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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배달 사고'와 '엇박자'가 낳은 비극의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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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배달 사고'와 '엇박자'가 낳은 비극의 주인공

[표동협의 '정치 픽션'] '성완종 리스트'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

박근혜 대통령이 말했다.

"검찰이 법과 원칙에 따라 성역 없이 엄정히 대처하기를 바란다."

"부정·부패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누구도 용납하지 않을 것." "이번 기회에 우리 정치에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문제가 있는 부분은 정치 개혁 차원에서 완전히 밝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도 익숙한 말이라 당장 '허언(虛言)'이라고 비웃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정말로 박 대통령의 말이 허언일까? 어쩌면 지금 이 순간 가장 당황한 당사자가 바로 박 대통령이 아닐까?

'성완종 게이트'로 번져가는 '성완종 리스트'를 놓고서 수많은 정객의 실명, 돈이 오간 장소와 시간, 심지어 구체적인 방법('비타500')까지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쏟아지는 기사를 보면서 누구나 한 번쯤 품어봄직한 몇 가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 테면 이런 질문이다.

박근혜는 '성완종 비자금'을 알았을까?

"진실이야 어떻든 간에 박근혜 대통령은 확고히 믿습니다. 자기는 부채 없는 정치인이라고."

박근혜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봐온 인사가 술자리에서 살짝 흘린 말이다. 실제로 그렇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과거의 어느 대통령이나 정치인과 비교해도 '사심이 없다'라는 걸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솔직히 말하면, 취임 후 박 대통령의 행보는 '아버지의 한을 풀었으니 이제 됐다'는 식의 자포자기처럼 보일 정도다.

그런데 이런 박근혜 대통령을 놓고서 대선 자금을 둘러싼 게이트로 번져나갈 사건이 터졌다. 대선 캠프에서 조직총괄본부장으로 활동하던 홍문종 의원을 비롯한 친박 측근의 이름이 여럿 거론되고 있다. 국정 하반기 드라이브의 운전대를 쥔 이완구 총리에다, 신임이 남다른 전현직 비서실장의 이름도 빠지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연 성완종 비자금의 실체를 알았을까? 아니,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전 새누리당 의원)이 자신의 측근을 상대로 이렇게 전 방위 로비를 했던 사실을 인지했을까?

결론을 내리기엔 근거가 너무나 부족하다. 다만 한 가지 가정은 해볼 수 있다. 성 전 회장이 돈을 전달했고(죽음을 앞둔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른바 '친박 측근'들이 그 돈을 받았다는 전제를 먼저 깔아둔다.

만약 파렴치한 배달 사고가 있었다면?

그러니까 성완종 전 회장이 상자에 5만 원(?)권을 빼곡히 채워 넣어 전달한 돈이 대선 자금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 수많은 정치인의 주머니로 흘러들어가 사적인 용도로 쓰였다면? 대선에 쓰였다 하더라도, 사적인 공로를 위한 데에 쓰였다면?

그랬을 개연성이 있다. 우선 허술하다. '차떼기'로 상징되는 2002년 대선 자금을 둘러싼 잡음을 이미 봐왔던 터다. 로비스트로서의 면면이 또렷한 한 지방 부실기업 사주의 (전체 대선 자금 규모에 비하면) '푼돈'을 덥석덥석 받기엔 위험 부담이 너무나 크다.

이런 비자금에 따르기 마련인 주고받기가 없는 것도 기이한 일이다. 성완종 전 회장이 믿었듯이, 그가 이렇게 저렇게 찔러준 돈이 대선 자금으로 쓰였다면, 최소한의 논공행상이 있어야 마땅하다. 그가 단순한 기업인이기 전에 로비스트 정치인이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더욱더 그렇다. 그러나 성 전 회장은 논공행상의 대상이 되기는커녕 되레 극단적 선택을 할 정도로 구석으로 몰렸다.

아무래도 배달 사고였을 가능성이 크다. 성 전 회장이 비상을 꿈꾸며 혹은 살려고 여기 저기 찔러 놓은 돈은 정작 박근혜 대통령까지 가 닿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박 후보님, 성 회장이 참 인물 됨됨이가 좋습니다', '성 회장이 참 잘합디다'라는 말 한마디조차 전달이 되지 않았을 수 있다. 그에겐 비극이었다.

이완구 총리는 왜 '셀프 사정'을 용인했을까?

속단은 아직 이르다. 이완구 총리는 목숨을 걸고 뇌물을 부정했다. 하지만 정황은 그에게 불리하다. 성완종 전 회장은 로비스트 특유의 집요함으로 자신의 행적을 이곳저곳에 남겨 놓았다. 나중에 법정에서 어떤 결론이 내려질지는 의문이지만, 이 총리가 위기에 몰린 것은 틀림없다.

이완구 총리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정치인이다. 그런데 이번 대응은 너무나 허술했다. 그가 사정 신호탄을 쏘자마자 검찰은 경남기업을 전 방위로 압박했다. 성 전 회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그 압박의 정도도 거셌다. 애초 이명박 정부 비리의 전모가 드러날 것으로 기대했던 많은 시민이 보기엔 당황스러운 전개였다.

어쩌면 엇박자가 난 것이 아닐까? 이완구 총리와 검찰이 엇박자가 난 것이다.

검찰이 경남기업의 분식회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조성된 비자금이 여야 여러 정객에게 흘러간 정황을 미리 포착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많다. 검찰로서는 지역 부실기업의 사주에다 로비스트 정치인 성 전 회장은 대통령과 총리의 사정 신호탄에 대한 화답으로 내놓을 본보기로 만만한 상대였다.

여기서 엇박자가 났다.

아무리 총리라지만 검찰의 수사 진행 상황까지 일일이 체크할 수는 없다. '앗' 했을 때는 이미 시간은 늦었다. 이완구 총리로서는 자신과 성완종 전 회장과의 관계를 부인하고 또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이 총리는 성 전 회장을 너무 만만하게 봤다.

성 전 회장이야말로 위기에 몰리면 상대방과 같이 물로 뛰어들 준비가 된 터였다. 이 총리는 생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우병우 민정수석의 역할은 무엇인가?

성완종 게이트로 비화될 법한 이 난리 법석은 박근혜 대통령과 이완구 총리가 만든 사정 정국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이 사정 정국의 기획자로 꼽혔던 이가 바로 우병우 민정수석이다.

우병우 민정수석은 도대체 이 난리법석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 아직은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 너무나 많다. 어쩌면 당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역시 이명박 정부를 겨냥한 그의 플랜이 구체화하기도 전에 성완종 게이트가 불쑥 터질 것을 예측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그러고 보면, 이번 성완종 게이트의 최대 수혜자가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역시 그는 천운을 타고났다.

'정치 픽션'은 <프레시안> 기자들이 돌아가며 쓰는 일종의 가상 정치 칼럼입니다. 이 '카더라' 칼럼이 진실의 한 구석이라도 보여줄 단초를 제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당연히 정치 평론가 표동협은 가공의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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