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사출 시험에 성공했다고 주장한 이후 이에 대한 갖가지 추측들이 나오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시험 발사가 아직 완성된 단계가 아니라고 평가하고 있지만, 국내 언론들을 비롯해 일부 안보 전문가들은 이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도 무용지물이 됐다면서 새로운 안보 자산을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정말 SLBM 사출 시험에 성공한 것일까?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번 사출 시험이 "SLBM으로 가기 위한 초보 단계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면서도 실제 실전에 배치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핵탄두의 소형화·경량화 달성뿐만 아니라 SLBM을 실을 잠수함도 건조해야 하는 등 실전 배치까지는 거쳐야 할 과정이 많다는 것이다.
정 전 장관은 SLBM의 실효성보다, 왜 북한이 이 시기에 SLBM 사출 시험을 공개했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출 시험이 미일 방위 협력 지침이 개정됐다고 발표한 이후에 공개됐다며 "북한은 미군이 일본 자위대를 데리고 인도양을 가든 지중해를 가든, 어디를 가든 상관없는데 자기들(북한) 핑계 대고 동해나 서해에 일본군 나타나는 꼴은 못 보겠다"는 메시지를 미국에 전달하기 위해 공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 전 장관은 시험 장면이 공개된 날짜가 5월 9일이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은 러시아에서 제2차 세계 대전 승전 기념식이 열린 날"이라며 "북한이 러시아에도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국가정보원이 숙청됐다고 발표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앞두고 사전에 러시아를 방문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은 이때 러시아와 군사 기술 문제를 협조하려고 한 것 같다"며 "그런데 이게 잘 풀리지 않아서 김 제1위원장이 러시아에 가지 않았다면 북한은 러시아에 시위하는 의미로 SLBM 사출 시험을 공개한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즉 "러시아 너희들이 기술 지원을 해주지 않아도 우리는 이런 것을 할 수 있다"는, 러시아의 지원이 없어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공개한 것일 수 있다는 관측이다.
한편, 북한의 SLBM 사출 시험 공개와 현영철 숙청 등 남북 간에는 긴장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스승의 날 기념식 때 공개적인 자리에서 현영철 숙청을 거론하면서 북한이 공포 정치로 국제 사회를 경악하게 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여기에 발끈한 북한은 박근혜 대통령의 실명 비난을 재개했다.
남북 간 민간 교류를 늘려가겠다고 밝혔음에도 박 대통령이 이러한 언급을 한 것을 두고 정 전 장관은 "대통령이 저렇게 말해버리면 정부 당국의 남북 관계 개선의 진정성이 허물어져 버리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박 대통령이 이를 모를 리가 없다"며 "겉으로는 남북 관계 개선을 이야기하지만 본심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진단했다.
정 전 장관은 "내치, 외교 등 전반적으로 국정 운영이 잘못되고 있다는 비판이 많아지는 상황에 대해 불안감이 생겨서 북한에 화살을 돌리는 측면도 있다고 본다"며 "북한이 사고 쳐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면 정부에 대한 비판이 사그라지지 않겠나"라고 꼬집었다.
인터뷰는 지난 19일 서울 동교동에 위치한 김대중 도서관에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프레시안 :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사출 시험에 성공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은 정말 SLBM 발사에 성공한 것일까요?
정세현 : 일단 SLBM으로 가기 위한 초보 단계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럴 계획이 없었다면 사출 시험을 할 필요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남한의 언론들은 마치 이것이 SLBM 개발에 성공한 것처럼 대서특필을 해버렸습니다. 북한이 이미 SLBM을 보유했으니 이제 큰일 났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도록 언론들의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이건 결과적으로 북한을 도와주는 일밖에 안 됩니다.
물론 SLBM이 2차적으로 남한에 위협이 될 수는 있습니다. 정말 SLBM이 개발 돼버리면 잠수함 속에 그런 위험한 무기를 싣고 다니면서 언제 어디서 쏠지 모르기 때문에 긴장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레이더로도 감지가 안 되는 지점에서 쏘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우선 SLBM을 쏘려면 3000톤급 이상 잠수함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북한이 아무리 플루토늄과 핵폭탄 기술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이 정도 크기의 잠수함이 없으면 SLBM은 무용지물입니다. 그런데 이런 잠수함을 만들려면 별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우리야 돈 있으면 무기를 사는 입장이지만, 북한은 자체 개발해야 하지 않습니까.
또 SLBM은 물속에서 쏘는 것이기 때문에 지상에서 쏘는 것보다도 핵 탄두가 경량화, 소형화돼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SLBM에 실을 수 있는 핵탄두는 600킬로그램 미만이 돼야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 북한이 핵실험을 3번 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2006년에 했던 첫 번째 실험에서 폭발력이 원래 목표의 10분의 1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럼 나머지 2번의 실험만으로 경량화, 소형화를 달성해야 한다는 말인데, 이게 가능할까요?
인도나 파키스탄의 선례를 놓고 볼 때 8~9번 정도의 핵실험이 필요합니다. 북한이 핵실험을 2~3년에 한 번씩 하고 있고 앞으로 5~6번을 더해야 한다고 계산해보면 짧게는 10년에서 길게는 18년까지 걸릴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그럼 북한은 왜 이 시기에 SLBM 사출 장면을 공개한 것일까요?
정세현 : 북한이 사출 장면을 공개한 시점은 미일 방위 협력 지침이 개정됐다고 발표한 이후입니다. 이 지침으로 일본 자위대는 미군의 후방 지원이라는 명분만 붙일 수 있으면 동해, 서해도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상황이 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사전에 이를 견제하고 엄포를 놓기 위해 SLBM 사출 실험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미국에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겁니다. 미군이 일본 자위대를 데리고 인도양을 가든 지중해를 가든, 어디를 가도 상관없는데 자기들(북한) 핑계 대고 동해나 서해에 일본군 나타나는 꼴은 못 보겠다는 겁니다.
사실 남북 모두 36년 동안 일본의 식민 통치를 받았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감정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스포츠 경기에서도 한일전이 벌어지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정서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 언론에서도 일본군이 남한의 지상이나 해역, 영공으로 출병하는 것을 걱정하고 있는 마당에 북한도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은 전 세계 여러 곳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조그마한 충돌이 국지전으로 번지는 것을 될 수 있으면 막으려고 합니다. 그에 비해 일본은 자신들의 경제 대국 지위에 걸맞은 군사 대국화를 세계 만방에 확실히 고하고 이를 기정사실로 하려는 속셈이 있습니다. 북한은 그 꼴은 못 봐주겠다는 겁니다. 그런 뜻에서 수중 사출 시험을 진행한 측면이 있습니다.
공개한 날짜에 주목할 필요도 있습니다. 북한은 5월 9일 이 사진을 공개했는데 이날은 러시아에서 제2차 세계 대전 승전 기념식이 열린 날입니다. 러시아에도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의 상황과도 연결지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현영철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방러를 앞두고 사전에 러시아에 방문했습니다. 이때 북한은 러시아와 군사 기술 문제를 협조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현영철은 러시아에 다녀온 이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가 뭔가 잘못해서 숙청됐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완전히 처형된 것인지, 과거에 다른 간부들처럼 몇 달 동안 노동 교화형을 받고 근신하고 있다가 다시 돌아올지는 모르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 사라진 것은 분명합니다.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러시아와 SLBM 관련 기술 지원 문제를 논의하다가 이게 잘 풀리지 않아서 김 제1위원장이 러시아에 가지 않았다면, 북한은 시위적인 성격의 발사를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러시아 너희들이 기술 지원을 해주지 않아도 우리는 이런거 할 수 있다'는, 즉 러시아에서 지원해주지 않아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공개했을 수도 있습니다.
마치 박근혜 대통령이 조윤선 정무수석을 해임하면서 국회에 연금 법안 문제 처리에 대해 압박을 넣은 것처럼, 북한도 현영철을 잘라냄으로써 러시아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을 수 있습니다.
대내적으로는 이런 행위들이 오는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성과적으로' 빛내는 하나의 과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는 10월에는 이번에 발사한 것보다 좀 더 높이 올라가게 만들어서 지난번보다 성능이 개선됐다면서 조선중앙TV 아나운서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하면 북한 지도부로서는 쓸 만한 70년 기념물이 되는 겁니다.
이런 것에 우리가 과잉 대응하면 안 됩니다. 북한이 SLBM 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이야기에 놀라서 대북 군사적 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무기를 갖춰야 한다면서, 심지어는 사드도 소용이 없다는 이야기가 벌써 나오고 있는데, 우리가 이런 식으로 반응하면 북한은 "남한 사람들 가지고 놀기 참 좋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실체적 진실을 제대로 봐야 합니다. 사출 시험을 할 때 옆에 예인선이 하나 발견됐는데, 그 예인선은 왜 그 자리에 있었을까요? 잠수함이 제 힘으로 가지 못하고 예인선에 끌려가기라도 한 것일까요? 북한에 2000톤급 신포 잠수함이 있다고 하는데, 여기서 쐈는지 아니면 예인선이 끌고 온 다른 시설이나 기구에서 쏜 것인지 확정지을 수 없는 상황인 겁니다.
북한이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군사적인 행동에 착수할 때 인공위성이 지나가는 시간까지 알고 움직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자신들의 행위가 일부러 포착되려고 그렇게 한다는 겁니다. 구름 낀 날, 인공위성이 지나간 시간 등에는 움직이지 않다가 위성이 통과하는 시간에, 손님 맞이하듯이 시험을 진행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시험했다는 시간대에 인공위성이 동해상으로 통과했는지, 다른 과학 정보 장치는 무엇을 했는지도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SLBM을 보유하는 것이 아직은 이르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게 실체적이고 불편한 진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보 당국에서 보기엔 미국 내 군사 전문가들이 너무 입바른 소리를 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걸 잘 활용해서 대북, 대중 압박 구실의 명분으로 삼고 아시아 전략을 강화시켜야 하는데 미국 국방부나 국무부, 백악관 입장에서 보면 이 전문가들은 실체적 진실을 이야기하는 철없는 집단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박근혜, 겉으로는 남북 관계 개선 이야기하지만…
프레시안 : 현영철 숙청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정말 처형당한 것일까요?
정세현 : 좀 더 두고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록 영화나 매체에서 흔적이 없어졌다면 당분간은 모습을 볼 수 없겠지만, 계속 나오고 있다면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좀 달리 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사실 북한의 고위 간부 중에 노동 교화형에 보내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전에 인민무력부장을 맡고 있다가 김정일 권력 승계를 반대했다고 해서 10년 이상 보이지 않았던 최광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현영철도 러시아에 대한 불쾌감 표시 용도로 일단 공식 석상에서 배제시키고 나중에 다시 돌아오게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박근혜 대통령도 조윤선 정무수석을 내치는 모양새가 됐지만, 아예 버린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프레시안 : 한편으로는 현영철 숙청이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습니다.
정세현 : 북한 김정은 입장에서 볼 때는 황병서나 현영철이나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대상입니다. 장기판의 '졸(卒)'이라고 할 수 있죠. 물론 북한 내부에서 자기들끼리는 서열이 있고 권력 투쟁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래 봐야 한계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를 체제 불안의 징후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김정은에게 더 충성스럽게 보이려는, 더 높은 자리에 도달하기 위한 사람들끼리의 권력 투쟁 정도입니다. 조선 시대 때 임금 자리는 건드리지 않고 당파들끼리 서로 명분을 찾아서 다른 당파를 없애는 일종의 '사화'같은 것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인 겁니다.
김정은 입장에서 2, 3인자는 얼마든지 교체할 수 있는 대상입니다. 예를 들어 박정희 대통령도 절대 '넘버 2'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실세라고 소문나면 적당한 선에서 자르고, 다른 사람 내세우고 자기들끼리 견제하게 만들었습니다. 김정은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레시안 : 현영철 처형이 첩보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이 이렇게 서둘러 발표한 것에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습니다. 남북 간 접촉 움직임에 대한 견제구를 던진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정세현 : 김정은이 공포 정치를 하는데 쓸데없이 남북 교류나 왕래는 왜 하느냐는 견제구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도 북한과 잘해봐야 국내 정치에 도움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이런 식의 언론 플레이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총리 낙마에 지지율도 답보 상태니 이럴 때는 차라리 집토끼나 제대로 지키는 것이 낫다고 판단을 하고 스승의 날 기념식 때 북한의 공포 정치 때문에 국민들이 경악한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라고 봅니다.
박 대통령의 이 발언에 북한이 또 발끈하고 나섰습니다. 험악한 언사를 써가면서 대통령 비난에 열을 올렸습니다. 정부가 한미연합군사훈련도 끝났으니까 작은 것으로 시작해서 큰 것을 이루는 '이소성대(以小成大)'의 마음으로 민간 차원 대북 지원 좀 풀어주고 방문하는 것도 열어주면서 당국 차원의 관계 개선까지 가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분위기는 썩 좋지 않다고 봅니다.
북한도 대내 통치 차원에서 남북 간 웃고 떠들고 깃발 흔드는 모양새를 만들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을 했을 것입니다. 통일전선부의 상당히 많은 역할과 업무가 국방위원회 정찰총국으로 넘어갔다고 하는데, 강경파들은 통전부 라인이 자꾸 6.15니 8.15니 이야기하고 다니는 것이 맘에 안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또 6.15, 8.15에 역량을 분산시킬 것이 아니라 10.10에 집중시켜야 한다는 의도도 있을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현영철 숙청과 북한의 SLBM 사출 시험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스승의 날 기념식에서 북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현영철 숙청을 거론하면서 북한이 공포 정치로 국제 사회를 경악하게 하고 있다고 발언했는데요. 이후 북한이 여기에 반발하고 있구요. 박 대통령이 이런 식의 발언을 한 의도가 무엇일까요?
정세현 : 통일부를 비롯해서 정부는 남북 간에 뭔가 숨통을 터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있고 실제 움직임도 있습니다. 민간에서도 그런 차원에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저렇게 말해버리면 정부 당국의 남북 관계 개선의 진정성이 허물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이걸 박 대통령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남북 관계 개선을 이야기하지만 본심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내치, 외교 등등 전반적으로 국정 운영이 잘못되고 있다는 비판이 많아지는 상황에 대해 불안감이 생겨서 북한에 화살을 돌리는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북한이 사고 쳐주기를 바라는 겁니다. 그러면 정부에 대한 비판이 사그라지지 않겠습니까? 박 대통령이 "이럴 때일수록 국민이 단결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했다는데 북한 발 사고가 등장하면 국민들은 단결합다.
예를 들어 부모한테 맞아 죽게 사고 친 자식이 이럴 때 "동네에 불이나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습니까? 부모한테 된통 혼날 것이 예상돼있는 자식의 입장에서는 동내 불이든, 손님이 오든 자신의 잘못을 일단 무마할 수 있는 다른 상황이 생기길 바라게 됩니다. 박 대통령도 이러한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6.15, 8.15 공동 행사, 장소 문제로 성사되기 어려울 것
프레시안 : 그런데 이렇게 남북 간 긴장이 높아지면 6.15 공동 행사뿐만 아니라 8.15 행사도 힘들어지는 것 아닌가요?
정세현 : 그렇다고 봅니다. 8.15 이후에는 또 다른 한미연합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험악한 말을 주고 받게 될 것이고, 훈련이 끝나면 가을이 되겠죠. 특별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올해가 그냥 지나갈 수 있습니다.
주자의 '우성(偶成)'이라는 시에 나오는 "미각지당춘추몽(未覺池塘春草夢)에 계전오엽이추성(階前梧葉已秋聲) 이라"라는 구절이 떠오릅니다. 봄 풀이 아직 꿈에서 깨지도 않았는데 돌계단 앞의 오동 잎이 떨어져 벌써 가을 소리를 내고 있다는 뜻인데, 올해 봄에는 뭔가 좀 될까 하고 꿈을 꾸고 있었는데, 그 꿈이 깨기도 전에 벌써 가을이 됐습니다. 올해가 이렇게 다 가버리면 내년부터 남북관계에서 뭔가를 해보려고 해도 동력이 생기기 어렵습니다.
장소 문제로 6.15와 8.15행사를 치르기 힘든 상황이라고 하는데, 남북 모두 국내 정치적인 목적 때문에 70주년 8.15 행사를 자기 땅에서 개최하고 싶어 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도 개최 장소 합의를 이루기 어렵습니다.
우선 남한은 8.15 행사를 거창하게 치르고 싶어 합니다. 행사하겠다고 총리와 통일준비위원회 민간 부위원장 등 2명을 준비위원장으로 내세운 상황입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민간을 앞세워 이 행사를 남한에서 할 수 있게 판을 만들어 놓은 뒤 정부 측 행사로 외투를 입히고 싶어하는 겁니다. 남북한이 모인 자리에서 대통령이 나와서 축사하고 민간 차원에서 환영사하고 북측에서 적당한 인사가 참석하고 하면 보기 좋은 모양새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북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8.15 공동 행사가 평양에서 열리면 남쪽 동포까지 행사에 참여했다면서 대대적으로 선전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김정은은 자기 할아버지인 김일성이 70년 전 평양에서 했던 것과 비슷한 모습을 인민들에게 보여주면서 소위 '백두혈통'이 일제로부터 조국을 해방시켰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부각시킬 수 있습니다.
북한은 10년 전, 60주년 8.15 공동 행사를 서울에서 했기 때문에 이번 70주년은 평양에서 하는 것이 순서에도 맞다고 생각합니다. 또 6.15와 8.15 공동 행사는 한 번은 서울, 한 번은 평양에서 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올해 6.15 행사를 서울에서 하자고 하니, 8.15는 평양에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 북한의 입장입니다.
이렇게 양측의 입장이 어느 쪽도 양보하기 힘든 상황이라 당장 6.15 공동 행사 개최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만약 행사가 치러진다고 해도 소수의 인원만이 참석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프레시안 :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의 방북은 어떻게 될까요?
정세현 : 북한은 이희호 이사장의 방북이 여전히 유효하다고는 하지만, 시기적으로 현재 정세가 좋지 않다며 나중에 연락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합니다. 현실적으로 5월 안으로는 불가능하고 현실적으로 6월에도 좀 어렵지 않겠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지금 남북이 긴장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는 형국이라 이 이사장이 방북을 한다고 해도 성과를 내기 어렵습니다. 전임 대통령, 6.15 성사의 주역 중에 한 분인 대통령의 영부인이 왔다는 차원 이외에 또 다른 의미 부여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한국 외교, 영국이 걱정할 지경
프레시안 : 북한이 SLBM 사출 시험 공개,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 등 동북아 정세 긴장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2주 전 중국을 다녀온 <디펜스21플러스> 김종대 편집장이 중국도 국방 강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전해왔습니다. 앞으로 3년 동안 우리의 1년 국방비에 해당되는 400억 달러 정도를 매년 3년 동안 늘리겠다는 보고서를 시진핑 주석에게 보고했다고 하던데요.
그렇지만 일본 자위대가 감히 중국을 핑계 대고 움직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일본이 한반도 유사 상황에서는 출병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여기서의 유사 상황은 북한 붕괴나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일본은 한반도가 불안해지면 바로 자신들에게 영향이 있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명분으로 자위대의 해외 출병과 일본 정상 국가화의 정당화를 추진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이 볼 때는 북한이 반발하는 것이 오히려 좋습니다. 북한도 일본이 자신들을 그렇게 보고 있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허장성세를 부리는 측면도 있습니다.
심지어 나카타니 겐(中谷元) 일본 방위상은 북한이 미국을 때리면 일본이 나서서 미국과 함께 북한을 치겠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이건 언어적인 도발에 가까운데, 북한보고 화를 내라는 이야기입니다. 미일 방위 협력 지침 개정 이후 자기들이 실력 행사를 할 수 있는 첫 이벤트로 북한을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일본은 미국보고 "아 형님 잠깐 계세요. 이건 제가 해결 할게요"이런 식으로 일을 벌여보고 싶다는 겁니다.
프레시안 : 미일 방위 협력 지침으로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은 높아지고 있는데, 이런 부분들에 대해 우리 정책 담당자들의 혜안이 보이지 않습니다.
정세현 : 결국 동아시아 지역의 군사적 긴장도가 자꾸 올라가고 있는 상황이고 우리가 가운데 끼어있는 셈입니다. 해양과 대륙이 붙으면 지진이 나든지 화산이 터지든지 할 것 같은데 정부가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지 답답합니다.
오죽하면 싱가포르에서 이달 말 열리는 아시아안전보장회의(샹그릴라 대화)를 주관하는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의 팀 헉슬리 아시아지부 이사가 "한국 정부도 입장(관점)은 있을 것 아니냐"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제3자가 볼 때도 대미 종속성이 강하다 보니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외교안보팀이 기술이 없는 측면도 있습니다. 실제 미국에 대한 의존이 크다고 해도 그러지 않은 척은 할 수 있는데 그걸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더라도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공개적으로는 거부 또는 반발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그러면서 뒤로 "도와주겠다. 대신 반대 급부는 무엇이냐"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실속있는 것 아닐까요?
우리나라에서 기대할 수 없지만, 도쿄도 지사를 지냈던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와 '마쓰시다 정경숙'을 세운 마쓰시다 고노스케 (松下幸之助)가 공저한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출간 당시 굉장한 베스트셀러였다고 하는데, 그 책이 나오면서 미국이 일본을 만만하게 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이런 생각이 일본의 대세는 아니지만, 감히 미국에 대해 'No'라고 말해야 한다는 주장을 할 정도가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잘못하면 관계가 어그러질 수도 있으니 살살 다루자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한국에도 필요합니다. 한미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자는 것이 아닙니다. 당파를 초월해서 지식인 중에 미국에 'No'라고 말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오히려 정부가 미국과 협상을 하는데 보다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는 겁니다.
프레시안 : 백낙청 선생의 대담집 <대전환의 길을 묻다>에 김연철 인제대학교 교수가 우리 외교를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철학이 없고, 집행 능력이 없으며 국내 정치에만 이용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정세현 : 외교 관료들은 예전에도 철학이 없었습니다. 외교부 사람들이 들으면 기분 나쁠 소리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사실 외교관이 철학이 있으면 대통령이 골치 아픈 부분도 있습니다. 오히려 대통령이 국제 정치나 외교에 대한 확실한 소신이나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지금 정부는 대통령 주변 외교·안보 참모들의 경력이나 전문성에도 좀 문제가 있습니다.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안보실장만 해도 그렇습니다. 미국에서 말하는 '안보'는 국가 방어 개념이 아니라 자기들의 국가 이익을 증대시키는 세계 경영 개념인데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은 안보라고 이름은 붙여놓고 실제로 플러스알파가 더 큰 것인데, 우리는 정말로 안보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 사태 때문에 미국이 집중해야 동유럽에 집중해야 한다면 동아시아 쪽은 안정적으로 관리한다든지, 이런 식의 조율이 미국이 말하는 안보입니다. 그런데 우리 안보는 북한이 도발하면 원점을 때리겠다는 이야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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