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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경제 항공모함 TPP, 침몰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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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경제 항공모함 TPP, 침몰하나?

[정욱식 칼럼] TPP 침몰과 AIIB 흥행, 미국과 중국이 받아든 성적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통과는 또 다른 항공모함을 갖는 것처럼 중요하다"

미국의 애슈턴 카터 국방 장관이 지난 4월 한국과 일본을 순방하면서 한 말이다. TPP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재균형(rebalance) 전략의 핵심인 만큼 한국과 일본도 적극 동참해달라는 의미였다. 그 직후 한국은 TPP 참여 의사를 밝혔고, TPP 협상 중인 일본도 타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정작 미국의 '경제 항모'가 미국 내에서 침몰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5월 12일 미국 상원의 무역협상촉진권한(TPA) 표결 결과, 찬성 52표, 반대 45표로 부결된 것이다. 그것도 집권 여당인 민주당 상원의원 대다수가 반대표를 던진 결과였다. 이에 따라 오바마 행정부의 향후 계획에도 상당한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의회에서 TPA가 통과되면 TPP 협상 속도를 높이려고 했던 전략이 안에서 발목 잡혔기 때문이다.

AIIB 흥행과 TPP 침몰의 교차

이는 미·중 간의 패권 경쟁에 심대한 함의를 지닌다.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는 미국의 동맹국들을 포함한 57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한마디로 '흥행 성공'이다. 그러나 12개국이 참여 중인 TPP 협상은 아직 타결되지 않았을뿐더러, 미국 내부로부터 발목이 잡히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더 중요한 함의가 내포되어 있다. 미국식 정치체제의 쇠락과 중국의 권위주의 체제의 자신감이 교차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내에선 링컨 이후 최악의 당파성을 겪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치 불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의료보험, 이민법, 세금 등 내치(內治)뿐만 아니라 외치(外治)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공화당의 이란 핵 협상 훼방 놓기가 대표적이다. 공화당은 3월 초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초청해 '이란 핵 협상을 반대한다'는 공동의 목소리를 낸 바 있다. 그래도 잠정 협정이 체결되자, 공화당은 이란 정부에 편지를 보내 최종 핵 타결이 나와도 미국 의회는 반대할 것이며, 공화당이 정권을 잡으면 파기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기도 했다.

TPP를 둘러싼 오바마-민주당-공화당의 삼각관계도 주목할 만하다. 여당인 민주당은 노동조합과 환경단체 등 전통적인 지지기반을 의식해 TPP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번 표결에서 1명을 제외한 모든 상원의원이 반대표를 던졌을 정도이다.

반면 공화당 의원은 대부분 찬성했다. 전통적으로 자유무역을 지지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여기에는 정치적인 의도도 깔려 있다. 내년 11월 중간선거와 대선을 앞두고 TPP를 오바마 행정부와 민주당의 분열을 유도할 수 있는 카드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의 쇠락과 중국 정치 자신감의 교차

이렇듯 자유민주주의의 모범이라고 자랑해왔던 미국의 정치 제제는 심각한 불능 상태에 처해 있다. 이에 반해 일당 독재라는 비난을 받아온 중국의 권위주의 체제는 적어도 효율성의 측면에서는 상당히 유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진핑 체제는 부패 척결을 앞세워 중국 인민들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확보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식 재균형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수출 주도형'에서 내수 진작을 통한 '소득 주도형'으로 경제 발전 모델을 전환하고, 이를 AIIB와 일대일로(一帶一路)로 대표되는 대외 경제 전략과 융합시키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외교전문잡지인 <포린어페어즈>는 작년 9/10월호 커버 스토리로 미국 국내 정치를 다뤘다. 표제는 '쇠퇴와 역기능의 땅, 미국을 보라'였다. 외교 잡지가 국내 정치를 크게 다룬 이유는 "세계 패권 국가인 미국 정치의 산만함과 마비 현상은 전 지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이 잡지 기고문을 통해 "강력한 외부적 충격이 없다면, 미국 정치의 쇠락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반해 중국 내에선 자국의 정치력에 자신감을 드러내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중국의 대표적인 현실주의 학자이자 시진핑 주석의 핵심 민간 책사 가운데 한 명으로 일컬어지는 옌쉐퉁(閻學通) 칭화대학 교수의 주장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뿐만 아니라 정치력을 종합 국력의 핵심 변수로 간주한다.

그런데 옌쉐퉁은 미국은 "정치적으로 개혁 능력을 지닌 리더십이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중국은 개혁과 국제체제의 변화를 추구할 정치력이 있고" 이를 바탕으로 2023년에는 중국이 미국과 함께 양극체제를 형성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흔히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을 언급할 때, 경제력과 군사력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미국 정치체제의 쇠락과 중국의 정치력에 대한 자신감이 교차하는 오늘날, 제3의 요소, 아니 어쩌면 경제력이나 군사력보다 더 중요한 정치의 문제를 주목해야 할 필요성을 새삼 일깨워준다. 미국 '안'에선 자국의 정체 제제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미국 '밖'에선 미국식 민주주의에 대한 매력이 약해지고 있는 것이야말로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에도 중대한 함의를 지닌다. 오늘날 한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10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그런데도 곳곳에서 '구한말과 상황이 비슷하다'는 탄식이 나온다. 이는 무능한 한국 정치에 대한 한탄과 다름 아니다. 권력이 사인화되고, 사인화된 권력은 국익과 비전보다는 정권 안보에 주력하고 있다. 외치를 내치에 악용하려는 관성 역시 여전하다. 대안 세력이 되어야 할 야당의 무능과 분열은 분노와 절망을 키우고 있다. 오늘날 한국이 처한 위기의 본질이 정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많은 이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어떤 입장과 전략을 취해야 하는지 묻곤 한다. 많은 토론과 과제를 요하는 문제이지만, 그 출발점은 자명하다. 그건 바로 유능한 민주적 정치력을 회복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이걸 이뤄야만 미래를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 필자 신작 <MD본색 : 은밀하게 위험하게>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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