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오랫동안 우승을 맛보지 못한 팀. 시카고 컵스가 마지막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해는 1908년으로 대한민국 건국 이전, 대한제국 순종 2년에 해당한다. 오스만 제국의 청년 튀르크 당 혁명, 최초의 의회가 설립 같은 세계사적 사건들이 발생한 해이기도 하다. 여기에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로는 아예 월드시리즈 진출조차 하지 못하면서, 컵스의 우승은 세계 역사의 차원에서 다뤄야 할 사건이 된 지 오래다. 지난 시즌에도 컵스는 89패를 기록하며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최하위로 흑역사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번 시즌만큼은 다르다. 지난 몇 시즌 동안 컵스가 무릎을 꿇은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리빌딩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컵스는 이번 2015시즌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구단으로 거론되고 있다. 여기 이번 시즌 컵스의 경기를 반드시 지켜봐야 할 5가지 이유를 소개한다.
1. 새로운 감독 조 매든
야구는 주요 스포츠 중 가장 감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은 종목에 속한다. 특히 선수 중심인 메이저리그는 국내야구에 비해 감독의 비중이 더 적은 편이다. 그러나 ‘명장’ 조 매든이 감독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올 시즌부터 시카고 컵스 사령탑을 맡는 조 매든은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9시즌 동안 탬파베이 레이스 감독을 지냈다. 만년 꼴찌 탬파베이를 2008년 월드시리즈까지 이끌었고, 2011년에는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극적인 와일드카드 결정전 진출에 성공하는 등 빼어난 성과를 거뒀다.
탬파베이 레이스가 성공을 거둔 비결 중 하나는 수비시프트의 적극적인 사용. 이는 현장 지도자로는 드물게 세이버메트릭스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난 조 매든 감독의 영향이 적지 않다. 실제 2011년의 레이스는 DRS(Defensive Run Saved)라는 수비 지표를 기준으로 수비 시프트를 통해 85점의 실점을 막아냈다. 2011년 기준 9.454점이 1승에 해당했음을 감안하면, 레이스는 시프트의 적극적인 사용으로 약 8.99승을 추가로 따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수비 시프트를 쓰더라도 결국 공을 잡아내는 것은 ‘선수’들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다 매든 한 사람의 공으로 돌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거부감이 없는 개방적인 감독 매든이 아니었다면 그만한 성과를 내진 못 했을 것이다. 그 외에도 매든은 우투수를 상대로 우타자 8명이 포진한 실험적 라인업을 가동하거나, 만루에서 고의볼넷을 지시하는 등 파격적인 전술도 종종 선보인다.
이처럼 ‘지장’의 면모가 강한 매든이지만,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가장 함께하고 싶은 감독’ 설문조사에서 1위에 오르는 등 선수들과 조화를 이루는 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 구단 프런트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협력하는 모습까지, 이상적인 감독의 조건에서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는 매든이다. 컵스는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는 내셔널리그팀으로, 지명타자를 사용하는 아메리칸리그에 비해 감독이 경기에서 할 수 있는 일도 더 많다. 내셔널리그에서 매든이 펼쳐 보일 지략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2. 매력적이고 젊은 야수진
투고타저의 시대가 찾아오면서, 메이저리그에서 매력적이고 젊은 야수를 찾기는 과거보다 훨씬 힘들어졌다. 그러나 시카고 컵스의 로스터를 살펴보면, 향후 오랫동안 올스타전에 단골 출전할만한 야수들이 여럿 존재한다. 컵스의 예상 주전 라인업에서 개막일 기준으로 30세가 넘어가는 선수는 포수 미겔 몬테로가 유일하다. 몬테로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크리스 코글란은 6월이 지나서야 30번째 생일을 맞게 된다.
어린 선수들이 많다 해서 애송이들만 모아둔 것도 아니다. 유격수 스탈린 카스트로는 이변이 없다면 25세의 나이에 통산 1000번째 안타를 기록하게 될 것이며, ‘올해는 지구 우승을 장담’한다며 출사표를 던진 컵스 최고의 타자 앤서니 리조 역시 25세의 나이에 통산 100번째 홈런포를 쏘아 올릴 전망이다. 컵스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경우 리조는 강력한 내셔널리그 MVP 후보로 꼽히게 될 것이다.
작년 8월 말 콜업되어 엄청난 파워를 보여줬던 쿠바 출신의 우익수 호르헤 솔러는 내셔널리그 신인상 후보 중 하나로 꼽힌다. 파워는 앞서 언급된 선수들에 비해 부족하지만 빠른 발과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에리스멘디 알칸타라, 파워 하나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3루수인 마이크 올트 등 여러 포지션에 걸쳐 다양한 스타일의 재능 있는 야수들이 즐비하다. 그 외 아직 메이저리그에 올라오지 않은 유망주도 즐비한 컵스는 <베이스볼 아메리카>에서 유망주 랭킹 1위에 오른 팀이기도 하다. 시즌이 진행되면서 서서히 메이저리그에 선보일 재능 있는 야수들이 더 있다는 얘기다.
3. 크리스 브라이언트의 존재
이번 스프링트레이닝 홈런왕이 유력한 크리스 브라이언트는 서비스 타임 문제로 시즌 개막을 트리플A에서 시작하게 맞이하게 됐다(▶시범경기 홈런왕이 마이너리그로 내려간 이유). 컵스는 브라이언트의 FA 자격 취득을 1년 뒤로 늦추려는 목적으로 <베이스볼 아메리카>에서 전체 1위, <MLB.com>에서는 전체 2위로 선정한 ‘슈퍼 유망주’를 마이너리그로 내려 보냈다.
그러나 브라이언트가 리글리 필드의 담쟁이 덩굴 뒤로 타구를 날리는 모습을 보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전망이다. 브라이언트는 더 이상 마이너리그에서 이룰 것이 없는 선수이며, 컵스의 3루수인 토미 라 스텔라와 마이크 올트는 브라이언트에 비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스카우트들은 선수의 능력을 20점에서 80점까지 점수를 매겨 평가하는데 브라이언트의 파워는 80점 만점을 받았다. 스프링트레이닝에서도 신인답지 않은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팬 서비스에도 충실하다는 평이 나온다. 이에 데릭 지터의 은퇴 이후 사라진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선수’가 브라이언트가 될 것이라 예상하는 전문가들도 있을 정도다.
새로운 슈퍼스타의 탄생은 야구 팬들에게 있어선 축복 같은 일이다. 브라이언트의 데뷔 시즌을 본다는 것은, 어쩌면 미래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의 데뷔 시즌을 보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4. 새로운 에이스 존 레스터
아무리 좋은 야수가 많더라도, 투수진에서 답이 없다면 승리를 거두는 데 한계가 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은 컵스가 도약을 준비하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에이스급 투수를 영입할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컵스의 사장인 테오 엡스타인은 2013년 보스턴 레드삭스 우승의 1등 공신 존 레스터를 총액 6년 1억 5500만 달러, 2021년에는 2500만 달러의 팀 옵션과 1000만 달러의 바이아웃이 있는 초대형 계약으로 영입했다.
레스터는 2008년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데뷔한 이래 7년 연속으로 30경기 이상 선발등판 했을 만큼 내구성을 입증한 투수. 최근 팔의 피로를 호소해 우려를 사기도 했지만, 마이너리그 등판에서 이상 없는 모습을 보인 만큼 컵스의 개막전 선발투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레스터는 보스턴 시절 투수에게 가장 불리한 환경인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 펜웨이파크를 홈으로 사용했다. AL 동부를 벗어나 내셔널리그로 이적한 것도 더 나은 성적을 기대하게 하는 요인이다.
레스터는 좋은 체형과 부드러운 투구폼, 몸에 큰 무리를 주지 않는 구종인 커터를 주무기로 구사하는 투수다. 이에 30세 이후에도 급격하게 하락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레스터와 지난 시즌부터 투구에 눈을 뜨기 시작한 제이크 아리에타가 구성할 1-2선발은 내셔널리그 중부지구의 그 어떤 원투펀치보다 강력해 보인다.
5. 백 투 더 퓨처2
1989년 제작된 영화 <백 투 더 퓨처 2>에서는 2015년 시카고 컵스가 마침내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할 것이라 예언했다. 물론 영화는 그냥 영화일 뿐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실제 백 투 더 퓨처 영화에서 나왔던 영상통화나, 3D 영화, 지문인식 등은 이제 우리에게 친숙한 현실이 되었다. 다른 공상들이 실제 현실이 되었는데, 컵스의 우승이라고 현실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직전 해 꼴찌를 차지한 팀이라도 다음 해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이미 2012~2013년의 보스턴 레드삭스가 먼저 증명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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