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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역사상 최고-최악의 선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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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KBO리그 역사상 최고-최악의 선수는?

[베이스볼 Lab.] 최고와 최악의 자리에 모두 오른 이종범

선동열이 나으냐, 최동원이 나으냐. 이종범이 잘했나, 양준혁이 더 잘했나. 야구장 관중석에서,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언제나 뜨거운 논쟁을 부르는 '떡밥'이다. 나왔다 하면 온갖 논리와 근거, 억지와 무리수를 총동원한 난타전이 펼쳐지지만 좀처럼 확실한 결론이 나지 않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에 <베이스볼 Lab.>은 선수의 활약상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통계지표 WAR(대체선수대비 기여승수)를 이용해 1982년부터 2014년까지 KBO리그 최고-최악의 선수를 가려볼 참이다. WAR은 KBO리그 통계 사이트인 www.baseball-lab.com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단일 시즌 최고 타자: 1994년 해태 이종범 (WAR 11.3)

KBO리그 역사상 한 시즌에 혼자 힘으로 10승 이상을 팀에 가져다준 야수는 딱 두 명뿐이다. 1994년 해태 이종범(WAR 11.3)과 2003년 현대 심정수(WAR 10.1)다. 특히 이종범은 1994년 외에도 1996년(WAR 9.3), 1997년(WAR 8.9)까지 KBO리그 단일시즌 타자 WAR 1, 3, 4위를 독식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방위병 근무 때문에 63경기만 출전한 1995년에도 WAR 4.9를 올리는 거짓말 같은 활약을 펼쳤다. KBO리그 역사상 1번이라도 타석에 나온 1628명 중, 선수생활 내내 WAR 4.9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단 239명뿐이다. 다시 말해 데뷔해서 은퇴할 때까지 팀에 가져다준 승수가 1995년 이종범이 방위병으로 복무하면서 홈 63경기에만 출전해서 올려준 승수보다도 적었던 선수가 1389명이나 된다는 이야기다.

그중에서도 1994년 이종범의 기록은 지금 다시 봐도 믿기 힘든 수준이다. 124경기에서 4할에 가까운 타율(0.393)에 20개에 가까운 홈런(19개)과 한 시즌 최다도루(84개)를 기록했고, 그해 리그 1위의 출루율(0.452)과 리그 2위 장타율(0.581, 1위 김기태 0.590)을 올렸다. 조정OPS(OPS+)와 조정득점생산력(wRC+)은 각각 195, 193으로 2014년 강정호(193, 189)보다도 앞선다. WAR에 수비 기여도를 반영하지 못한 한계는 있지만, 대신 이종범이 활약한 1993년부터 1997년까지 해태 수비진의 범타처리율(DER)이 그 이전-이후에 비해 비약적으로 좋았다는 점이 참고가 될 것이다. 1994년의 이종범은 KBO리그 역사에 다시 나오기 어려울 위대한 활약을 펼쳤다. 그해 혼자서 그라운드를 헤집고 다니던 이종범의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지켜본 야구팬이라면, 3대에 걸쳐 자랑해도 된다.

▲ 93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하는 이종범 ⓒ연합뉴스
단일 시즌 최고 투수: 1986년 해태 선동열 (WAR 12.5)

KBO리그 역사상 한 시즌에 혼자만의 힘으로 10승 이상을 가져다준 투수는 딱 세 명이다. 그리고 세 명이 다 프로야구 초창기 5년 이내에 등장했다. 1986년 해태 선동열(WAR 12.5)과 1983년 삼미 장명부(WAR 10.9), 1986년 롯데 최동원(WAR 10.2)이다. 이 중 선동열은 1986년 외에도 1991년(9.8), 1988년(9.7), 1990년(8.6), 1989년(7.8), 1993년(7.8)까지 이 부문 Top 10에 무려 6차례나 이름을 올렸다. 외국인 타자도 없고 타자들의 파워와 타격기술도 뛰어나지 않았던 초창기 KBO리그에서, 무시무시한 강속구와 만화 같은 슬라이더를 구사하는 선동열은 공략 불가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가장 압권은 데뷔 2년 차 시즌인 1986년. 데뷔 첫해 실업팀과의 이중계약 파동으로 후반기만 출전했던 선동열은 1986년 본격적으로 리그 폭격에 나섰다. 39경기에 등판해 262.7이닝을 던지는 동안 볼넷은 단 52개만 내줬고 탈삼진은 214개를 솎아냈다. 시즌 내내 허용한 홈런은 단 2개에 불과했는데, 이게 얼마나 드문 일이었는지 선동열이 홈런을 맞은 다음날이면 스포츠지 1면은 홈런을 친 타자가 아닌 ‘선동열 홈런 허용’이 대서특필될 정도였다. 또 선동열 상대로 홈런을 친 타자들은 인터뷰에서 “눈 감고 쳤는데 운 좋게 맞았다”고 말하곤 했는데, 이는 혹시라도 다음에 상대할 때 몸에 맞는 공이 날아올까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역대 최고 타자: 삼성 양준혁 (WAR 80.2)

양준혁과 이종범은 1993년 데뷔 동기다. 데뷔 첫 5년간의 누적 WAR만 놓고 보면 이종범(WAR 40.6)이 양준혁(WAR 33.8)을 앞선다. 하지만 그 이후 이종범이 일본 진출과 부상, 가파른 하향 곡선을 그리며 17.6을 추가할 동안, 양준혁은 꾸준하고 굴곡 없는 활약으로 46.3승을 더했다. 양준혁은 남들은 평생 한 번 해보기도 힘든 WAR 5승 이상의 시즌을 9차례나 만들어냈으며, 은퇴 시즌인 2010년(WAR -0.5)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일정 수준 이상의 기량을 발휘했다. 그러니 혹시라도 TV에 나온 양준혁을 연예인으로 오인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저 없이 이야기해 주어도 좋다. “지금 당신은 KBO리그 역사상 가장 탁월했던 타자의 모습을 보고 있다”고.


역대 최고 투수: 해태 선동열 (WAR 79.5)

‘이종범 vs 양준혁’의 역대 최고 타자 대결은 똑 떨어지는 답을 내놓기 어렵게 됐지만, KBO리그 역대 최고 투수를 묻는다면 답은 명확하다. 선동열은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단일 시즌 활약상만 봐도 엄청났지만, 선수생활 내내 쌓은 성적에서도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투수들을 압도했다. 대등한 투수는 고사하고, 비슷한 수준에 근접한 투수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한번은 스포츠지 연재물을 통해 자신이 리그 대표 강타자들을 어떤 볼 배합으로 상대하는지 낱낱이 공개했는데도(김응룡 감독의 강력 저지로 연재 중단) 제대로 공략하는 타자가 아무도 없을 정도였다. 말 그대로 ‘알고도 못 치는’ 공을 던지는 투수였다는 얘기다.

선동열의 누적 WAR 79.5에 가장 근접한 정민철은 선동열보다 700이닝 가까이 더 던지면서도 WAR 47.2에 머물렀고, 선동열의 두 배 가까운 이닝을 던진 송진우의 누적 WAR도 41.1에 불과하다. KBO리그 사상 1000이닝 이상 던지면서 이닝보다 많은 삼진을 잡아낸 선수도 선동열이 유일(1647이닝 1698탈삼진)하다. 선동열의 ‘넘사벽’에 가장 근접한 현역 선수였던 류현진(1269이닝 1238탈삼진, WAR 37.3)마저 메이저리그로 떠나면서, 선동열의 역대 최고 자리는 태양 흑점이 폭발할 때까지 계속 유지될 가능성이 커졌다.
단일 시즌 최악 타격: 2007 KIA 이종범 (WAR -2.7)

이종범은 역사상 최고의 자리와 최악의 자리에 모두 이름을 올렸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뒤 2002~2005년간 4년 연속 리그 정상급 외야수로 활약했지만(WAR 4.4/5.2/3.5/4.0), 2006년 심상치 않은 부진을 경험한 뒤(WAR 0.3) 2007년에는 데뷔 이래 최악이자 KBO리그 사상 최악의 성적을 남기고 말았다. 그해 이종범의 성적은 84경기에서 타율 0.174 출루율 0.217 장타율 0.209에 1홈런 3도루가 전부. 보통 이 정도로 부진한 선수가 있다면 벤치에 앉혀두거나 2군으로 내려보내는 게 상식적인 선택이지만, 이종범이라는 이름값과 특별한 팀 내 위상 탓에 시즌 내내 경기에 모습을 드러냈다(지금도 KIA에는 이와 비슷한 선수가 적지 않다).

이후 이종범은 2008년과 2009년 타율을 2할 7푼 이상으로 끌어올리며 부활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그해 올린 WAR은 각각 0.9와 0.1로 팀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 수준이었다. 이종범이 마지막 6년 동안 쌓은 WAR은 -1.7로, 보통의 선수가 이 정도 오랜 기간 동안 이만큼 팀에 손해를 끼친 사례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 6년씩이나 되기 이전에 방출되거나,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되기 때문이다. 이종범이 데뷔 첫 5년 동안 보여준 활약상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국내 복귀 이후 이종범의 모습은 깊은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한편 2003년 롯데 박현승도 그해 WAR -2.7로 역대 최악의 성적을 냈다. 박현승은 118경기에 출전해 타율 0.235에 출루율(0.279)보다 낮은 장타율(0.272)을 기록했고 홈런도 ‘0’개에 그쳤다. 거포와 강타자가 즐비한 코너 내야수 포지션을 감안하면 아주 이례적인 성적이다. 게다가 2003년은 삼성 이승엽이 56개 홈런을 때려낸, 타고투저 시즌이었다.
단일 시즌 최악 투수: 1982 삼미 인호봉 (WAR -3.1)

역대 KBO리그 규정이닝 투수 평균자책점 최하위(6.56), 한 시즌 90볼넷 이상 투수 중 삼진/볼넷 비율이 0.5 이하인 유일한 투수, 프로 원년 삼미 소속으로 투수로서는 쉽지 않은 -3.1의 WAR을 기록한 인호봉의 기록이다. 물론 어떤 소설에서 표현한 것처럼 ‘우주의 역행과 자연의 순리를 거스른’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팀에서 좋지 못한 시즌을 보낸 투수가 인호봉 하나만 있던 건 아니다. 1982년 삼미에서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총 8명. 이 중 WAR이 마이너스를 기록하지 않은 투수는 오문현(0.1)과 김재현(1.1), 그리고 1루수지만 투수가 모자란 팀 사정상 선발로 등판해 3이닝을 던진 김경남(0.0)밖에 없었다. 삼미는 인호봉 외에도 감사용과 김동철이 나란히 WAR -1.8에 그쳤다.


그렇다면 이듬해인 1983년 삼미가 리그 3위로 올라선 비결은? 새롭게 가세한 장명부(WAR 10.9)와 임호균(4.0) 두 투수가 팀 전체 이닝의 72.8%에 해당하는 662이닝을 책임진 덕분이다. 나머지 7명의 삼미 투수는 247이닝을 던지며 WAR -2.1을 합작하는 데 그쳤다. 인호봉은 1983년 WAR -0.6, 1984년 -0.6, 1985년 -0.1로 4년 동안 한 번도 대체선수 이상의 활약을 하지 못한 채 유니폼을 벗었다.
역대 최악 타자: 한화 김수연 (WAR -5.4)

김수연은 한화에서 10시즌 동안 주로 대주자, 대수비 요원으로 활약하며 통산 841경기에서 1769타석에 나섰다. 그리고 해당 기간 동안 0.249의 타율과 0.311의 출루율, 그보다 낮은 0.292의 장타율을 기록했다. 10시즌 동안 때려낸 홈런은 2개 뿐이며, WAR이 플러스였던 시즌은 2001년(0.3)과 2003년(0.7) 두 차례에 그쳤다. 만약 수비에서의 기여도를 포함시켰다면 -5.4보다는 다소 적자폭이 줄어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찌됐든 타석에서 그다지 생산적인 유형의 타자가 아니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역대 최악 투수: 삼미 인호봉 (WAR -4.4)

순수하게 누적 WAR만을 놓고 따지면 이 부문에서도 가장 나쁜 성적은 삼미 인호봉(-4.4)이다. 그러나 인호봉은 4시즌 동안 60경기에서 194이닝만을 던진 뒤, 그 이후로는 더 이상 팀에 손해를 끼치지 않았다. 좀 더 오랜 기간 동안 비생산적인 기록을 남긴 선수를 찾는다면, 8시즌 동안 135경기에 등판해 327.2이닝을 투구할 동안 WAR -3.0에 그친 롯데 이상번이 있다. 좀 더 기준을 높여 200경기 이상-400이닝 이상 투수 중에서 고르면 OB와 롯데에서 활약한 김영수(-1.1)가, 300경기 이상-500이닝 이상 투수 중에는 안영명(-1.0)이 있다. 그리고 현역 투수 중 WAR 마이너스 선수는 안영명 외에 심수창(-0.2)이 유이하다. 롯데는 심수창을 2013년 2차 드래프트에서 보상금 2억원을 주고 영입했다.


기록출처: www.baseball-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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