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세월호 1주기를 맞아 진도 팽목항을 방문했지만 유족들을 만나지 못했다. 유족들이 박 대통령의 방문 일정을 듣고 자리를 피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팽목항 방문 일정은 청와대에서 이날 오전에 정식 공지할 정도로 비밀리에 추진됐다. 그러나 이미 전날부터 박 대통령이 팽목항에 방문한다는 미확인 정보들은 나돌았었다. 비밀이 비밀이 아니었던 셈이다.
유족들을 만나지 못한 박 대통령은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과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실종자들의 사연을 들었다. 박 대통령은 말없이 듣기만 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분향 옆에 있는 실종자 가족들의 임시 숙소를 둘러 본 뒤 방파제로 이동했다. 방파제 중간 쯤에 서서 바다를 뒤로 하고 준비해간 발표문을 읽었다.
박 대통령은 "오늘 세월호 사고 1주기를 맞아 희생자와 실종자 분들을 진심으로 애도하며 온 국민과 함께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메시지는 두 가지였다. "빠른 시일 내에 선체를 인양"하겠다는 것이고, "이제는 고통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 "좌절은 희망을 잃게 한다"
박 대통령은 "아직도 사고 해역에는 9명의 실종자가 있다. 정부는 실종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다해나갈 것"이라며 "저는 이제 선체 인양을 진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요한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해서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선체 인양에 나서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1년 전 오늘 우리는 온 국민에게 충격과 고통을 안겨준 세월호 사고로 너무나 소중한 많은 분들 잃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갑자기 보낼 수밖에 없었던 그 비통한 심정과 남아 있는 가족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고통의 무게를 생각하면, 저는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건지, 마음이 무겁고 아프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갑자기 가족을 잃은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 아픔이 지워지지도 않고 늘 가슴에 남아서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도 제 삶을 통해서 느껴왔다"고 말했다. 부모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고 육영수 여사를 떠올린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러나 이제는 가신 분들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그분들이 원하는 가족들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고통에서 벗어나셔서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바란다. 좌절은 희망을 잃게 하고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들어 간다. 우리 스스로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워 살아나가야만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국회에서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됐고, 이에 따라 민관 합동 진상 규명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하여 곧 추가적인 조사가 진행될 것"이라며 "피해 배보상도 제 때에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안전 국가 건설은 정부의 노력 만으로는 할 수가 없다"며 "국민 여러분께서도 안전 의식이 체화되고 안전 문화가 생활화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함께 노력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우리 국민들은 오랜 역경과 시련 속에도 그것을 극복하며 기적의 역사를 써왔다. 이제 세월호의 고통을 딛고 그 역경과 시련을 이겨내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길에 나서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우리는 지난 1년 간 겪었던 슬픔에 좌절하며 그냥 주저앉아 있을 수 없다. 이제 우리 모두 함께 일어나서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날 유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은 정부에 항의하는 뜻에서 분향소를 임시 폐쇄하고 팽목항을 떠났다. 이들은 "개인적인 일을 보러 간다"며 이유를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박 대통령의 방문 소식을 접한 후 자리를 비운 것으로 추정된다.
박 대통령의 팽목항 방문 소식이 알려진 후 한 실종자 가족은 "대통령이 오거나 말거나, 어차피 쇼하려고, 보여주려고 오는 것 아니냐"라며 "저기(청와대)는 저기 알아서 하고 우리는 우리 일정대로 한다"고 박 대통령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프레시안 기획위원인 이상엽 작가가 현장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