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 <백 투 더 퓨처 2>의 주 무대는 2015년이다. 1989년에 제작했기 때문에 영화 속 2015년은 지금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지만, 실제로 현실이 된 일들도 많다. 영화 속 전자 안경은 구글 글라스라는 제품으로 실현됐다. 나이키 운동화의 자동으로 끈을 조여주는 기술도 개발됐다. 영화대로라면 2015시즌 월드시리즈 우승팀도 이미 정해져 있다. 106년간 우승을 못 한 메이저리그 팀, 시카고 컵스가 그 주인공이다. 그리고 실제로 컵스는 그 목표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
2011년 10월 12일, '밤비노의 저주'를 깨고 보스턴 레드삭스를 우승시킨 명 단장 테오 엡스타인을 사장 자리에 앉히면서부터 시작된 3년간의 준비는 이제 거의 끝났다. 2014시즌 표면적인 성적만을 놓고 본다면 컵스는 또다시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꼴찌를 기록했지만, 재도약을 준비하는 팀으로서 몇 가지 성과도 거뒀다.
1) 장기적으로 타선의 중심이 되어줘야 할 스탈린 카스트로(7년 6000만 달러)와 앤서니 리조(7년 4100만 달러)가 기대 이상으로 활약했다. 카스트로는 2013시즌의 부진을 씻고 타율 0.292 14홈런 65타점이라는 유격수로서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며 부활했다. 리조는 좌완이 던지는 바깥쪽 공에 전혀 대처하지 못하면서 2013시즌에는 좌투수를 상대로는 1할대 타율을 기록하는 부진을 겪었다. 그러나 준비 자세에서 손의 위치를 약간 수정하고, 홈플레이트에 더 가까이 자리를 잡는 약간의 변화를 통해 약점을 극복하고 ‘어마 무시’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0.286 0.386 0.527 32홈런 78타점 fWAR 5.6)
2) 선발 제이크 아리에타가 각성했고, 핵심 구원 투수진을 구축했다. 아리에타는 평균 150km/h에 육박하는 패스트볼에 더해, 2013시즌부터 던지기 시작한 커터(고속 슬라이더)의 제구에 능숙해지면서 25경기 156.2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2.53를 기록했다. 구위에 대한 자신감은 제구로도 이어져 9이닝당 볼넷을 2.36개로 줄였다. 여기에 닐 라미레스, 페드로 스트롭, 헥터 론돈으로 이어지는 필승조는 모두 2점대 이하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3) 오랜 시간을 거쳐 길러낸 유망주들이 메이저리그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파워가 인상적인 유격수 겸 2루수 하비에르 바에즈, 한 때 LA 다저스의 야시엘 푸이그와 비견되던 쿠바 특급 호르헤 솔러, 테이블세터 역할을 수행할 2루수 겸 중견수 알칸타라까지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 여기에 핵심 유망주 크리스 브라이언트, 에디슨 러셀도 2015시즌 중반 무렵 데뷔할 예정이다. 2014 드래프트에서 지명한 카일 슈와버도 최고의 선택이었음이 드러나면서, 컵스는 8개 포지션 모두를 유망주로 채울 수 있을 만큼 풍족한 팜(farm)을 갖추게 됐다. 더 놀라운 것은 앞서 말한 대로 이들 모두 데뷔가 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제 컵스 앞에는 재도약을 위한 마지막 단계만이 남았다. 풍부한 야수 유망주에 비해 컵스가 갖추지 못한 하나의 퍼즐. 바로 에이스의 영입이었다.
뜨거운 겨울
게다가 사마자와 함께 트레이드됐던 우완 선발 투수 제이슨 해멀을 다시 데려왔고, '올스타 포수' 미겔 몬테로를 데려온 데 이어, 휴스턴과의 트레이드로 중견수 덱스터 파울러를 영입했다. 이런 적극적인 움직임은 단기간에 선발 투수진의 보강, 포수 수비력의 강화, 확실한 1번 타자의 영입이라는 세 가지의 목적을 모두 달성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레스터의 전담 포수로 데이비드 로스와 계약하고, 우완 구원 투수 제이슨 마트를 영입하는 등 작은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살뜰히 챙겼다.
덱스터 파울러 영입을 위해 2014시즌 주전 3루수였던 루이스 발부에나를 내줘야 했지만, 발부에나의 트레이드는 팀 내 1위 유망주인 크리스 브라이언트를 메이저리그에 데뷔시키기 위한 포석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브라이언트는 2013년에 드래프트된 이래로 104경기 만에 트리블A로 올라왔으며, 트리플A에서도 70경기 타율 0.295 21홈런 52타점을 기록한 '괴물'이다. 2015시즌 곧바로 메이저리그 주전을 차지해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올 겨울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컵스를 이끌 사령탑의 교체였다. 엡스타인 사장은 시즌이 끝난 후 톰 리게츠 구단주에게 조 매든 감독의 영입을 강력하게 주장했고, 컵스는 매든과 5년 2500만 달러에 계약했다. 가장 열심히 공부하는 감독으로 유명한 매든은 뛰어난 지략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탈권위적인 모습으로 선수들과도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지와 덕을 겸비한' 명장이다. 2008년 탬파베이 레이스를 창단 첫 월드시리즈로 이끌었으며, 올해의 감독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
한층 강해진 팀 전력에 더해 만년 꼴찌 팀이었던 레이스를 월드시리즈로 이끈 매든 감독의 영입은 선수단의 사기를 끌어올렸다. 사장 앱스타인과 조 매든이 2015시즌 컵스의 목표는 지구우승이라고 밝힌 데 이어, 16일(한국 시각) 팀 내 주축 선수인 앤서니 리조도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제패를 선언했다. 리조는 "우리의 목표는 일단 포스트시즌 진출이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월드시리즈 우승이다"라고 말했다.
2015시즌 전망
어느 때보다 야심 차게 2015시즌을 준비한 컵스지만,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기 위해선 두 산을 넘어야 한다. '전통의 강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신흥 강호' 피츠버그 파이어리츠가 그들이다. 2014시즌에도 나란히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던 두 팀은 이번 겨울에도 알찬 보강을 통해 전력을 강화했다. 세인트루이스는 기존 전력에 더해 애틀랜타로부터 '5툴 플레이어' 제이슨 헤이워드를 영입했다. 피츠버그는 강정호를 영입함으로써 외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내야진을 보강했고, 리리아노와 A.J. 버넷 등과 계약하면서 러셀 마틴의 공백을 메웠다. 게다가 신시내티 레즈와 밀워키 브루어스도 만만치 않다.
따라서 NL 중부에서 컵스가 '반란'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신인 선수들이 기대했던 것만큼 활약해줘야 한다. 이는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2014시즌 메이저리그 신인 선수들의 평균 타격 성적은 .236/.290/.355로 메이저리그 평균에 크게 못 미쳤다. 투고타저 시대의 신인 타자들은 마이너리그에서 받던 좋은 평가와는 달리 메이저리그 레벨 투수들에게 적응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이는 2014년 데뷔한 컵스의 유망주 하비에르 바에즈와 알칸타라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호르헤 솔러를 포함한 새로운 유망주들 역시 '적응기'를 거쳐야 한다면, 대권 도전은 시기상조라고 할 수 있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매든 감독은 컵스의 젊은 유망주들을 적재적소에 기용하면서도 메이저리그에 안착시켜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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