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성완종 리스트'가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모두 검찰 수사를 촉구하고 있지만 그 속내는 엇갈린다는 평이다.
현재 상황은…'성완종 리스트', 사실관계 모두 밝혀졌나?
현재로서는 '리스트'와 관련된 사실관계 자체가 모두 밝혀진 상태가 아니다. 검찰 수사도 남아 있지만, 성완종 전 의원이 숨지기 전 언론과 한 전화 통화 내용도 추가로 공개될 가능성이 있다. 경찰에 따르면, 성 전 의원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난 9일 오전 5시 10분경 강남 리베라호텔 앞에서 택시를 탔으며, 5시 33분에 북한산 공원 입구인 북악매표소 앞에 도착했다. 그는 이후 오전 6시부터 50분간 <경향신문>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경찰 검안 결과, 성 전 의원의 사망 시각은 오전 10시 이전으로 추정됐다.
문제의 '리스트'란 숨진 성 전 의원의 윗옷 주머니에서 발견된 메모지에 적힌 이름들이다. 위의 사건 정황을 고려하면, 메모를 작성한 목적 자체가 전화 인터뷰에 참고하기 위한 것이었을 개연성이 있다. 실제로 김 전 실장 이름 옆에 메모된 '2009년 9월 26일'은 성 전 의원이 <경향> 기자와 통화에서 언급한 날짜다.
<경향>은 이 '리스트'에 있는 인물들 가운데 지난 10일 김기춘·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 관련 내용을, 11일 홍문종 의원과 홍준표 경남지사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지난 10일의 보도 내용과 관련한 통화 분량이 3분을 약간 넘는 시간이었던 점, 반면 전체 통화 분량은 50분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아직 기사화되지 않은 내용이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올 법한 상황인 것. 월요일인 13일은 '리스트'의 등장 인물인 이완구 국무총리가 대정부질문차 국회에 출석하는 날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12일 기자회견에서 "<경향>에 부탁드린다. 고인이 50분간 대화한 녹취록을 빨리 다 공개해 달라"고 이례적인 공개 요구를 한 것은, 정부·여당 핵심부가 성 전 의원의 '마지막 인터뷰' 내용에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관련기사 : 김무성 "성완종 리스트, 국정 걸림돌 안돼")
청와대는 '침묵' 모드…새누리당은 '침묵→정면대응'
이처럼 추가로 어떤 폭로가 더 나올지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이번 사건의 정치적 파장을 우려하며 한껏 긴장하는 분위기다. 김무성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재보선 악재임은 틀림없다"고 했을 정도다. 단 청와대와 새누리당 사이에도 미묘한 기류 차이는 감지된다. 청와대는 지난 10일 3명의 전·현직 비서실장의 해명을 전한 것 외에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일체 언급을 삼가고 있다. 그러다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구성한 12일 오후에야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메시지가 나왔다. "검찰이 법과 원칙에 따라 성역 없이 엄정히 대처하기를 바란다." 이게 전부였다.
반면 새누리당은 김 대표의 기자회견을 통해 "이 의혹에 대해 보호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고 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번 사건이 국정의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되겠다"고 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철저하고 신속한 규명", "좌고우면하지 말고 국민만 바라보고 수사하라", "검찰의 명운을 걸라"는 등의 주문을 검찰에 쏟아냈다. 지난 10일 새누리당이 "특별히 확인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대책회의를 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김영우 수석대변인)며 예정됐던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취소했던 것과 비교하면 입장 변화가 감지된다. 주말 사이 '특별히 확인된 정보'가 나온 것도 아니기 때문.
이는 주말새 잇달아 관련 보도가 나오면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고, 이로 인해 4.29 재보선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분석된다. 김무성 지도부가 비박계라는 점에서, 일종의 '선 긋기'가 아니냐는 정치적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김 대표는 한편 야당이 지난 대선 자금에 대한 공세를 펴자 "2012년도 선거면 제 책임 하에 선거를 치렀다"며 "대선 자금을 조사하려면 저를 조사해야 한다. 어떤 조사도 필요하다면 받겠다"고 떳떳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어떠한 위반도 한 일이 없다"고 단언하며 "야당도 금도를 벗어난 발언은 더 이상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새정치연합 '선거 전략 변화' 아니라지만…
새정치연합 역시 주말을 거치며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당초 새정치연합은 이번 사건을 '부정·비리'로 폭넓게 규정하고, 특검 도입을 앞장서 주장하기보다는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려 보자는 태도를 취했었다. 그런데 12일 들어서는 박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한 수위 높은 발언들이 이어졌다. "불법 대선자금의 일단이 드러났다"(문재인 대표), "총괄선대본부장으로서 박 대통령의 2012년 대선자금 실체를 밝히는 게 도리"(전병헌 대책위원장, 김무성 대표에 대해) 등이다. (☞관련기사 : 문재인 "박근혜 불법 대선자금 일단 드러나")
또 지난 10일 김성수 당 대변인은 "선거와 연계시키는 부분에 있어서 대단히 조심스럽다. 선거운동과 연결시킬 문제가 아니다"라고 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밝혔었다. 그러나 문 대표는 11일 인천 서강화을 지역구 선거 지원을 나간 자리에서 "이번 선거의 의미가 조금 더 새로워진 면이 있다. 유권자들께서 야당에 힘을 모아 주셔야 검찰이 제대로 의지를 가지고 수사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했고, 12일에도 "우리 후보에게 힘을 모아주셔야만 '성완종 리스트'의 진실이 제대로 규명될 수 있다"고 했다.
당직자들은 '선거 기조 변화'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진성준 전략기획위원장은 "'유능한 경제정당'이라는 선거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며 "문 대표의 발언은 '한 표라도 더 달라'고 호소해야 하는 현장 연설에서 나온 표현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유은혜 대변인도 "선거 전략·기조를 바꾼다는 의미가 아니다"라며 "진실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높아지면, 이번 재보선에서도 자연스럽게 '부정·비리를 뿌리뽑을 적임자가 누구냐'를 얘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대선 경쟁자였던 문 대표가 "불법 대선자금"이라는 발언을 했다는 점, 현직 국무총리와 청와대 비서실장 등인 '리스트' 상의 인물들에 대해 "직책을 내려놓고 수사에 협조하라"며 직무 정지를 요구한 점 등을 놓고 보면, 재보선을 앞두고 이 사건의 파장을 최대화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성완종 리스트'를 선거 이슈로 부각시키는 것이 새정치연합으로서는 결코 불리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한편 여야 지도부는 '성완종 리스트' 관련 기자회견을 번갈아 여는 등 여론전을 펴는 가운데서도 4.29 재보선 지원 일정에 힘을 쏟고 있다. 문 대표는 10일 관악 지역에 이어 전날 인천, 이날 성남을 찾았고, 김 대표 역시 지난 10일 광주 방문에 이어 이날 관악과 성남 두 곳의 일정을 모두 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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