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의 재계약 트렌드가 변하고 있다. 기존에는 FA를 앞둔 직전 해에 재계약이 이루어졌다면, 최근에는 젊고 유망한 선수들이 1~2년 차일 때 재계약을 맺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새로운 재계약 방식은 연봉조정신청 기간 전체(4~6년 차)와, 예전 같았으면 FA 선수가 됐을 시점 이후 몇 년간(7년 차 이후)을 포함하는 형태를 띤다.
최근 피츠버그 파이어리츠가 3루수 조시 해리슨과 4년 2730만 달러에 재계약한 것이 그 예다. 해리슨은 2016년과 2017년 연봉을 보장받는 대신, 정상적이었다면 FA 1년차가 됐을 2018년에도 피츠버그에 머물며 1050만 달러를 받고 뛰게 된다. 또한 팀이 원하면 2019년, 2020년에도 각각 1150만 달러를 받으며 뛰어야 한다. 팀 옵션 때문이다.
해리슨에 앞서 2014시즌 AL 사이영 수상자 코리 클루버, 가능성을 보여준 카를로스 카라스코, 캔자스시티의 신예 투수 요다노 벤추라, '수비 괴물' 후안 라가레스, 떠오르는 톱 타자 아담 이튼도 비슷한 형태의 재계약을 맺었다. 이대로라면 메이저리그의 소위 '잘나가는' 젊은 선수들은 과거에 비교해 FA 시장에 나오는 시기가 늦어질 것이다.
선수들이 한 살이라도 어린 시기에 FA 시장에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팀에게 유리한 계약을 받아들이는 최근 트렌드는 이런 의문을 갖게 한다. 대체 왜 선수들은 팀에게 유리해 보이는 계약을 맺어주는 것일까?
바로 안정성을 추구하려는 성향 때문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버튼이 두 개 있다. 하나는 누르는 순간 그 자리에서 10억 원을 주는 버튼이다. 다른 하나의 버튼은 50%의 확률로 100억 원을 주는 버튼이다. 사람들은 어떤 버튼을 누를 것인가. 기대수익을 고려했을 때, 더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은 '50%의 확률로 100억 원을 주는 버튼'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100%의 확률로 10억 원을 주는 버튼을 누른다.
메이저리그의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만약 FA까지 지금과 같은 추세로 활약한다면 더 고액의 장기계약을 맺을 수 있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보장된 큰 금액'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기는 어렵다. 보장된 몇 천만 달러(몇 백억 원)는 그만큼 매력적이다. 스몰마켓 팀들은 몇 천만 달러를 보장해줌으로써 정상적이었다면 FA가 되었을 시기 이후 1~2년을 '입도선매'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물론 구단으로서도 약간의 모험을 감수하는 계약이다. 팀 당 1년에 3명 정도는 토미 존 수술(팔꿈치 측부인대 접합수술)을 받는 시대다. 믿었던 타자 유망주들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허다한 투고타저 시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계약을 맺는 구단들은 실패했을 경우 발생할 피해보다, 성공할 경우 얻는 이익이 몇 배나 크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약물의 시대가 끝나면서 선수들의 실력이 정점을 찍는 나이는 과거 약 28세에서 약 26세로 앞당겨졌다. 이제 배리 본즈처럼 30대 후반의 나이임에도 홈런 신기록을 세우는 선수는 없다. 한마디로 선수들의 노쇠화 시기가 앞당겨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번 치솟아 오른 FA 선수들의 몸값은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A급 선수들은 적어도 5년 이상의 계약 기간을 원한다.
따라서 A급 선수들이 FA 획득 이후 전성기를 유지하는 기간은 길어야 2~3년 정도임을 알면서도 구단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장기계약을 안겨주고 있었다. 로빈슨 카노(32)와 계약한 시애틀 매리너스가 그 예다. 카노의 계약은 10년 2억 4000만 달러다. 하지만 만 42세까지 계약기간을 보장하면서 모셔온 카노가 과연 몇 년간 전성기에 근접한 성적을 기록해줄지는 의문이다.
조시 해리슨과 재계약한 피츠버그는 정상적이었으면 FA 계약 3년 차가 됐을 2020년까지 3350만 달러라는 적은 금액으로 해리슨을 보유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심지어 해리슨이 대오각성해 로빈슨 카노급의 성적을 거둔다고 해도 말이다. 해리슨이 이 계약을 맺지 않았다면, 해리슨의 전성기 3년을 얻기 위해서 피츠버그는 10년 2억 1000만 달러를 써야 할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스몰마켓 구단들은 자팀 내 핵심 선수들과 조기에 장기계약을 체결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이제 과거 '악의 제국' 시절 뉴욕 양키스처럼 'FA 최대어'를 영입함으로써 전력보강을 하기 어려워지는 시기가 곧 찾아오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런 흐름 속에서 지속적인 강팀이 되기 위해 빅마켓 구단이 취해야 할 효율적인 투자방식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에 대한 '모범답안'을 보여주는 팀들이 있다. 보스턴 레드삭스와 LA 다저스다. 두 팀은 얼마 전 쿠바 출신의 두 선수 요안 몬카다와 헥토르 올리베라를 각각 영입했다. 그 과정에서 '과도한 지출이 아니냐'는 의혹 어린 시선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두 팀이야말로 새로운 트렌드에 가장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팀들이다.
지금 시점에서 A급 선수의 영입을 위해 과도한 지출을 하지 않으면서도 팀 전력을 강화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그 중 하나는 유망주를 육성하는 방법이다. 외부 수급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래프트 순위에 따라서 쓸 수 있는 계약금 총액이 정해져 있는 현행 CBA(노사협약) 체제하에서, 성적이 좋은 구단은 드래프트에 돈을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하는 형편이다.
따라서 성적이 좋은 빅마켓 구단이 취할 수 있는 수단은 해외 투자로 국한된다. 즉, 이제 빅마켓 구단은 유망주(혹은 즉시 전력감인 선수)도 해외에서 구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이런 시장 상황을 이해한다면, 요안 몬카다와 헥터 올리베라 영입에 든 금액은 과잉투자라고 볼 수 없다. 심지어 다저스는 최근 볼티모어의 2015년 드래프트 2라운드 로터리 밸런스 픽을 사실상 현금(약 270만 달러)을 주고받아오는 새로운 방식의 트레이드를 했는데, 이는 현행 체제 하에서 빅마켓 구단이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식의 투자 방식 중 하나로 보인다.
어쨌든, 지난 몇 년간 육성해온 유망주들과 몇 건의 해외 영입으로 보스턴 레드삭스와 LA 다저스의 <베이스볼 아메리카> 선정 마이너리그 시스템 순위는 각각 2, 3위가 됐다. 이는 올 시즌 지구우승이 유력한 두 팀이 미래마저 보장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두 팀의 총연봉은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힐 만큼 높지만, 동시에 유연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는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슈퍼스타(다른 말로는 장기계약자)'가 즐비했던 반면, 마이너리그 로스터는 빈약했던 과거의 강팀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2002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머니볼' 혁명 이후 스몰마켓 팀과 빅마켓 팀은 마치 톰과 제리와 같이 쫓고 쫓기는 관계였다. 톰은 힘이 세지만, 꾀가 많은 제리에게 늘 당하는 역할이다. 제리가 톰을 골탕먹이는 장면을 보고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시기가 메이저리그에도 있었다. 하지만 점점 '빅마켓' 톰이 '스몰마켓' 제리의 새로운 전략에 대응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각 구단 수뇌부들의 치열한 두뇌싸움은 메이저리그를 즐기는 또 다른 재미다. 새로운 트렌드에 맞춘 톰과 제리의 싸움은 앞으로 과연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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