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해묵은 질문이자 절박한 과제이다. 그런데 똑 부러지는 해법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한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협상을 줄곧 주장해왔지만, 외교다운 외교가 실종된 지는 오래다. 그래서 북핵 협상론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상주의로 간주된다. 하나는 협상 자체가 이상론이 되고 있고, 또 하나는 협상을 하더라도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기 힘들다는 것이다.
북핵과 관련해 최근 접한 글 가운데 <조선일보> 양상훈 논설위원의 주장이 흥미롭다. 좌충우돌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5월 21일자 칼럼에서 '공포의 균형론'을 들고 나왔다. 한반도 평화가 위협받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이 남북한 사이의 '공포의 불균형'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북핵 대처 방안으로 세 가지 축을 제시한다. 제1축으로 북한 지휘부 제거, 제2축으로 한국의 핵무장 선택권 천명, 제3축으로 킬 체인 및 미사일 방어체제(MD)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양상훈 위원은 불과 3개월 전에는 전혀 다른 주장을 내놓은 바 있다. "미국은 핵에 비핵으로 대응할 수도 있는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며, "핵에 핵으로 맞설 수 없는 우리의 희망도 결국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비롯한 MD의 요격율이 비약적으로 높아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MD와 함께 "사전 타격 능력도 배가되면 핵의 군사적·정치적 절대성은 지금 같을 수 없다"고 썼다. "이렇게 남쪽에 드리울 북핵의 그림자를 줄여나가면 언젠가 예상을 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주도의 MD를 비롯한 맞춤형 억제에 적극 참여하고 엄청난 국방비를 쏟아 부어서라도 한국형 MD와 킬 체인 구축에 박차를 가하라는 주문이었다.
그런데 5월 21일자 칼럼에서는 킬 체인과 MD를 제3축이라며 후순위를 물려놓고 김정은 등 북한 지휘부 제거와 독자적인 핵무장을 우선적인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진정한 한반도 평화는 북이 자기들 핵의 효용성에 대해 실망하게 될 때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며 "공포의 균형은 그 필수 조건"이라는 것이다.
두 '조선'의 북핵 부풀리기
양상훈 위원이 '공포의 균형론'을 제기하고 있는 배경은 김정은이 핵을 앞세워 공포심을 조장하려는 전략에 대한 대응책에 있다. 양 위원은 김정은은 "핵폭탄을 쓸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조성"해서 정치·경제적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지만, 정작 "한국 사회는 무덤덤하다"고 진단한다. 이를 두고 그는 "북으로선 매우 실망스러운 현상이다"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진단에 따르면 한국은 북한의 핵 위협 발언에 차분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게 북한의 전략에 말려들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조선일보>가 앞장서서 북핵 위협을 유포하고 국민들에게 공포심을 조장하려고 한다. 때때로 이 신문사의 지면과 인터넷, 그리고 TV조선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북핵 관련 뉴스를 보면 북한 매체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 물론 그 의도야 북한을 이용한 안보 상업주의에 있겠지만, 불필요한 공포심 조장이 북한의 심리전을 돕는 측면도 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안보에 대단히 해로운 보도 양태가 아닐 수 없다.
미국에 대한 맹신과 불신의 교차
양상훈 위원의 글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미국에 대한 '맹신'과 '불신'의 교차이다. 그는 2월 26일자 칼럼에서 미국의 MD를 비롯한 비핵 능력의 놀라운 성장에 힘입어 북핵에 비핵으로 맞설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군사 기술에 대한 숭배와 안보 공약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가능한 말이다.
그런데 5월 21일자 칼럼에서는 핵에는 핵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며 독자적인 핵무장론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미국의 핵우산 정책에 대한 불신과 한반도 군사 현실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온 것이다. 엄밀히 말해 한반도는 미국과 북한의 '핵 대 핵'이 맞서는 공포의 균형에 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핵이 미덥지 못해 독자적인 핵무장론을 주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한국의 핵무장 대가는 참혹할 것이다. 한국의 미래가 북한의 현재처럼 되는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 핵무장 추진시 직면하게 될 국제적 고립과 경제적 궁핍화, 그리고 남남 갈등 및 안보 딜레마로 인한 안보 불안에서 한국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가 양상훈 위원의 3개 축 주장을 빌려 대안을 제시하면 이렇다. 제1축은 남북 관계 개선이다. 북핵이라는 '존재'는 남북한의 '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북한을 제외한 핵 보유국으로부터 핵 위협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이들 나라의 핵 전력이 약해서가 아니다. 관계론적으로 그들 나라가 우리를 핵 공격할 이유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남북 관계도 마찬가지로 풀어야 한다.
제2축은 '단호하면서도 절제 있는 대북 억제의 유지'이다. 북한보다 30배나 많은 군사비를 쓰고 있고 세계 최강 미국과 동맹 관계에 있으면서 대북 억제력이 부족하다는 주장은 무능을 자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적 행위'로 지적한 방산 비리를 포함한 무기 비리를 근절하고 한미 동맹을 보다 균형 있게 발전시키면 현재의 국방비로도 대북 억제력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제3축은 핵 협상 재개이다. 7년째 산소 마스크를 쓰고 있는 6자 회담을 재개하고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은 한반도 평화 협정 협상을 개시하면 북핵을 상당 부분 관리할 수 있다. 우선 북핵 동결을 이루고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 수준에 걸맞게 폐기 협상을 진행하면 북핵 해결도 결코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이건 시도해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