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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전 피하려다 '겨울야구' 하려나?

[베이스볼 Lab.] 걸핏하면 우천취소, 이대로 좋은가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 12일, 잠실과 대구 야구장에서는 대조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이날 야구장에 등판한 '정지훈'(비)이 원인이었다.

NC-LG전이 열린 잠실에서는 경기 시작 직후 나온 우천취소 결정이 입길에 올랐다. 이날 경기장에는 경기시간 1시간 전부터 비가 내렸다. 빗줄기가 약한 편이라 국민의례까지 진행됐지만, 경기시작 3분 후 폭우로 바뀌면서 취소가 결정됐다. 경기 중단부터 취소 결정까지 걸린 시간은 채 10분도 되지 않았다. 문제는 취소 결정 후 얼마 안 지나 비가 그치고 하늘에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과 양팀 팬들은 비가 그쳤는데 왜 경기를 하지 않느냐고 불만을 토했다.

한화-삼성전이 열린 대구에서는 경기 후반 들어 내린 비로 야구와 수구의 혼합 경기가 펼쳐졌다. 경기 중반까지는 날씨가 무난한 편이었지만, 노게임 요건이 사라진 6회 이후 갑작스레 거센 비바람이 몰아쳤다. 나중에는 선수들이 정상적인 플레이를 하기 힘들 정도가 됐다. 한화 투수 권혁은 연신 손을 닦아내고 스파이크에 엉겨 붙은 진흙을 떨궈내며 악전고투했다. 비 때문에 제구에도 애를 먹는 모습이었고, 발을 헛디디며 보크 판정까지 받았다. 하지만 경기는 9회 마지막 아웃까지 중단 없이 진행됐다.

이날 잠실과 대구의 두 사례는 야구에서 우천취소 결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준다. 현재 야구규칙에는 “일기가 불순하거나 경기장 상태가 불량할 때”, “경기개시 여부를 홈구단의 경기관리인 또는 그 대리인이 KBO 경기운영위원과 협의하여” 경기 개시 3시간 전 결정하도록 정하고 있다(3.10(a) 조항). 또 경기 중 취소시 5회말까지는 노게임, 6회초 이후에는 콜드게임으로 판단하며 이를 결정하는 권한은 주심이 갖고 있다.

하지만 바로 눈앞의 날씨변화조차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 탓에, 비가 오는 날이면 야구장에서는 경기 취소와 진행을 두고 까다로운 선택의 순간이 온다. 너무 빨리 경기 취소를 결정하면 자칫 ‘충분히 할 수 있는 경기를 취소했다’는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과거 KBO 경기운영위원 중에는 경기 취소 결정 탓에 징계를 받은 사례도 두 차례(정성진, 최동원) 있었다. 반면에 일단 시작한 경기는 함부로 노게임이나 강우콜드로 처리하기가 어렵다. 결국 경기력에 지장을 감수하고 수중전을 치르는 상황이 나온다. 딜레마다.

내리는 비를 만끽하는 삼성 진갑용. ⓒ삼성라이온즈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KBO리그가 우천시에 너무 빨리 경기취소 결정을 내린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최근에는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를 접할 기회가 늘면서 좀처럼 우천취소를 하지 않는 미국의 사례와 비교하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메이저리그의 경우 우천시에도 최대한 경기 시작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개시 여부를 결정한다. 때로는 경기 시작 시간부터 1시간 이상 기다렸다가 경기를 치르기도 한다. 경기 중 우천으로 중단되어도 기다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재개 여부를 결정한다.

이는 휴식일이 거의 없이 162경기를 치르는 메이저리그 특성상 불가피한 면이 있다. 또 메이저리그는 팀간 이동거리가 워낙 긴데다, 같은 지구 소속이 아닌 팀끼리는 다시 만날 기회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메이저리그는 비가 오면 몇 시간을 기다려서라도 가급적 경기를 한다. 일정이 꼬이면 더블헤더를 해서라도 스케줄을 맞춘다. 순위와 관계없는 시즌 막판 경기는 과감하게 취소하기도 한다. 일례로 최근 지역 소요사태로 경기일정에 차질을 빚은 볼티모어의 경우 상대팀 구장에서 홈경기를 치렀고, 취소된 시카고 화이트삭스전이 휴식일 더블헤더로 편성되면서 20일간 21경기를 치르는 강행군이 예정되어 있다.

반면 KBO리그는 메이저리그보다 경기수가 적은 단일리그에 팀간 이동거리가 짧은 편이다. 취소된 경기를 다시 편성하기가 쉬운 편이라 우천취소에 따른 부담이 덜했다. 장마철이 길고 경기장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도 잦은 우천취소의 원인이다. 지은 지 오래된 국내 구장은 배수 시설이 좋지 않고 방수포도 갖춰지지 않아서, 비가 그친 뒤에도 정상적인 경기가 쉽지 않다. 어제 경기가 취소된 잠실야구장만 해도 폭우가 내린 뒤에는 흙속에 물이 차서 경기하기 어렵다는 게 구장 관계자의 설명이다.

경기운영위원을 지낸 한 야구인은 “경기 취소는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정한다”고 설명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선수들의 부상 방지다. 경기 시작 전까지 기다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지만, 경기 전 선수들의 훈련도 고려해야 한다. 몸을 제대로 풀지 않고 경기를 시작하기는 어렵다. 여기에 양팀의 스케쥴과 이동거리, 이후 비 예보 등도 모두 고려해서 경기 여부를 정한다.”

하지만 이런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경기 취소 여부가 경기운영위원 혼자가 아니라 홈팀의 경기관리인과 협의 하에 결정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야구규약에 따르면 경기관리인은 홈팀의 구단 임원(주로 단장)이 맡게 되어 있으며, 이 경기관리인이 KBO 총재의 경기관리에 대한 직능을 대신하도록 정하고 있다. 규칙에는 경기관리인과 경기운영위원의 ‘협의’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홈팀 쪽의 의사에 따라 경기 취소가 정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기운영위원이 원칙대로 결정을 내리고 싶어도, 키를 쥐고 있는 홈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KBO에서는 종종 실제 기상 상태보다는 홈팀의 유불리에 따라 경기 취소 여부가 달라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고의적으로 홈구장을 물바다로 만들어 경기를 취소하는 작태가 잦았다. 대표적인 예는 1984년 8월 26일 롯데-OB전. 선두싸움을 벌이던 롯데는 전날 경기에 최동원이 완투승을 거둔 탓에 이날 투입하기가 어려운 상태였다. 마침 전날 밤부터 비가 내리자, 롯데측은 소주병에 비닐을 감아 배수구를 막는 방법으로 구덕야구장을 물바다로 만들었다. 결국 이날 경기는 취소됐다.

1988년 5월 9일 태평양-삼성전에서도 비슷한 일이 나왔다. 다음날 비 예보를 믿고 전날 경기에 투수력을 소모한 태평양은 이날 선두 삼성과의 경기를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초 예상보다 비가 적게 내리자, 심판진이 드나드는 원정팀 더그아웃 앞에 호스로 물을 잔뜩 뿌리는 꼼수를 썼다. 이렇게 경기를 지연시킨 태평양은 이후에도 승승장구하며 상위권으로 시즌을 마쳤다. (이종남, <야구가 있어 좋은 날>)

물론 지금의 KBO리그에서 저런 식의 추태를 보이는 팀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여전히 비 오는 날 경기 취소 결정에는 홈팀측의 의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으며, 이 때문에 경기취소 결정을 놓고 팬들 사이에서 ‘홈팀이 경기를 피하고 싶었던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는 경우가 종종 나온다. 한 야구팬은 “우천시 경기 취소 여부를 미리 아는 방법이 있다”며 이렇게 뼈 있는 지적을 했다. “홈팀 입장에서 상대팀 에이스나 상위권 팀과 경기, 홈팀이 연패 중일 때, 또는 홈팀이 전날 경기에서 투수력을 탕진했을 때 비가 오면 그날 경기는 대부분 취소된다고 보면 됩니다.” 물론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의심일지 모르나, 과거의 많은 사례들을 생각하면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할 수만도 없다.

경기수가 144경기로 크게 늘어난 올 시즌부터는 우천취소를 좀 더 신중하고 엄격한 기준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2일까지 진행된 2015 KBO리그에서 벌써 우천으로 취소된 경기만 25경기, 팀당 평균 2.5경기가 뒤로 미뤄진 상태다. 8월 이전까지 무려 50경기가 우천으로 순연됐던 지난 2003년보다 훨씬 빠른 페이스다. 앞으로 6월 이후 장마철에 더 많은 경기 취소를 감안하면, 아무리 빨라도 10월 중순에나 페넌트레이스 잔여경기까지 모두 끝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렇게 되면 올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11월까지 ‘겨울야구’를 하는 상황이 올 가능성이 크다. 시즌 초반 우천취소 남발이 나중에는 스케줄 폭탄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스케줄 폭탄은 선수들에게는 고스란히 체력적인 부담이 되어 돌아온다. 지난 시즌의 경우 팀마다 돌아가며 4일 휴식을 가졌고 아시안게임 휴식기까지 겹쳐 선수들이 느끼는 피로도는 높지 않았다. 올 시즌엔 휴식일 없이 팀당 16경기를 추가로 치르는 강행군이다. 정규시즌 일정만으로도 선수들이 체력적인 한계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잔여경기 일정과 포스트시즌까지 더해지면 부담은 더욱 커진다. 한 구단 관계자는 “KBO리그 선수들이 시즌 144경기를 치를 준비가 되었는지 아직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구단 관계자는 “다른 게 혹사가 아니다. 지금처럼 경기 취소가 남발되면 남은 스케쥴 자체가 선수들에게 혹사로 돌아오게 된다”고 지적했다.

우천취소 문제가 심각했던 지난 2003년의 사례가 참고가 될 만하다. 당시 KBO는 8월이 되기도 전에 무려 50경기가 우천으로 연기되면서 비상이 걸렸다. 이미 2002시즌 한국시리즈가 11월 중순에 끝나면서 한 차례 논란이 됐던 상황. 이에 당시 KBO는 한여름인 8월에 더블헤더를 하고 주말 경기 순연시에는 이동일인 월요일에 경기를 하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우천취소 요건도 대폭 강화해서 경기 개시여부 결정을 경기시작 2시간 전이 아닌 1시간 전에 정하도록 바꿨다. 경기취소 결정 권한도 구단의 경기관리인과 KBO의 경기운영위원이 협의하는 방식에서 KBO의 경기운영위원이 독단적으로 결정하도록 한시적으로 조정했다. 또 경기운영위원들에게는 최악의 상황이 아닌 이상 가급적 경기를 개시하도록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이제 5월 중순인데 벌써 25경기가 취소된 올 시즌은 2003년보다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예방 차원에서라도 지금부터 우천 취소 결정 방식에 대한 심각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2003년 당시처럼 경기개시 여부 결정 시간을 경기시작 시간 직전으로 늦추고, 일단 시작된 뒤에 우천으로 경기가 지연되면 최대한 충분한 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다. 또 홈팀의 유불리에 따른 취소 남발을 막기 위해 경기운영위원에게 권한을 주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지금처럼 128경기 시대 방식으로 우천 취소를 남발해서는 144경기 초창기 레이스를 마지막까지 온전하게 소화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자칫 '겨울야구'를 하게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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