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 하십니까?" 한때 이런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어느 대학생이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 붙인 이런 제목의 대자보는 당시 시대 상황을 한마디로 압축한 것이었다. 그래서 국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1년 여 전의 일이다.
국정원 등 정보·권력기관들의 조직적인 대선 개입이 사실로 드러나 지난해 내내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전국에서 촛불집회가 열렸다. 심지어는 대선 무효, 부정 투개표 목소리까지 터져 나왔다. 민주국가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졌지만, 범죄를 저지른 당사자는 물론이고 이로 엄청난 이익을 본 사람과 집단은 반성은커녕 거꾸로 범죄를 감시하고 고발한 사람들을 옥죄었다.
모든 것을 정치적으로 보는 경향이 너무나 큰 한국 사회는 내 편과 네 편으로 갈라졌다. 때론 거리에서, 때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터넷 등 사이버 공간에서 서로를 헐뜯기 시작했다. 사회는 안녕하지 못했다. "안녕들 하십니까?"는 '안녕하지 못하다'의 반어법이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지라, 권력기관의 대선 불법 개입은 국가의 기강과 헌법 질서를 무너뜨린 일이었지만 이제는 어느 언론도 이를 거의 다루지 않는다. 수사가 제대로 됐는지, 범죄의 몸통은 찾아냈는지, 처벌은 합당하게 받았는지 정확하게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해는 바뀌어 2014년이 되었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내걸었던 '국민대통합',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등 사실상 공약(公約)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대선 공약들이 모두 공약(空約)으로 변했다. 경제는 뒷걸음질 치고 국민들은 허탈감에 빠져들었다.
봄이 와도 봄을 못 느끼고 있던 4월 16일 아침 청천벽력의 우레가 대한민국에 살던 사람들의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꽃다운 어린 학생들을 포함해 아까운, 수많은 목숨들이 한꺼번에 바다 밑에 수장됐다. 세월호 참사였다. 온 나라는 2013년에 벌어졌던 정보·권력기관의 불법 대선 개입 사건 때보다 더 큰 파도를 일으키며 요동을 쳤다.
공중파와 종편들이 24시간 생중계하다시피 한 진도 팽목항 사고 현장에서 통곡을 하는 유가족들을 보고 국민의 눈에는 눈물이, 가슴에는 연민과 분노가 가득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안녕들 하십니까?'의 새로운 버전인 "안전들 하십니까?"가 유행했다. 안전한 대한민국, 안전한 사회가 화두가 되었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해 모든 것 바쳐" 대통령 약속은 공염불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대통령에서부터 국회와 여야 정당, 정부, 시민단체 등에 이르기까지 구성원들이 굳게 다짐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진심을 가지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그 결과 세월호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 이를 토대로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국민적 약속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진작 해결되었어야 할 세월호 진상조사특별법 제정과 이를 토대로 한 특위 구성, 진상조사, 관련자 처벌 등은 사건 발생 140일이 넘도록 물속에 가라앉아 있다.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약속한 것은 어느 하나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뜩이나 어려웠던 경제와 민생은 더욱더 황폐해져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프란치스코 가톨릭 교종이 지난 8월 잠깐 한국에 들러 위로의 말씀과 행동으로 상처받은 세월호 유가족과 소외받고 있는 많은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잠깐의 일이 되어버렸다. 눈앞의 자기 이익에만 매몰된 정치인들은 이미 교종의 말씀과 행동을 잊은 지 오래다. 유가족의 바람대로 특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면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해 있는 정당, 세력들에게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자물통의 열쇠 구멍을 막고 열쇠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국민들은 다시 한 번 떨쳐 일어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의 마음이 되어 광화문에서,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그리고 전국에서 길거리 단식과 농성을 벌이고 있다. 때때로 10~20킬로미터 멀리 떨어진 대학 등에서 걸어서 광화문 농성장까지 오는 열성을 보이는 시민들도 많다. 세월호 참사 문제를 제대로 파헤치고 매듭짓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가 터져 나올 것이라고 믿기에 때론 땡볕 아래, 때론 빗줄기를 뚫고 행진과 농성을 벌이고 있는 것이리라.
"안녕·안전들 하십니까?"에 이은 "건강들 하십니까?"가 새로운 화두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제때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면 개인이나 집단, 사회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게 마련이다. 국민이 '대리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앓고 집단 우울증과 화병에 걸릴 수도 있다. 지금 대한민국이 바로 그런 상황이다. 그래서 필자는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건강들 하십니까?" 물론 이것은 "안녕들 하십니까?"와 "안전들 하십니까?"와 같은 반어법이다.
군대 내에서는 올 들어서만 전방부대 총기 난사 집단 사망 사건, 윤 일병 구타 살해·축소 사건, 육군 대장 음주 추태 및 은폐 기도 사건, 특전사 하사들의 훈련 중 어이없는 사망 사건 등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사건들이 잇따라 터져 나와 온 국민을 불안·분노케 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국민의 정당한 불안·분노를 풀어줄 해답을 속 시원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군대가 특수한 조직이라고는 하지만, 결코 사회와 무관하지 않다. 군대 문제는 결국 사회 문제다. 사회가 썩어 있고 정의가 실현되지 않고, 건강하지 못한데 어찌 군대만 홀로 깨끗하고 정의가 넘치고 건강할 수 있겠는가? 군대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우리가 세월호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군대 내 가혹 행위, 폭력, 자살, 인권 유린, 성추행 문제 따위도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 사람들은 건강하지 못하다. 따라서 우리 사회도 건강하지 못하다. 또 우리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개인들도 당연히 건강하지 못하다. 개인과 사회는 사슬이 원의 형태로 연결된 것과 같다.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면 빈부와 학력의 고하, 세대, 지역 차이를 가리지 않고 개인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건강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저 유명한 세계보건기구(WHO)의 1948년 헌장에서 이미 잘 드러나 있다. 이 헌장은 건강을 '단순히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완전한 신체적, 정신적 및 사회적 안녕 상태(Health is a state of complete physical, mental, and social well-being and not merely the absence of disease and infirmity)'로 정의하고 있다. WHO의 건강 정의는 건강 개념에 보편적인 인간의 가치를 포함하고 있다. 백과사전에서도 건강을 '사람이 주위 환경에 계속적으로 잘 대처해 나갈 수 있는 신체적·감정적·정신적·사회적 능력의 정도'로 정의한다. 건강은 정신질환이나 만성병, 감염병에 걸리지 않은 상태뿐만 아니라, 깨끗한 환경, 쾌적한 주거, 충분한 교육, 안전한 먹거리와 교통수단 등 의식주와 인간다운 삶을 꾸려나가는 데 필수적인 문화생활, 차별 없는 인권 등을 포함한다.
평소 건강한 사람은 병원체나 독성물질이 몸속에 들어오더라도 이를 완충하고 물리칠 면역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특정 질환을 앓고 있거나 면역력이 결핍된 알코올 의존증 환자, 간질환자, 만성질환자 등은 건강한 사람에게는 별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 병원체나 독성물질에 노출되더라도 치명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세월호 특위에 수사권 주지 못한다'면 그 집단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자인(自認)
이는 집단이나 국가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건강한 사회나 국가는 웬만한 갈등이나 예외적인 일들이 발생하더라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자정 능력이나 치유 능력을 지니고 있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세월호진상조사위에 수사권 등을 주지 못하겠다는 것은 그만큼 정권을 운영하는 집단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자인하는 셈이다.
이들이 자신들이 건강하지 못한 집단임을 자인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러 객관적인 사실은 우리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한국은 세계경제포럼(WEF)이 최근 발표한 2014년 국가 경쟁력 평가에서 지난해보다 1단계 낮은 26위를 기록했다. 이명박 정부 이후 추락하기 시작한 국가경쟁력은 박근혜 정권 들어서도 계속 곤두박질치고 있다.
한국의 국가 경쟁력 순위는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11위로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한나라당(새누리당)이 입만 열면 내뱉었던 '잃어버린 10년'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아니라, 자신들의 미래를 미리 내다본, 저주와 같은 예언이 돼버린 것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6위), 홍콩(7위), 대만(14위), 말레이시아(20위), 호주(22위) 등이 모두 한국을 추월했으며, 중국이 28위로 한국을 턱밑까지 쫓아왔다. 이제 한국은 여의주를 잃은 아시아의 용, 아니 지렁이로 전락하고 있다.
국가 경쟁력뿐만이 아니다.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수치는 너무나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1위(세계 1위이기도 함), 강간율 1위, 노인 빈곤율 1위, 흡연율 1위, 음주율 2위, 이혼율 3위, 음주 교통 사고율 1위, 사기 범죄율 1위, 횡령 범죄율 2위, 고아 수출 1위(세계 1위), 노동시간 1위, 위암 발생률 1위, 간암 사망률 1위, 당뇨병 사망률 1위, (스트레스에 의한) 40대 남자 사망률 1위(세계 1위), 소득불평등도 2위, 사교육비 1위, 산재 사망률 1위, 빈부 격차율 1위(세계 1위), 저임금 노동자 비율 1위, 국민소득 대비 부동산값 1위 등 일일이 기억하기 어려울 만큼 많다. 이 대부분이 우리 신체·정신 건강은 물론이고 사회 건강을 갉아먹는 병충과 같다.
이런 수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건강을 좀먹는 것들이 쌓이고 쌓여 적폐가 되어 생겨난 오명들이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이를 풀어나가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많은 공력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건강한 사회로 나가기 위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걸림돌이 이렇게 많은데도, 우리는 세월호에 발목이 잡혀 있다. 진정 국가를 위하고 이 사회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시민이 건강하게 더불어 살아가기를 바란다면 많이 가진 사람과 집단들이 눈앞의 이익을 포기해야 한다. 돈과 명예와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 먼저 버려야 한다. 그것이 자신을 구하고 사회를 구하는 길이다. 세월호 유가족이 모든 것을 먼저 내버리면 여권도 그에 대응해 양보하겠다는 것은 사회가 엉망진창이 되더라도 결코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결코 다르지 않다. 세월호 사건의 슬기로운 해결은 곧 우리 사회를 건강사회로 이끌어가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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