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내 최고의 타자는 몇 번 타순에 배치해야 할까?
이는 야구가 시작된 이래 끊임없이 계속된 질문이다. ‘감독 마음대로’라는 모범답안이 있기는 하지만 최고 강타자의 타순은 시대와 리그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 왔다. 최근의 메이저리그에서는 주로 팀 내 최고의 타자가 3번을 치는 경우가 많으며, 한국이나 일본의 동양야구에서는 4번을 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진보적인 통계 지표를 중시하는 세이버메트리션들은 팀에서 가장 뛰어난 타자를 2번 타순에 배치하는 것이 팀의 공격력을 극대화시키는 데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이라 주장한다. 반대로 가장 못 치는 선수는 9번이 아니라, 8번을 치는 것이 가장 팀 득점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 말을 들어서인지는 몰라도 내셔널리그에서 종종 투수를 8번타순에 기용하는 감독들도 존재한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2번 타자는 뒤이어 나올 3, 4, 5번 타자를 위해 밥상을 차려줘야 하는 테이블 세터의 역할을 맡는다. 그렇기에 출루능력이 좋아야 하며, 도루 등의 작전수행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팀 내에서 가장 뛰어난 타자들은 그 이후에 나와 먼저 밥상을 차린 선수들을 불러들여야 한다. 세이버메트리션들의 주장은 이런 기존의 주장과 상반되는 주장이다.
이론이 현장에 적용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세이버메트리션들도 ‘강타자를 2번에 배치하면 팀 득점이 늘어난다’고 주장하면서도, 이는 ‘한 시즌에 약 10득점 내외로 크게 유의미할 만큼의 차이는 아니’라고 인정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일까? 근래 메이저리그에서는 ‘클린업을 쳐야 할 선수들’이 2번 타순에 들어서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각 리그별로 가장 대표적인 선수를 꼽아본다면 아메리칸리그에서는 마이크 트라웃(LA 에인절스), 내셔널리그에서는 조이 보토(신시네티 레즈)가 있다. 두 선수는 누가 봐도 확실한 팀 내 최고의 타자이며 리그 MVP에 도전할만한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지만, 올해 출장한 모든 경기에서 2번 타순에 들어서고 있다.
야구 천재 트라웃이야 못 하는 것이 없는 선수이며 주루플레이도 워낙 뛰어나기에, 2번을 치더라도 전통적인 야구관에 크게 반하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육중한 몸을 가졌고 메이저리그에서 작년까지 8년 동안 48개의 도루를 하는 데 그친 보토는 뛰어난 출루 능력과는 별개로 전통적인 2번 타자와는 거리가 멀다. 도루가 적으면서도 주루플레이가 능한 선수들은 분명 존재하지만, 보토의 통산 BsR(팬그래프에서 제공하는 주루지표로 리그 평균의 주자에 비해 주루플레이로 몇 점을 더 혹은 덜 얻어냈는지를 의미한다)은 -8.7로 리그 평균 미만의 주자라 볼 수 있다.
두 선수 말고도 전통적인 타순에서는 중심타선에 해당하는 스타일의 타자들이 2번 타순에 들어서는 사례는 더 있다. LA 다저스의 야시엘 푸이그, 시카고 컵스의 호르헤 솔러, 콜로라도 로키스의 코리 디커슨 등의 선수들은 10년 전이었다면 3~5번, 팀 타선이 매우 강할 경우 6번 정도를 쳤을 만한 타자들이지만 올해는 2번 타순에 주로 등장하고 있다.
현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똑똑하고 창의적인 감독 중 하나로 꼽히는 시카고 컵스의 조 매든 감독은 이런 변화에 앞장서는 사령탑이다. 매든은 팀에서 가장 잘 치는 타자면서, 주루능력보다는 파워가 훨씬 돋보이는 솔러 혹은 앤서니 리조를 2번 타자로 기용하고, 8번 타순에는 투수를 배치하는 세이버메트리션 기준의 ‘이상적인 타순’으로 시즌을 치르고 있다. 물론 아직 시즌이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았고 전적으로 타순 변경 때문만이라 볼 수는 없지만, 현재까지 컵스는 작년보다 훨씬 나은 공격력(평균 득점 3.79 -> 4.43)을 팬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해 보이는 전문 마무리 투수의 도입도, 토니 라루사 감독의 데니스 애커슬리 기용이 성공적이었기에 나머지 팀들도 따라 하면서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전통적인 타순에 비해 새로운 시도가 더 팀 공격력에 효과적이라는 판단이 든다면 머지않아 모든 팀에서 가장 뛰어난 타자를 2번에 배치하게 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1번 타자가 출루하고 2번 타자가 번트로 주자를 진루시키는 모습은 ‘자료화면’에서나 볼 수 있게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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