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내에 국회법 개정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1일 오전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당 지도부는 유승민 원내대표 등 원내지도부를 향해 집단 비판을 퍼부었다. 친박(親박근혜)계 서청원·이정현 최고위원은 물론 이인제, 김태호 최고위원도 날이 서 있었다. 이정현 최고위원은 "책임이 필요하다면 책임 문제도 생각해볼 일"이라는 말까지 꺼냈다. 유 원내대표는 "그럴 일이 오면 언제든지"라면서도 국회법 재개정엔 대해선 말을 아꼈다.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은 "이 법이 통과된 지 3~4일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서 야당은 현재 시행 중인 시행령을 모두 손보겠다고 칼을 빼 들었다"면서 "가관"이라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공무연연금 개혁법을 처리하라고 했더니 국민연금까지 밀렸다. 게다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시행령(시행령에 대한 국회의 시정 요구 권한을 높인 국회법 개정안)까지 동의해줬다"면서 "그래놓고 아무 문제가 없다?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하다간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불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조해진 원내수석부대표가 전날 "지금까지 시행령이 국회가 발의한 법이 위임한 범위를 벗어나 입법 취지를 무력화시키도록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시정 '요구'의 권한만 가진 이번 개정안에 큰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문자를 당 소속 의원들에게 전송한 것 등을 문제 삼은 발언이다. 조 원내수석부대표는 다만 이날 회의에선 발언을 하지 않았다.
서 최고위원은 이어 "아무리 절차를 밟아 통과시킨 개정안이라도 부작용과 오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을 우리 당이 이제 만들어야 한다"면서 "지금까지처럼 안일하게 적당히 넘어가려다간 시행령 개정을 하지 않는다며 야당이 발목을 잡고 국회가 한 치도 나갈 수 없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고도 주장했다.
김태호 최고위원은 "청와대는 청와대대로 여당은 여당대로 국민을 상대로 자기주장이 옳다는 듯이 여론전을 펴는 형국"이라면서 "가슴이 답답하다"는 말로 발언을 시작했다. 그는 "집권 여당과 정부, 청와대는 공동 운명체인데, 지금 책임지는 모습은 간 곳 없고 상대방에게 화살을 겨누며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하류 정치의 일단을 보이고 있다"면서 "그간 당정 협의는 뭐하려고 했나. 당·정 정책조정협의회 무늬만 있었던 건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최고위원은 유 원내대표를 정조준해 작심 비판을 꺼내놓기도 했다. 그는 "유승민 원내대표께 한 말씀 드리겠다. 참다가 참다가 말씀드린다"고 하더니 "유승민 체제 출범 이후 청와대와 당의 갈등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협상 결과가 늘 당·청 간의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다"면서 "죄송하지만 개인적 소신인지 모르겠는데 증세 문제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 모든 게 (당·청) 갈등으로 비치고 있다. 원내대표의 자리는 개인의 자리가 아니라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자리"라고 말했다.
이인제 최고위원은 '민주화 이후 정치 체제에서도 대통령은 여당의 최고 지도자'라는 내용으로 비판 릴레이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는 "과거 권위주의 시절 당이 대통령과 행정부의 사실상 시녀 역할에 머물렀던 것에 대한 반성으로 민주화 이후 대통령을 당헌상 총재에서 밀어냈다"면서 그렇다고 "대통령이 당에 대한 특별한 지위가 없다고 잘못 생각하는 면이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 최고위원은 이어 지난달 2일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불발 때의 상황을 재거론했다. 그는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란 사회적 합의기구 타협 수용과 관련해 (당 지도부에) 청와대와 전략적으로 공감대가 있는가 여쭤봤지만 명쾌한 답변 듣지 못했다"면서 "그런데 나중에 들어보니 청와대 정무비서관이 마지막에 단호하게 반대했다고 한다"면서 당·청 입장 조율 실패를 강조했다.
그는 또 "지금이라도 원내사령부와 당 대표는 무슨 수를 쓰건 청와대와 전략적 대화 채널을 구축해야 한다"면서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청와대를 찾아가십시오. 방문을 하건 비서실장 통해 채널을 구축하건 사후 수습 문제를 함께 책임지고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정현 '책임론' 제기…이인제 "대통령은 당의 최고 지도자"
친박계 대표 의원인 이정현 최고위원은 원내 지도부의 '책임론'을 꺼내들었다. 그는 "이것(국회법 개정안)은 상식과 원칙 벗어나고 국가 근간을 흔드는 문제"라는 과격한 주장을 하더니 "이렇게 접근한 과정과 그 뒤 대처한 모든 부분에 대해서 한 번 정도 살펴볼 문제라고 본다. 또 이 문제에 대해서 책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책임 문제도 생각해 볼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최고위원은 이어 "당장 시급한 게 있다면 개정안이 강제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명확히 하는 것"이라면서 "우리리 원내대표단은 강제성이 없다, 법적 의무가 없다, 현행법과 큰 차이가 없다는 내용으로 그간 입장을 밝혀 왔다. 그럼에도 앞으로 계속 문제가 커질 수 있는 사안이므로, 야당과 협의해 강제성 여부에 대한 (공동)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게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이날 오전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개정된 국회법을 통과시킨 여당과 야당이 해당 조항에 강제성이 있다 없다를 두고 의견이 갈리고 있어 국민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면서 "강제성 유무에 대한 (여야) 입장이 통일돼야 한다"고 밝힌 것과 동일한 요구다.
당 최고위원들의 이 같은 비판이 이어지자 김무성 최고위원은 회의를 비공개로 전환하기 전 "오늘 국회법 개정과 관련해 많은 주장이 있었다.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 수습책 잘 만들어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전에 한 처음 발언에는 국회법 재개정안에 대한 언급은 없었으나, 뒤늦게 한 마디를 꺼낸 모습이다.
십자포화를 맞은 유승민 원내대표와 조해진 원내수석부대표, 그리고 원유철 정책위의장 등 원내지도부는 이날 공개 석상에서 관련 발언을 일절 하지 않았다. 유 원내대표는 옆자리에 앉은 최고위원들의 날 선 비난이 계속되는 가운데 입술을 꼭 다문 채로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유 원내대표는 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된 후에도 국회법 재개정에 대한 최고위원들의 요구에 대해 별다른 답변을 내놓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김 대표는 이번 일이 특정인에 대한 문제가 아니고 법과 관련한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며 수습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회의 후 기자들을 만나서는 만나서는 "균형있는 헌법학자들을 불러 이 부분이 위헌인지 아닌지 논의하는 과정을 거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유 원내대표는 이 최고위원이 거론한 '책임론'에 대한 입장을 취재진이 묻자 "그럴 일이 오면 언제든지"라고 짧게 답했다. 그는 "저희 입장은 (국회의 시정조치 요구에는) 강제성이 없다는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한 후 "그 문제(국회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오늘 이야기하지 않겠다"며 말을 아꼈다.
새누리당 최고위원들의 이날 집단 비판은 '청와대 눈치보기'이자 '책임 미루기' 성격이 강하다. 지난달 28일 여야 원내지도부가 국회법 재개정 합의에 도달한 후, 이에 대한 당내 추인 절차 과정에서 새누리당 최고위원회는 의원총회에 모든 결정을 위임했다. 그리고 이어진 의총에서 당내 대다수 의원들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부 의원들이 '위헌 소지'를 제기했으나 결과적으론 유 원내대표에게 결정 권한을 위임키로 하고 회의를 끝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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