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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란과 손잡다

[주간 프레시안 뷰] 이란, 중동의 맹주로 떠오른다

오는 20일은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지 1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당초 미국의 목표는 이라크를 시작으로 이란의 이슬람 정권까지 무너뜨려 대중동지역 전체를 미국의 영향권 아래 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후세인 정권 제거에만 성공했을 뿐, 그 이후의 사태 전개는 당초 목표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우선 이슬람국가(IS)가 이라크 및 시리아 영토의 4분의 1 이상을 장악할 정도로 이슬람 무장조직 세력이 크게 확장됐습니다. 이제 이들은 수니파 이슬람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까지 넘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은 1979년 이래 최대 앙숙이었던 이란과 손을 잡아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중동 지역 국가 중 오직 이란만이 이슬람국가를 상대할 군사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12년 전, 부시가 시작한 미국의 군사적 모험은 당초 목표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이번 주에는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변화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미-이란 화해 막으려는 이스라엘과 미 공화당

이달 들어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는 두 가지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난 3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백악관과 한마디 상의도 하지 않은 채 상·하원 합동연설에 나서 오바마 정부의 대이란 핵협상을 맹비판한 데 이어 9일에는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 47명이 '이란 지도자들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를 통해 미국과의 핵협상 중단을 촉구한 것입니다. 공화당 의원들은 편지에서 "현재 진행 중인 협상은 미 의회 승인 없이는 단순한 '행정 협약'에 불과"하며 "차기 대통령이 단 한 번의 펜 놀림으로 이 협약을 철회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국의 가장 긴밀한 동맹국인 이스라엘과 야당인 공화당이 한 목소리로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반대하고 나선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오바마 정부의 대이란 정책에 대한 동맹국간, 국내 정당 간 견해 차이가 매우 크다는 얘깁니다. 2차 대전 이후 대외정책에 관한 '초당적 합의'를 바탕으로 세계를 이끌어왔던 미국의 외교 역량이 약화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이스라엘과 공화당이 이처럼 필사적 반대에 나선 것은 이달 말로 마감시한이 다가온 이란 핵협상의 타결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존 케리 국무장관은 오는 15일 협상 최종 타결을 위해 스위스로 향할 예정입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잠정합의안은 이란에 대한 서방의 경제 제재를 해제해주는 대신 이란은 향후 10년 이상 우라늄 농축 활동을 동결하며, 합의가 파기되는 경우에도 핵무기 개발에 소요되는 시간이 최소 1년 이상이 되도록 이란의 핵 관련 시설 및 물질을 제한한다는 게 핵심입니다.


만일 이란 핵협상이 타결된다면 미국과 이란은 IS 격퇴 등 중동지역의 평화 회복을 위해 공개적으로 협력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과 미 공화당은 이란과 전쟁을 하면 했지, 화해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따라서 이란 핵협상의 타결 여부는 중동 평화와 직결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미국과 이란의 화해 및 협력은 이미 현실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돌이킬 수 없는 대세라고 지적합니다. 이라크와 시리아 영토 일부를 장악한 이슬람국가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안보까지 위협하고 있으며, 이들을 막을 지상군 병력을 보유한 국가는 이란뿐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미국과 이란, 이미 군사협력 중

이와 관련,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지난 5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라크 티크리트 탈환작전이 사실상 이란 주도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미군이 전투 역량을 갖추지 못한 이라크군을 교육시키는 동안, 이란이 이라크 내에서 IS 저지선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지상군 투입을 극력 꺼리고 있고, 이라크 군은 전투 역량이 없기 때문에 결국 이란 군이 나서게 된 것입니다.

지난주 티크리트 탈환 작전에 투입된 이라크 병력 3만명 중 3분의 2가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민병대였습니다. 특히 이란 특수부대 쿠드스(Quds)의 총사령관인 카심 솔레이마니 장군이 전선 근처에서 군 지휘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이란의 이라크 내 IS와의 전투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미군과 이란군은 상대방 무전 교신 내용을 감청하면서 이심전심으로 협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란은 지난해 8월 이라크에서 시아파 민병대를 조직해 시아파 주민들이 대량 학살 위기에 처한 농촌마을 아메를리의 IS 포위망을 뚫는 작전을 주도했고, 당시 미국은 공습 지원에 나선 바 있습니다. 11월에는 쿠드스군을 동원해 이라크 중부 도시 바이지를 IS로부터 탈환하기도 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특별 자문을 맡았던 발리 나스르(현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장)는 "오바마 정부의 유일한 전략은 이란이 IS와의 지상전에서 승리하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나스르는 사실상 미국의 적대국인 이란이 이라크 내에서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 "미국이 이라크에서 IS를 몰아내는 데 지금까지 성공적인 것은 대체로 이란 때문"이라며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마틴 뎀프시 미 합참의장도 3일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이란이 티크리트 탈환작전에 적극 개입하고 있는 것에 대해, 수니파와의 종파간 긴장감을 높이지 않는 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바그다드에서 주재 기업들의 정보 분석관으로 일하고 있는 랜던 슈로더도 "IS에 대항해 쿠르드군, 이라크군, 시아파 민병대를 하나로 결집하는 유일한 힘은 이란"이라며 "미국이 믿고 싶지 않겠지만 그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슬람국가, 사우디에 선전포고

이처럼 미국이 이란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 결정적 계기는 지난해 6월 IS의 모술 함락이었습니다. IS의 갑작스러운 부상이 표면화되면서 미국 단독으로는 중동지역을 안정시킬 수 없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당장 시급한 IS 격퇴는 물론이고 시리아 내전을 비롯해 중동지역의 온갖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란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진 것입니다.

특히, 국내 언론에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지만, IS는 지난해 11월 13일 사우디 왕가 타도를 공개적으로 선언했습니다. IS의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사우디 왕가를 '독사의 대가리' '만악의 근원'이라고 지칭하면서 사우디 왕가에 대한 선전포고를 한 것입니다. 사우디에는 이슬람교의 최대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가 있습니다. 따라서 사우디는 이슬람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IS를 비롯한 이슬람 무장세력들은 사우디 왕가가 부패하고 미국에 종속돼 있으며 이 때문에 사우디를 통치할 자격이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현 사우디 왕가는 미제의 앞잡이라는 것이죠. 오사마 빈 라덴이 알카에다를 창시한 것도 1991년 걸프전 이후 사우디 왕가가 이슬람 성지인 사우디에 미군의 주둔을 허용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IS, 알카에다 등 이슬람 급진세력들은 친미 사우디 왕가의 타도를 궁극적 목표로 여기고 있습니다.

11월 선전포고 이후 IS는, 비록 소규모이기는 하지만, 사우디에 대한 무력 도발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11월 25일 사우디 동부 알하사에서 예배를 보고 있던 시아파 신도들을 공격한 데 이어, 올해 1월 5일에는 IS와 연계된 무장세력이 이라크 남부 안바르주에서 사우디 북부로 침투해 사우디 국경수비대와 교전을 벌였습니다. 이 전투로 사우디측 3명, 이라크측 4명이 사망했습니다. 안바르주는 IS 장악지역입니다.

그동안 수니파 무장세력을 은밀히 지원해 왔던 사우디 측도 지난해 봄 이후에는 잔뜩 긴장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급진세력에 대한 자금 지원을 금지하는 한편 북쪽 이라크 접경 지역(960km)과 남쪽 예멘 접경 지역(1600km)에 거대한 보안 장벽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난해 8월 이후 미군의 반격으로 IS는 시리아의 요충지 코바니를 빼앗겼고 최근에는 이라크 티크리트에서 수세에 몰려 있기 때문에 사우디에 대한 안보 위협이 당장 현실화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해 6월의 모술 함락을 아무도 예견하지 못했듯이 사우디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입니다.


▲ 지난해 6월 16일(현지 시각) 이라크 북부 모술에서 IS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IS를 상징하는 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이란 협력만이 중동의 죽음과 파괴 막을 수 있어

이와 관련, 인도의 전 외교관 란지트 굽타(오만 및 예멘 대사 역임)는 현재 중동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죽음과 파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이란의 협력뿐이며 이를 위해서는 이란 핵협상이 타결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그는 "현재 사우디는 2차 대전 이후 최대 안보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사우디에 대한 최대 위협은 이란이 아니라 IS"라고 지적합니다. 나아가 IS를 군사적으로 격퇴하기 위해서는 이란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 이후 사우디는 수니파의 종주국으로서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의 팽창을 봉쇄하기 위해 미국과 함께 온갖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초래한 지정학적 변화로(아랍의 군사적 맹주였던 후세인 정권의 몰락과 급진 무장세력의 득세) 이란은 지역의 핵심 플레이어로 떠올랐고, 이제 사우디의 안보를 위해서는 이란의 협력을 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 사우디는 사면초가의 신세입니다. 북쪽 이라크와 시리아 일부는 IS에 점령당했고, 남쪽 예멘의 수도 사나 등 북부 지역은 시아파 후티에 의해 장악됐으며 남예멘에서는 알카에다가 득세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라크는 사실상 이란의 피후견국이 됐으며 시리아, 레바논, 팔레스타인 등에서는 친이란 세력이 권력을 잡았거나 주요 정치세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시리아 내전, 예멘 내전을 비롯해 레바논, 팔레스타인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란의 군사, 외교적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오바마 정부가 이란 핵협상에 적극 나선 것은 이란의 지역 내 영향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한 결과입니다. 사우디의 최대 후원국인 미국이 이란과의 화해에 나선 이상, 군사적 약자인 사우디가 이란과의 대결을 고집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입니다.


물론 서방 측에는 이란 핵협상이 타결된다 해도 이란은 결국 핵무기를 가질 것이라면서 지금 당장 이란을 공격하는 편이 낫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핵전쟁의 위협을 무릅쓰고라도 말입니다. 이스라엘 정부나 미 공화당 강경파 등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는 15일 재개되는 이란 핵협상은 중동 평화의 앞날을 판가름하는 중대한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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