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국회의원 선거구의 획정에 대해 제기된 위헌확인 심판에서, 현재 최소 인구 선거구와 최다 인구 선거구의 인구 격차가 3배까지 나는 것은 헌법상 평등에 위배된다며 인구 격차를 최대 2배까지로 조정하라고 주문했다. 이에 따라 국회는 오는 2016년 전까지 공직선거법을 개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개헌 논의에 이어 정치권에 또다른 대형 이슈가 발생해 후폭풍이 예상된다.
헌재는 30일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에 대한 위헌확인 청구 7건에 대한 병합 결정에서 "국회의원의 지역 대표성을 이유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선거권의 평등을 희생하기보다는, 투표가치의 평등을 실현하여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토양을 마련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며 현행 공직선거법 25조 2항의 '선거구 구역표'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국회의원 지역구 전체 246개 중 무려 62곳이 조정 대상이 됐다. 국회의원 1인당 인구가 19만 명 평균에 미달하는 호남과 강원 등 농촌지역 의석수가 줄어들 수 있다.
헌재는 "이러한 사정을 종합해 보면, 현재의 시점에서 헌법이 허용하는 인구편차의 기준을 인구편차 상하 33.33%(현행은 상하 50%), 인구비례 2:1을 넘어서지 않는 것으로 변경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결정했다. 헌재는 다만 즉각적으로 법률의 효력을 정지하는 '위헌' 대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현행) 선거구 구역표는 2015년 12월 31일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고 2016년 전까지 개정하라고 주문했다.
헌재는 그 이유에 대해 "(현행대로) 인구편차 상하 50%의 기준을 적용하게 되면 1인의 투표가치가 다른 1인의 투표가치에 비하여 세 배의 가치를 가지는 경우도 발생하는데, 이는 지나친 투표가치의 불평등"이라며 "더구나 우리나라가 택하고 있는 단원제 및 소선거구제에서는 사표가 많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인구편차 상하 50%의 기준을 따를 경우 인구가 적은 지역구에서 당선된 국회의원이 획득한 투표수보다 인구가 많은 지역구에서 낙선된 후보자가 획득한 투표수가 많은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는 바, 이는 대의민주주의의 관점에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아니하다"고 밝혔다.
헌재는 또 "이 사건 '선거구 구역표' 전체를 살펴보면, 지역대립 의식이 상대적으로 크고 정치적 성향이 뚜렷한 영·호남지역이 수도권이나 충청지역에 비하여 각각 과대하게 대표됨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러한 차이는 지역정당 구조를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고도 했다.
앞서 지난 1월 정의당 당원인 고관철 씨, 남덕현 씨, 강현희 씨 등 6명은 "최소 선거구인 경북 영천시 선거구의 인구 수에 비해 서울 강남갑은 3.00:1, 서울 강서갑은 2.95:1, 인천 남동갑은 2.97:1의 편차를 보이는 바, 이는 '선거구 구역표'에 의한 선거구 획정으로 인해 청구인들의 투표가치가 3.00분의 1, 2.95 분의 1, 2.97 분의 1밖에 되지 않게 되어 평등선거의 원칙에 반한다"는 취지로 헌법소원을 냈다.
지난해 11월에는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도 "충청권의 인구가 2013년 10월말 현재 526만8108명이고, 호남권은 525만979명이어서 충청권 인구가 호남권 인구보다 많은데도 선거구 획정에 있어 충청권에서 선출되는 국회의원 수(25명)가 호남권에서 선출되는 국회의원 수(30명)보다 적게 된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을 냈었다.
헌재는 다만 이같은 선거구별 인구 격차에 대한 헌법소원 외에, 부산 기장군을 해운대구와 병합해 해운대·기장 갑·을 선거구로 정한 것이나 경기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을 수원권선 지역 선거구가 아닌 수원팔달 선거구에 편입시킨 것 등에 대한 헌법소원 5건에 대해서는 위헌이 아니라고 결정했다.
헌재는 "특정 선거인을 차별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고, "거주하는 선거권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차별효과가 명백하게 드러났다고 볼 수도 없다"면서 해당 선거구 5곳의 획정 모두에 대해 "입법재량의 범위를 벗어난 자의적인 선거구획정으로 볼 수 없다"거나 소의 실익이 없다고 판시했다.
정치권 후폭풍은?…여야 대책회의, 정의당 "결선투표제 도입 등 계기 돼야"
당 정치쇄신특위 차원에서 헌법소원을 주도한 정의당은 헌재 판결을 환영하며 "헌법 제11조에 1항에 규정한 일반적 평등의 원칙과 41조 1항의 '국회는 국민의 보통, 평등, 직접, 비밀 선거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으로 구성한다'는 취지에 맞게 우리 국민의 평등권을 공고화하는 현명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인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심판청구를 주도한 사람으로서 오늘 결정을 환영한다"며 "결선투표제 도입 등 차제에 한국정치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포괄적인 선거법 개정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긴급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정의당은 지난 1월 정치쇄신특위 기자회견을 통해, 인구수 편차가 특히 심한 지역구에 거주하는 당원들을 청구 당사자로 하는 헌법소원을 내겠다고 밝혔었다.
정의당은 여야에 대해 △조속한 국회 정개특위 구성, △중선관위 산하에 '선거구획정위원회' 신설, △원내 제정당 간 '정치혁신 원탁회의' 구성 등을 제안했다.
또다른 심판청구 당사자인 정우택 의원도 보도자료를 내어 "민주적 대표성에 따른 투표가치 평등이라는 헌법정신에 투철한 결정"이라고 기리며 "앞으로 입법 과정을 통해 헌법정신에 투철하고 충청도민의 자존심을 살리는 공정한 선거구 획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우려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는 한편, 대책 마련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새누리당은 헌재 판결 직후 김무성 대표와 이완구 원내대표, 이군현 사무총장,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 강석호 제1사무부총장, 김영우 수석대변인 겸 보수혁신특위 위원 등이 참여한 가운데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원혜영 정치혁신실천위원장과 주요 당직자들의 논의를 거쳐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에게 긴급 보고를 했고, 문 위원장 주재로 혁신실천위 회의를 가졌다.
회의를 거쳐 나온 여야의 공식 첫반응은 비슷했다. 새누리당 박대출 대변인은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 다만 선거구 재획정으로 인한 급격한 변화로 정치권과 국민들에 혼란을 줄까 걱정된다"며 "대도시 인구밀집 현상이 심화되는 현실에서 지역대표성의 의미가 축소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모두 함께 고민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새정치연합 김성수 대변인도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 다만 인구비례에 따른 표의 등가성뿐 아니라 농어촌의 지역 대표성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점은 아쉽게 생각한다"고 했다.
다만 새정치연합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하루빨리 구성해서 선거구 획정위원회를 조기에 가동할 것을 제안한다"며 "정개특위에서 중대선거구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석패율제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할 것"이라고 밝힌 반면, 새누리당은 구체적 대응에 대해서는 즉각적 입장을 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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