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문재인에 힘 싣기…"원내대표 합의추대"

새정치연합, '文 책임' 놓고 이견 분분

4.29 재보선 참패의 충격에 휩싸인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 문재인 지도부의 선거 책임론을 놓고 다른 방향의 의견이 동시 개진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김한길 전 대표와 가까운 의원들로 구성된 '민집모' 그룹에서는 '문재인 대표가 더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반면, 안철수 전 공동대표 측에서는 "지도부를 흔들지 말고 조속히 당을 안정화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안 전 대표는 30일 오후 본회의를 앞두고 문 대표를 찾아가 만나 '원내대표 선거를 경선으로 치르지 말고 합의 추대하자'는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대표 측 관계자는 제안 배경에 대해 "'당 지도부가 어려울 때 흔들기보다 조속히 당을 안정화해야 한다. 친노-비노 갈등이 또 있다면 국민들이 당을 어떻게 보겠나'라는 측면에서, 그런 일이 없도록 문 대표가 지도력을 발휘해 원내대표 선거를 통합의 장으로 만들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문 대표와 가까운 한 당직자는 "안 전 대표가 문 대표에게 이같은 제안을 한 것은 맞다"고 확인하면서 "(문 대표는) 제안을 '들은' 것이지, 그렇게 하자고 확정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안다. 상황을 좀 지켜보자"고 전했다.

안 전 대표의 이같은 메시지는 선거 패배 후 지도부 일각이나 비주류 그룹 내에서 재보선 패배에 대한 문 대표 책임론이 불거지는 가운데, 비주류 그룹 내의 '간판 스타' 격인 그가 나서 오히려 문 대표를 중심으로 당을 안정화해야 한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해석돼 눈길을 끈다.

다만 안 전 대표가 '합의 추대'의 대상 인물로 비주류 인사를 염두에 두고 이같은 제안을 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문 대표로 대표되는 주류 그룹 안에서 신임 원내대표가 선출될 확률이 높은 상황에서, 문 대표에게 일종의 희생을 요구한 것 아니냐는 풀이다. 문 대표 측 관계자는 "사실 전당대회 때 문 대표를 돕지 않았던 분을 원내대표로 합의추대하는 것도 고려 가능한 카드이기는 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안 전 대표는 이날 본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이른바 '지도부 책임론'에 대해 "지도부가 고민이 깊을 테고, 당 전체로 고민해야 할 문제"라며 "지도부가 판단하실 것"이라고만 말했다. 그는 "국민 선택을 무겁게 받아들인다. 드릴 말씀은 그것밖에 없다"면서 극도로 말을 아끼는 가운데 기자들의 거듭된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문재인 입장 표명 '약하다'는 비판도…'민집모' 오찬서 "文 실망스러워"

앞서 새정치연합 내, 특히 비주류 그룹에서는 이날 오전 있었던 문 대표의 입장 표명(☞관련 기사 : 문재인 "제가 부족…민심 대변 못해 송구")에 대해 '그것으로는 부족하다'며 비판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주승용 최고위원은 이날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고위원직 사퇴 의사를 밝히며 문 대표를 압박하기도 했다. 주 최고위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자신이 사퇴하겠다고 한 배경에 대해 "좀 무겁게 해야 하지 않느냐. '앞으로 잘 하겠다'는 정도로는 좀 약하지 않느냐는 차원"이었다며 "문 대표가 최고위원회의와 사전 논의 없이 입장을 발표한 것에 유감을 표명한 것"이라고 했다. 주 최고위원은 사퇴 의사를 관철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 문제는 제가 좀 말씀드리기가…(어렵다)"며 답을 피했다.

주 최고위원은 김한길 지도부 시절 당 사무총장을 지내, 이른바 '김한길계'로 불린다. 김 전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재보선 결과와 관련 "이겨야 하는 선거를 졌다"며 "총선을 앞두고 있으니 다들 걱정이 크고, 저도 고민이 깊다"고 했다. 김 전 대표는 지도부 책임론에는 "제가 할 얘기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일견 원론적으로 보이는 그의 말은 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이겨야 하는 선거에서 졌다"는 말은 김 전 대표가 지난해 7.30 재보선 직후 대표직 사퇴 회견 첫머리에서 한 말이기 때문.

김 전 대표와 가까운 의원들로 구성된 '민주당 집권을 위한 모임(민집모)' 역시 이날 오찬 회동을 갖고 문 대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집모 소속 한 중진 의원은 <프레시안> 기자와 만나 "지도부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 게 아쉽다. (문 대표가) 물러나고 안 물러나는 문제를 떠나, 통렬한 자기 책임과 반성이 있어야 했는데 실망스럽다"는 이야기가 이날 오찬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이 중진 의원은 "4대0으로 완패한 것에 대해 '진 것도 진 것이지만 격차가 너무 벌어졌다'는 걱정이 나왔다"면서도 이들이 민집모 차원에서 어떤 실천을 보일지에 대해서는 "일단 사태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 정도 수준이었다고 덧붙였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저는 그런 (책임론) 얘기 한 적 없다. 제가 책임론 들고 나올…(입장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호남이 바로잡아 지탱하고 있었는데 이마저도 무너져 내렸다. 모든 게 우리 책임"이라고 광주 보궐선거 패배의 뼈아픈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호남 민심을 수습할 대책과 관련해서는 "(시간을) 두고 생각하자"면서도 "어떤 방안을 보여 주는 게 중요하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으면 안 된다"고 조속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신이지만, 박영선 원내대표 겸 비대위원장 시절 새정치연합 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된 바도 있는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이날 오전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국을 전향시킬 수 있는 인물 카드를 써야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안일하게, 이른바 상향식 공천이라고 해서 그야말로 무난하게 잡음이 안 나는 공천을 했다"며 "그렇게 해서 이렇게 무색무취하게 패배한 것이다. 선거전략 면에서 반성할 점이 많다"고 문 대표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처럼 비주류 그룹 내에서 문 대표에 대한 비판론이 나오면서 한 줄기 '원심력'이 작용하는 가운데, 비주류 내에서 가장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안 전 대표는 오히려 문 대표를 중심으로 당을 안정화하자며 '구심력'에 힘을 싣는 묘한 상황이 연출된 셈이다. 새정치연합은 이날 오후 본회의 이후 의원총회를 열고 재보선 참패를 반성하고 향후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의총 분위기는 매우 어둡고 침통했던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