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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내 자식은 정치 안 시킨다'고요?"

[주간 프레시안 뷰] '구조적 문제'라는 말의 함정

"만일 증인들이 매일 거짓말이나 하고, 판사나 그 부하들이 뇌물 챙기는 데만 열심일 정도로 사람들의 도덕 상태가 형편없다면, 재판 절차라는 것이 있다 한들 어떻게 정의를 실현할 수 있겠는가?

지방행정의 중요성에 대한 무관심이 팽배한 까닭에, 성실하고 유능한 사람은 공직에 오를 기회가 없고, 그저 사적인 이해관계나 밝히는 부류가 자리에 앉아 있다면 어떻게 지방행정이 제대로 되겠는가?

마땅히 의회에 보내야 할 최선의 인물이 아니라, 당선을 위해 돈을 펑펑 쓰는 사람을 유권자들이 뽑는다면,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대의체제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대의 기구의 의원들이 개인적인 자제심으로 어쩔 수 없을 만큼 다혈질이어서 신중한 심의는 고사하고 몸싸움을 할 정도라면 의회가 도대체 공익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질투심이 너무 강한 나머지 누군가 무슨 일에 성공을 거둘 것 같은 기미를 보일 때 마땅히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도리어 몰래 해코지를 한다면, 이런 사람들이 공동으로 하는 일이 어떻게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의 전반적인 의식 수준이 너무 낮아서 모두가 오직 자신의 사적인 이익에 대해서만 신경을 쓰고 공공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면, 이런 상태에서는 좋은 정부가 존립할 수 없다."

누가 썼는지 모르지만, 지금의 한국사회에 대한 묘사가 이처럼 정확할 수 있을까요?

현직 판사가 사채왕에게 수 억 원의 뇌물을 받아 구속된 것이 불과 올해 초의 일입니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지방의회 의원들의 수준이 저 위에 묘사된 것과 크게 다르다고 자신있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성완종 사건으로 현직 정치인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고 있고, 현 여당에서는 과거 총선에서 돈을 들고 공천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 본인들의 말로 밝혀졌습니다.

여야가 국회에서 쇠사슬로 문을 걸어 잠그고 해머로 그 문을 또 때려 부시고, 날라차기와 주먹다짐으로 피를 보는 일은 우리 정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상사였습니다. 당과 당 관계뿐만 아니라 이제는 한 당 안에서도 막말이 도를 넘어 오가다가 결국 최고위원이 사퇴하고 출당을 요구하는 일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마땅히 협력을 아끼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계파의 이익을 더 우선하니 우선 당이 잘 될 리 없고 이 당이 공익을 위해 일할 여력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민주화 이후 우리 국민들 다수가 공공의 일보다는 사적인 이익을 우선시하고, 사익 추구의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무한경쟁의 자본주의 논리를 적극적으로 내면화하며, 정치참여에 대한 노골적인 냉소를 갖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좋은 대통령과 좋은 국회, 좋은 검찰과 좋은 사법부를 갖지 못한 이유일 것입니다.

이렇듯 바로 현재 우리의 속살을 샅샅이 드러내고 아픈 곳을 날카롭게 찌르고 있는 이 글은, 1861년 존 스튜어트 밀이 출간한 <대의정부론>의 한 대목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구조적 문제'라는 말이 가진 함정

좋은 정치를 만드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정치란 그 제도가 탄탄할 때 효과적이고 제도가 미흡하거나 정치기구의 기능이 미흡할 때 부패한다고 보는 시각입니다. 다른 하나는 정치 제도를 통제하는 사람들이 부패한 상태라면 아무리 최선의 제도라고 할지라도 별 소용이 없다는 관점입니다. 이 두 번째의 관점에 따르면, 정치의 본령은 사람들이 덕성에 있고 제도의 역할은 바로 그 덕성을 잘 기르고 유지하는데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두 시각 중 근대 이래로 현대정치에서 더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단연 첫 번째 시각입니다. 우리는 정치와 사회에 어떠한 일이 생기면 우선 그 제도적 미비점을 찾으려고 애씁니다. 그리고 문제의 진단에 마지막으로 들어가는 표현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구조적 문제가 있었습니다"라는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때 정부가 사용했던 '적폐'라는 표현도 무슨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정확히 이 맥락 안에 있습니다.

그러고 나면 그 해답도 비슷합니다. 매뉴얼을 바꾸고, 기구를 조정하고, 크게는 제도를 바꿉니다. 해난 구조의 매뉴얼을 새로 만들고, 해경과 소방방재청을 해체하고 국민안전처를 신설합니다. 정부조직법을 개정하고, 일명 유병언법을 만들어서 인명사고 시 책임자의 재산 추징을 위한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합니다. '구조적 문제'라는 말이 은폐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입니다.

제도란 결국 사람들이 일을 잘 할 수 있게 만드는 수단입니다. 그래서 제도의 역할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도의 문제점이 나타났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제도가 잘못 되어 있었다면, 무엇보다 그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들이 가장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제도에 문제가 있어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그 책임을 '구조'에 전적으로 물을 수는 없습니다.

대의 민주주의라는 제도의 함정

현대 민주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대표를 뽑아서 그 대표에게 일정기간 동안 정치적 위임을 하고 책임을 묻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처럼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는 뽑힌 대표를 신뢰하고 그에게 무한 신뢰를 보내서 일을 잘하게 하는 것보다는, 대표가 유권자와 시민의 의사를 존중하고 권력을 남용하지는 않는지 잘 견제하고 여차하면 갈아치울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는데 요체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민주주의는 흔히 좋은 대표를 뽑는 것보다 뽑은 대표가 잘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따라서 규모가 큰 근대 국민국가에서 민주주의란 불가피하게 대표를 뽑기는 하지만 그 대표를 잘 제한할 수 있는 수단을 제도적으로 잘 완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역시 제도는 절반의 역할입니다. 게다가 제도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훌륭한 제도를 만드는 목적은 그 제도의 수립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대표를 뽑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요컨대, 훌륭한 제도는 이론적으로 완벽한 제도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장 훌륭한 대표가 뽑히는 제도입니다.

선거제도를 바꾸자는 논의는 의미가 있습니다. 선거제도를 바꿔서 더 훌륭한 대표를 뽑을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수준에서는 선거제도만 바꾸어서 그런 변화가 나타날 것 같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훌륭한 대표란 어떤 사람이고, 왜 우리는 그런 사람을 뽑아야 하는가에 대한 이해와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에서 이 논의가 시작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 추모 집회 참가자들에게 물대포를 쏘는 경찰. '좋은 정치'가 있었더라면, 없었을 폭력이다. ⓒ프레시안(손문상)

사람을 바꿔야 정치가 바뀐다

세월호 참사 이후 1년간 나타난 정부의 대책에서도, 야당의 대표가 약속한 당 개혁의 내용에서도 구조적 변화와 제도적 변화만 들어있지 이것이 어떻게 사람의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한 내용은 없습니다. 사람의 변화가 없는 제도의 개혁은 절반의 개혁이고,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한 기만입니다.

이래서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바꿔야 정치가 바뀝니다. 정치는 제도가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도는 스스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오십보백보'이고 그 놈이 그 놈인데 뭘 어떻게 바꾼단 말인가 하는 한탄이야말로 정치의 가장 큰 적입니다. 좋은 놈 중에 더 좋은 놈이 있듯이, 나쁜 놈 중에 덜 나쁜 놈이 있게 마련입니다.

또 하나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사태가 이렇게 된 데에 그런 한탄을 하는 사람의 책임은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정치란 나쁜 놈들이 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사회에서, 정치를 나쁜 놈들이 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정치가 잘 되기를 바라고 그것이 우리들이 삶에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내 자식은 절대 정치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나라에서는 정치가 잘될 리가 없습니다. 초등학생들에게 정치를 가르치기를 두려워하는 나라가 정치적으로 발전할 리 만무합니다.

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치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덕성과 지적능력이 좋은 통치의 첫 번째 요소가 된다."

한국 정치가 어디로 가야할지 갈피를 못 찾고 있는 지금이 기본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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