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및 정치제도 개혁을 위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본격 가동 중인 가운데, 정개특위의 최우선 과제를 무엇으로 할 것이냐를 두고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시민단체의 묘한 시각차가 드러나고 있다.
일단 3자 모두 △선거구획정위원회의 독립성 강화 △비례대표 확대를 위한 의원정수 확대라는 두 커다란 개혁 방향에는 공감하는 모습이다. 다만 당장 정개특위에서 그 중 무엇을 우선 또는 핵심 과제로 삼을 것이냐 등에선 견해차가 나타나고 있다.
2일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이하 연대회의)의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국회의원 선거제도, 어떻게 바꿔야 하나' 토론회에서는 이 같은 의견이 맞붙었다.
정개특위 위원이자 정의당 원내대표인 심상정 의원, 그리고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정치개혁특별위원장인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의원정수 확대 없는 여타 개혁안 도입은 무의미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한편,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선거구획정위 문제를 정개특위 활동의 알파이자 오메가로 다뤄야 한다"면서 "연말까지 획정위 독립성 강화를 이루지 못해 초유의 게리맨더링(자의적 선거구 조정) 사태가 벌어지면 비례대표 확대 등의 정치개혁은 이뤄질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의원 정수 확대는 특권 강화가 아니라 특권 축소"
정의당과 연대회의의 '의원정수 확대' 주장은 현행 공직선거법이 엄청난 규모의 사표를 만들고 있다는 현실 인식에서 시작된다. 각 지역구 최다 득표자 1명 만이 대표자로 선출되기 때문에, 투표율까지 생각하면 총 유권자의 30% 정도의 지지만 얻어도 '유일한 승자'가 될 수 있는 시스템이다.
1등 후보가 아닌 나머지 후보에게 돌아가는 표는 모조리 '죽은 표'가 되는 이 같은 제도는, 표면적으로는 정당별 득표율과 의석 점유율 불일치란 현상으로 나타난다. 쉽게 말해 거대 양당인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실제 민의보다 더 많은 의석수를 번번이 획득하는 결과가 초래되는 것이다.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방안이 '비례대표제 확대'다. 19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의석수는 54개로, 전체 의석수의 18%에 불과했다. 이를 최소한 50%까지는 끌어올리자는 게 정의당과 연대회의의 주장이다. 이에는 지난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동의했다. (☞관련 기사 : 선관위 '권역별 비례' 제안…선거제도 개혁 바람 부나?)
문제는 이 과정에서 수반되는 지역구 의석 수 감소를 새누리당이 수용하겠느냐는 데 있다. 비례대표 확대가 한국 사회 전체에는 '정치 개혁'이겠지만, 새누리당 지역구 의원들에겐 놓칠 수 없었던 '기득권 강탈'로 받아들여지는 게 자연스럽다. 새누리당이 이 같은 선거법 개정을 제 손으로 해낼 수 있다는 기대를 하는 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게다가 한국 국회의원 수는 애초에 다른 국가와 비교해도 적은 편에 속한다. 인구 대비 의석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을 밑도는 게 사실이다. 이태호 위원장은 그래서 "현재 지역구 의석 수를 고정하되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 비율을 2대1로 맞출 수 있게끔 의원 정수를 360명으로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원정수 확대가 새누리당 반발을 최소화하며 비례대표 제도를 확대하고, 동시에 국회 역할 또한 강화하는 일거양득의 방법이자 유일한 방법이란 주장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국민적 반발'이다. 국회의원이 필요 이상의 특혜를 누린다는 비판이 거센 상황에서, 의원 수를 늘리자는 주장은 '정치 개혁'이 아니라 '기득권 강화'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러나 이는 얼마든지 기술적인 방법으로 해결 가능하다고 이들은 말한다. 의원 수는 늘리되, 의원 유지에 필요한 비용은 동결하는 것이다.
심상정 의원은 "의원 세비를 20%가량 삭감하고, 운전 비서 지원 등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권을 과감히 폐지, 해외 출장 등 의원 활동을 투명하게 계획하는 방법들을 동원해 비용 동결이 가능하다"면서 "이렇게 의원 정수를 늘리면 의원 한 명이 누리는 혜택은 오히려 줄어든다. 정수 확대가 '특권 강화'가 이날 '특권 축소'라는 것을 국민에게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역별 비례대표 도입 통한 다양성 지역대표성 제고
심 의원은 지난달 초에도 이 같은 '과감한' 주장을 공개 발표했었다. 새누리당은 외면하고, 선관위는 침묵하고, 새정치연합은 소극적인 의원정수 확대 논의에, 진보정당의 원내대표가 '총대'를 맨 격이다. (☞관련 기사 : 심상정 "의원정수 360석으로 늘리자")
그렇다면 비례대표 확대는 어떤 모습으로 진행되어야 할까. 정의당은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을 제시했다. 정당 득표와 의석률을 연동함으로써 다양한 세대, 직능, 계층을 대표하게 됨과 동시에 지역 대표성도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이다.
권역별 비례대표 제도는 선관위가 지난 2월 내놓은 선거 제도 개혁안에서도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정의당은 당시 선관위의 안을 준용해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누고 인구수에 따라 의석 수를 배분하자고 주장한다. 다만 선관위 안과 조금 달리 의석 배분 정당 기준으로 전국득표율 2% 이상, 지역구 3명 이상 당선을 제시했다. 선관위 안은 각각 3%, 5명이다.
선관위는 당시 권역별 비례대표 제도를 도입하면서도 의원 정수는 '유지'할 것을 제시했었다.
이와 관련, 심 의원은 이날 토론회에서 선관위를 향해 "권역별 비례대표 제도안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 대해서 더 적극적으로 설명하라"면서 "그간의 통계와 물적 증거들을 통해 어떻게 현재의 선거 제도가 표의 등가성과 대표성을 왜곡했는지를 제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의원 정수 확대 없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이 표의 등가성과 대표성 제고에 도움이 되는지를 실증하라는 요구다. (☞관련 기사 : 선관위 제안, 새누리당에 불리하지 않다)
토론회에 참석한 장재영 중앙선관위 법제과 과장은, 선거제도 개혁안 발표 당시 의원 정수 유지를 제시했던 것에 대해 "국민 정서를 고려한 것"이었다면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한 정치권 합의가 전제된다면 의원 정수 확대에 대한 국민 정서도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거구획정위 독립 안 시키면, 초유의 게리맨더링 사태 벌어질 것"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및 의원정수 확대와 함께 거론되는 개혁안은 '선거구획정위원회 독립성 강화'를 위한 선거법 개정이다.
현행 선거법은 한시적으로 선거구획정위를 구성해 선거일로부터 6개월 전까지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토록 한다. 그러나 선거법에 따라 국회는 획정위의 안을 '존중'만 하면 되므로, 이는 권고안 성격에 그치는 게 당연했다. 매번 선거구 획정위의 안이 국회에 제출되고 나면 정개특위에 속한 현직 의원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맞춰 선거구를 자의적으로 거래하고 수정하는 일들이 가능했던 배경이다.
이런 가운데 때마침 헌법재판소가 선거구간 인구 편차를 2대 1로 축소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현재는 3대 1 정도의 편차를 보이니, 무려 60여 개의 지역 선거구가 조정되어야 한다. 획정위의 안을 국회가 뜯어고치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선거법을 고치지 않는다면, 올해 연말쯤엔 '초유의 게리맨더링' 사태가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김기식 새정치연합 의원은 "이번 정개특위는 알파이자 오메가가 선거구획정위를 어떻게 독립시킬 것이냐"면서 "획정위 안에 대해 국회는 '가부' 표시만 할 수 있도록 선거법을 4월까지는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 6월에는 분리 국정감사 등으로 논의 자체가 어려울 것고 정기국회는 11월에나 법안 처리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의원은 "벌써부터 국회 정개특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이 기가 막히는 게리맨더링 방안들을 내놓고 있다"면서 "자신들의 이해 관계가 걸린 만큼, 체면이고 뭐고 가리지 않고 선거구를 정하려고 들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여타 정치 관계법들이 제대로 처리될 거란 건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려대로 '기득권'을 지키려는 새누리당의 움직임은 발 빠르다. 일각에선 새누리당이 지역구 의석수를 270석까지 늘리고 비례대표 의석수를 30석까지 줄이는 방향을 제시할 거란 우려도 나온다. 김 의원은 "만약 지역구 의석수가 270석까지 늘어나면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이나, 그에 수반되는 정치개혁이 이후에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도 강조했다.
김 의원은 토론회에 참석한 심 의원과 연대회의 회원들에게도 "선거구획정위 문제를 심각하게 다뤄달라"고 거듭해서 호소했다. 이에 대해 심 의원은 "선거구획정위 문제를 빨리 처리하자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면서도 "그걸 '국회의원 정수 및 선거구획정위원회'로 바꾸어 설치하자는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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