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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삼성을 건드려…개봉 자체가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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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삼성을 건드려…개봉 자체가 기적"

[인터뷰] <또 하나의 약속> 김태윤 감독

2013년 3월이었다. 고(故) 황유미 씨의 6주기 추모 기일을 앞두고 속초의 택시 운전기사인 아버지 황상기 씨를 서울에서 만났다. 늘 그랬듯 그동안 수백 번도 넘게 했을 딸의 이야기를 차분히 마친 황상기 씨는 인터뷰가 끝나고 왠지 머뭇거리다 수줍게 당부를 건넸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당시 제목은 ‘또 하나의 가족’)을 많은 사람이 보도록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이었다. 싱거웠다.

그로부터 10여 개월이 지났다. 잊고 있었던 그 영화가 다시 떠올랐다. “개봉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던 영화가 이제는 진짜로 상영관이 잡히기를 기다리고 있다. 1년 동안 배낭여행을 가려고 계획했던 대학생이, 신혼부부가,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 3억 원을 보태 만들어진 영화였다.

지난 16일 서울 홍대 인근 카페에서 김태윤 감독을 만났다. 궁금했다. 왜 이 감독은 ‘삼성 직업병’ 문제에 꽂혔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영화를 만들었는지,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황상기 씨와 주변 사람들은 어떤 반응이었을지, 배우 캐스팅은 어떻게 했을지, 영화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궁금한 것 투성이였다.

주변에서는 “그 소재 자체가 한국에선 투자도 안 되고, 배우 캐스팅도 못 하고, 결국 상영도 못 할 것”이라고 말렸다고 한다. 다행히도 시나리오를 본 배우 박철민 씨가 “아빠 이런 거 꼭 해야 돼요”라는 대학생 딸의 말을 듣고 하루 만에 흔쾌히 나섰고, 돈이 없어서 제작이 중단될 위기에 놓이면 누군가가 돈을 줬고, 눈이 왔으면 하는 날에는 눈이 왔다고 했다. 김태윤 감독은 “꼭 유미 씨가 (하늘에서) 돕는 것 같았다”고 했다.

김태윤 감독은 황상기 씨를 무려 8개월 동안 쫓아다녔고, 한참 뒤에야 ‘식구’로 받아들여졌다. 인터뷰를 마치고 10개월 전 기자에게 수줍게 말을 건네던 황상기 씨의 얼굴이 스쳤다. 인터뷰가 끝나고 영화를 봤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됐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것은 기적 맞는 것 같았다. 영화는 오는 2월 6일에 개봉한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편집자>

▲ <또 하나의 약속>의 김태윤 감독.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왜 하필 수많은 이야기 중에 '삼성 직업병' 문제를 영화로 만들게 됐나?

김태윤 : 황상기 아버님이 2011년 6월 재판에서 승소하셨는데 이야기를 읽어보니 영화로 만들고 싶어졌다. 감독으로서 매력적인 소재였다. 당대 한국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었다. 황상기 아버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니 수소문해서 연락처를 알아내서 뵙고 인터뷰하면서 꽂혔다.

프레시안 :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황상기 씨 반응은 어땠나?

김태윤 : 처음엔 허락 안 해주셨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내가 가기 전에도 몇 팀이 와서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했는데 다들 중간에 나가떨어졌다고 들었다. 아버님은 ‘당신이 영화 만들고 싶으면 만들어라. 나는 도와줄 거 없다’고 하셨다. 알겠다고 하고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아버님이 속초에서 서울에 일주일에 한두 번 오시는데, 집회할 때, 회의할 때, 재판 갈 때 갔다. 일단 아버님이랑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 알아야 하니까 따라다니면서 인사드리고,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말씀드리고 8개월 정도 취재했다. 반도체에 대해 전혀 몰라서 취재 과정만 8개월이 걸렸다.

프레시안 : 8개월 동안 따라다닌 줄은 몰랐다. 뭐하셨나.

김태윤 : 뒤풀이 따라가서 멍하니 앉아있고 뭐 그랬다. 반올림 분들도 영화 보고 나서 (반응이 달라졌는데) 처음에는 내가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다고 하더라. 숫기 있는 편이 아니다 보니 스스럼없이 다가가서 ‘제가 어떤 사람입니다’ 이런 말도 못하고 아버님 주변만 맴돌았다.

프레시안 : 황상기 씨의 어떤 점이 그렇게 꽂혔나?

김태윤 : 아버님 보면 항상 웃으신다. 그렇게 큰 아픔을 겪고 어렵게 싸움하시는데 웃고 밝으시더라. 그런 점에 꽂혔다. 또 기억에 남는 건 그 어떤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열정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하는 모습이었다. 처음엔 나한테만 그러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니더라.

"박철민 대학생 딸 '아빠, 이런 건 꼭 해야 돼요' 그 말에…"

프레시안 : 영화에서 황상기 씨의 어떤 면을 부각하려고 했는지 궁금하다.

김태윤 : 사실 처음 시나리오는 다큐적인 구성으로 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이 되니 극화시켜서 대중들이 쉽게 볼 수 있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세웠던 건 아버지의 딸에 대한 사랑이다. 그리고 싸움의 과정에서 ‘그는 왜 타협하지 않는가’라는 지점이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황상기 아버님 이야기를 하면 “(삼성 측에서) 거액을 제시했는데 왜 합의금 안 받느냐, 왜 합의 안 하느냐”고 묻는다.

황상기 아버님을 보면서 ‘내가 저 상황에선 과연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물론 나는 돈을 받았겠지. (웃음) 하지만 만약 합의금을 던져줬을 때 받았으면 아버님이 지금처럼 웃지 못하실 것 같다. 힘들게 싸우지만 웃으면서 살지 못할 것 같다. 그 싸움의 과정이 아픔을 치유하고, 그 힘으로 더 살아가시는 것 같았다. 그게 나에게는 중요했다. 그걸 깨닫기까지 8개월이 걸렸고, 그때부터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프레시안 : 윤유선 씨와 박철민 씨를 캐스팅한 배경은 무엇인가?

김태윤 : 처음엔 톱 배우는 무조건 안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박철민이라는 배우가 떠올랐다. 박철민 씨가 일단 황상기 아버님이랑 닮았더라. 겉모습이.

프레시안 : 안 닮았는데…. (웃음)

김태윤 : 물론 황상기 아버님이 (외모가) 더 나으시다. (웃음) 그리고 아버님이 유쾌하시다. 그래서 박철민이 갖고 있던 이미지와 어울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영화를 할 만한 용기 있는 배우여야 하는데, 박철민이라는 배우의 행적을 보면 민중극 같은 것을 많이 했었다. 이런 영화에 공감하리라고 생각해서 시나리오를 드렸는데 흔쾌히 나서주셨다. 들리는 얘기로는, 대학교 다니는 따님한테 먼저 시나리오를 읽혔다고 하더라. 따님이 읽고 “아빠 이런 거 꼭 해야 돼요”라고 해서 자기도 읽어봤는데 시나리오가 너무 좋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날 바로 하겠다고 하셨다.

윤유선 선배는, 박 선배가 추천해서 시나리오를 드렸는데 흔쾌히 하겠다고 했었다. 나머지 배우들도 다 그런 과정을 거쳤다. 정진영 선배(판사 역)나 박희정 씨(황유미 역)나 김규리 씨(노무사 역) 다들.

▲ <또 하나의 약속>에서 상구 역을 맡은 배우 박철민 씨와 윤미 역을 맡은 박희정 씨. ⓒ또 하나의 약속
▲ 이 영화의 실제 모델인 고 황유미(사망 당시 23세) 씨와 아버지 황상기 씨. ⓒ반올림

“어떻게 그 기업을 건드려?”

프레시안 : 아까 “이 이야기가 한국 사회에서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나?

김태윤 : 한국의 노동 환경이 너무 열악하다. 스스로 노동자임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육체노동자만 노동자라고 생각하고, 자기 자신은 사무직이나 대기업에 속해 있어서 노동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사실 다 노동자다. 그리고 산재 보험료를 내고 있는데 그게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산재 보험이 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것이다.

프레시안 : 영화 만들기까지 쉽지 않았을 텐데 주변에서 만류하지는 않았나?

김태윤 : 내가 아는 감독이나 제작자 모두 다 말렸다. 그 소재 자체가 한국에선 투자도 안 되고 어떤 배우도 캐스팅하지 못하고 결국 상영도 못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하더라.

프레시안 : <또 하나의 약속> 제작두레 홈페이지에 윤기호 PD가 올린 글 중에 의미심장한 글이 있다. ‘나같이 겁 많은 사람은 엄두도 못 내는 일’이라고 말했다. 일종의 자기 검열 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다. (☞ 제작두레 홈페이지 바로 가기)

김태윤 : 지금도 많은 분이 영화 제작하는 데 외압이 있었냐고 묻는다. 외압보다는 자기들 스스로 '쫄은' 것 같다. 겁먹고. ‘어떻게 그 기업을 건드려? 그 기업을 상대로 어떻게 영화를 만들어? 그 기업이 상영 못 하게 할 거야’ 이렇게들 생각하더라. 나를 비롯한 스태프, 제작자, 프로듀서들은 그렇게 생각 안 했는데도 그랬다.

프레시안 : 그렇다고 하더라도 투자를 못 받은 것도 일종의 외압 아닌가. 우여곡절 끝에 영화를 만들었는데 광고하려 해도 반응이 없고 영화 기사가 삭제되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김태윤 : 우리 영화 기사가 올라갔는데 삭제된 적이 있다고 들었다. 지금도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지상파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 배우들이 나가야 하는데, 잘 안 되고 있긴 하다. 이 영화 때문인지, 박철민이라는 배우가 톱 배우가 아니라 그런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런데 계속해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출연이 안 된다는 말이 나오긴 하는 것 같더라.

“고비마다 유미 씨가 도운 것 같아”

프레시안 : 촬영 들어가면서 제일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가?

김태윤 : 처음 제작두레로 1억2000만 원을 모았는데, 더 지연되면 영화를 못 만들 지경까지 갔었을 때 제일 힘들었다. 그래서 촬영 들어가기 전에 딴지 라디오 팟캐스트에 나갔다. “전 어떤 사람이고, 이런 영화 준비하고, 캐스팅은 누가 됐으며, 이런 과정을 거쳤다”고 이야기했고 “뜻이 있으면 투자해달라”고 했는데, 돈이 다 떨어져서 촬영 멈출 때쯤 누군가가 7000만 원을 대겠다고 했다. 그게 누구였느냐면 대기업 다니는 평범한 영업사원 대리와 과장이었다. 그분들이 그렇게 큰돈을 내겠다고 해서 정말 놀랐다. 그다음부터 개인 투자자들이 한두 명씩 나타나기 시작해서 3000만 원, 2000만 원씩 내주셨다. 그렇게 영화를 만들었다. 돈이 떨어질 즈음에 개인 투자 들어오고, 떨어질 즈음에 들어오는 식으로 굽이굽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영화를 다 만들어서 부산영화제에서 1차 편집본을 틀었는데, 그 다음부터는 폭발적으로 돈이 들어왔다. “돈이 얼마 필요하냐, 우리가 배급해줄게” 이런 팀도 나타나고 되게 신기했다. 지금 생각해도 뭔가 이게 만들어질 영화였나 싶기도 하다. ‘하늘이 돕나, 유미 씨가 돕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프레시안 : 돈이 끊길 때쯤 해서 누군가가 우연히….

김태윤 : 그뿐만 아니라 어려운 일이 생기면 계속해서 전화위복이 되더라. 딸 역을 맡았던 여배우가 촬영을 일주일 앞두고 중간에 하차했는데, 더 좋은 배우가 나타난다든지. 촬영하러 갔는데 ‘이 장면에서 비가 오면 좋겠다’ 하면 비가 오고, ‘오늘은 눈이 오면 좋겠다’ 하면 눈이 왔다. 그런 일이 자꾸 벌어지니까 나중엔 ‘괜찮아. 좀 기다려 봐. 좋아질 거야’ 이렇게 생각하게 되더라. 그렇게 기다리면 정말 더 좋아졌다. 배급사 만난 것도 그렇다. 처음 몇 팀 만났는데 잘 안 됐다. ‘기다려 봐. 더 좋은 팀 나타날 거야’ 하니까 정말 더 좋은 팀이 나타났다.

프레시안 : 감동 받았을 때는 언제였나.

김태윤 : 우리가 속초에서 마지막 장면을 찍었다. 이종란 노무사와 아버님, 어머님이 쫑파티 때 오셨다. 황유미 씨 역할을 했던 희정이가 황상기 아버님과 만났는데 그때 나를 비롯해서 다들 울었다. 그 모습을 보는데 ‘내가 이런 장면을 보려고 이 영화를 시작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쫑파티'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며 김 감독은 '촬영을 마친 회식 자리에 찾아오신 황상기 아버님과 어머님, 딸 역의 박희정 배우. 이 영화의 진짜 마지막 컷입니다'라고 적었다. ⓒ김태윤

프레시안 : 제작두레 형식으로 후원자를 모집한 과정도 독특하다. 고등학생이 올린 편지부터 별별 게 다 있더라. 기억에 남는 후원자도 있나?

김태윤 : 슈퍼마켓 하시는 분이었는데, 150만 원어치 간식을 봉고차에 실어 오셨다. 아내가 매그나칩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돌아가셨던 분인데, 많이 기억에 남았다. 또 영화 찍을 때 엑스트라가 필요한데 돈이 없어서 모집했다. 원주에서 촬영하는데 후원자 몇십 명이 대구에서, 인천에서 원주까지 직접 오셔서 이틀에 걸쳐서 엑스트라 연기도 해주셨다. 그런 분들이 기억에 남고 고맙다.

프레시안 : 영화 만드는 과정에 우여곡절이 많았다는데, 어느 정도로 힘들었나? 정말 춥고 배고프고 라면 끓여 먹을 정도였나?

김태윤 :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래도 촬영 현장은 쾌적했다. 영화 스태프도 노동자인데, 임금 떼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막내부터 다 임금을 정산했다. 대신 감독이나 촬영감독 등은 받지 말거나 나중에 받기로 했다.

프레시안 : 받았나?

김태윤 : 나는 반 정도 받았다. (웃음) 촬영도 하루 12시간 이상은 안 했다. 근로기준법을 자체적으로 준수하자고 했다.

프레시안 : 다른 영화는 그렇게 안 하지 않나. 밤샘 촬영을 강행한다든지.

김태윤 : 어우. 너무 힘들다. 그건 사실 너무 비인간적이다. 스태프들이 촬영할 때 그런 면에서 좋아했던 것 같다.

삼성에 대한 생각

프레시안 : 전자산업의 직업병 문제는 꼭 삼성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삼성이라는 기업이 주는 분위기가 있다. 소위 말하는 ‘무노조 경영’으로 대변되는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이 사건이 언론에서 주목을 많이 받았다. 삼성이라는 기업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은 어떤가.

▲ 한국에서 '삼성 직업병'이란 '한국 사람의 양심과 직결되는 문제'다. ⓒ프레시안(최형락)
김태윤 : 한국 사람의 양심과 직결되는 문제다. 삼성이 우리를 먹여 살린다고 생각하고 삼성이 없으면 망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삼성이 우리나라 대표 기업이고, 반도체가 수출품이다 보니 (직업병 문제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다른 현장과는 다른 느낌이 온다.

프레시안 : 게다가 세련된 느낌도 있고.

김태윤 : 그렇다.

프레시안 :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이 영화는 아직도 진행 중인 사건을 소재로 했다. 최근 삼성전자에서 일하다가 뇌종양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인 한혜경 씨가 ‘산재 인정 소송’에서 패소하고 우셨다. 영화와는 별개로 직업병 인정 문제에 대한 생각을 들려 달라.

김태윤 : 어쨌거나 이건 국가 잘못이다. 자본이나 대기업은 이윤 창출이 가장 큰 목적이다. 국가가 관리 감독하고, 힘의 균형을 잡아줘야 한다. 그런데 검증 제도가 제대로 안 돼 있고, 산재 입증 책임을 노동자가 지라는 말도 안 되는 법률 조항도 있다. 이 영화도 대기업을 비판하긴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국가의 시스템 문제다.

<또 하나의 약속>으로 제목 바꾼 이유는?

프레시안 : 최근작이 <잔혹한 출근>이었다. 5년 만에 연출에 돌입했다. 그때 영화 만들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스스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나 심경이 달라졌다고 느끼는지 궁금하다.

김태윤 : 그때와는 비교가 안 되게 많이 성숙해졌다. 그때는 신인 감독이었고 충무로에 들어온 지 4년밖에 안 돼서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소비되는지조차 잘 이해하지 못했다.

요즘 충무로에서 만들어지는 영화 대부분은 대기업이 장악하는 투자사가 다 결정해버린다. 내가 유명 감독이 아닌 한, 투자사가 원하는 시나리오를 ‘주문 생산’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 과정을 4, 5년 겪다 보니 창작자로서 슬럼프가 왔다. 내가 처음에 영화를 왜 하고 싶었는지 생각하던 찰나에 마침 황상기 아버님 이야기를 접했다. 이 이야기라면 시나리오도 잘 쓰고 연출도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딱 들더라.

지금은 어떤 평가라도 달게 받을 수 있다. 내가 쓴 이야기고 내가 연출했으니까. 반면 첫 번째 영화를 만들 땐 제작, 배우, 편집 어느 것도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프레시안 : 지금 영화가 진짜 내 새끼 같은 그런 애착 있는 영화겠다.

김태윤 : 사실상 데뷔작이라고 봐도 된다. 촬영 과정은 어느 영화나 힘들지만 찍는 내내 마음만은 좋았다. 많은 분이 영화를 찍어줘서 고맙다고 하지만, 사실 이 영화의 최대 수혜자는 나다.

다만, 나는 사회 정의나 무슨 사회 개혁과 변혁을 위해서 영화 만드는 것은 가짜 같다고 생각했다. 영화감독이 투사는 아니니까. 황상기 아버님이나 이종란 노무사처럼 싸우는 분들이 있고, 나는 그분들의 영화를 만드는 사람일 뿐이다.

▲ 김태윤 감독.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제목을 <또 하나의 가족>에서 <또 하나의 약속>으로 바꾼 것도 공감을 얻기 위한 작업의 하나로 봐도 되나.

프레시안 : 그렇다. 나쁜 놈 하나 만들어놓고 ‘저놈이 우릴 괴롭히고 있으니 저들이 없으면 우리가 잘산다’는 식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건 가짜 같았다. 삼성이라는 기업은 '절대악'이 아니다. 거기에 일하는 노동자도 있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분들이 계시다.

그런데 ‘또 하나의 가족’이란 제목 달면 그렇게(삼성을 비판하는 영화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영화를 보면 또 실망한다. 그리고 실무진에선 시사회를 잡으려고 해도 (제목을 그렇게 달면) 극장 직원들이 (극장 공간을 내주기) 무서워한다더라. 스스로 쫄은 것이다.

프레시안 : 왜 그럴까?

김태윤 : 모르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뭔가에 대해 무서워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정권이든 대기업이든. 나는 가진 게 없어서, 잃을 게 없어서 그런가. (웃음)

프레시안 : 이 영화뿐 아니라 실화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주목받는 것도 사람들이 근거 없는 두려움을 갖도록 한 사회 분위기와 연관이 있을까.

김태윤 : 굉장히 그렇다. 영화는 사회의 거울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영화와 지금 영화들이 너무 다르다. 그때는 박찬욱, 봉준호 감독이 장르 영화를 만들었다. 사회성이랑 별 상관없는 영화가 나오고 히트했는데, 지금은 장르 영화에도 사회가 다 들어간다. 그게 작가의 무의식이든 개인의 무의식이든 지금 사회가 어지럽다는 생각이 반영된 결과 같다. 가장 핵심을 찌른 건 <변호인> 같은 영화일 것이고.

“제작두레 수익, 반올림에 후원할 계획”

프레시안 : <또 하나의 약속>이 <변호인>과 비견되기도 하던데.

▲ <또 하나의 약속> 메인 포스터.
김태윤 : 규모 면에서 비교가 안 돼서…. 농담으로 우리끼리 관객 수가 변호인의 10분의 1만 됐으면 좋겠다고 한다. 다들 만들어진 것도 기적이고 개봉도 기적이라고 얘기한다. 다만 우리가 제작두레로 받은 돈이 3억 원 정도인데, 손익분기점이 넘어야 그 수익을 반올림에 후원할 수 있다. 못 넘으면 못 드린다.

프레시안 : 스크린은 많이 확보했나?

김태윤 : 배급사 목표가 300개인데 과연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직 모른다. 개봉 2주 전에 확정된다더라. 300개를 목표로 잡은 이유는 멀티플렉스에 스크린이 하나씩 걸리면 그 정도라고 해서다.

사실 우리도 지금 불안하다. 어떻게 될지. 광고를 틀고는 있는데 스크린 개수랑 연결되는 건 아니다. 동네 멀티플렉스에 ‘그 영화 언제 개봉하나요?’라고 문의 전화가 많이 오면 극장에서 많이 반영한다더라. 아니면 N사나 D사 같은 포털 사이트에서 영화 예고편 댓글 수나 조회 수 등을 많이 따진다더라.

프레시안 : 영화의 실제 모델인 황상기 씨나 반올림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지?

김태윤 : 다행히도 그분들이 보고 좋게 평가해주시고 정말 좋아해 주셨다. 그래서 ‘일단 첫 번째 목표는 됐다’고 생각했다.

프레시안 : 앞으로 계획을 들려 달라.

김태윤 : 영화가 흥행이 잘 되면 대안적인 영화를 만들 투자조합을 생각하고 있다. 거창한 건 아니고 이 영화에 투자하신 분과 같이 주류에서 만들어지지 못하는 영화들을 <또 하나의 약속>처럼 대중적으로 풀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이런 소재의 영화일수록 많은 사람이 봐야 의미가 생긴다. 그런데 대중도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려면 안정적인 자금이 필요하다. 이 영화는 기적처럼 모아서 어떻게 만들었는데, 다음 영화도 이렇게 만들라고 하면 못 만들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선 이 영화가 흥행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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