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의원은 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프레시안>과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포부는 "호남 정치"의 복원을 통한 "다음 집권"이라고 말했다. '호남 정치'라는 말 때문에 역(逆)지역주의라는 비판이 나오는 데 대해서 그는 못내 억울해 했다. 호남에 대한 차별이 엄연히 있는 상황에서, 그 차별을 해소하자는 것은 '지역주의'가 아닌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요지다.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을 독식하는 정치 구도에서, 지역 내의 경쟁을 통해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는 구상도 강조됐다. 다음 총선에서 새정치연합과의 경쟁을 위해 일종의 무소속 연대, 즉 '뉴 DJ연합'을 만들겠다는 것 역시 이같은 구상의 일부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구상이 곧바로 '신당'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신당 한다'는 말도 틀리고, '신당 안 한다'는 말도 틀리다"는 것. 특히 그는 이른바 '호남 신당', '호남 자민련' 등의 설에 대해서는 "사실 왜곡"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인터뷰 내용을 종합하면, 그가 신당을 만들 조건은 △새정치연합이 "환골탈태"에 실패하고, △이에 따라 대중이 '새정치연합으로는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리는 상황으로 요약된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그는 최소한 총선까지는 광주와 전남에서 '뉴 DJ연합'을 준비하면서 야권의 상황을 주시할 것으로 보인다. 단 그는 "지금까지로 봐서는 (새정치연합의 환골탈태가)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크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 그는 여론의 관심을 모은 지난 17일 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와의 '소주 회동'에 대해서는 "(문 대표가) 아무 얘기도 안 하더라"며 "의미 있는 얘기는 아무 것도 없었다"고 밝혔다. 문 대표와 야권 정치상황에 대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눴는지 물어도 그는 "이미 터놓고 얘기할 사이가 아니"라며 "다른 나라 외교관들끼리의 회담 같은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천정배 신당' 만든다? 안 만든다?…둘 다 틀려, 중점은 다음 집권"
프레시안 : 야권의 상황과 맞물려 정치권의 관심이 '천정배 신당'에 쏠린다. 신당, 만드나?
천정배 : 아니다. '신당 한다'는 말도 틀리고, '신당 안 한다'는 말도 틀리다. 저는 아직 결정을 안 했다는 것이다. '신당 안 한다'는 것도 하나의 결정 아닌가.
이번 재보선에서 저의 공약이 "저를 당선시켜 주시면 '뉴 DJ'들을 모으고 비전을 만들어서 광주 전역에서 새정치연합과의 경쟁이 일어나게 만들겠다. 그러면 광주 시민들은 선택권을 누리게 되고, 야권도 경쟁을 통해 넓어지고 강해질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무슨 지역 당을 만들고 이런 게 아니다. 일단 저것까지는 제가 해야 할 공약이고, 광주에서 (정치적 경쟁을 만드는 작업을) 하다가 여력이 있으면 다른 지역, 예컨대 전남까지 넓혀 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는 있다. 이것이 '무소속 연대'를 뜻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수도권에서까지 할 것인지, 신당까지 갈 것인지는 제가 구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는 호남 정치의 임무는 '자구구국(自求救國)'이라고 얘기한다. '자구'의 길은 내년 총선까지 이렇게 하는 것이고, '구국'의 길은 2년 반 후에 대선에서 개혁정권을 세우는 것 아니겠나.
프레시안 : '뉴 DJ' 발굴이라는 것은 정치 신인 발굴 프로젝트를 의미하는 것인가?
천정배 : 유능하고 개혁적이고 참신하고 시민·국민을 섬기는 사람이 '뉴 DJ'다. 기성 정치인이라고 배제할 이유는 없지만 아무래도 주안점은 신인에 두고 있다. 그러나 기성 정치인도 옥석을 가려야 한다. 이 말을 하는 과정에서 '새정치연합 내에도 좋은 인물이 많다'고 하면서 '반쯤 빼올까' 하고 농담을 했던 것이 기사가 됐는데, 당시 대화 맥락상 이건 그냥 농담이었다.
프레시안 : 호남에서 경쟁 상대가 될 새정치연합이 이 지역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천정배 : 기득권에 취해 있고 무력해져 있다. 이렇게 정리해서 말하겠다. 제가 어떻게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나.
프레시안 : 새정치연합 내부에서의 자체적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인가?
천정배 : 그 동안에도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선거가 끝나고 보니 더더욱 불가능해 보인다. 이제 저도 그 당 소속이 아니니 금도를 지키며 얘기해야겠지만, (새정치연합이) 이번 선거 지고 나서는 정신을 차리던가? 어떤 분이 저에게 '선거 전에는 당신이 탈당하는 게 이해가 안 갔는데, 지금 보니 이해가 된다'고 하시더라.
이렇게 당이 위기에 처해 있고 지지율도 떨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상황을 타개하고 당을 살려볼까 하는 집단적 움직임이 있나? 우리는 과거에 당이 어려우면 쇄신, 정풍 운동이라도 했지 않나. 친노, 비노 이런 게 아니라 당을 정말 걱정하고 살려 보려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움직임이 있냐는 말이다.
프레시안 : 새정치연합 밖을 보면, 정동영 전 의원이나 정의당 등 정치 개혁을 주장하는 야권 내의 다른 세력도 있다. 이들과 연대의 가능성은 있나?
천정배 : 진보정당 세력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한국에서 진보적 가치를 구현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저의 관심은 다음 집권, 2년 반 후에 대선을 이기는 것이다. 아무리 새정치연합이 잘못하고 있어도, 새정치연합을 버리고 진보정당을 키워 다음 정권을 차지하자는 것은 비현실적인 것 같다. 새정치연합이라는 넓은 들판을 버리고 골짜기로 들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국민모임에 가담할 생각이 없었고, 지금도 없다.
다음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하려면 새정치연합을 환골탈태시키든지, 그게 불가능하다면 그 당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 진보정당도 환골탈태를 해서 그런 세력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좋은 분들이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게 정권교체의 길에서 본류가 되긴 어렵다고 본다. 만약 새정치연합이 가망이 없다면 그것을 대체할 만한 좋은 정당을 만들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건전한 진보세력들과 얼마든지 연대할 수 있지만, 제가 큰 흐름에서 벗어나 그 쪽으로 가서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일은 없다는 말이다.
프레시안 : 새정치연합을 환골탈태시키기 위한 촉진제가 천 의원이 강조하는 '호남 정치 개혁'이라는 말인가?
천정배 : 그것만 얘기하면 곤란하다. 새정치연합이 환골탈태를 하면 좋겠지만, 지금까지로 봐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크다. 그러면 새로운 세력을 만들어야 하는 게 시대적 요청이다.
"호남 정치" 라는 이름
프레시안 : 한편 '호남 정치' 복원이라는 기치에 대해 오해도 있다. 호남 정치란 무엇인가?
천정배 : 그간 호남이 한국의 개혁·진보에 앞장서온 것처럼, 보다 정의로운 나라, 차별과 불안이 없는 복지국가를 만드는 데 앞으로도 앞장서야 한다. 정치적으로 보면, 개혁정치 세력을 호남에서 키워서 전체 대한민국의 개혁과 진보를 이끌어갈 수 있는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게 '호남 정치 개혁'이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제1야당이 가진 문제점이 가장 집중적으로 드러난 곳이 바로 호남이다. 비전을 잃고 계파·패거리·기득권 정치에 함몰돼 있다. 왜냐? 수도권에는 새누리당이라는 강력한 적이 있다. 호남에는 그게 없다. 그래서 기득권·패권 구조가 계속돼 왔고, 그건 문재인 대표의 문제가 아니라 몇십 년 전부터 그래왔던 것이다. 변변한 비전도 없고, 비전이 있어도 그걸 실천할 능력도 없다. DJ 이후 야당에 인물이 없다고 하지 않나? 호남에서 당 대표가 나오나, 대선주자가 나오나? 지금 새정치연합 지도부에서도 주승용 최고위원이 사퇴하니 호남 출신이 아무도 없지 않은가?
지금 호남 정치가 기득권에 취하고 무기력해져 있는 것은, 한국의 야당과 개혁 세력이 그런 상태에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호남 정치의 임무가 '자구구국'이다. 먼저 호남 정치를 개혁해야 한다. 이번에 제가 독점 구조를 깨트렸지 않은가. 그런 어떤 방식을 통해 호남 정치가 개혁돼야 하고, 이것이 호남에 머무는 게 아니라 한국 정치가 개혁되는 '구국'으로 가야 한다. 그게 제가 말하는 '호남 정치 부활'의 본 뜻이다.
프레시안 : 이에 대해 역으로 '호남 지역주의'라는 말도 나온다. 천 의원이 '호남 신당'을 만들려 한다는 것이다.
천정배 : 사실 왜곡이다. 제가 언제 신당을 만든다고 했나? 심지어 '호남 자민련'을 만든다고 하는데, 그런 얘기를 한 바도 없는데 '호남 신당 만들자는 천정배, 지역주의'라고 매도한다. 보수진영의 비판은 '그런가 보다' 하겠지만 이른바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에도 그렇게 나오는 것을 보면 굉장히 문제 의식을 느낀다.
제가 주장하는 것이 '호남 패권'이 아니다. 소외되고 낙후된 상태에서 벗어나, 우리 자식도 경상도나 서울에서 태어난 아이에 비해 차별 없이 동등한 기회를 누리게 하자는 거다. 그건 인권의 보편적 원칙 아닌가. 특정 지역에 태어났다고 기회를 주지 않으면 되겠나? 진보진영까지 포함해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가 호남 배제 구조에 입각해 있는것 같다.
호남은 역사적으로 특별한 곳이다. 단순히 지역이 아니라 정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약무호남 시무국가'라는 말도 있다. 민주주의와 진보진영의 중심적·선도적 역할을 해 왔지만, 한편 늘 소외되고 편견의 대상이었다. 영·호남 지역주의라고 말하지만, 서울·충청도·강원도에서도 호남에 대한 편견을 가진 것은 다르지 않다. 인사에서도 배제됐고, 호남 출신 재벌도 별로 없다. 여러 면에서 늘 푸대접받았던 것이다.
가장 심각한 건 박정희 시대의 고도성장에서도 철저히 배제되면서 경제적 낙후가 커졌고, 지금에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격차가 돼 있다. 이것을 가만히 두면 앞으로는 특별히 차별을 안 하려고 해도 격차는 계속 벌어진다. 구조적 문제다. 심각하다. 그런데 호남의 정치는 기득권에 취해 있다. 그런데도 (이것을 비판하는 것을) 지역주의라고 부르나?
프레시안 : 그러나 그런 호남의 역사나 정치적 배경에 관심이 많지 않은 젊은 층이나 다른 지역 유권자들은 '호남 정치'라는 말을 들으면 '호남 당 만들자는 것이냐'고 오해하기 십상인 것도 사실이다.
천정배 : 그렇다. '아무리 호남의 상황이 그렇다 해도, 지금의 현실에 비춰볼 때 '호남 정치 부활' 같은 말은 전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조언한다면 그건 경청할 생각이 있다. 호남의 권리를 제대로 지키려고 할수록 '호남'이라는 말은 빼야 한다는 등의 조언은 감사하게 생각한다. 전술적인 고려는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을 낡았다든가, 망국적 퇴행이라든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호남을 계속 (지금까지의) 종속적 위치에 놓겠다는 것이다.
인권이라는 것은 모든 차별에 반대하는 것 아닌가. 진짜 진보라면 호남이든 뭐든 누구라도 정당한 기회를 못 가지는 것에 분노해야 한다. 굳이 말하자면 과거에 누가 '영남 지역주의가 패권적 지역주의라면, 호남 지역주의는 저항적 지역주의'라고 하기도 했다. 민족주의 역시 강대국이 민족주의를 주장하면 불온시되지만 약소민족이 주장하면 저항적인 의미가 있지 않으냐. 누가 주장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나는 지역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호남 말고 다른 지역도 차별받으면 그것도 해결해야겠지. 그런데 저는 광주 정치인이고 광주 지역 국회의원이다. 부산 지역 발전시키는 걸 제가 책임지나? 역할 분담이라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영남 정치, 대구 정치도 죽었으면 부활시켜라. 그런데 그것이 제가 할 일은 아니지 않느냐.
"3년 전 총선, 이길 수 있는 선거 졌다…야권의 적수는 자기 자신"
프레시안 : 천 의원의 관심이 다음 대선에서의 정권교체라고 했는데, 지금 박근혜 정부가 어떤 면에서 가장 잘못하고 있다고 보나?
천정배 : 저는 '야당이라고 반대만 하지 말고 도와줄 것은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이 정부가 잘한 것, 도와줄 것이 별로 안 보인다. 박근혜 정부에 기대를 많이 했다. 박근혜 대통령과는 15대 국회 동기이고, 상임위도 같이 해 봤다. 그래서 박 대통령이 당선될 때까지는 기대도 우려도 했다.
우려는 박근혜 정부가 '공안 정부'가 되리라는 것이었는데, 우려대로 공안 검사들을 앞장세워서 공안 통치가 이뤄지고 있다. 이번 총리 인선도 늦는데, 공안 검사 출신을 찾느라 그런가? (웃음) 박 대통령은 극우 냉전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 같다. 정당도 해산시키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못 부르게 하는 것도 그 사람들 마음 속에 지금도 광주항쟁을 인정하지 않고 폭도라고 보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공안 통치로 인해 정치적 탄압 등 부작용이 생겼는데, 예상했던 일이다.
그런데 기대했던 부분은 없어졌다. 저는 박 대통령은 진실한 사람, 말과 속마음이 일치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고 있었다. 정치인들은 마음에 없는 말도 표가 되면 하는데, 박 대통령은 그렇게 안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통령 되고 보니 그것도 아니다. 상황마다 자기 유리한 대로 말하고, 공약을 지키는 것을 봐도 진실됨과는 거리가 멀다. 기대할 게 없다.
프레시안 : 그러면 다음 대선에서 야권이 집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천정배 : 3년 전 총선 때도 다 야권이 이길 것이라고 봤는데, 이길 수 있는 선거에서 진 것 아니냐. 한국 국민들의 개혁 정치에 대한 열망은 갈수록 커지고 있고, 새누리당 기득권 정부의 폭정에 대해 불만을 갖고 비판하는 사람이 다수라고 생각한다. 지난 대선에서도 정권교체를 바라는 사람이 60%를 넘지 않았나.
예전에 DJ가 아무리 해도 지지하는 사람이 25%를 넘기 어려웠다. 새누리당 35%, DJ 25% 정도여서 거기서 10%포인트를 줄이면 집권하는 거였다. 아직도 한국 사회에 새누리당 지지층은 공고하지만, 강원도에서 야당 도지사가 3번 연거푸 당선되고, 충청도도 늘 야당이 도지사를 하다가 두 곳 다 야당이 되고, 제주도는 3명이 다 3선 야당 의원이다. 옛날에 비하면 야당의 기반이 넓어졌다.
그런데 야권 정치세력은 지난 10여년 간 비전을 못 보이고 국민의 신뢰를 못 받고 있다. 저는 우리 야권의 적수는 새누리당이나 박 대통령이 아니라 늘 우리 자신이라고 본다. 우리 자신을 국민의 개혁적 정치 요구에 부응하도록 바꿔야 한다. 야권이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 이겨 환골탈태하고 재구성할 수 있으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 이것은 제가 초선 때부터 늘 생각해온 것이고, 열린우리당 시절 정풍·쇄신운동을 하면서도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프레시안 : 천 의원 스스로 대권에 도전해 볼 생각은 없는가? 야권에 호남 출신 대선 주자가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천정배 : 제가 뭐 대권을 거론할 만한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스스로 이렇게 말하기 싫지만 냉정한 현실이다. 제가 해야 할 일은, 새누리당을 대체할 수 있는 수권 야당을 만들어서 정권교체를 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제가 가진 능력껏 헌신하겠다. 정권교체의 밀알이 되겠다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은 하고 있지 않다.
지난 3년의 공백기가 제게 큰 도움이 됐다. 요즘은 마음을 비웠다. 제 좌우명이 <장자>에 나오는 '심재(心齋)'다. 이 '재' 자는 '굶는다'는 뜻이다. 마음을 굶긴다는 말이다. 마음의 단식인 셈인데, 제가 옛날에 단식도 했었지만 '몸을 굶길게 아니라 마음을 굶겼어야 하는데' 하는 이야기도 한다.
"문재인은 나와 '다른 나라' 대표…내가 왜 文과 손 잡나"
프레시안 : 지난 17일 밤 문재인 대표와 단독 회동을 했을 때,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나?
천정배 : 그날 낮에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왜 만나자고 하나 했지만 광주까지 와서 만나자는데 '안 만난다'고 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고, 못 만날 이유도 없으니 만나자고 했다. 나는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하고, 운전도 내가 직접 하고 가서 만났다. 무슨 얘기를 하려나 했는데 아무 얘기도 안 하더라. 의미 있는 얘기는 아무 것도 없었다.
링 위에 오르면 경쟁도 하고 싸움도 하겠지만, 링 밖에서 조용히 만났으니 그냥 좋은 분위기에서 이야기하고 헤어진 거다. (문 대표로부터) 어떤 메시지도 없었기에 저도 따로 할 말 없고 해서 환담, 아니 한담만 했다. 오랜만에 친구 만나면 의제 만들어 대화하지 않고 이런저런 얘기 하듯이 그냥 그렇게 얘기하며 시간 보냈다.
프레시안 : 문 대표는 "천 의원이 조언도 해 줬다"고 말했는데?
천정배 : 그런 의도를 가지고 오신 건지는 잘 모르겠다. 제가 요새 새정치연합에 조언할 일이 있나? 조언이라면 문 대표에게는 여러 차례 투명하게 공개적으로 해왔다. 당 쇄신에 대해 나만큼 공개적으로 지속적으로 얘기한 사람이 없다.
프레시안 : 문 대표가 당 내에서 궁지에 몰려 있는데, 그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눈 것인가?
천정배 : 그거야 당 내에서 그런 거고, 나랑 무슨 상관이 있느냐. 분명히 말해서, 이미 터놓고 얘기할 사이가 아니지 않나. 이제 서로 다른 세력으로서 서로 경쟁도 하고 앞으로 잡아먹을지도 모르는데, 제가 아무리 솔직한 사람이라도 제 속에 있는 말을 다 하고 그럴 이유가 없지 않겠나. 비유하자면 다른 나라 외교관들끼리의 회담 같은 것이다.
프레시안 : 문 대표가 천 의원과 손을 잡고, 호남 현역의원 물갈이에 나서지 않을까 하는 관측도 있다.
천정배 : (목소리를 높이며) 전혀 아니다. 제가 왜 손을 잡나. 문 대표가 '만나자' 해서 거부하지 않았을 뿐인데 거기에 무슨 정치적 의미를 붙이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만나자고 했어도 만났을 것이다. 싱거운 만남이었고, 제가 제안한 만남은 아니니 그게 제 책임은 아니다. 시간도 1시간이 안 됐다.
프레시안 : 긴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정치제도 개혁과 관련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천정배 : 지금은 개헌의 적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만약 한다면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회복해야 한다. 오히려 박정희 정부 시절인 제3공화국 헌법에는 있던 국민투표제, 국민발안제 같은 것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헌법에도 72조에 국민투표제가 있긴 하지만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고만 돼 있다. 대통령만 할 수 있고, 사안도 국가 안위에 대한 것으로만 한정돼 있다. 개헌도 대통령 또는 국회만 할 수 있게 돼 있는데, 지금 국회는 양당 기득권의 온상이 돼 있지 않나. 국민투표제는, 예를 들어 4대강 공사라든가 자원 외교라든가 이런 것을 한다고 했을 때, 정 안 되면 국민에게 직접 물어보는 제도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 제도와 관련해서는 대선 결선투표제도 있어야 할 것 같고, 지금의 총선 제도는 명백히 독일식 정당명부제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의를 정확히 반영하기 위해서다. 지난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43%를 득표했는데 국회 과반수 의석을 얻었고, 다수당이라는 이유로 99%의 의회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 극히 부당한 일이다. 새정치연합도 자기 지지율보다 더 크게 대표돼 있다. 득표율만큼 의석을 갖도록 해야 한다. 그것을 통해 정책정당화가 돼서 정당끼리의 정책 경쟁이 일어나게 해야 한다. 국회가 매달 겪는 극한적인 대립, 적대적 공생관계를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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