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제도 개편 제안과 관련한 토론회에서 "의원 정수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폈다. 국회의원 수를 늘리는 것에 반대하는 여론이 높은 상태에서, 대중의 '정치 혐오' 프레임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선언을 한 셈이다.
심 원내대표는 2일 자신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의당 정치개혁 특위(정치똑바로특별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선거구를 재획정할 경우 지역구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헌재 결정에 따르기 위해서도, 선관위의 개혁안 제출 취지를 존중하기 위해서도 의원정수 확대는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심 원내대표는 구체적으로 "선관위 안의 취지를 살려 지역구 수를 240석으로 조정하고, 지역구와 비례 의석 수 2대 1을 유지해 비례 의석을 120석으로 늘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며 현재의 국회의원 정수 300명을 360명으로 늘리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다만 국회 운영 비용은 세비 삭감 등의 노력, 전체 입법부 예산을 현재 수준에서 동결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국민들의 동의를 얻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의원 세비와 보좌진 인건비 등 국회 운영비용 총액을 현재 300명 규모로 유지하면서 의원 수만 360명으로 늘리면 산술적으로는 의원 1인당 가용 예산이 약 17%포인트 줄어든다.
심 원내대표는 "헌재 결정 이후 정치권 일각에서는 지역구 조정을 통해 늘어나는 의석만큼 비례대표 의석을 축소해서 300석을 유지하자는 퇴행적인 주장이 나오고 있다"며 "비례대표 의석 비율을 더 낮추자는 것은 의원정수 확대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 뒤에 숨어 현재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심 원내대표는 "물론 의원정수 확대가 현재 국민들의 정치불신을 감안할 때 매우 민감한 문제인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정치를 한 단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지금 시점에서 의원 정수에 손을 댈 수밖에 없다. 우리 정치의 문제는 국회의원 수가 많은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의석수가 인구 수와 예산 규모, 민주주의 발전 정도에 비해 지나치게 적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원 정수 확대에 대해서는 이날 토론회에 참여한 여야 의원들 모두 직·간접적으로 찬성 입장을 밝혔다.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은 선관위 관계자에 대해 "기왕 선관위가 이런 (제도 개선)안을 제시했다고 하면, 정치권에서 하지 못하는 것을 여론을 고려하지 않고 해줬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을 갖는다"고 우회적으로 아쉬움을 표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원식 의원도 "의석수를 늘리자고 하면 국민의 지탄이 많을 거라고 하는데, 이 문제를 고민해 봐야 한다"며 "의원들이 쓰는 (세비 등의) 총액을 묶어놓고 숫자만 늘리는 방안 등을 고민해 봐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했다. 우 의원은 "한국이 세계에서 몇 번째로 (인구당) 의원 수가 적다고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권역별 비례대표-석패율제, 새정치만 '찬성'
이날 토론회에서는 지난달 24일 선관위가 제안한 권역별 비례대표제, 석패율제, 오픈프라이머리 등 선거제도 개선 제안(☞관련기사 : 선관위 '권역별 비례' 제안…선거제도 개혁 바람 부나?)에 대해 여야 의원들과 전문가들의 치열한 토론이 오갔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 도입에 대해서는 대체로 비판적 반응이 다수였다.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은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는 현상적으로 나타난 현 제도 문제점 보완하는 차원"이라며 "현상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길게는 개헌을 전제로 다수당이 모든 것을 점유할 수 있는 제도를 바꿔서 중대선거구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새정치연합 우원식 의원은 "어떻게 하든 지역구도를 넘어서야 한다"며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는 정치권에서 적극 수용해야 할 과제"라고 도입 찬성 의견을 밝혔다. 우 의원은 "(특정 정당이) 한 지역을 완전히 석권하는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제도"라며 "발생하는 문제는 대응 방안을 잘 만들어 진행하면 좋겠다"고 했다. 우 의원은 "또 하나 필요한 것은 결선투표제"라며 "국민 절반 이상의 표를 받는 후보자가 대통령이 돼야 국민들에게 대표성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토론회 주최측인 정의당에서는 이들 모두와 결이 다른 주장을 폈다. 심 원내대표는 "비례성 제고와 대표성 확대를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방안은 득표율 대비 의석배분제"라며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정당 지지율과 의석 점유율을 정확하게 일치시키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의당은 석패율제에 대해서도 "비례대표제 도입 취지를 훼손할 수밖에 없다"며 "현행 제도 하에서 석패율제를 도입했을 때 이자스민·은수미 의원 같은 비례대표 의원이 다시 탄생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선관위의 개혁안에 대해 더 날카로운 비판이 나왔다. 토론자로 참여한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한국 정치의 우선 과제가 지역주의 완화인가?"라며 "그보다는 삶의 질 악화, 양극화 등 민생 문제가 더 중요하며 이 문제를 놓고 경쟁할 수 있는 정당 체제를 갖추는 것이 더욱 우선시해야 할 과제"라고 근본적으로 비판했다.
이 논설위원은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대해 "6개 권역을 설정한다는 것은 지역주의의 새로운 근거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면서 "형평성을 고려하면 전국 득표율을 반영하는 게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석패율제에 대해서도 이 논설위원은 "지역주의 정당에게 혜택을 주는 제도로 비지역주의 정당인 제3당에는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불공정하다"고 비판했다.
홍성걸 국민대 교수도 "지역구에서 선택되지 않은 후보가 비례대표로 선출되는 것은 지역구 유권자의 의사에 반한다"며 대표성의 한계를 지적하는 한편 "지역구 후보가 득표한 표를 비례대표 선출에 반영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오간 논의를 종합하면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은 '개헌을 전제로 한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주장하며 권역별 비례대표제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밝힌 반면, △새정치연합 우원식 의원은 도입에 적극 찬성했고, △정의당과 전문가들은 '취지는 좋지만 이것으로는 미흡하다'며 더 강력한 개혁을 주문한 셈이다.
오픈 프라이머리제 도입은 '정부·새누리당·새정치연합 vs 소수정당·시민사회' 구도
다만 선관위의 제안 중 하나인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에 대해서는 새누리당이 여태껏 대체로 찬성 기조로 임해 왔고,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정병국 의원도 전면적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 '정부(선관위)·교섭단체 대 소수당·시민사회'의 구도가 만들어졌다. 새정치연합도 앞서 문재인 대표 등이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에 대해 긍정적 의견을 밝힌 바 있다.
토론회 발제를 맡은 김정은 선관위 법제팀장은 "정당 발전을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오픈 프라이머리도 없어지는 게 맞다"면서도 현재 시점에서는 공천 개혁 등을 위해 도입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정병국 의원은 "공천권을 당 지도부에서 빼앗는 것이 지고지선은 아니지만 제대로 된 정치개혁을 하려면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는 이 제도가 맞다. 정치가 왜곡되는 이유는 모든 게 공천권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나아가 "이게 해결되면 그 다음으로는 중앙당 체제를 없애야 한다"고도 했다.
반면 야당과 전문가들은 "당적 기반이 아니라 동원력을 갖춘 유지와 현역 의원들에게 유리한 제도로 정치 신인들에게 큰 장애요소가 될 것이며 조직·동원선거 가능성이 높다"(심상정), "정치에 관심이 많은 특정 시민들의 의사가 과도하게 반영되면서 정치의 왜곡 우려가 있고 '서민 배제의 선거' 우려도 있다"(이대근), "당내 경선에서 국민경선제를 실시할 것인지 혹은 당원의 의견을 반영할 것인지는 정당의 선택 문제"(홍성걸)라고 비판했다.
단 우원식 의원은 "새누리당에서 적극 도입을 얘기하고 문재인 대표도 이런 이야기를 했지만 저는 생각이 좀 다르다"며 개인 의견을 전제로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때 오픈 프라이머리는 국민에게 선풍을 일으켰지만 2007년 우리 당의 오픈 프라이머리는 퇴행적 모습이 드러났다. 처음에는 새로운 제도여서 순수하게 기능하고 국민적 호응을 받았지만, 5년이 지나며 (정치인들이) 어떻게 자기한테 유리하게 (제도 운용을) 할 것인지 다 연구했다. 까딱 잘못하면 '차떼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전체댓글 0