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중동지역에서는 세 가지 중요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3월말로 예정된 이란 핵협상 타결이 2일 현재 이틀째 시한을 넘겨 계속되고 있고, 이라크에서는 이슬람국가(IS) 격퇴를 위한 미국과 이란의 합동작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편 예멘에서는 시아파 후티 반군을 몰아내기 위한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국가들의 공습이 1주일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예멘 내전은 수니파의 수장 사우디와 시아파 종주국 이란 간의 대리전 양상을 띠면서 자칫 중동대전으로 번질 가능성마저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이 과거의 주적 이란과 화해를 모색하는 반면, 이에 반발한 최대 맹방 사우디가 핵개발을 비롯해 독자노선을 천명하고 나서는 등 중동 정세는 극히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근원을 파헤쳐 들어가면 지난 70년간 미국이 중동지역에서 추구해온 패권정책의 결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난마처럼 뒤얽힌 중동 정세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미국과 이란, 화해할까?
2일 현재 스위스 로잔에서 계속되고 있는 이란 핵협상은 이란의 핵개발을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는(즉 핵무기 개발을 방지하는) 대신 이란에 대한 서방의 각종 경제제재를 해제하자는 것입니다. 미국을 비롯한 P5+1(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독일)이 이란과 협상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난 2013년 가을 이란의 온건파 하산 로하니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협상 개시에 합의한 후 1년반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당초 목표는 3월말 대강의 합의를 이룬 뒤 6월말까지 최종 합의안을 마련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제제재의 해제 방법 등을 놓고 의견 대립이 팽팽해 협상 시한을 넘겼습니다. 서방 측은 단계적 해제를 주장하는 반면 이란은 전면 해제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 미국은 이란의 합의 위반시 경제 제재의 자동 발동을 요구하는 반면 이란은 유엔 안보리를 거쳐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협상 연장은 3월 31일 오바마 대통령의 결정에 의한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전했습니다.
오바마는 이란 핵협상 타결을 절실히 원하지만, 이란에 지나친 양보를 했다는 비판을 두려워합니다. 공화당을 비롯한 미국 내 친이스라엘 세력이 핵협상 타결을 결사 반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바마가 핵협상 타결을 원하는 이유는 이슬람국가(IS) 격퇴를 비롯해 시리아 내전, 예멘 내전, 팔레스타인 문제 등 중동의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란의 도움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이란의 영향력 확대는 2003년 부시의 이라크 침공 덕택입니다. 이라크의 수니파 정권(후세인)이 무너지고 시아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같은 시아파인 이란의 영향력이 커진 것이죠. 현재 이란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등을 세력권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멘의 후티 반군도 이란의 재정적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요컨대 이란의 도움 없이는 미국 단독으로 중동의 온갖 문제들을 해결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이란 없인 'IS 격퇴' 불가능
우선 지난해 6월 이라크 제2도시 모술을 전격 함락하면서 혜성같이 등장한 '이슬람국가(IS)'을 격퇴하려면 이란의 군사적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IS는 현재 시리아 동북부와 이라크 서북부 등 두 나라 영토의 4분의 1 이상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해 8월 미군 공습과 함께 시작된 반격으로 시리아 접경의 코바니를 탈환하는 데만 자그마치 134일이나 걸렸습니다. 지난 31일 이라크 정부는 바그다드 인근의 티크리트를 탈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3월 2일 공격을 시작한 지 한 달만입니다. 그나마 26일 이후 미군의 공습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미군 공습이 늦어진 이유는 사우디가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IS 공격의 주력 부대는 이라크 정규군이 아닌 시아파 민병대인데, 사우디는 이란이 지도하고 있는 시아파 민병대의 약진을 원치 않습니다. 사우디는 같은 수니파인 IS도 두려워하지만 시아파 맹주 이란의 영향력 확대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이슬람권에서 수니 대 시아의 인구 비율은 대략 85 대 15입니다. 역사적으로 소수파였던 시아파의 영향력이 2003년 이후 커지는 상황을 수니파는 두려워하는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이라크 정규군의 군사력이 형편없다는 것입니다. 영국 <인디펜던트>의 중동 전문 기자 패트릭 콕번에 따르면 이라크 정규군 병력은 12개 여단 4만8천명에 불과한(이것과 부풀린 숫자라고 합니다) 반면, 시아파 민병대는 10-12만이나 됩니다. 티크리트 탈환은 사실상 미군의 공습과 (이란이 지도하는) 시아파 민병대의 지상전에 의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라크 정규군만으로 IS를 격퇴하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라는 얘기죠.
콕번에 따르면 지난 해 여름 1만5천에 불과했던 IS의 병력은 현재 10만에 이릅니다. 점령지역의 젊은이들을 병사로 징집한 때문입니다. 게다가 IS는 점령지역에서 세금을 징수하고 이슬람식 교육을 실시하는 등 온전한 국가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해 8월 이후 미군은 IS에 2,500 차례의 공습을 단행했지만 IS 영토는 거의 줄지 않았습니다. 시리아 코바니와 이라크 티크리트를 탈환한 게 고작입니다. 코바니 및 티크리트 탈환은 미군 공습과 쿠르드족 민병대(페쉬메르가), 그리고 시아파 민병대가 해낸 것입니다. 지난 해 1월 IS에 의한 팔루자 함락 이후 이라크 정규군은 단 하나의 도시도 IS로부터 탈환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이라크 정규군만으로 이라크 제2도시인 모술을 탈환한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죠.
<인디펜던트>는 지난 2-3월 IS에서 탈출한 다수의 이슬람 전사들을(이들은 IS에 불만을 품은 자들입니다) 인터뷰한 결과 'IS가 내부 분열, 또는 외부의 군사 개입으로 붕괴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시아파가 정권을 장악한)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소수파인 수니파 주민이 기댈 수 있는 세력이 IS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우디는 이라크 내 IS 격퇴 과정에서 시아파 민병대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결코 원치 않지만, 시아파 민병대의 도움 없이 IS 격퇴는 불가능합니다.
예멘 내전, 사우디 대 이란의 대리전으로
지난 3월 26일 사우디는 걸프협력기구(GCC) 등 10개 수니파 국가와 함께 사우디 남쪽 예멘의 수도 사나의 시아파 후티 반군 근거지 등에 공습을 시작했습니다. 28일에는 이집트 등 아랍연맹 22개국 정상회담을 열어 4만명 규모의 아랍연합군 창설, 그리고 예멘의 후티 반군 격퇴를 결의했습니다. 사우디 측은 “예멘 사태가 안정될 때까지 군사 개입을 계속할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아랍연합군 창설 등 사우디의 움직임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더 이상 미국(의 안보 공약)을 믿지 못하겠다'는 신호로 분석했습니다. 지상군 파병의 가능성까지 있다고 합니다. 나아가 사우디는 미국과 이란의 화해 움직임에 대응해 자체 핵무기 개발을 고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중동 대란'의 시대가 된 것입니다.
사우디가 예멘 내전에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의 세력 확대를 극력 꺼리기 때문입니다. 시리아, 레바논에 이어 이라크를 자체 세력권에 편입시킨 이란이 예멘까지 장악하려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사우디의 지원을 받는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대통령은 지난 1월 후티 반군에 정권을 내준 뒤 2월 21일 남부 아덴을 임시 수도로 선포하는 등 정권 유지를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후티 반군을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3월 24일 사우디로 망명했습니다. 결국 후티 반군에 의한 예멘 평정을 막기 위해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가 나서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후티 반군은 이란의 재정 지원만을 받을 뿐, 아주 깊은 관계는 아닙니다. 또한 정통 시아파는 자이디 종파인 이들을 시아파로 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후티 반군의 이란 및 시아파와의 관계는 그렇게 긴밀한 것은 아니라는 얘깁니다. 사실 예멘 토착 세력인 후티 반군이 정권을 장악할 정도로 강력해진 데는 미국의 공로(?)가 큽니다. 예멘에서 활동하는 수니파 무장세력 알카에다아라비아지부(AQAP)를 격퇴하기 위한 드론 공격 등으로 예멘을 혼란에 빠뜨리는 바람에 후티가 약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후티가 예멘 토착 세력인 반면, AQAP는 주로 외국인들입니다. 패트릭 콕번에 따르면 지난 10여년간 예멘에서 AQAP 소탕작전을 벌이던 미군은 지난 주 보유했던 중장비 등을 폭파하고 바다 건너 지부티로 철수했습니다. AQAP 소탕작전의 실패를 자인한 것이죠.
콕번은 미국의 중동정책이 대단히 모순적이라고 지적합니다. 예멘에서는 수니파 하디 정부를 지원하고 시아파 이란의 동맹 세력을 반대한 반면, 이라크에서는 시아파 이란과 함께 수니파 무장세력 IS와 전투를 벌이는 게 단적인 사례입니다. 콕번은 사우디의 예멘 내전 개입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라고 말합니다. 사우디의 공격이 강화될수록 후티 반군은 이란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예멘 내전이 수니파 대 시아파의 중동 대전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죠. 인도의 외교관 출신 분석가 M.K. 바드라쿠마르도 같은 의견입니다. 특히 이란은 협상에 의한 문제 해결을 원하고 있다고 전합니다. 후티와 이란이 긴밀한 관계도 아닌 데다, 서방의 경제제재로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이란으로서는 더 이상 후티를 지원할 여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란의 입장은 예멘 내 시아파의 정치적 발언권이 적절하게 보장된다면 외교적 해결에 동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미국의 <뉴욕타임스>도 사설을 통해 사우디에게 외교적 해법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003년 후세인 정권 몰락 이후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이란, 이런 이란과 화해하려는 미국에 대해 엄청난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사우디 등 수니파 국가들이 합리적 해결방안에 동의할지는 미지수입니다.
문제의 근원은 미국의 중동정책
이처럼 현재 중동의 상황은 난마와 같이 얽혀 있고, 해결책은 쉽사리 보이지 않습니다. 그 근본원인은 미국의 중동정책에 있습니다. 미국은 1945년 2월 루즈벨트 대통령과 사우드 국왕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중동지역과 인연을 맺게 됩니다. 당시 미국은 사우디에 안보를, 사우디는 미국에 석유를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사우디는 중동 지역 최초의 미 동맹국이었고 이 동맹은 70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1차 대전 이후 1970년까지 중동지역의 패권 국가는 영국이었고 그 이후 미국이 패권을 이어받습니다). 사우디와의 동맹으로 미국은 커다란 전략적 이득을 챙겼습니다. 우선 값싼 석유를 거의 무한정 공급받게 됩니다(사우디는 세계 최대의 석유부국이며 중동지역에는 세계 석유자원의 3분의 2가 묻혀 있음). 1973년 1차 석유위기(원유가 4배 인상) 이후에는 사우디와 모든 석유 거래를 달러로만 결제한다는 밀약을 맺음으로써 달러 패권 체제를 굳힙니다. 나아가 1차 석유위기 이후 사우디에 엄청나게 많은 무기를 판매함으로써 사우디의 석유 달러(petro-dollar)를 회수합니다.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장사였죠.
하지만 볕이 있으면 그늘이 있는 법입니다. 사우디는 세계 최초의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로 말할 수 없이 전근대적이고 비민주적인 나라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사우디 석유 자원 확보를 위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2001년 9.11테러의 범인 19명 중 15명이 사우디 국적자인데도 이를 모른 체 했습니다. 테러 직후 며칠 간 모든 항공기의 미국 이륙이 금지됐음에도 테러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의 가족들이 비행기를 타고 유유히 미국을 떠났고, 미 의회의 9.11보고서 중 사우디 관련 28쪽은 부시 대통령의 명령에 의해 아직까지도 그 내용이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소련 멸망을 위해 사우디, 파키스탄과 합작으로 10만명 이상의 이슬람 무장세력을 키워냈다는 점입니다. 1979-89년 계속된 1차 아프간 전쟁이 그것입니다. 당시 미국은 30억 달러 이상의 전쟁자금과 군수물자, 사우디도 미국과 맞먹는 전쟁자금을 댔고, 파키스탄이 이 자금과 군수물자로 전 세계에서 몰려든 이슬람 전사들을 무장시키고 훈련시켜 소련에 대항하도록 했습니다. 이슬람 전사의 상당수는 사우디 출신입니다. 아프간전쟁은 소련의 멸망에 중대한 기여를 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통해 태어난 이슬람전사들은 이후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전쟁의 씨앗을 뿌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때에 따라 미국이 원하는 전쟁을 하기도 했고 미국에 적대하는 전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냉전 이후 아제르바이잔 등 구소련 지역에서는 친미 쿠데타를 도왔고, 보스니아 내전 등 구유고 연방의 해체에 한몫을 했으며, 리비아 가다피 정권의 전복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미국은 자신에 유리할 때는 이들을 '자유의 전사'로 칭송하고, 불리할 때는 '이슬람 극단세력'으로 매도합니다. 같은 이슬람 무장세력이 리비아에서는 '자유의 전사'가 되고 이라크, 시리아에서는 '이슬람 극단세력(IS)'이 되는 식입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미국은 이제 이슬람 무장세력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는 점입니다. IS의 발호가 그 점을 잘 말해줍니다.
이란의 경우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줍니다. 1953년 이란 모사데크 정권 전복은 미 중앙정보국(CIA) 최초의 비밀 해외 공작이었습니다. 모사데크 총리의 석유 자원 국유화 조치를 분쇄하기 위한 것이었죠. 당시 이란 석유 자원 국유화의 피해자는 영국의 영이란석유공사(AIOC)였는데 미국 정보기관이 나선 것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른바 '세븐 시스터즈'로 불리는 국제 석유 메이저들은 끈끈한 유착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 그리고 석유 메이저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미 정부 기관인 CIA가 나선 것입니다. 자본은 국적을 초월하고 정부는 자본의 하수인이라는 점이 드러난 것이죠. 당시 모사데크 축출에 동원된 세력이 호메이니 등 이란의 이슬람 세력이었습니다.
이후 베트남전쟁에서 뜨거운 맛을 본 미국은 중동지역을 직접 관리하기보다는 대리인을 통한 관리에 나섭니다. 그 대리인이 바로 팔레비 전 국왕입니다. 닉슨 대통령은 1972년부터 미국의 첨단무기를 무한정 이란에 공급하면서 팔레비의 독재정권을 비호하는 한편 중동의 군사적 맹주로 키워줍니다. 그러나 1979년 1월 팔레비의 학정에 참다 못한 이란 국민들이 궐기했고, 이는 결국 이슬람 정권 성립으로 이어집니다. 중동 지역 최대의 미 군사동맹국이었던 이란이 하루 아침에 철천지 원수로 바뀐 것이죠. 미국은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이라크 후세인 정권에 자금과 정보를 대주며 이란과의 8년 전쟁(1980-1988년)을 배후에서 조종합니다. 미국은 후세인만 지원한 것이 아닙니다. 이란에도 무기와 정보를 대줍니다. 이른바 '이란-콘트라'사건이 그것입니다. 이렇게 아프간전쟁과 이란-이라크전쟁을 통해 중동지역에는 군사무기가 넘쳐나고 이슬람 전사들이 대거 탄생하게 됩니다. 중동지역의 군사화가 진행된 것이죠.
미국은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1991년 1차 걸프전을 통해 이라크를 격퇴합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당시 외교적 협상에 의해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을 해결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전쟁을 택합니다. 사실 이라크 후세인 정권은 친소 성향의 사회주의 정권이라는 점에서 미국에는 눈엣가시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전쟁의 완승을 통해 이른바 '베트남 신드롬(베트남전쟁 이후 제3세계에 대한 무력 개입을 꺼리는 풍조)'을 극복했다면서 이후 마구잡이로 대외 군사 개입을 자행합니다. 그 정점이 바로 2003년 이라크 침공이었습니다. 당초 계획은 후세인 정권 타도에 이어 이란 이슬람정권마저 무너뜨려 대중동지역 전체를 미국의 세력권 아래 두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라크에서 발이 묶이고, 게다가 이라크에 시아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오히려 이란의 영향력 확대를 도와준 꼴이 됐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란의 도움 없이는 중동 지역을 관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1970년대초 이후 미국이 중동지역을 군사화 시킨 결과입니다. 결국 이제 미국이 중동 지역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이란의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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