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재보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겨우 4곳에서만 선거가 치러지는 '국지전'이지만, 내년 총선 전 마지막 선거가 될 이번 재보선의 의미는 가볍지 않다. 친박 핵심 인사들이 연루된 '성완종 리스트'의 후폭풍 규모와, 향후 이 논란을 포함한 정치 이슈 전반에 대해 가장 큰 발언권을 가질 야권의 '적통'이 누구냐를 가늠할 잣대가 되기 때문.
여당인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전자의 의미가 크다.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민심의 평가가 어떨지, 그 평가가 바로 표로 환산될지를 이번 선거를 통해 짚어볼 수 있다. 반면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후자에 무게가 더 쏠릴 수밖에 없다. 출범 석 달째를 맞은 '문재인 체제'의 순항 여부에 이번 재보선 결과는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양당 전략 담당자들의 발언에서도 이들 정당이 이번 재보선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의 경우, 국민들은 이를 어떤 특정 정당의 잘못이라기보다 정치권 전반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여론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특정 이슈에 쏠렸던 민심이 차츰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진복 새누리당 전략기획본부장, 27일 한국방송 라디오 인터뷰)
"판세는 초접전이다. 4대0으로 이길 수도 있지만 4대0으로 질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이번 선거에서 2곳에서는 승리해야 국민적 요구에 답할 수 있다." (이춘석 새정치연합 전략홍보본부장, 26일 기자간담회)
관악·광주 : '여당 대 야당'이냐, '야당 대 야당'이냐
문재인 대표를 비롯한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야권 내의 경쟁' 구도를 거부하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 사태 또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안보 무능'을 전면에 내세워 여야 간의 대립 구도를 기본 틀로 놓고, 새누리당과 맞설 야권의 '대표 선수'가 문 대표임을 내세우겠다는 것이 새정치연합의 셈법이다. 철저히 '문재인 브랜드'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것.
실제로 문 대표는 27일 오후 의원총회에서 "불법 정치자금과 불법 대선자금은 자신들이 받았는데 자꾸 야당 탓만 하고 있다"고 새누리당에 날을 세웠다. 그는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며 "물타기로 국민을 속이는 것도 한 두 번이지, 국민의 분노만 더 키울 뿐"이라고 정부·여당을 거칠게 비난했다. 같은 날 광주에서 그가 "정권 교체가 가능한 정당으로 우리 당은 거듭나고 있다"며 "우리 당 대선주자 지지율 합이 50%가 넘고 새누리당을 압도하고 있다"고 자부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다만 '문재인 브랜드'로 선거를 치른다는 것에는 위험 부담도 있다. 이기면 다행이지만, 지면 문 대표의 리더십에 타격이 온다. 현재 야권 대선주자 중 수위를 달리고 있는 그의 지지율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그가 박근혜 대통령을 공격하는 등 '여야 간 대립' 구도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야권이 또다시 분열한다면 정권 교체의 희망은 또다시 멀어질 것"(27일, 광주 현장 최고위원회의)이라고 무소속 후보들을 견제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들이 선거 승리의 현실적인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이 '반드시 이겨야 하는 지역구'인 광주 서을의 경우를 보면, 최근의 어떤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새누리당 정승 후보는 정의당 강은미 후보와 3위 싸움을 벌이는 정도 처지다. 당선 가능권에 있는 후보는 새정치연합 조영택 후보와 무소속 천정배 후보다. 만약 광주에서 새정치연합 후보가 진다면, 1988년 소선거구제 전환 이후 처음 있는 일이 된다. 가뜩이나 호남 홀대론, 친노-비노 논란 등으로 홍역을 치렀던 문 대표에게 이번 광주 서을 보궐선거의 중요성은 불문가지다.
문제는 '반드시 이기는' 게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 직전인 지난 21~22일 <폴리뉴스> 의뢰로 '한길리서치'가 실시한 조사에서는 천정배 37%, 조영택 25%라는 결과가 나왔다. 같은 기간에 실시한 MBN-리얼미터 조사에서는 천정배 37.9%, 조영택 36.2%였고, CBS-조원씨앤아이 조사에서는 천정배 41.6%, 조영택 29.9%였다. (☞중앙선거여론조사 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조사 상세내용 보기)
새누리당 오신환, 새정치연합 정태호, 무소속 정동영 후보가 초접전 양상을 보이고 있는 서울 관악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지역구 역시 1988년 이후 한 번도 빠짐없이 현 새정치연합의 전신인 정당들이 승리해온 곳이다. 당초 새정치연합 쪽 선거 전략 담당자들의 공통된 예측 겸 득표전략은 무소속 정동영 후보의 득표를 20% 미만으로 묶고, 새누리당에 10%포인트 내외로 이기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여론조사를 돌려 보니 오신환 33.9%-정동영 29.8%-정태호 28.1%(MBN-리얼미터), 오신환 31.8%-정동영 28.4%-정태호 18.1%(브레이크뉴스-휴먼리서치) 등 정태호 후보가 정동영 후보에 뒤쳐지는 결과가 제법 나왔다. 단 CBS-조원씨앤아이 조사에서는 오신환 35.9%-정태호 34.4%-정동영 22.9%였다. (☞중앙선거여론조사 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조사 상세내용 보기)
표본 수나 낮은 응답률, 자동응답(ARS) 방식 조사의 신뢰성 문제 등을 감안하더라도 이들 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대략의 추세는 있다. 정동영 후보 지지세를 20% 이내로 묶는다는 정태호 캠프의 전략이 잘 먹히지 않고 있다는 것, 정동영 후보와 정태호 후보의 지지율을 합하면 대체로 과반이 너끈하다는 것 등이다. 지난 24일 문 대표는 관악 지역 현장을 찾아 "박근혜 정부의 경제 실패와 부정부패를 심판해 달라"면서 "무소속으로는 심판할 수 없다"고 사실상 정동영 후보를 겨냥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이 두 곳, 즉 서울 관악을과 광주 서을은 새정치연합이 26일 당 사무총장-전략본부장 기자간담회를 통해 '최대 전략 지역'으로 꼽은 곳이다. 앞서 이춘석 본부장이 '최소 2곳에서는 이겨야 한다'고 했는데, 그 '최소 2곳'은 바로 이들 지역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풀이가 많다.
인천·성남 : 새누리 우세 유지? 막판 뒤집기?
전통적인 여야의 1대1 대결 구도인 인천 서·강화을 지역구와 경기 성남중원 지역구는 현재 단계에서는 새누리당 후보가 다소 앞서 가는 상태라는 것이 지배적 관측이다. 공표 금지 전 마지막 조사인 MBN-리얼미터 조사에서 인천은 새누리당 안상수 45.8%-새정치연합 신동근 41.7%로, 성남은 새누리 신상진 46.0%-새정치 정환석 35.0%로 집계됐다. (☞중앙선거여론조사 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조사 상세내용 보기)
인천 지역의 경우, 새누리당 안상수 후보는 인천시장 출신으로 쌓은 높은 인지도가 강점인 반면, 서·강화을 지역구에 특별한 연고가 없는 점이 약점이며 시장 재임 시절의 부채 증가 문제로 야당의 공격을 받고 있다. 반면 새정치연합 신동근 후보는 강화 출신으로 이 지역구에서만 4번째 국회의원직에 도전하는 지역 토박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고, 검단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유권자층이 젊어진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역시 강화 출신인 문재인 대표의 아내 김정숙 씨가 지원 유세에 나선 것도 변수가 될지 주목된다.
성남 중원구는 새누리당 신상진 후보가 이 지역구에서 재선 국회의원(17·18대)을 지낸 저력을 뽐내며 선거 기간 내내 여론조사 선두를 놓치지 않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정환석 후보의 상승세가 완연하다"며 "턱밑까지 추격해 가고 있다"(22일 진성준 전략기획위원장 기자간담회)고 자신하는 등 막판 추격 의지를 불태우고 있지만, 통합진보당 해산에도 불구하고 두 자릿수 지지율을 보이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구 통합진보당 출신 김미희 전 의원(무소속)이 있는 한 '뒤집기'가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냐는 회의론도 짙다.
2012년 19대 총선 당시는 민주통합당(현 새정치연합)과 구 통합진보당 단일 후보였던 김 전 의원이 불과 600표 차이로 신 후보를 제쳤었다. 당시 투표율은 48.5%였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6일 '48시간 마라톤 유세'를 선언하는 등 완주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고, 만에 하나 김 전 의원이 막판 사퇴를 한다고 해도 이미 27일 오후까지 독자 노선으로 선거를 치른 만큼 시너지가 제대로 발휘되기 어려운 상황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여야 대결 구도로 선거가 치러지는 이 두 지역에서는, 수도권이라는 특성도 있는 만큼 '성완종 리스트'의 영향력이 얼마나 표심에 영향을 미칠지와 함께 투표율이 최종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는 투표율이 높을수록 야당에, 낮을수록 여당에 유리하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 24~25일 실시된 이번 재보선 사전투표의 투표율은 7.60%로, 상당히 높은 편이기는 하지만 지난해 7.30 재보선 때의 7.98%에는 미치지 못했다. 2013년 4.24 재보선 때의 사전투표율은 6.93%, 같은해 10.30 재보선 사전투표율은 5.45%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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