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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하는 박근혜, 아직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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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출국하는 박근혜, 아직 늦지 않았다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복기를 두려워하면 재난은 또 덮친다

바둑에서 진 사람은 복기(復棋)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패인(敗因)을 다시 떠올려야 하는 아픔을 맛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프로 바둑에서는 거의 빠짐없이 복기한다. 복기가 확실한 패인과 패착을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성실하게 복기한 패자(敗者)가 자신의 패인과 패착점을 뇌에 각인한다면 다음번에는 훨씬 좋은 바둑을 둘 수 있고 승리도 거머쥘 수 있다. 만약 기분 나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성의 없이 복기한다면 다음번에도 이길 가능성은 낮아진다.

위기나 재난도 바둑과 별반 다르지 않다. 특히 엄청난 인명 피해나 재산 피해를 낸 재앙 수준의 위기는 반드시 복기해야 한다. 재난의 정확한 원인은 무엇인지, 재난 대응에는 어떤 결정적 문제가 있었는지 따위를 묻고 따져야 한다. 재난의 직·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나 기관이 자신들에게 돌아올 비판과 비난의 화살이 무서워 이를 애써 무시하려 하거나 소홀히 하면 반드시 비슷한 위기나 재난이 머지않아 또 발생하기 마련이다.

재난의 복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졸장부다. 재난의 진실을 파헤치기를 꺼리는 기관은 존재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국가기관이나 공공기관이라면 더욱 그렇다. 재난의 아픔을 다 함께 기억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다짐하는 자리를 피하는 지도자가 있다면 지도자란 이름을 들먹이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

한 것 없이 허송세월 보낸 박근혜 정부 세월호 1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1년이다. 세월호 희생자의 넋을 달래고 유가족의 상처를 치유하며 이 땅에 다시 비슷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데 우리 사회가 제대로 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1년이란 세월이 훌쩍 흘렀다. 사고의 정확한 원인도 모른다. 9명의 실종자 주검을 품고 있을 세월호는 여전히 차가운 바다 밑바닥에 놓여 있다. 인양을 서둘렀다면 벌써 뭍에 그 모습을 드러냈을 터인데 말이다.

이렇게 된 데는 전적으로 세월호 참사의 복기를 꺼리는 세력들에 책임이 있다. 이들은 요즘 빨간색을 보고는 놀라지 않고 노란색만 보면 핏대를 올린다. 노란 개나리가 아직 채 지지 않은 1주기를 맞아 세월호 참사는 복기하고 또 복기해야 한다.

그날은 참 허망했다. 허둥댔다. 모든 것이 거꾸로 돌아갔다. 하늘을 향해야 할 배가 바다 밑바닥을 향해 누워버렸다. 함께 살 수 있는데도 선장과 선원들은 자신들만 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갑판 위로 올라가라는 말 한마디만 했더라도 비극의 무게는 크게 줄일 수 있었다. 해경이 제대로 된 장비만 가지고 현장에 가 배 안으로 들어갔더라도 슬픔은 반감될 수 있었다.

해경이고, 해양수산부고, 청와대고 제대로 된 곳이라고는 눈에 띄지 않았다. 최고 책임자가 우왕좌왕하고 사태 파악을 못 하니 아랫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위기 대응은 대응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엉망이었다. 대응이 아니라 불응이었다. 사태 수습도 마찬가지였다. 국가 최고지도자는 마지못해 억지 눈물을 뒤늦게 흘렸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주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대한민국을 개조하겠다는 것은 완전히 빈말이었다. '혹시나' 했던 사람들에게 지금 남은 것은 '역시나'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5월 16일 세월호 유가족 면담, 5월 19일 대국민 담화 등을 통해 눈물을 보였다. ⓒ연합뉴스

박 대통령의 두 번의 실패

대통령은 가지 않아도 될 때 참사의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유가족들이 위로를 절실히 필요로 할 때 '도망치듯' 멀리 외국으로 떠나버렸다. 두 경우 모두 유가족의 상처를 아물게 하기는커녕 더 덧나게 하는 행동이었다. 위기(또는 위험) 커뮤니케이션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 가운데 하나가 사고나 사건 관련 최고 책임자가 필요한 때 현장을 찾아 사과하고 위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잘 알고 실천한 사람과 기관(조직)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다. 이를 제대로 실천에 옮기지 못한 사람과 기관(조직)은 나락으로 떨어져 신뢰를 잃거나 무너지고 말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다음 날 진도 팽목항 현장을 찾았다. 혹여나 살아 있을지 모를 학생과 승객을 구조하기 위해 뒤늦게 구조대가 안간힘을 쏟던 때였다. 하지만 대통령의 방문은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기는커녕 외려 구조에 방해가 됐다. 재난 대응 컨트롤타워 구실을 해야 할 고위층들이 너도나도 영접 의전에 신경을 더 곤두세웠다. 너무 일찍 현장을 갔던 것이다. 차라리 며칠 뒤 사실상 생존자를 구조하기 어렵다고 판단될 때 현장을 찾아 '유가족'들을 얼싸안고 함께 목 놓아 울었더라면 그나마 무너진 신뢰를 조금이라도 회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고 다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뒤 이를 실천하라는 소통 원칙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에서 박근혜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잘못을 시인하고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나 솔직하게 하지 않았다. 마지못해 시늉만 냈다. 이런 지적에 대해 당사자들은 오해라며 펄쩍 뛸지도 모르겠다.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 뒤 1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박근혜 정권이 보여준, 세월호 참사 수습은 참담하다. 1주기를 앞두고 보상금과 위로금 이야기만 늘어놓아 유가족을 분노케 했다. 이것도 모자라 여당 핵심의원은 세월호 특별위원회를 세금 도둑으로 몰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짐작하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세월호 특별위원회 사무처 조직을 관료들이 완전히 장악해 진상조사에서 안전 사회 시스템 구축까지 자신들의 마음대로 주무르겠다는 의도가 확실히 드러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을 내놓은 것이다. 상식을 거스르는 일이다.

소통에 실패하면 유가족과 국민 마음 얻을 수 없어

소통은 상대방의 마음을 사고,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다. 설득하려면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해 그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 유가족과 다수 국민은 원한다.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을 폐기한 뒤 유족과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시행령을 만들라고. 또 반드시 1주기 때 박근혜 대통령은 참석하라고.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는 이 두 가지 모두 거부했다. 박 대통령은 기어코 저 멀리 남미로 떠나고 말았다. 그곳에 국운을 좌우할 결정적 외교 현안이 있다면 몰라도 시기가 너무나 적절치 못했다. 이는 자칫 '성완종 게이트'와 '세월호 1주기'라는, 떠올리기조차 싫은 악몽을 눈앞에서 보기 싫어 잠시 피난을 간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벌써 누리꾼들은 이와 관련한 비판과 풍자로 사이버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상대방 국가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4월 16일에 떠난다고 말은 하고 있다. 그것을 곧이곧대로 귀담아들을 이가 얼마나 될까? 많은 국민 세금을 쏟아 부어가면서 떠난 외교의 성과물은 언론에서는 물론이고 국민조차 거들떠보지 않을 가능성이 짙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세월호와 집권·여당의 총체적 부패 추문만큼 중요하고 흥미진진하며 관심을 끌 소재가 어디에 있겠는가.

▲ 정부의 세월호 시행령 철회를 요구하며 행진하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 ⓒ프레시안(서어리)

존슨앤존슨사의 타이레놀 독극물 집단 사망 사건 위기 탈출에서 배워야

실패를 한 번 한 사람이나 기관(조직)에 다시 기회가 돌아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더는 기회를 주지 않을 만큼 늘 야박하지는 않다. 미국의 존슨앤존슨사는 1982년 자기 회사의 대표 상품인 두통약 타이레놀에 누군가가 청산가리 독극물을 넣어 이를 먹은 환자들이 집단으로 사망한 희대의 위기를 맞닥뜨렸다. 하지만 이 회사는 경영진과 직원들이 똘똘 뭉쳐 뛰어난 소통력과 솔직함으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넘겼다. 이 회사는 이 위기 극복을 계기로 이전보다 더 소비자들의 신뢰를 듬뿍 받는 기업으로 새로 태어났다.

박근혜 정권에게 1년 전 세월호 참사는 분명 정권 차원의 위기였다. 하지만 이에 잘 대처했더라면, 즉 존슨앤존슨사의 최고 경영진처럼 솔직하게 유가족·국민과 소통했더라면 비 온 뒤 더 굳어진 땅에 발을 내디딜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하지 못하다 보니 질척거리는 진흙탕 위에서 뒤뚱거리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사상 최대 정치부패 스캔들이 될 조짐을 보이는 '성완종 게이트'까지 터졌다. 세월호 유가족과 국민 안전 문제 해결이 하루가 급한데, 제대로 이루어질지 걱정이 앞선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유가족과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유가족과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모든 일을 처리한다면 마음을 얻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입원해있던 병원 앞에서 그에게 석고대죄하는, 이해 못 할 어느 정치인과 같은 모습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앞에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세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제 박근혜 정권과 정부는 재난이나 위기에서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그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많이 늦었지만 그래도 기회가 남아 있다. 남미 순방 후 귀국하면 바로 실천에 들어가야 한다.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나라 안팎에서 돌아가는 형국을 살펴보면 이제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여유는 사치란 생각이 든다.

안종주 사회안전소통센터장은 보건학 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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