투쟁을 해온 반올림의 무거운 분위기도 한층 밝아졌습니다. 근로복지공단과 삼성을 상대로 한 오랜 싸움에 이렇게 오렌지가 있어서 늘 웃으면서 싸울 수 있었습니다.
오렌지가 그렇게 많은 사진을 부지런히 남겨놓았기 때문에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의 아픔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오렌지의 사진 덕분에 영화도, 책도 만들어지고 연극 <반도체 소녀>도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우리 유미 6주기 추모제 사진은 영화 <또 하나의 약속> 마지막 컷으로도 실렸습니다. 이렇게 반올림에서 주도적인 일을 해 온 오렌지가 지금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5월 26일 갑자기 심장 정지로 쓰러져서 긴급 후송되었고, 현재 중환자실에서 온갖 기계 장치에 둘러싸인 채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이대로 보낼 수 없습니다. 부디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혼자 사는 오렌지는 생활이 넉넉하지 못하여 현재 병원비가 너무 많이 나와 감당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기초 생활 수급권자이기도 한 오렌지에게 하루 500만 원 이상의 막대한 병원비는 큰 부담입니다. 오렌지가 치료비 걱정 없이 안전하게 치료받고 일어날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께서 좀 도와주십시오. 오렌지가 치료 잘 받고 건강하게 회복해서 다시 활동할 수 있도록 부디부디 도와주세요.
덧붙이는 말
'오렌지가 좋아(본명 엄명환)' 님의 쾌유 기원과 치료비 마련을 위한 긴급 모금 안내
엄명환 님이 5월 26일,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쓰러졌습니다.
현재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 중이며 아직 의식은 회복되지 않고 있지만,
반드시 일어나 예전처럼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서 현장에서 사진을 찍으리라 믿습니다.
촛불 시민으로, 다산인권센터와 반올림 활동가로, <골목잡지 사이다>와 현장 사진작가로, 기초 생활 수급자로 자신의 권리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왔던 엄명환 님의 쾌유를 빌어주십시오.
치료비 마련을 위한 모금을 부탁합니다.
하루 만에 500만 원이 넘는 치료비가 청구됐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치료비가 들어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마음을 모으는 일은 그를 외롭지 않게 함께 지키는 것이라 믿습니다.
계좌번호 : 하나은행 422-910380-23207 (예금주 정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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